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에 대한 이야기를 찾는 것은 요즘 별로 어렵지 않다. 강점에 대한 책, 워크숍, 강연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소위 강점을 기치로 내세우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대개 다음과 같은 전제를 가짐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남이 시키는 일보다는 내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무조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해서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좋아하는 일이되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내 강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다. 좋아하되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복하게 몰두하며 살아가기 위한 다짐이다.
‘강점’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쩌면 강점이라는 키워드가 대중사회에 이토록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어떻게 ‘강점’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말하자면 강점 찾기를 강조하는 전문가들은, 강점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무리 못나고 한심해 보이는, 나라는 인간조차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정작 나는 강점이 없는 것만 같을까요?’ 강점 전문가들은 두 가지 이유를 들 것이다.
- 숨겨져 있으니까
- 당신은 잘 몰랐겠지만, 강점의 종류가 사실은 무척 다양하므로
전자에 따르면 우리에게 강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지금까지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을 따름이다. 부모님, 선생님이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느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강점을 발견할 시간도, 여유도 충분히 갖질 못했다. 혹은 사회가 자꾸 돈이나 직장이나 사회적 지위 등 세속적 가치만 가지고 줄 세우는 통에 거기에만 신경 쓰느라 강점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산다는 것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못 해봤다.
아니, 사실 그런 생각은 진작부터 해왔는지 모른다. 단지 강점 찾아 새 삶 꾸린다는 시도 자체가 인생을 건 위험천만한 도박과도 같이 느껴지기에 차마 강점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강점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강점 찾을 지혜를 주고, 용기를 줄 테니 이제 나와 함께 좋아하고 잘하는 일 찾아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말이다.
강점의 종류 이해
한편 우리가 강점을 못 찾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아는 강점의 종류 폭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이 찾아낸 강점의 종류만 해도 무려 20-30개에 달하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피터슨과 샐리그만의 초기 강점 연구 결과만 들여다보더라도 그들이 제안하는 강점의 종류가 무려 24가지나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강점의 가짓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여러 보완적 연구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강점의 종류가 많고도 많다는 점만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창의성, 호기심, 개방성, 학구열, 지혜, 용감성, 끈기, 진실성, 사랑, 친절성, 시민의식, 리더십, 용서, 신중성, 감사, 낙관성, 유머 감각, 영성 등등등등…
정말 다양한 강점이 있는데, 우리는 이들 각각의 강점과 우리 자신을 대응해본 일이 있었던가? 내가 아는 강점이 몇 개 안 된다면 인식 바깥에 있는 강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니 단념할 수밖에. ‘내게는 강점이 없구나.’ 하고 말이다.
강점은 생각보다 많은 경우 숨겨져 있으며, 우리는 강점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도 잘 못 한다. 강점의 종류는 (과장 많이 섞어) ‘하늘의 별’ 만큼 많은데 우리가 평소 인식하고 사는 강점의 종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상황이 이러하니 심리학자 등 강점 전문가들이 답답해하고 아쉬워하고 펄펄 뛰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강점을 발견하고 개발하며 살도록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할 만하다.
전문가들은 과학적인 지식 누적은 물론, 충분한 응용적 노하우들을 통해 여러분의 강점을 가공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 강점 찾기, 강점 개발에 관한 전문가의 도움은 여러분에게 분명히 어떤 도움을 줄 것이다. 이미 강점 찾기/개발 노력을 해봤다고? 책도 보고 워크숍 참여도 해봤다고? 그럼에도 강점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로 좋아하되 잘하는 일 찾아 사는 것이 안 된다고? 그런 생각이 든다면 이제부터 다루는 부분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
강점 탐색
강점 찾기 관련, 사실 가장 큰 문제가 한 가지 있으니 강점을 찾게 해줄 도구는 많아도 도무지 그것을 통해 내가 바라는 ‘진정한 목적’에 가 닿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이다. 먹고사니즘의 한계 때문에 당장 강점이 따르는 대로 살 수는 없어도, 그러한 상태라면 일단 괜찮다.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확실히 이해했고 향후 직장에 몇 년 더 다녀 자본과 시간이 갖춰진다면 언제든 밖으로 나와 ‘내 일’을 시작해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강점 도구’의 힘을 빌렸음에도 ‘내가 진정으로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막상 강점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때는 알 것 같았는데, 막상 집에 돌아오고 나니 그게 또 아닌 것 같더라는 거다. 왜 그럴까? 그들이 틀렸던 것일까? 전문가들은 분명 내게 강점이 존재한다 말했지만, 아무래도 역시 나에게는 그런 것 따위는 없었던 것일까?
비단 강점에 관한 문제뿐이 아니다. 요즘 핫한 ‘자존감’ 등의 개념도 마찬가지다. 모든 심리적인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이자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다. 인간은 철저히 사회적인 동물이고 심지어 혼자 있는 그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떠올리며 유희한다. 조금 더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혼자 강점 찾고 믿어봐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온전한 내 강점으로 확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다.
인간은 확인받아야 한다. 흔히 정신적 멘토를 자청하는 아무개들은 ‘다른 사람의 눈치 따위는 보지 말라’ ‘오로지 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면 된다’ ‘타인의 인정받기를 갈구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인간은 태생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행복을 찾으며, 자아 정체감을 형성해 나간다. 문제는 지나칠 때지 타인에의 의존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강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면에 대한 관심으로 강점을 발견하고, 획득했다면 우리에게는 그 강점을 발휘할 여건이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내 강점이 맞았다는 것을, 타인을 통해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사회적 맥락일 때 빛을 발하는 강점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앞서 언급한 피터슨과 샐리그만의 강점 체계를 보면 강점 가운데 ‘리더십’, 겸손’ ‘사회지능’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이들 강점은 명백히 사회적인 속성을 내포한다. 리더십, 혼자서 발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아, 물론 최근에는 ‘셀프 리더십(Self-leadership)’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러나 이는 표현상의 문제일 뿐 흔히 생각하는, 타인에 대해 발휘되는 그런 리더십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겸손이라는 행위의 본질 또한 타인과 나 사이의 관계 속에서, 나의 위치를 어디로 정립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타인’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겸손’이라는 말이 과연 성립될 수 있는 것인가? 끝으로 ‘사회지능’이야 말해 무엇하리. 혼자 있다면 그것이 발휘될 기회조차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힘겹게 찾아낸 내 강점을 믿을 수 없는 이유는 일정 부분 그 강점을 현실 사회에 구현할 기회 자체가 부족했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한다. 아무리 자신이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중요하다 해도, 확인받지 못한 강점은 ‘과연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찾던 강점이 맞을까’ 하고 의심의 소용돌이에 빠지기 십상이다. 천 명의 사람들이 나한테 ‘너는 유머감각이 없어’라고 한다면, 그때도 나는 내 강점이 유머감각이 맞다고 굳게 믿을 수 있을 것인가?
강점 개발
강점 교육의 방향은 ‘기회 마련’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강점의 종류를 알려주고 강점을 찾아준다고 해서 새 인생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강점을 손에 쥐었다면, 이제는 그것을 써먹으며 ‘의미 있는 성과물’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 기회는,
- 능동적 환경 조성을 통해 만들어나갈 수도 있고,
- 사회적인 분위기 조성 등을 통해 마련될 수도 있다.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했다. ‘진정한 강점’ ‘빼박 강점’ 찾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것은 파랑새를 좇는 일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완전한 확신이 들지 않더라도 그것이 내 강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적극적으로 그것을 활용해볼 줄 알아야 한다.
‘강점을 찾았고, 그것을 휘둘러봤더니 정말로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더라’는 경험은 우리에게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주고, 강점을 발휘할 다른 기회를 찾도록 우리를 동기화한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성취일지라도 언젠가 그것들이 점차 누적될 때 비로소 우리는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하며 행복한 자기 자신을 시나브로 발견할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 조성의 중요성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의지 넘치는 개인이라 할지라도 전체 시스템의 분위기가 그것을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면 금세 그 의지는 꺾여버리기 쉬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작금의 현실을 돌아보는 일은 때로 씁쓸하다. 가령 리더십을 강점으로 가진 사람이 수백 수천 명이어도 그들 모두가 리더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낙관성이 강점이더라도 취업 안 되고, 직장일 험난하고, 결혼해 애 낳고 사는 일이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현실 속에 있다면 어떨까? 그런 현실 속에서 낙관성을 강점으로 함부로 발휘했다가는 ‘현실 인식 없는 놈’, ‘철없는 놈’ 소리 듣기 십상일 것이다.
이뿐이겠는가. 학구열을 강점으로 가진 이들이 아무리 대학원 진학, 박사 학위 취득, 교수·연구원 임용의 길을 꿈꿔도 생계 문제 때문에, 혹은 누군가로부터의 갑질 문제 때문에 강점 발휘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다. 강점 발휘의 기회를 오래도록 억제당하면 인지 부조화 및 정당화의 과정을 경험하기 쉽다. 아마 ‘사실 원래 내 재능은 이것이 아니었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다른, 맞지도 않는 일을 찾으려 하지 않을까.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