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의 건강보험제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비정상의 조각이 모인 하나의 거대한 모자이크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우수한 사회보험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외국의 보건의료전문가들은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단기간에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완성한 것을 꼽는다. 우리나라는 1977년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이후 12년 만에 전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했다. 전세계 어느 국가의 사회보장제도 역사에도 없는 전무후무한 성과다. 의료선진국 미국이 우리보다 40여년 앞서 의료보장 제도를 고민해 왔지만 이루지 못한 것을 우리는 불과 12년 만에 달성했다.
공공병원 확충 없이 실현한 건강보험제도의 허점
문제는 그 과정과 방법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비정상적으로 정권을 찬탈한 군사정권 시절이다.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 시절이다. 당시 군사정권은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럴듯한 사회보장 제도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런 정치적 이유로 도입된 의료보험제도는 직장의료보험을 시작으로 12년만인 1989년 지역의료보험을 아우르는 전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됐다.
이렇게 단기간에 전국민 의료보험을 완성한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선진국들이 수십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확대해온 의료보장제도를 단기간에 서둘러 완성했으니 정상적으로 제도화됐을 리 없다. 구조적으로 심각하게 비정상적이다.
문제 1. 민간 의료기관의 강제 건강보험 적용 기관화
정상적인 방식이었다면 국가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의료기관을 설립.확충하는 방식이어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버거웠던지 꼼수를 동원했다. 민간 의료기관을 건강보험 적용 기관으로 지정한 것이다. 해외차관 자금을 도입해 민간병원 시설 및 의료 장비 구입을 지원했다. 도시를 중심으로 민간병원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건강보험의 도입을 확산시키기 위해 초기에 계약제로 운영하던 건강보험 적용 요양기관을 강제지정제로 바꿨다가 다시 지금의 당연지정제로 변경했다.
엄밀히 따지면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는 비정상적인 제도이다. 외국 어느 나라에도 이런 제도가 없다.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떠받치는 가장 핵심적인 장치로 작동하지만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이만큼 비정상적인 규제도 없다.
문제 2. 공공병원 확충 없는 전국민 건강보험제도
만일 건강보험제도 도입 초기에 정부가 공공병원을 적극 확충했더라면 굳이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민간병원을 이용해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완성하려고 하다보니 이런 비정상적인 제도가 도입된 셈이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통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공병원의 공백을 민간병원으로 메운 것이다. 건강보험제도의 틀을 유지하는 의료공급체계에서 민간과 공공병원 비율이 94% 대 6%라는 비정상적인 비율이 여기에서 비롯됐다.
문제 3. 저수가 – 저부담 – 저급여의 구조
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는 강제가입 방식이다. 가입자에게 선택의 연지가 없다.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건강보험 의무가입에 따른 국민적 저항을 해소하고자 적용된 것이 바로 낮은 보험료 부담이다. 낮은 보험료 부담은 건강보험 재정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낮게,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의료수가도 낮게 책정됐다. 이른바 ‘저수가-저부담-저급여’의 3저 시스템이란 또 다른 비정상적인 구조가 완성됐다.
문제 4. 3저 시스템이 낳는 의료기관의 왜곡된 행위
지극히 비정상적인 3저 시스템은 많은 문제를 초래했다. 저수가로 인해 건강보험 진료만으로 수익 보전이 힘든 병의원들은 비급여 진료, 박리다매식 3분진료와 과잉진료를 양산했다. 저수가 탓에 대형병원은 지속적으로 덩치를 키우고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며 성장을 모색했다. 이는 의료전달체계의 심각한 왜곡을 불러왔다. 경증환자마저 대형병원에 빼앗긴 중소병의원은 생존을 위협받으며, 또다른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계에 직면했다.
문제 5. 의약품 리베이트의 횡행
정부는 또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병원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의약품 리베이트를 눈감아 줬다. 여기에는 국내 제약사의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비정상적인 높은 약가 정책이 한몫을 했다. 여기서 발생한 높은 약가마진은 다시 의료기관의 리베이트로 돌아갔다. 제약사가 신약 개발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수 있는 비정상적인 제약시장이 또 그렇게 형성됐다. 환자들은 낮은 보장성 탓에 큰 병에 걸리면 ‘재난적 의료비’로 인해 가정경제에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그래서 또 암과 같은 중증질환을 보장하는 거대한 민간보험 시장이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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