제목이 좀 낚시라 죄송하다. 이 글의 주제는 왜 사람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바꾸지 않는가이다.
지난 글 MBTI로 살펴보는 진보/보수 개념의 문제에 이어지는 글이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에 반하는 근거가 나와도 주장을 바꾸지 않을까? 확증 편향의 오류는 이를 잘 설명해준다. 각하께서 고졸도 취업 잘 되는 세상을 만든다고 하니 고등학교 1학년 수학책을 빌려 설명하도록 하겠다.
그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가?
장난은 이쯤 하고(…) 심리학의 역사에 남을 만한 중요한 실험들 중 ‘Wason selection task’ 라는 것이 있다. ‘카드의 한쪽 면에 모음이 적혀 있으면 다른 쪽 면에는 짝수가 적혀 있다.’ 라는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검증해보려면 다음의 네 카드들 중 어느 것을 골라야 하는지 선택하는 것이다. (카드는 여러 장 고를 수 있으며, 해당되는 카드는 모두 골라야 한다.) 주어진 카드들은 다음과 같다.
자, 이제 정답을 알아보자. 그에 앞서,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카드를 골랐는가? 아마 당신이 대부분의 일반적인 사람들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면, 당신은 아마 ‘A’ 와 ‘2’를 골랐을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A’ 와 ‘7’ 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잠시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수학, <명제> 단원을 배우고 있던 때로 돌아가 보자. 물론 이런 3류 매체를 읽는 사람이 공부를 했을리야 없겠지만 보통 집합, 명제까지는 공부하고 포기하니까 대충 기억할 것이다. 위의 명제 ‘한쪽 면에 모음이 적혀 있으면, 다른 쪽 면에 짝수가 적혀 있다’를 수학적으로 표현해 보도록 하자.
p(한쪽 면에 모음이 적혀 있다) → q(다른 면에 짝수가 적혀있다)
위 명제가 참이라면, 한쪽 면에 모음이 적혀 있는 카드의 반대쪽에는 반드시 짝수가 적혀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위의 네 카드들 중 A의 뒷면에 짝수가 적혀 있으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위 명제는 틀린 것이 된다. 따라서 위의 카드들 중 ‘A’는 반드시 뒤집어봐야 한다.
실제로 관련 실험결과들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거의 예외없이 ‘A’를 고르는 데 성공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어떤 명제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때, 그 명제가 맞아떨어지는 사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확증’ 사례라 부르는데, 대개 사람들은 확증 사례에 민감하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A’와 함께 ‘2’를 고른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카드는 위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와 전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주어진 명제의 ‘역’ (명제의 가정과 결론의 위치를 바꾸어놓은 것) 이 참인지 거짓인지의 여부는, 원래의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의 여부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설령 한쪽에 2가 적혀 있는 카드의 다른 쪽에 자음이 적혀 있었다고 해도, 이것이 위의 명제가 거짓임을 보여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위 명제는 한쪽 면에 자음이 적혀 있는 카드의 반대쪽 면에 무엇이 적혀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2’를 뒤집어보는 것이 명제의 참/거짓을 판단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논리적인 관점에서 오류에 해당된다.
사람들은 왜 명제의 참/거짓과 아무 상관도 없는 ‘2’를 고를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한 가지 그럴듯한 설명은, 만약 ‘2’의 뒷면에 모음이 적혀 있으면, 이는 명제가 옳다는 것을 지지해 주는 한 가지 사례가 되기 때문에 이것을 확인해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확증’ 사례를 찾고 싶어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골랐어야 하는 카드는 ‘7’ 이다. 다시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때로 돌아가보자. 어떤 명제가 있으면, 그 명제의 ‘역’, ‘이’, ‘대우’ 가 있다. 이들 중 원래의 명제와 운명을 같이하는 것은 ‘역’, ‘이’ 가 아닌 ‘대우’다. 대우명제는 원래 명제의 가정과 결론의 위치를 바꿔놓은 후, 각각을 부정한 것인데, 원래 명제와 대우명제는 둘 다 참이거나 둘 다 거짓이어야만 한다. 한편 위 명제의 경우, 대우명제는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q(한 쪽 면에 짝수가 적혀있지 않다) → ~p(다른 쪽 면에 모음이 없다)
이 명제가 참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한 쪽 면에 짝수가 적혀있지 않은 카드의 반대쪽에 정말로 모음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위의 카드들 중 ‘7’ 의 반대쪽에 정말로 모음이 없는지를 반드시 확인해보아야 한다. 만약 카드의 반대쪽에 모음이 있다면 대우명제가 거짓이 되면서 원래의 명제도 거짓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카드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카드로 고르지 않는다. 실험에서는 10사람이 있으면 한 사람 정도가 이 카드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결과는 여러 실험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뇌가 지지 정치세력을 절대로 바꾸지 않는 이유
사람들이 어떤 주장의 진위 여부를 평가할 때, 그 주장이 확인되는 사례만을 중시하고, 반박하는 사례는 무시하는 경향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 부른다. 실제로 확증편향은 우리 주변에서 매우 빈번하게 관찰되는 현상인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창조론이다. 창조론자들은 창조의 증거를 찾아내는 데 있어서는 굉장히 능하지만, 창조를 반박하는 증거들은 그냥 무시하거나 그 가치를 폄하해 버린다. 이는 확증편향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확증편향의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TV토론에 나와서 상대의 이야기는 경청하지 않고 끝없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예만 늘어놓는 정치인, 부작용 사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회복 사례만을 줄기차게 늘어놓는 대체의학 장사꾼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끝나지 않는 논쟁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모두가 확증편향과 관련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확증편향은 빈번하게 정치적, 상업적으로 이용된다!
확증편향은 정치적 성향과도 관련이 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주장에 대한 확증 사례는 쉽게 찾아내지만, 반증 사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문제는 이런 식의 확증편향은 때로 세상을 보는 눈을 심각하게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이미 천안함 사건을 통해 분명해졌지만, 확증편향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매우 편협하게 만든다. 일단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되면, 그 주장에 대한 반증 사례는 흔히 무시된다.
이렇게 짓밟히고도 변희재는 예전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런 변에게 깨진 진중권, 지못미(…)
어떻게 하면 확증편향을 막을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뚜렷한 답은 아직 없다. 확증편향은 매우 강력하고 안정적인 심리적 현상이며, 연구에 따르면 확증편향을 막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해도 확증편향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강력한 증거들이 많이 확보되어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한 쪽의 주장에 매몰되어 반박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양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공평하게 평가하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해야만 한다. 이러한 자아성찰은 물론 매우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지만, 맹목적인 믿음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Wason selection task 가 사람들의 비합리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심리학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후자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선택이 생태적으로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화심리학자들 중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편집자 주 : 이제 진화심리학자까지 꼬드겨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