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여기자협회가 펴내는 《여기자》 제26호에 실린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의 칼럼입니다.
1990년대 초중반, 나는 경제기획원(지금의 기획재정부)을 출입하는 엄마 기자였다. 당시엔 정부 정책의 사회적 파급력이 지금보다 컸고, 그 중에서도 거시정책과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원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만큼 굵직한 기사거리가 많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불꽃 튀는 취재경쟁을 치르고 퇴근 후엔 엄마 손길이 절실한 아이를 돌봐야 하니 ‘기사거리와 무관한 모임은 사치’라고 여기며 24시간을 쥐어짜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같은 신문사의 경제부 동료가 “그러게 술자리 빠지면 손해라니까~” 하며 전날 있었던 일을 슬쩍 전해주었다. 나 외엔 모두 남자인 경제부원들이 저녁을 함께 했는데, 내가 도마에 올랐다고 한다. “기획원이 경제부에서 가장 중요한 출입처인데, 여기자를 내보내는 건 회사 망신”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다수가 동조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당시 기획원을 출입하는 여기자는 전 언론사에서 나 혼자였다. “남자들이 변변치 않아 여자를 대표선수로 내세운다고 출입처와 타사 사람들이 흉볼 것”이라는 맞장구도 나왔단다. 순간, 배신감이 얼음물처럼 정수리를 타고 흘렀다. 한솥밥 먹는 식구로 생각했던 선후배 동료들이 그런 속내로 내 뒤통수를 치고 있었다니. 집에 돌아와 비분강개한 마음을 터뜨리자 동종업계의 타사에 다니던 남편이 아주 ‘쿨’하게 대꾸했다.
그러니까 직장을 정글이라고 하지. 무슨 핑계를 잡아서든 상대를 딛고 일어서려 하는 거거든.
나와 함께 분노해 주지 않는 남편이 맘에 안 들었지만, 그때 한 가지는 명확해지는 것 같았다. 나를 경쟁자로 여기고 공격하려는 이들에게는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매우 단순명료한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것. 어쨌거나 나는 ‘기사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을 다졌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년 후, 평기자로서는 당시 언론계에서 드물게 고정칼럼을 맡게 됐다.
편집국장단이 ‘젊은 필진을 키운다’는 취지로 차장급 남자 선배 한 명과 나를 선발했다고 공표했다. 출입처를 맡아 일상적인 취재활동을 하면서 추가로 2주에 한 번 기명칼럼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칼럼을 출고하는 날은 밤을 꼬박 새고 다음 날 비몽사몽인 채 취재하러 다닌 경우도 많았다. 다만 그때는 지금보다 언론매체 수가 적어 칼럼의 주목도가 비교적 높았고, 독자들의 적극적인 반응이 나를 분발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돼 주었다.
남자들의 질투가 무서워 늦어진 승진
칼럼을 연재한 지 2~3년쯤 된 어느 날, 편집국장이 나를 불렀다. 곧 인사를 하는데, 차장 대우 승진대상이 되는 사람 중 고과로는 내가 1순위지만 일부러 누락을 시킬 생각이라고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내게 국장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들 질투가 사실 더 무서워. 안 그래도 여기자가 주요 출입처에 나가고 고정칼럼까지 쓰는 것에 대해 말이 많은데, 승진까지 먼저 시키면 더 시끄러워질 거야. 한 발 늦게 승진하는 게 오히려 나을 것 같아.
그때 내가 정확하게 뭐라고 답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알겠습니다”하고 일어서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때 내 맘 속엔 이런 생각이 부글거리고 있었다.
저를 생각해서 승진을 미룬다고요? 국장님이 욕먹기 싫어서가 아니고요? 일은 죽도록 시키고, 대우는 미루겠다고요?
당시 나는 ‘정책팀장’ ‘산업팀장’ 등의 이름으로 데스크 역할까지 맡고 있었고, 며칠에 한 번 씩 야간 책임자로 심야근무도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반년쯤 후에 나는 ‘한 발 늦은’ 승진을 했고, 얼마 후 사표를 내고 대학원에 갔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고 내가 회사를 그만 둔 게 승진 문제 때문은 아니다. 경제 기자로서 전문적인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은 꽤 오래 동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 새로 부임한 최고경영자가 경영농단을 저지르는 바람에, 맞서 싸우는 대열에 서게 됐다. 당시 그 회사의 큰 장점은, 적어도 경제 분야에서는 다른 어떤 언론보다 자유롭게 재벌이든 정부든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점이 소중했기 때문에 다른 신문사들의 스카웃 제의도 거절했다. 그런데 새 CEO체제에서 그 부분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사실상 상속자인 그가 경영전권을 잡은 한 나아질 가망이 없어보였다. 대학원 합격과 함께 휴직 대신 사직을 선택했다. 참고로 그는 몇 년 후 범법 사실이 발각돼 물러났고, 형사처벌도 받았다.
그렇게 기자생활을 접은 게 17년 전이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언론인 지망생을 가르치고 신문방송에서 칼럼니스트, 진행자로 일하고 있으니 지금도 내 절반의 역할은 언론인이라고 생각한다. 경영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저널리즘스쿨에 자리를 잡은 것도 언론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고, ‘독립적 언론인’으로서 내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 기자와 교수 중 어느 쪽이 나은지 질문을 받으면 “기자를 한 다음 교수를 하게 돼 다행”이라고 답한다. 교수도 논문연구 등 일의 절대량을 따지면 고단한 직업이지만, 매일 마감시간에 쫓기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돌격 앞으로’를 했던 그 시절보다는 덜한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그 세계에서 잘 해내고 있는 후배들, 특히 ‘조직의 쓴맛’을 이중으로 경험하면서도 의연하게 버텨온 여자 후배들을 보면 코끝이 찡할 만큼 애잔하고도 존경스럽다. 기자 시절 후배들이 어느새 해당 언론사의 첫 여성 주요 보직부장이 되고, 편집국장, 보도제작국장 등으로 역량을 펼치는 것을 보면 내 자신이 성취한 것처럼 자랑스럽다.
우리 사회 평균보다 결코 성평등 수준이 높지 않은 언론계에서 그 자리에 가기까지, ‘정글’을 경험한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노동 강도는 또 좀 센가. 저녁 모임에 다리 깁스를 하고 나타나 밥만 간단히 먹고 다시 야근하러 들어가던 모습, 컴퓨터 증후군으로 손목 치료를 받으면서도 국장 업무와 고3 아이 뒷바라지를 억척스럽게 하던 모습 등이 ‘지금 언론계를 이끄는 그녀들’의 초상화다.
여자의 시각으로 다른 약자의 형편까지 헤아리길
하지만 여성 편집국장과 임원이 여러 명 나왔다고 해서, 여기자의 수가 과거보다 많이 늘었다고 해서, 우리 언론계가 이제 ‘양성평등’과 ‘모성친화’의 일터가 됐다고 보긴 어렵다. 물론 과거의 사례처럼, ‘맞벌이하는 여자는 혼자 버는 남자보다 형편이 낫지 않느냐’며 상대평가인 인사고과에서 유능한 여기자에게 최저점을 거듭 주는 식의 ‘무식한’ 차별은 줄어든 것 같다.
그러나 수습기자 전원이 남자이던 시절엔 아무 말 없다가 시험점수로 합격자가 전원 여성이 되자 ‘큰일 났다’며 편법으로 남자 합격자를 만드는 언론사가 있는 게 현실이다. 또 평기자 중엔 여성이 꽤 늘었지만 간부의 비중은 매우 낮은 게 전반적인 언론계 상황이다. 지나치게 길고 불규칙한 노동시간과 출산·육아의 어려움 속에서 ‘그만 둬야 하나’ 고민하는 여기자들도 여전히 많다.
언론계의 여성문제는 사실 우리나라 여성문제의 축소판이다. 언론계에 여성 차별이 존재하고, 일과 가정을 조화시킬 제도와 관행이 정착되지 못한 것은 나라 전반의 여성인권과 복지수준이 낮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여기자들은 언론계 성차별 문제의 당사자로서, 우리 사회 여성인권과 복지개혁의 감시자로서, 좀 더 예민해지고 오지랖이 넓어질 필요가 있다. 선배 세대가 ‘각개전투’ 방식으로 ‘여성도 할 수 있다’를 보여주었다면, 젊은 세대는 ‘쪽수와 연대’의 힘으로 ‘동등한 것이 당연하다’를 각인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노력해야 겨우 살아남는 게 아니라, 남녀 모두 각자 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여성이 편집국장 등으로 조직을 이끌 때, 내부적으로 여기자의 출산육아 고민과 인사 소외 등을 해소할 획기적 조치에 앞장서고, 지면과 전파를 통해서는 남녀임금격차 등 성평등 이슈를 본격적으로 의제화하는 노력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진작 다뤘어야 할 중요 과제이니, ‘여성 국장이라 치우쳤다고 하지 않을까’하는 눈치는 볼 필요가 없다.
한국의 어느 언론사에서 여성 편집국장, 보도국장, 사장이 처음 나왔다는 게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고, 전국의 발행인·편집인 회의에 절반은 여성이 앉아 있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어느 회사에 소속됐든, 뭘 담당하든, 우리 여기자들이 조직 안과 밖의 여성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목소리를 보탠다면 그런 날은 좀 더 빨리 올 것이다.
나아가 ‘역사상 가장 오래 차별받아온 존재, 여자’의 시각에서 장애인 이주민 등 다른 약자의 형편까지 헤아린다면 언론이 더 가치 있는 역할을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지금 발등에 떨어진 일을 감당할 시간도 부족한데 어떻게 하느냐고? 그래도 조금 더 힘을 내주면 좋겠다. 기자니까. 그리고 여자니까.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