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칸투칸 8F 칼럼으로 최초 기고된 글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얼굴을 아는 범인’를 뜻하는 면식범(面識犯)이 아니라 그냥 ‘면 요리 먹는 평범한 사람’ 면식범(麵食凡). 방금 내 멋대로 지어낸 동음이의어다. 오늘은 우동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국물이, 끝내줘요!
내 기억 속, 우동에 관한 최초의 기억은 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의 어느 추운 겨울밤. TV에선 탤런트 김현주가 세상에서 가장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우동 국물을 후루룩, 들이켰다. 눈을 감고 식도를 따라 흐르는 따뜻한 국물의 온기와 평화를 잠시 음미한 후 던지는 한마디.
지금도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생생우동’의 CF가 내겐 첫 우동의 기억이었다. 어릴 적부터 면 요리를 좋아했던 내가(그 시절 내가 먹는 면 요리라고 해봤자 대부분 라면이었지만) 라면 외에 처음으로 맛 들인 면, 우동. 이후 몇 년 동안“국물이, 끝내줘요!”라는 카피는 전 국민의 유행어이자 맛 좋은 우동의 감탄사였다.
그런 탓이었을까. 내게 우동이란, 자고로 ‘국물의 요리’였다. 간장 베이스의 맑고 속 시원한 국물. 물론 잘 보면 기름기가 떠 있기는 하지만, 라면 국물에 비하면 청정한 수준이었다. 분명 같은 인스턴트식품인데도, 왠지 라면보다는 조금 건강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던 우동 국물.
김밥 전문점에서 만난 우동
중·고등학생 땐 인스턴트 우동보다 조금, 아주 쪼오금 더 업그레이드된 우동을 맛볼 수 있었다. 당시 각종 김밥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때였는데, 본가인 김해에도 ‘김밥 일번지’, ‘명동 김밥’, ‘김밥나라’ 같은 업체들이 곳곳에 생겼다. 셀프서비스 방식에 저렴한 가격, 길거리 분식집보다 깔끔한 인테리어가 그 시절엔 꽤 매력적이었다. 특히 적은 용돈으로 골목을 누비고 다니던 중·고등학생들에겐 나름 ‘핫플레이스’기도 했고.
바로 그 김밥 가게에서 나는 ‘생생우동’보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우동을 맛보게 됐다. 팔팔 끓인 냄비에 담겨 나오는, 큼지막한 어묵도 들어가 있고, 유부나 튀김 부스러기도 꽤 많은, 500원쯤 더 보태면 달걀도 즐길 수 있는 그런 우동. 지금 생각해보면 그 우동도 결국은 인스턴트 육수와 면이 베이스였는데도, 편의점 우동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류의 우동 중 최고봉은 ‘장우동’이라는 체인점 우동이었다. 김밥 프랜차이즈 사이에서 당당히 우동을 메인으로 나선 선두주자. 그 이름에 걸맞게 우동만큼은 독보적인 맛을 자랑했다. 물론 그 외 나머지 메뉴는 일반 김밥 가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가스가 추가된 정도?
그렇게 ‘빈약한 우동의 기억’ 속에서 미약하게나마 조금씩 더 나은 우동을 먹긴 했지만 변하지 않는 기준은 하나 있었다. 바로 ‘역시 우동은 국물이지.’라는 생각. ‘어떤 우동이 더 맛있는 우동인가’에 대한 판단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국물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고만고만한 우동만 먹으며 자란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부산의 대학에 입학했고, 비로소 제대로 된 ‘정통 일본식 우동 전문점’을 만날 수 있었다.
우동은 사실 종류가 다양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대도시와 중소도시, 그리고 도시가 아닌 지역의 문화적 규모와 경험의 질적 차이는 분명 존재했다. 10년 전만 해도 김해에는 흔치 않았던 ‘정통 일본식 우동 전문점’이 부산에는 즐비했다. 그런 곳에서 우동을 먹으며 나는 2가지 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항변을 하자면, 지금은 부산과 김해 간 프랜차이즈 업체의 차이는 거의 없다. 그만큼 자본주의의 속도도 빨라졌으니까. 다만 얼마 전 서울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또 서울과 부산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첫 번째로 우동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사실. 어릴 적엔 그냥 간장 베이스의 맑은 국물에 통통한 면이 담겨 있는 걸 ‘우동’이라고 통칭하면 그게 끝인 줄 알았다. 일본식 표기의 우동 종류에 가케, 붓가케, 자루, 덴푸라, 기쓰네, 도리텐, 다누키 등등 다양한 메뉴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별 것 아닌 토핑의 차이인 듯해도 먹어보면 국물까지 아예 다른 맛을 낸다는 것도 놀라웠다.
두 번째로, ‘국물’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내 고정관념을 깨고 대부분 ‘정통 일본식 우동 전문점’은 면의 가치를 강조했다. 직접 반죽하고 숙성하고 제면 한다는 사실을 아주 자랑스럽게 홍보하면서. 어릴 적엔 인스턴트 우동의 면이 서로 들러붙어 있거나, 찰기 하나 없이 뚝뚝 끊어져도 ‘우동이 원래 이렇지 뭐,’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따지고 보면 봉지라면 하나 끓일 때도 ‘꼬들한 면’이냐 ‘불은 면이냐’를 심각하게 따지는 게 한국 사람인데, 우동 면이라고 허투루 대했던 게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특히 대학 근처 ‘겐로쿠 우동’과 생활의 달인에도 방영되었던 남천동의 ‘다케다야’는 내게 우동 면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고마운 가게다. 겐로쿠 우동은 프랜차이즈인데도 불구하고 면발의 식감이 좋았다. 약간 퍼진 듯 면발 표면이 우툴두툴하고 말랑말랑하지만, 씹어보면 찰기가 있다. 특히 비교적 짜게 먹는 내게 간이 강한 국물과 소고기, 닭고기, 대파, 떡 등의 토핑을 더할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다케다야에서는 일본 현지에서 사누키 우동을 전수받은 우동 장인이 발로 밟는 족타(足打) 반죽으로 만든 우동을 먹을 수 있다. 적당한 간에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는데, 특히 다케다야의 굵은 우동 면발은 정말로 ‘입안에서 밀당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탱글탱글하고 찰기가 있다.
그렇게 나는 스물을 넘겨서야 우동이란 음식의 국물과 면을 제대로 겪은 셈이었다. 그런 경험이 이해와 평가의 폭을 넓혀준 덕에 이제 ‘국물이 끝내준다’는 인스턴트 우동은 그나마 ‘추억의 맛’이 아니면 도저히 맛있다고 할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국물의 요리에서 면의 요리로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우동 스토리’지만 1990년대 중반, 전국을 강타했던 생생우동 CF를 돌이켜 보면, 우동이 ‘국물의 요리’에서 ‘면의 요리’로 옮겨온 과정은 어느 정도 보편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왜 우동이 ‘국물의 요리’로 먼저 인식되었을까. 1990년대보다 더 이전부터 우동이란 음식이 우리네 생활에서 어떤 장소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조금은 납득이 간다. 우동이 소비된 대표적인 장소는 주로 길거리 포장마차나 기차역(특히 대전역)의 우동이었다.
그렇다면 우동이 소비된 방식은? 포장마차에선 찬바람에 시린 속을 데워주고, 소주 한 잔의 독한 취기를 달래주는 뜨끈한 안주로 소비되었고, 기차역에선 정차 시간, 그 막간에 허기를 채우기 위한 간단하고도 급한 식사로 소비되었다. 그러니 우동은 ‘면을 곱씹는 요리’가 아니라 후루룩, ‘국물을 들이켜는 요리’로 먼저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동의 과거를 되짚을 수 있다면, 지금에 와서 우동이 ‘면의 요리’로 자리 잡게 된 배경도 그와 이어지는 맥락에서 추측해볼 수 있다. 우동이 분식이나 간식 수준을 넘어 든든한 한 끼로 인정받고, 제대로 된 우동 전문점이 생겨나면서 이제 우동도 자리에 앉아 찬찬히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되었다.
과거 싼 맛에 사 먹던 3,000원짜리 우동이 아니라 한 그릇에 6,000~7,000원 또는 1만 원 가까이 하는 우동이 팔리는 건 그런 문화적 변화와 더불어 물가와 소득 수준의 상승도 영향을 미쳤을 테다. 이제 사람들은 우동 한 그릇을 먹을 때 더 시간을 들여 더 신중하게 맛을 느낀다. 뜨겁고 진한 국물 맛으로 대충 퉁 치려는 건 통하지 않는다.
덕분일지, 때문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이유로 우리는 예전보다 더 맛있는, 가히 ‘요리’라고 부를 수 있는 우동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가격이 점점 오르는 건 늘 가슴 아픈 일이지만 제대로 된 우동을 만나는 건 즐겁다.
겨울이 지나고, 벚꽃과 미세먼지와 신록으로 점철된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아무래도 우동보다는 냉면이나 밀면, 쫄면 같은 메뉴가 더 흥할 것이다. 하지만 취기가 흥건한 밤이나 새벽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맛있는 우동이 생각난다. 또 여름 별미인 냉(冷)우동도 있고. 글을 쓰는 내내 우동이 생각나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일단 오늘은 우동으로 정했다. 그리고 아마, 내일도.
원문: 김경빈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