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문화평론가의 영화 읽기
인생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야. 그걸 미친놈처럼 일일이 다 메꿔가면서 살 순 없어.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2011)는 결혼 5년 차 부부의 이야기다. 프리랜서 작가인 마고와 남편 루는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낸다. 그들의 결혼생활에는 다정함과 유머, 장난스러움과 사랑스러움이 풍부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마고는 이처럼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결혼생활에서 권태를 느낀다. 행복하긴 하지만 강렬하지 않고 안정적이긴 하지만 희열은 없다. 마고는 그 강렬함과 희열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불륜을 저지른다.
나이로 치면 마고와 루는 모두 청춘의 끝자락에 있다. 흔히 청춘이라는 것은 강렬한 사랑, 꿈, 이상, 정열로 상징되고 대변된다. 청춘은 자기 앞에 도래한 저 새로운 삶, 거의 무한하리라 느껴지는 세계의 환상 앞에서 자기를 사로잡는 도취와 흥분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새롭고 낯선 땅에, 흥미로운 일에 자신을 내던지며 자기가 ‘완전히’ 채워졌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한순간일지라도 모든 것이 채워졌던 경험은 평생이 지나도 씻기지 않는다. 온 사회와 문화가 청춘을 향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것은, 짧지만 모든 것이 채워졌던 그 순간의 기억 때문이다.
마고는 작가 일을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예술가인 대니얼을 만난다. 이때만 하더라도, 둘 사이에 큰 열정은 없었다. 그러나 곧 두 사람은 자신들이 바로 이웃집에 사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편이 집을 나간 사이에, 마고는 몇 번 대니얼을 만난다.
그러면서 점점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는 이 젊은 청년에 매혹을 느낀다. 5년여간 이어진 안정적이고 평화로웠던 생활에는 없었던 짜릿함과 몰입감이 피어오른다. 결국 그녀는 이미 정열이 사라진 남편과의 관계를 버리고, 새로운 열정의 세계를 택한다.
영화의 중간중간에는 인생의 본질적 ‘결핍’이나 ‘부적절감’, ‘나이 듦’에 관한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단순한 불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이 영화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건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통찰 어린 순간의 묘사 때문이다.
마고는 가끔씩 혼자 길을 걷다가, 햇빛이 내리쬐며 갑자기 ‘울고 싶어지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루를 껴안으며 ‘우리도 아이를 가질까’ 하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수영장의 샤워실에서 나이든 여성들이 하는 대화 역시 인상적이다.
새것도 결국 헌 것이 돼. 헌 것도 처음에는 새것이었지.
이 모든 순간이 시간 속에 흘러가며 마모되고 늘 새로운 결핍을 알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것을, 결코 ‘완벽함’이 인생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상징한다. 결국 우리가 인생을 알아간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완벽함’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와 세계가 일치했던 완벽한 나날들에서 벗어나는 것, 나이 듦이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단계임을 받아들이는 것, 삶에서 찾아오는 결핍의 순간들을 의연하게 인정하는 것이 성숙이다. 마고는 이러한 성숙을 거부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청춘이었던 시간을 찾아 어린 남자와 재혼한다. 그러나 영화의 처음과 끝은 그것이 결코 ‘새로운 시작’이 아님을 나타낸다.
어느 오후, 아무도 없는 집에서 조용히 설거지를 하며, 집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에서 마고가 느끼는 권태는 루와의 결혼생활에도, 대니얼과의 결혼생활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이 장면은 그녀가 새로운 사람과 재혼했지만 여전히 이전과 똑같은 결핍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모든 인생에는 구멍이 있다. 그 어떤 인생도 그 구멍을 완전히 메울 수는 없다. 미친놈처럼 삶의 모든 구멍을 메우며 살 수는 없다. 헌 것이 되지 않을 도리도 없다. 청춘이나 삶이 아쉽지 않을 리도 없다. 그러나 한편 그 모든 것은 ‘별일’ 아니기도 하다.
삶의 결핍이나 구멍이 느껴진다면, 고요히 자신이 좋아하는 책 한 권을 펼치면 된다. 그 마음이 더 극심해질 때는 아무도 읽지 못하는 노트를 펼치고 글을 써 내려가자. 문득 내가 젊음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아쉬움이 느껴질 때는 그 세월만큼 함께 버텨온 곁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동지애와 연민으로 미소 지으면 될 일이다.
그렇게 하루를 견디고, 하루는 미소 짓고, 또 하루는 그리움으로 나날들을 채워가다 보면 삶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지어 올렸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된 우리의 삶 앞에서, 지나간 날들의 작은 구멍은 점점이 빛나며 수많은 별이 되어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