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만 나이보다 한국 나이가 통용된다. 4살까지는 한국 나이보다 개월 수를 더 이용하는 편이고,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는 5살이면 한국 나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다. 아이의 파란만장했던 5세 시절을 되돌아보니 행복이 절반 이상, 아쉬움도 3할 정도는 되고, 반성도 2할 정도는 되는 듯하다.
‘아기’로서 가장 귀여움이 만개한 나이인 5세. 아이가 이제 더 이상 ‘아기’가 아니고 완연한 ‘어린이’가 되어버릴 것 같다는 아쉬움. 아이에게 최고의 시간만을 보내게 해주지 못한 반성 2할. 5세면 아직 어린이라고 하기엔 조금 덜 맺힌 나이, 아기로서의 포텐셜은 최고조에 이르는 정말 훌륭한 나이다.
아이가 5세였던 이 시절 나는 정말 아이 키우는 맛에 절여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직 귀여운데, 이제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배워오고, 점점 똑똑해지고, 독립심도 커가고, 말 안 듣는 능력도 점점 커지고… 우리 아이가 5세가 되어 달라졌던 점 11가지를 정리해보았다.
1. 존댓말의 완벽한 사용
3-4세 때도 가정방문 선생님들을 만났었고 짧게나마 기관에 다녔던 적도 있는 아이였건만 선생님들에게 항상 반말을 사용하는 덕분에 약간은 부모로서 창피했던 것이 사실이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가 존댓말을 사용하면 따라 쓰기도 한다던데 우리 아들은 영~ 존댓말을 쓸 기미가 안 보여서 혼내보기도 하면서 가르쳤지만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치원이란 교육기관으로 정식 입학을 하니 몇 달 만에 아이가 존댓말이 늘더니,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에게는 완벽한 존댓말 구사, 심지어 부모인 우리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했다. ‘기관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2. 선생님은 신
집에서 부모가 한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아이였건만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모두 ‘법’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지키려고 했다. 아이 유치원 같은 반 엄마들도 입을 모아 하는 얘기들이, 선생님 말은 무조건 신격화시켜서 그대로 따른다고 했다. 이것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차이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3. 왜 나만 어려? 어른들을 흉내 내자
집에서 자기 혼자만 어린이 역할을 담당하는 준이는 어느 순간 자아가 부쩍 성장했는지, 자기 혼자 어린이고, 자기 혼자만 어른들 말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은 것 같아 보였다. 어른이 되고는 싶은데 당장 어떻게 안 되니까 자기가 어른처럼 명령을 해본다든가 어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논다든가 하는 특이한 짓을 했다.
우리 어릴 때는 아이가 어른들 말을 따라 하면 버릇없다고 혼을 냈다. 헌데 이것은 자아가 성장함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혼내기 보다 잘 계도하는 것이 옳다.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을 어른을 흉내 내면서 푸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버릇없는 행동이 아니니 이해해주면서 마음을 받아주고, 다독거려주는 것이 좋다. 이것도 다 한때라 조금 따라 하다가 상대를 안 해주면 쉽게 그만둔다.
4. 어른이 잘못했어? 어른들을 혼내자
3번과 일맥상통한 현상이다. 자기도 어른이 되고 싶고, 어른을 흉내 내고 싶었기에, 자기 기준에서 어른이 잘못한 행동을 보았을 때 자기도 어른을 ‘혼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현상의 단면만 보면 어른에게 호통치고 버릇없이 구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데, ‘아 어른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구나’하고 이해하고 다시 보니까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다.
이런 현상의 일환으로 집에 와서 ‘선생님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선생님 흉내를 내면서 엄마아빠에게 명령하고 혼내기도 하고 ‘줄 서라, 걸어가라’ 등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는 짓을 시작한다. 말 안 들으면 호통을 친다. 자기효능감을 시험해보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니 일단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고, 너무 심할 경우엔 주의를 주는 것이 좋다. 자기가 어른과 동급이라고 굳게 믿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준이도 선생님이 되고 싶고 어른이 되고 싶었어? 그 마음은 잘 알겠는데, 준이는 아직 어려. 가끔 흉내 내보는 것은 좋지만 어른이 된 것은 아니니까 어른들을 혼내면 안 되는 거야. 준이가 다 클 때까지는 어른들 말을 잘 듣고 어른이 되면 준이보다 어린 사람들을 잘 가르쳐주면 돼.
하고 알려주면 된다.
5. 친구와 협응하기 시작
5세 초반만 해도 원 아이들이 한 공간에 모여있긴 하지만 서로 각자 자기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며 노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5세 후반이 되니까 드디어 친구들과 협응을 시작했다. 서로 대화도 주고받고, 친구가 나타나면 반가워하기도 하고, 집에 와서도 친구 얘기를 하고, 친구가 보고 싶다는 소리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협응 놀이를 시작하였다.
형제가 없어 혼자 크는 우리 아들의 경우 사회성이 늦게 자랄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5세 후반이 되니 이런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을 보고 크게 한시름 놓았던 기억이 있다. 외동아이들도 5세, 늦어도 6세가 되면 사회성이 자라나니 외동을 키우시는 분들도 큰 걱정을 안 해도 좋을 것 같다.
6. 규칙적인 생활에 대한 받아들임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에는 어린이집에 간다 안 간다 문제로 아침마다 실갱이했던 기억이 있던 나에게는 유치원 적응 문제가 큰 고민거리 중의 하나였다. 왠지 유치원 생활이 적응되어야 나중에 학교 가는 문제도 잘 잡힐 것 같아서였다. 지금도 가끔 아침에
오늘 무슨 요일이에요? 유치원 가는 날이에요?
하고 물어보며 가기 싫다는 뜻을 비치는 날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평일엔 유치원에 가야 한다’는 대 전제는 받아들이고 있다. ‘싫지만 해야 하는 건 해야 한다’는 개념이 좀 잡혔다고 할까? 같은 차원에서 이 닦기, 목욕하기, 밥 먹고 간식 먹기와 같이 평소에 싫어하던 것들도 이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이 같은 성장은 5세 후반에야 나타났다.
7. 학습능력의 향상
아마 많은 5세 미만의 영유아를 키우시는 분들께서 관심 있으신 부분일 것이다. 어떤 아이는 한글에, 어떤 아이는 영어, 어떤 아이는 미술, 운동 등 각자 자기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에 두각이 나타난다. 뛰어난 두각은 아니지만 아이의 학습능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분야에 한해서 생기는 게 보인다.
꼭 한글을 잘해야만, 영어를 잘해야만, 수학을 일찍 시작해야만 학습능력이 생긴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마다 개성에 맞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슬슬 나타나기 때문에 아이의 적성에 맞는 교육을 적절히 해주는 것이 좋다.
8. 1등, 순위에 대한 집착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든 1등, 1등 소리를 잘하게 되었다. 유치원에서 어떤 활동을 할 때 순서를 매겨서 경쟁을 시키는지, 밥 제일 잘 먹는 아이도 자기고, 선생님 말씀 제일 잘 듣는 아이도 자기고 제일 똑똑한 아이도 자기고, 달리기도 자기가 제일 빠르다고 집에 와서 자랑했다.
엄마, 아빠, 자기 이렇게 셋이 나란히 걸어갈 때도 앞뒤로 일렬로 줄을 세운 후 자기가 1등으로 걸어갈 거라고 우기질 않나, 자기가 제일 키가 쑥쑥 커져서 우리 가족 중 제일 커질 거라고 장담하질 않나… 이를 “이 반찬 제일 빨리 먹을 사람!” “이 닦으러 1등으로 올 사람!” “밥 1등으로 빨리 먹을 사람!” 등 아이가 평소에 하기 싫어하는 상황에 ‘1등’이란 경쟁심리를 역이용해서 아이가 입도 쩍쩍 벌리고 이 닦으러 달려오는 경험을 해보기도 했다.
9. 재우기는 쉽고, 깨우기는 어렵다
5세쯤 되니 잠투정 같은 것도 더이상 없고, 유치원 생활이 규칙적이어서 그런지 그전에는 11시까지도 안자던 애가 9시만 되면 기계같이 잠든다. 재우려고 눕히고 5분~10분이면 잠들고 중간에 잘 깨지도 않는다. 덕분에 애 재운 후 마법 같은 자유시간이 찾아왔다. 이 자유시간에 너무 감격해서 막 오버하면 새벽 2-3시까지도 안 자고 버티다가 다음날 좀비가 될 수도 있으니 자유시간 조절도 잘 해야 하는 것 같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충분히 재운 것 같은데도 기본적인 체력소모가 많은 것인지, 깨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9시에 재우니까 7시에만 일어나도 10시간은 잔 것인데 8시까지도 자고, 그나마도 깨우기가 너무 어려웠다. 내가 워킹맘이 아니다 보니까 애가 늦게 일어나도 다 기다려줄 수 있지만 워킹맘이거나 유치원에서 차가 와서 정시에 데려가는 경우는 정말 난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킹맘인 내 친구는 8시에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 스케줄이라 애를 9시에 무조건 재우고 7시에 깨워서 한 시간 동안 준비해서 나가고 아이를 저녁 6시 반에 픽업해서 집에 데려오면 7시.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하루에 단 두 시간인데, 먹이고 씻기고 학습지 한두 장 하면 하루가 다 가버려 너무 아쉽다는 얘기를 했다. 육아의 질이고 뭐고 따질 기본적인 시간의 여유가 없다면서. 그나마도 아침에 깨우기가 너무 어렵다는 하소연을 해댔다.
아이가 좀 더 커서 잠이 줄어드는 것을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는 걸까? 워킹맘만큼은 아니지만 아이가 종일 유치원에 가 있다 보니 나 역시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이 아쉽긴 마찬가지다.
10. 예술적인 말대꾸
아이는 어서 자라 어른과 동급이 되고 싶어 한다. 자기 입장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느꼈을 때 거침없이 말대꾸하는데, 어떨 때는 정곡을 정확히 찔려서 맞받아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스마트폰 보기, 불량식품 먹기, TV 보기 등 엄마는 되고 자긴 안 되는 행동에 눈 똑바로 뜨고 의문을 제기하면 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다.
어렸을 때야 “아기는 이런 건 안 돼~” 하고 무작정 억압(?)했다지만 이제는 ‘논리적’으로 납득시키지 않으면 어려운 순간들이 많이 닥쳐왔다. 어른은 되고 아이는 안 되는 행동에 아이가 말대꾸할 땐 이렇게! 바로 자제력에 대한 설명이다.
어른은 자제력이 있어서 스마트폰을 보다가도 다른 할 일이 생기면 그만 멈출 수 있지만 아이는 아직 그럴 수가 없어.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보게 되잖아. 그래서 아이는 어른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봐야 한다고 기준을 정해줘야 되는 거야~
동생은 되고 자긴 안 되는 행동들, 형은 되고 나는 안 되는 행동들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적인 말대꾸에 말문이 턱 막힐 때는 아이와 대상 간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설명해주면 좋다. 예를 들면 “동생은 아직 아기여서 지금 놀아도 되지만 누나인 너는 ‘책임’이 많아졌기 때문에 지금 앉아서 엄마와 함께 공부해야 한다, 너도 아기였을 때는 ‘책임’이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놀았다”고 말이다.
11. 자기 스스로 더이상 ‘아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기 때~ 이렇게 이렇게 했어?
하며 마치 지금 자긴 아기가 아니라는 듯이 말할 때가 있다. 자기 스스로 다 컸다고 생각하는 5세. 귀여운 듯 대견한 듯 미묘한 감정이 겹친다. 아직 많이 배우고 더 자라야 할 나이다. 이제야 유치원이라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자기가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아기인 나이인 5세.
다른 엄마들 말을 들어보면 6세가 되면 성장 속도도 조금 더뎌지고, 얼굴도 훌쭉해져서 아기 같은 맛이 많이 없어진다고 한다. 말도 너무 잘해서 완연하게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된다고 했다. 아직은 조금 더 천천히 아이가 자랐으면 한다. 조금 더 내 품안에서 아기처럼 구는 아이의 모습을 더 지켜보고 싶다.
원문: 스윗제니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