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일하면 여러 유형의 답답한 인간 군상을 만납니다. 일 처리가 늦은 사람, 애매한데 안 물어보고 했다가 엉망을 만든 사람, 마감을 지키지 않는 사람, 늘 졸거나 자리에 없는 사람 등 우리는 보통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월급 루팡’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 맞습니다. 실무자에게는 앞서 열거한 사람들은 참 답답한 사람이면서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물론 성격 나쁜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요. 하지만 회사를 망치는 사람을 이런 사람들로 규정하는 것은 좀 애매합니다. 차라리 앞서 나열한 부류가 더 나은 경우도 있으니까요. 앞선 부류가 차라리 좀 투박하고 아직 일하는 습관이 덜 갖춰진 부류라면 영악한 부류도 있습니다. 근거 없는 자기 생각을 공식화하는 ‘뇌피셜론자’들이죠.
뇌피셜을 쓰는 사람은 앞서 말씀드린 티 나는 일로 평가절하되지 않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피해갑니다. 그리고 수많은 정보를 가공해 뇌피셜을 강화합니다. 이런 사람이 매니저 이상의 자리에 앉으면서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상황을 많이 보았습니다. 뇌피셜론자들이 관리자가 되면 어떤 패턴으로 회사를 망치는지 경험을 토대로 잘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결과에만 집중한다
회사를 망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사후적인 숫자에 과도하게 집착합니다. 사실 뭐가 원인이고 결과인지 지표 간 영향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숫자를 통해 경영 구조를 파악하고 업무 프로세스와 조직 문화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결과 자체를 다차원으로 분석해서 결과를 세밀하고 복잡하게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노력에 드는 에너지는 다른 사람에게는 일이 되게 하는 중요 선택의 과정에 대한 탐구심을 앗아갑니다. 이런 경향의 확대는 결과를 통해 누구를 평가하고 더 분석하는 사후적 관점을 회사 전체에 물들입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꼼꼼한 이미지로 경영 지표를 운운하며, 분석을 통한 키워드를 하나 건져내면 실무의 경험과 아이디어나 개선 방향을 무시해버립니다.
2. 경영 프레임을 판매한다
결과를 위한 결과, 그것을 위한 준비, 보고서가 만연하면 그것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통해 회사 내부의 주도권을 가져오려고 합니다. 그것이 최근 시장에서 핫한 키워드일 수도 있고 최신 경영 이론을 빙자한 복잡한 서류 양식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식스 시그마’의 무분별한 확산과 ‘비즈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을 통한 부분 최적화의 폐해는 쓰지 말아야 할 곳, 쓰지 않아도 되는 것에 무모하게 키워드를 적용한 결과입니다. 그들이 이런 것을 선호하는 까닭은 이런 공신력이 있을 것 같은 것에 의지해 주주와 경영자의 눈에 혁신하는 경영 전문가 이미지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실은 하나의 키워드로 만든 경영 플랫폼을 가지고 회사 내부에서 플랫폼 장사를 시작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런 경영 프레임의 최대 오류는 우리가 아닌 누가 해도 말이 되는 이론이라는 것입니다. 사업의 타깃 고객이나 우리의 포지셔닝, 역량 중심의 경영 프레임 따위는 이런 이론에 없습니다. 상황에 관계없이 누가 하든 다 적용할 수 있는 경영 이론은 사실 경영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단순 관리일 확률이 더 높습니다. 전략적 방향이 없는 단순한 레이아웃에 불과합니다.
3. 결정할 일을 리서치만 하게 만든다
새로운 경영 키워드의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이것에 맞게 경영을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벌어집니다. 보통 새로운 지표로 현상을 다시 맞추고 새로운 키워드의 실무 추진 계획들이 돕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키워드의 정의를 익히고 그것으로 지금의 경영계획을 재해석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경영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잠시 보류되고 새로운 경영 플랫폼을 통해 다시 모든 보고서가 모이면 그때 새롭게 의사결정이 진행되는 분위기가 전사적으로 연출됩니다. 실제 비즈니스가 만들어질 중요한 계약이나 인프라 투자, R&D는 시기를 놓치고 업계에서 이 회사는 이상한 평판이 돌기 시작합니다.
4. 정말 해야 할 일을 못 하게 만든다
새로운 경영 플랫폼이 조직 운영 실행에까지 발전하는 단계가 되면 초반에는 이것을 진행하느라 모든 역량이 여기에 집중됩니다. 다른 것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처음에 이것을 만든 경영진은 우수 사례를 초반에 빨리 만들어 내기 위해 전사적으로 이것만 이야기하면서 조직을 압박합니다. 실무자의 정신은 온통 여기에 쏠려 있습니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이 프레임은 기존의 내용을 다시 바뀐 보고서 레이아웃에 맞게 재가공하는 수준에 그치며 의욕 떨어지는 보고 작업만 양산하는 것으로 많은 이의 의지를 떨어뜨립니다.
5. 그 와중에 잘 되는 것에 숟가락을 얹는다
경영 키워드의 모든 최종 목적은 우수한 실적이며 확인할 수 있는 시기는 지금 당장입니다. 새로운 경영 플랫폼은 무엇으로 성과가 나오든 실적이 나오는 것으로 갖다 붙이게 되어 있습니다. 전체에 이 키워드를 뿌렸기에 성과가 원래 잘 나와야 하는 조직의 결과도 새로운 경영 이론의 산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무자들은 알죠. 위에서 말하는 보고서의 주제가 A이든 B이든 결국은 실무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걸요. 비즈니스가 만들어지는 사업가적 실패와 행동에 주안점을 둔 게 아니라 단순히 결과, 실적, 숫자에만 기준을 둔 것이기에 실무는 따로 돌아가는 것이죠. 하지만 신 용어는 이해관계가 맞는 부서와 만나 하나의 성공 사례로 회사 내부에 소개됩니다. 새롭게 주목받고 싶어 하는 실무 조직의 관리자는 이런 기류에 잘 편승해 표본이 되는 승진과 보상을 이뤄냅니다.
6. 시키는 일을 잘하는 기준으로 사람을 앉힌다
경영진은 실무의 상황을 잘 모르니 누가 들어도 맞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뭔가 실적이 나오는 이 경영 플랫폼을 신뢰합니다. 경영 플랫폼의 레이아웃에 맞게 보고서를 잘 정리하고 초반에 뭔가 빠릿빠릿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최종 결과와 관계없이 우수한 직원으로 선별하고, 이 이론에 불만이나 이론적 결함을 주장하는 사람은 회사 정책에 반하는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회사 내부에 ‘합리적 의심’을 없애고 모두 같은 생각을 해야 하고 단순히 절대 이론의 손과 발 역할만 하길 바라는 인재 파괴 현상이 벌어집니다. 합리적 토론보다는 이론에 따른 빠른 실행이 강화되면서 기업가 정신은 빠르게 조직 내부에서 사라집니다. 여차하면 태도를 가지고 인사 고과에 평가를 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7. 뇌피셜 이론을 강화하고 반대 세력을 몰아낸다
처음 경영 프레임을 새롭게 개발한 관리자는 전사적으로 여기저기 영업망을 넓히고 성공 사례도 만들어 내면서 입지를 다집니다. 자연히 더 높은 자리를 원하겠죠. 처음부터 이것이 목적일 테니까요. 현재 그 자리나 승진에서 경쟁자라고 생각되는 인물 대신 승진을 하고 이론의 반대세력 정도로 몰아가면서 적절하게 한직으로 보내버립니다.
실적이 아직 크지 않은데 이런 일이 가능하겠느냐고 의아해하는 분도 있을 테지만 이런 회사는 최근 대다수 일에서 큰 성장이 드물기에 만들어진 작은 성공에 고무됩니다. 최종적인 목표인 영속하는 브랜딩을 만드는 것과 상관없이 작은 숫자 자체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배후에는 질적인 성장보다는 지금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골몰한 이사회나 주주의 근시안적 시각이 있죠. 황금 거위의 배를 갈라보겠다는 것이죠.
8. 다른 경영 프레임으로 옮겨간다
이런 과정들의 하이라이트는 이 경영 이론을 가지고 사업을 일으켜 세워 제2, 제3의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 내부에 경쟁자를 제거하고 자신을 따르는 라인을 만드는 것이죠. 그다음은 빠르게 다음 경영 프레임을 발굴해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경영 프레임에서 빠져나가는 일에 골몰합니다. 과거의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그것을 능가하는 새로운 콘셉트를 가져 나오는 식으로 위기를 빠져나갑니다.
만들어진 작은 실적은 이런 명분을 가능하게 만들고 이미 회사 내부에서 논의가 가능한 고위직은 힘을 잃어버린 이후니 이런 일이 실제 어렵지 않습니다. 뭔가 결과물이 나올 것이지만 그것은 어차피 결과론적인 것이므로 불필요한 시스템이나 보고서일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9. 1번부터 8번까지의 일을 반복하며 연명한다
새로운 이론을 가져왔으니 다시 처음부터 시작합니다. 이 이론으로 회사의 주요 지표를 건드려 봅니다. 당연히 성과가 좋지 않은 조직이 많을 테니 진단에서 걸리는 부분이 나올 것입니다. 어느 방향으로 자르든 결과가 좋지 않은 조직을 이 방향의 이론으로 한 번, 이번에는 이론을 바꿔서 다른 방향에서 잘라보죠.
최고위층이나 주주가 사업가적 마인드를 잃어버리고 관리에만 연연한다면 이런 새로운 이론은 언제나 매력적인 분석과 경영 대안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만의 색깔이나 전략적 방향성은 이미 없습니다. 새로운 키워드에 남이 가는 길이나 따라가기 바쁘죠.
우리의 고객은 정말 그것을 우리에게 원할까, 이미 이뤄놓은 남의 영역이 아니라 새롭게 우리만이 잘할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 없이 말이죠. 어디서든 하나의 작은 실적이 나오고 그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일부 실적을 부각해 또 연명해 나갈 것입니다. 회사는 그렇게 정복당하죠.
마치며
경영 프레임이든 플랫폼이든 키워드든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만의 색깔이 있는 전략을 기반으로 한 일할 프레임이 필요한 것이지 어디에나 다 갖다 붙여도 맞는 고전 서적의 관리 이론이나 요즘 다 관심 있지만 뜻은 잘 모르는 키워드를 남이 가는 식으로 따라만 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전략, 포지셔닝, 브랜딩 이런 무형의 용어를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와 유리된 경영진은 실제 그것을 해본 적은 없고 아무나 참고 자료 보고 말할 수 있는 것을 회사 내부 여기저기에 팔고 다니죠. 그래서 뇌피셜론자, 특히 사후 결과에만 집착해서 뭔가 자신만의 이론을 만드는 뇌피셜 중간관리자는 중책을 맡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전적으로 일을 뚫고 다니는 뇌피셜론자는 해당 사항이 아니겠지만요.
원문: Peter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