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오는 55년 동안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갑질로 인해서 상처를 주었던 나 자신과 상처받았던 모든 님들께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최근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갑질을 아주 심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갑질을 당하는 을 입장이 되어 보니 많이 아팠었고 내가 그동안 무슨 짓을 해왔었는지 또렷하게 자각하기 시작하니 부끄럽고 고통스러워 견디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 블로그 글 「나의 갑질로 상처받았던 님들께 용서를 빕니다」 중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대기업 오너 삼남매의 비상식적인 갑질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며 ‘갑질’에 대한 잡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이들은 잘 모를 거다. 당하는 사람의 끔찍한 심경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소위 말하는 갑질 한 번 안 당해본 직장인은 없을 터. 아마 이 글을 읽으며 그 더럽고도 서러웠던 기분을 다시 떠올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지도 모른다.
갑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만 직장인들에게는 여의치 않은 현실이다. 고객의 갑질부터 선배, 상사(심지어 육군 대장 부인도 갑질에 동참하기도 했다), 클라이언트(기업), 오너의 갑질까지 우리는 갑이면 언제 어디서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해도 되는 그런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다.
사회 초년생 시절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할 때 외국 항공사의 광고 디자인 담당을 맡았던 적이었다. 클라이언트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생트집을 잡으며 시안을 수십 번 수정하라고 했다. 비상식적으로 괜한 억지를 부리는 거 같아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클라이언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화를 냈고, 결국 실장님께 전화를 했다. 퇴근길 실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당시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서러웠지만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세상을 참 몰랐던 시절이다.
지금은 갑과 을의 입장을 적당히 병행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갑질 같은 건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 먹는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있다.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소위 ‘을’에게 더더욱 잘 협조하고, 심각하지 않은 한두 번의 실수는 너그럽게 넘어가면서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지, 감정적으로 다그치고 화내면서 괜한 적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걸 직접 당하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돈을 이만큼이나 주는데, 시키는 대로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한두 번도 아니고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사장님이 돈 주지 말래요.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 볼 수 있게 메일 보내 놓으세요(지금 시각 금요일 18시 30분).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들어봤던 흔한 말들이다. 그런데 막상 당사자가 되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납작 엎드려야만 한다. 자존감은 순간 곤두박질친다. 며칠 동안 기분이 나아지지 않기도 했다. 스트레스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 분노와 함께 증폭됐다. 얼마 동안은 갑이 투척한 쓰레기 같은 말들이 불쑥불쑥 떠올라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안정을 찾으면서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이었다. ‘평생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데…’, ‘회사를 그만두면 다 부질없는데…’, ‘좁은 세상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갑질을 일삼는 이들의 문제는 자신과 회사를 동일시한다는 데에 있다. 의경 시절에 경찰관 행세를 하며 권력을 남용하던 선후배들이 있었다. 이와 비슷하다. 회사 대 회사가 협업해 진행하는 일을 담당자 자신이 마치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 착각하는 것이다.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거니까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회사가 정당한 대가로 지급하는 것이지, 말을 잘 들어준 대가로 개인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갑의 입장에서는 의식적으로 회사 대 회사의 일을 잘 중재한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
야, 좀 갈궈~ 네가 안 갈구니까 일을 제대로 안 하잖아.
이 같은 상사의 말에 절대 속지 말아라. ‘갑질을 좀 해서 길들여 놔야 말을 잘 듣는다니까’라는 창피한 사고는 빨리 지우기 바란다. 한 발 뒤로 물러나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금세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이 저질렀던 부질없는 일들이 떠올라 서두의 과거 갑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지도 모른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까 연락 오는 데가 없더라. 같이 일하던 직원들조차도…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둔 대기업 임원도 이런 말을 했다. 같은 조직에 몸담을 때나 권력자라는 말이다. 직장에서의 당연한 의무(일)를 두고 권력의 권한으로 삼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을에게 그대로 전달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상사에게 깨져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신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잘못도 분명 포함되어 있다. 모든 게 100% 을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다.
일을 꼼꼼하고 철저하게 하는 것과 ‘을’을 강압적으로,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누구에게도 갑질 행동을 보이지 말자. 그리고 을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는 버릇도 좀 고치도록 하자. 당신의 품위만 떨어지는 짓이니까.
원문: 직딩H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