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면접을 보는가?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신입 사원 채용을 제외하고는 구직자는 일반적으로 회사가 면접을 통해서 사람의 업무 능력만 평가할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개발자들은 더 그렇다. 다른 직군은 면접장에서 업무를 주고 해보라고 하기 쉽지 않지만, 개발자는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손쉽게 어떻게 개발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개발자의 페이스북인 깃허브 같은 곳을 이용하면 개발자가 그동안 어떻게 개발해왔는지 역사도 쉽게 살펴볼 수 있고.
하지만 면접을 통해서 한 사람의 실력을 판단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글 같은 곳에서는 6~7회 모든 팀원이 입사 후보자를 면접 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충분히 채용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고, 사람의 실력을 판단할 능력이 안 되는 회사에서는 병적으로 유명한 회사 출신을 뽑으려고 한다. 제대로 된 사람을 뽑을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인재 채용 시스템에 숟가락을 얹어서 쉽게 묻어가려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면접을 통해서 사람의 실력을 판단하기 힘들다면, 면접관이 면접을 통해서 진짜 보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면접 때 가장 중요한 건 이 사람이 함께 일하고 싶다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핵심은 자신감과 의사소통 능력이다. 누가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겠는가?
가장 기본적인 업무 능력은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가정하자. 싱가포르의 경우에는 보통 3개월의 신입, 경력 할 것 없이 모두 Probation 기간을 갖는다. 한국으로 따지면 수습 기간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리고 싱가포르는 해고나 퇴사 전에 통보해야 되는 기간을 Notice Period라고 부르는데, 수습 기간 2주 정도의 아주 짧은 Notice Period를 갖는다.
따라서 쉽게 사람을 해고할 수 있으니 편한 마음으로 사람을 뽑아서 테스트해볼 수 있다. 그러니 사람을 잘 뽑는 건 물론 중요하지만 정말 아닌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고 이게 다시 편한 마음으로 사람을 뽑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왜 당신만 면접을 보는가?
그런데 사람들이 인지 못 하는 것은, 면접은 회사만 구직자를 살피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면접은 회사가 구직자를 만나는 시간인 동시에 구직자가 회사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회사가 면접을 통해서 구직자의 모든 걸 알기는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구직자도 면접을 통해서 회사의 모든 걸 알기는 힘들지만 다양한 질문을 통해 제법 많은 정보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면접 때 면접관이 보통 어떤 질문을 하는지 기억하는가? 많은 질문은 면접관에게 그대로 돌려줄 수 있다. 절대로 면접관이 하는 “질문 있어요?”라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혹시 저 질문을 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양해를 구하고 질문을 해야 한다.
‘왜 전 직장에서 퇴사하셨어요?’라는 질문은 ‘왜 제 전임자가 퇴사했나요?’ ‘최근 반년 사이에 퇴사하고 입사한 직원 수가 얼마나 되나요?’ 등의 질문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이런 질문을 통해서 현재 조직의 퇴사율이 어떤지 가늠할 기회가 된다. 문제 해결 능력과 약점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인 ‘어떤 프로젝트가 가장 어려웠나요?’는 ‘이 팀의 약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팀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는 걸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회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물론 구직자가 모든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하는 게 아닌 것처럼, 회사 관계자도 모든 답변에 솔직하게 답변해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좀 안일한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답변을 통해서, 그리고 표정과 몸짓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생각보다 많다. 면접에서 면접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모든 정신을 기울이지 말고, 내가 앞으로 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이 회사가 어떤 곳인지 더 주의 깊게 관찰하라는 이야기다.
예의 바르게, 당당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다만 적극적으로 질문하라는 것이 상대를 깔보는 느낌을 주거나 지나치게 사납게 덤벼들라는 말은 아니다. 적당히 회사에 대한 관심과 포지션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선에서 질문하면서, 회사 내부 사정과 분위기를 잘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때로는 말로 이뤄지는 답변보다 질문을 들었을 때 상대방의 표정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는 때도 있다. 정말 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면접을 수동적으로 임하는 데 익숙하다. 면접관의 고압적인 분위기와 함께 ‘스트레스 관리능력’과 ‘순발력’을 본다는 이유로 이뤄지는 비인간적인 압박 면접에도 군소리 없이 웃으면서 성실히 답변한다. 면접관이 마지막에 하는 ‘질문 있어요?’라는 물음에도 열심히 외워간 질문을 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원래 면접은 그런 게 아니다. 면접은 구직자와 회사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소개팅에 나가서 상대방이 하는 말에 고개만 끄덕이며 질문에 답변만 하던가. 취향은 맞는지, 가치관은 통하는지 대화를 해봐야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최근에 미국계 B2B 회사의 면접을 한 번 봤다. 한국으로 따지면 임원급의 Director가 첫 면접에 들어왔다. 면접에 와줘서 고맙다며, 우리 회사에 대해 잘 모를 테니 소개해주겠다며 10분 정도 열심히 회사 소개를 한다. 이후 기술에 관련된 질문 등을 편하게 주고받다가, 내가 질문을 했다.
나는 상하관계가 강한 조직이랑 좀 안 맞거든, 여긴 좀 기업 문화가 수평적이니?
그 질문을 듣고는 잠깐 고민하더니,
응, 우린 직급 체계가 있긴 하지만 굉장히 수평적인 편이야. 업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가져와서 할 수 있어.
솔직하게 묻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면접은 회사가 구직자를 일방적으로 뽑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 잘 맞는지 알아보는 시간이니까.
한국에서 다녔던 첫 직장에서 한 임원과 점심을 먹으면서 “원래 임원이 바쁜 회사는 별로인 회사다. 부장까지 열심히 일하고, 임원 달면 쉬엄쉬엄 일해도 회사가 돌아가야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을 하지만, 그 안의 방식은 참 많이도 다르다.
원문: 마르코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