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초등생 피살사건’이 처음 알려지고 열흘쯤 후인 지난 4월 8일, 김이광민(37·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변호사는 한 일간지에 「‘조현병’ 소녀에게 살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나」라는 글을 기고했다. 경찰이 피의자 A(17)양의 정신 질환을 의심한다는 보도가 나왔을 무렵이었다.
김이 변호사는 글에서 “청소년의 행동 이면에는 부모와 사회의 영향이 있는데, 지금 한국은 청소년들이 정상적 정신건강을 가지기 힘든 사회”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A양에게 범죄의 책임을 묻는 것과 함께 사회의 책임도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죄 환경 만든 사회의 책임도 돌아봐야
반응은 좋지 않았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올라간 글에는 노골적인 욕설과 함께 “치밀한 계획범죄라는 게 드러났는데 무슨 소리냐”, “인권팔이 하지 마라”, “어떻게 (범죄를) 미화할 수 있느냐“ 등 비난 일색의 댓글이 7,000여 개 달렸다. 댓글에 달린 답글까지는 셀 수도 없었다. 김이 변호사는 “거의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수준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친구(A양)를 두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사회)의 잘못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봐야 한다는 것이죠.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경쟁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은 그림 한 장으로 잘 그렸네, 못 그렸네 비교당하고, 학교는 등수로 청소년을 평가합니다. 공부를 못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경쟁에서 도태되고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처럼 인간 자체가 비난받게 돼요. 이런 식으로 극심한 경쟁체제에서 살았기 때문에 저는 제정신을 가진 청소년이 신기하다고 생각해요.
학교 밖 청소년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에서 자문을 맡은 김이광민 변호사를 지난 5월 22일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 부천시민학습원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고, 지난 11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그 사이 피의자 A양은 1심 재판에서 징역 20년, 공범인 C양(19·재수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A양이 주범이지만 미성년자(19세 미만)라 C양보다 선고형량이 낮았다.
많은 시민은 초등생을 엽기적으로 살해한 A양이 미성년이란 이유로 공범보다 낮은 형을 받은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김이 변호사는 재판에서 (피고인의 미성년자 여부 등) 각 사건의 맥락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신질환 가진 자퇴생이 잔혹한 게임에 빠졌을 때
검찰이 국립정신건강센터에 A양의 정신감정을 의뢰한 결과 ‘아스퍼거 증후군(대인관계에 문제가 있고 관심 분야가 한정되는 증상)’의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나왔다. 경찰 조사결과 A양은 중학생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고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지난해 7월에는 학교를 자퇴했다.
형제가 없는 A양은 부모가 출근한 뒤 집에서 혼자 지내며 이탈리아 마피아를 다룬 ‘베네치아 점령기’ 등 잔혹한 내용의 온라인 활동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꽤 오래 우울증을 앓았는데도 신경정신과에서 주 1회 상담을 받았을 뿐 약물 등 본격적인 치료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이 변호사는 “A양이 처해있던 복합적 상황에 의해 발생한 범죄”라고 진단했다. 적극적 치료가 없었던 정신질환과 또래 집단에서의 소외, 소속감 없이 방치된 채 가상 세계에만 몰두한 일상, 거기서 만난 친구마저 A양의 범죄를 부추긴 상황이었다.
만일 학교와 부모, 사회라는 울타리가 A양을 잘 감싸고 보호했더라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게 김이 변호사의 생각이다. 그는 현재의 학교 환경에서 청소년 대부분은 행복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인문계 학교에서 공부에 흥미가 없고, 특성화 학교에서 취업에 관심이 없으면 아이들은 겉돈다.
지난 4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에서 한국 청소년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36점이었다. 조사 대상 72개국 중에서 71위로 최하위권이다. 그는 “현재의 교육체계는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을 학교에 머무르게 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상담 과정에서 ‘학교 밖 청소년’을 많이 만났다.
학교가 버린 아이들, 돈을 미끼로 착취하는 어른들
이 친구들이 학교를 나오게 되면 가족들하고도 관계가 좋지 않아 거리에서 살게 돼요. 집에서는 잠만 자고, 밖으로 나와서 놀게 되죠. 그러려면 돈이 필요한데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안정적으로 돈을 벌만 한 여건이 안 됩니다. 업주들은 (상대가) 미성년자고, 돈이 급한 걸 아니까 착취하는 겁니다.
청소년을 ‘알바’로 고용한 어른들은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폭언을 퍼붓고 폭력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일을 포기하고 다시 시간제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PC방,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등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던 청소년들은 ‘쉽고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유혹에 노출된다.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요. 그걸 다운 받아서 나이를 십 대에서 이십 대로 설정하고, 한 마디 남기기에 ‘지금 만나요’라는 문구만 적어두면 깔자마자 한 시간 만에 쪽지를 30개씩 받는대요. ‘조건만남’을 한 번 하면 편의점 알바 며칠 동안 쌔빠지게 할 것 한 번에 벌게 되는 거죠. 이런 불건전한 유혹이 너무 많고 자제할 능력은 부족하니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최근 청소년이 저지른 끔찍한 폭행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소년범(만 14세 미만)이나 미성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청와대 웹사이트에서 청소년보호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수십만 명이 참여했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살인, 성폭력 등 강력 범죄에 있어서는 최대 형량을 제한한 소년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특정강력범죄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이에 대해 김이 변호사는 “청소년 처벌의 목적은 ‘보호와 교화’에 있지 ‘응징’에 있지 않다”며 “낮은 형벌을 받는 걸 알고 청소년들이 범죄를 더 잘 저지른다는 구체적인 통계나 근거가 없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청소년 범죄는) 단순히 단속하고 처벌해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청소년이 범죄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줄어들 거예요.
그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직 성장할 여지가 있고 자아를 정립해 나가는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이 제도권 바깥으로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학교가 안전망이 되어주어야 한다”며 교육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소년들이 가진 재능과 꿈을 살릴 수 있도록 학교가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고 (공부에 관심이 없다면) 안정된 환경에서 직업훈련과 연습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사회가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에서 단 하나뿐인 청소년 법률지원센터
그가 일하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는 지난 2015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설립된 청소년 지원기관이다. 김이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이 센터에 소장으로 합류했다. 그가 주로 다루는 사건은 학교 바깥에서 일어난 소년들의 형사사건이다. 강력 범죄사건만 해도 한 달에 10건 내외다.
주로 가해자를 변호하지만, 피해자를 변호하는 경우도 있다. 이 센터는 사회복지업무도 겸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자립이 필요한 상황에서 법률적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법률서비스를 하는 곳은 전국에서 이곳 하나다. 지금은 입소문이 퍼져 광주광역시에서도 그를 찾아온다고 한다.
김이 변호사는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다닐 때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활동했다.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일하는 청소년의 권익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그의 아내도 청소년 활동가라, 그 영향으로 청소년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고 로스쿨에서 ‘청소년 배달노동자 인권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의식이 이어져 로스쿨 졸업 후 이 센터로 오게 됐다. 그는 사건 변론 외에 지역 청소년활동가들을 위한 강연도 하고 언론 기고도 정기적으로 한다. 김이 변호사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형사 사건을 맡았던 친구 중 하나가 치킨집 홀 매니저가 됐다고 연락이 왔어요. 변호사님이 오시면 치킨 한 마리 쏘겠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너한테 왜 얻어먹냐’ 하고 말았는데… 한번 가보고 싶더라고요. 갔더니 샐러드와 감자튀김을 서비스로 줬는데, 참 보람 있었어요. 학교 밖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하면 한 군데 오래 붙어 있지를 못해요. 그런 친구가 홀 매니저가 됐다는 것은 그래도 몇 달, 1년 가까이 때려치우지 않았다는 거거든요.
일생의 위기를 맞은 청소년들은 김이 변호사를 만나 현실에 적응할 기회를 얻는다. 아이들은 종종 김이 변호사를 ‘형’이라 부른다. 김이 변호사는 센터의 궁극적인 운영 목적이 ‘청소년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른들로부터 홀대받고, 학교 바깥으로 나가떨어진 아이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존재가 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빳빳한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사무실에 앉은 대신, 편안한 옷차림으로 청소년 문화의 집, 수련관, 학교 등의 문을 두드리며 센터의 활동을 알린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유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