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의 날이다. 이번 회담은 큰 결실을 만들어 내거나 큰 변화의 시작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그러려면 먼저 어떻게 그 변화가 가능할지, 무엇이 핵심일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수단과 목적을 구분하지 못하면 희망과 미래는 찾기 힘들 것이다.
우선은 뒤집어서 질문해 보자. 애초에 왜 한반도에 평화가 없을까? 21세기에 전쟁은 일어나기 지극히 힘들다. 전쟁의 경제적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웬만한 국가 간의 전면전은 오늘날 상상하기 힘들다. 어느 정도의 경제적 발전이 있고 민주적 절차가 정착된 나라의 국민이 전쟁하자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미국도 자기 국토가 공격당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아프간이나 이라크를 공격하자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미국은 절대 중국과 전면전을 할 수 없다. 모든 국민이 죽지 않는다고 해도 경제는 초토화될 것이다. 오늘날의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아무리 군수산업의 규모가 커도 세계 전체 경제 규모에 비하면 상대가 안 된다. 그런 위험 요소가 있는 진짜 전쟁은 돈도 안 된다. 그래서 현대에는 국지전을 제외하면 전쟁이 없다.
그런데 왜 한반도에는 평화가 없고 전쟁위협이 넘칠까? 바보짓 아닌가? 남북한 사람들이 너무 서로를 미워하니까 이렇게 사는 건가? 인구 2,000만의 작은 나라 북한이 엄청난 경제적 의미를 가져서 전쟁 위기를 무릅쓰고 자원 쟁탈전이라도 벌이는 건가? 그렇지 않다.
자기 선택의 책임도 물론 없지 않겠지만, 만약 세계가 평화롭다면 세계 시장을 교란하는 한반도 긴장은 진작에 사라졌을 것이다. 결국 한반도의 긴장이란 강한 국력을 가진 나라들의 충돌을 대리하는 것이다. 그들이 남북한의 긴장이 지속되기를 내심 원했기 때문에 반세기가 넘도록 유지되어온 것이었다. 다른 나라가 원하는 분쟁을 대신해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냉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긴장 발생 도구로 말이다.
우리는 언뜻 보면 아주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다. 냉전 시대엔 이런 진영논리에 기반 둔 힘의 작동이 당연하다고 하자.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중국이 한국 제1의 교역국이 된 지도 한참인 시대에도 우리는 북한과 전쟁 운운하면서 쓸데없이 힘을 쓴다. 미국이나 중국 사람은 북한에 관광을 가는데 한국 사람은 북한을 관광할 수 없다. 이거 미친 짓 아닌가?
우리는 왜 냉전 이후에도 긴장을 유지하는가. 앞에서 말한 대로 한반도의 긴장은 더 힘센 나라들의 불화 때문이다. 21세기 현재 미국과 대립하는 나라는 중국이고, 북한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벽 역할을 하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에 핵미사일을 날리겠다고 협박할 수 없지만 북한은 태연히 그렇게 한다. 그리고 잠재적으로 중국은 북한을 돕겠다고 암시할 수 있다.
중국은 경제성장을 위해서 나라를 개방해야 하지만 동시에 나라의 문을 닫아걸어야 하는 모순적 상태였다. 북한이 요즘 체제보장을 원한다지만 중국이 망할 거라는 이야기도 벌써 20년 전부터 있었다. 천안문 사태가 1989년이고 그걸 본 사람들은 중국이 개방과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1당 독재 체제를 계속 유지할 거라고 믿지 않았다. 결국은 폐쇄 속에서 경제발전에 실패하거나, 개방 속에서 한국에서처럼 민주화 운동이 독재 정권을 타도할 거라고 본 것이다.
만약 남북한이 통일하고 그 통일 한국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자유와 민주주의의 바람은 한중 국경을 넘어 하염없이 퍼져나갔을 것이다. 만주의 조선족이 한국 경제에 동조해 중국 분리독립운동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미국은 중국을 약화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통해서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격려했을 것이다. 이것이 중국에게 북한이 필요했던 가장 큰 이유다. 미국은 오랫동안 죽어가는 북한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은 중국이라고 비난해 왔다.
그렇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도 무리하게 통일을 추구하는 것은 산수가 나오질 않을 것이다. 남한은 북한 때문에 더욱 미국에게 종속되었고 중국의 코앞에 있는 미군기지 역할을 해왔다. 남북한 평화 분위기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친분관계의 향방이 불확실해진다. 통일 한국에서는 자연스레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거나 경제적·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우방으로 변모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보수층은 미국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그냥 많은 나라 중 하나고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운 나라다. 미국이 한국을 얼마나 믿을 것 같은가. 이것이 한반도에 평화가 없었던 근본적 이유라면 그것을 탈피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그에 관련된 국가들의 성장이다. 평화는 애초에 힘없는 국가 간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평화는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이 있는 나라 간에 존재하는 것이고, 아니면 한쪽이 다른 쪽에게 종속되는 상황이나 있을 뿐이다.
냉전 종식 이후 오늘까지 여러 일이 일어났다. 가장 큰 것은 중국의 성장이다. 1989년의 중국의 지위와 지금의 중국은 크게 차이가 난다. 중국인도 급성장하는 중국의 힘에 취해서 훨씬 더 민족주의적이 되었다. 다시 말해 중국으로서는 경제성장에 기반 둔 사회적 구심력의 성장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높이 올라간 상해의 빌딩을 보면 이제 국경을 통해서 통일 한국이 중국을 약화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는 터무니없다는 것을 즉각 알 수 있다. 20년 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중국과 한국이 바로 맞선다고 해도, 기껏해야 그 결과를 알 수 없다고밖에. 어쩌면 중국은 이제 무력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한국을 완전종속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당장 한국도 유커가 안 들어오니까 난리가 아닌가.
다만 성장한 것은 중국뿐이 아니다. 한국도 훨씬 세계적인 국가로 성장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세계에서 훨씬 인정받으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과의 관계도 굉장히 긴밀해졌다. 북한으로서는 매우 섭섭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한중 관계와 북미 관계가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세상이 얼마나 다르겠는가. 중국이 한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해지는 가운데에도 북미 관계는 살벌하기 짝이 없으니 북한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중국으로서는 장벽으로서의 북한이 필요한가 아닌가 하는 질문은 효용과 유지비의 문제다. 공짜라면 있어도 좋다. 중국도 불확실성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통일 한국이 미국편이 되어 중국을 압박하는 최악의 미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유지는 공짜가 아니다. 경제는 해가 되는 긴장을 만들어 내고, 통제가 어려우며, 심지어 핵무장까지 하는 북한은 더 많은 유지비를 요구한다.
비용이 상상을 불허하는 수준으로 증가할 수 있는 것이 북한의 핵무장이다. 중국도 여기에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 욕할 때 내심 고소해 했는데 그 북한이 이제는 핵미사일을 쏘겠다고 야단이다. 이건 곤란하다. 북한이 폭주하면 북한발 세계 대공황이 올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재 질서의 대안은 한반도 평화지만 그 대안에는 전제가 있다. 바로 한반도가 자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 어느 쪽이든 전적으로 종속되지 말아야 한다. 공평한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남북회담은 두 번 있었는데 김대중과 노무현, 즉 다 민주 정부 때였다. 이번에는 문재인 정부가 북과 정상회담을 한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냉전 논리에 가득 찬 보수 정권은 누가 봐도 한반도 평화를 지탱할 기둥이 될 수 없다. 그들은 그냥 미국의 종속변수일 뿐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때 한국은 외교적 힘이 있을 수가 없었다. 자국이 손실을 봐도 미국의 이익에 충실할 미친 짓을 기꺼이 할 정권이기 때문이다. 사드배치 때문에 중국과의 외교가 상처 입었던 것만 봐도 그렇다. 설사 그것이 필요했더라도 중국과의 대화는 당연히 필요했다. 중국은 한국이 중국을 무시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중국도 한국도 더 성숙했다. 정권이 민주정권으로 교체되었다. 이번에야말로 중립적 위치에서 세계 질서를 지키는 한 축으로 한반도가 독립할 수 있는 때다. 그게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는 때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합리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북의 핵무기도 현 정국의 본질 그 자체는 아니다. 심지어 남북 정상회담이나 북미 회담에서 만들어질 약속 그 자체도 본질은 아니다. 본질은 신용에 있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는 신뢰다. 그리고 신뢰의 핵심은 한국이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을 감당해낼 사회적 역량이 있다는 부분에 있다.
세계의 눈으로 보자면 세계 경제 구도에서 소외되어 온 북한은 말하자면 직업 없이 깡패로 살아온 한국의 형제와 같다. 그 깡패가 칼을 내려놓는다고 말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사업가가 될 수는 없다. 신용이 없으면 장사도 안 된다. 깡패가 무기를 빼앗기면 사람들은 굶어 죽든 말든 이제 좀 조용하겠지 하고 잊어버릴 뿐이다.
설사 이번에 무기를 빼앗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북한은 다시 인질극으로 내몰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핵무기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 깡패국가가 정상국가로 변모하는데 필요한 것은 일단 미국과 더이상 불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도 남한도 세계로부터의 신용이 더 필요하다. 부족하면 담보를 내놔야 한다. 북이 핵을 걸고 협상을 하는 것은 그걸 담보로 신용을 대출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걸로는 물론 부족할 것이다. 여기에 남한이 해야 할 역할과 거래가 있다. 부족한 신용을 제공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유일한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도 한반도 위기로 비용을 지출하는 나라다. 중국이나 미국은 설사 그럴 의지가 있어도 반대편에서 그것을 흡수의 의도로 여겨서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의 중립적 자세 내지 공평한 위치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은 집안의 골치덩이였던 깡패 형제를 갱생의 길로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이 한국에게도 이득이 된다. 남북한 간의 직접적인 경제협력도 강화해야겠지만 그 이외에도 외국에 북한을 소개하고 잘 부탁한다는 도움도 줘야 할 것이다. 사실 북한과 남한 간 자유 왕래만 가능해도 그로 인해 생기는 관광발전이 꽤 크지 않을까? 세계에서 북한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건 남한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물론 난관도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에 대한 청산작업이 필요하다. 북한은 여러 문제에 무료로 청산을 받든지 아니면 어떤 대가를 치르고 사면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은 정상 국가가 되면서 일본에게 과거 청산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한국과도 여러 일을 청산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천안함 사건은 정말 북한 소행인가?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끝에 가면 핵심은 ‘이번에는 북한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북한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이것에 정답은 있을 수 없고 매우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나는 이번에는 북한을 믿는 것이 맞다고 본다. 정상국가가 되겠다는 그들의 의도가 진실이라고 믿는다. 북한이라고 해서 한없이 뒤에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가 소멸한다는 것은 북한에 대한 세계적 경제 제재가 계속될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석유도 끊길지 모른다. 당장은 아무리 상황이 열악해도 참는다지만 그렇게 참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인터넷의 시대이기 때문에 몰라서 그렇지 북한 사람과의 연락이나 통화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우리는 사실 북한에 별 관심이 없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미쳐서 북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보이질 않는다.
중국인도 아니고 미국인이 북한에 관광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화성에 다녀온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북한 사람이 핸드폰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놀란다. 탈북자 이야기를 들으면 이미 꽤 오래전부터 남한의 드라마와 노래와 전자제품이 들어갈 정도로 남한은 북한에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문을 닫아걸고 참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문은 완전히 닫아걸지도 못하고, 세계적인 발전에 점점 뒤지기만 할 뿐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핵심은 신용 회복이다. 남과 북 간의 신용 회복이고 세계와 한반도 간의 신용 회복이다. 아직도 성조기 들고 반공 외치는 사람들 보면 우리 스스로에게 불안감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벽을 넘으면 진정한 새 시대가 올 것이다.
언제까지 주변 강대국에게 휘둘리기만 할 것인가. 신용 회복은 믿자고 결의함으로써 한 번에 이룩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거래함으로써 실적을 쌓아나갈 때 생기는 것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끊겼던 소통이 계속 이어질 확실한 발판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