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낙천적인 사람일지라도 수십 명이 사는 건물에서 매일 나오는 쓰레기를 1,280번 이상 분리수거 했다면, 결국에는 성악설을 믿게 될 수도 있다. 나는 서울의 어느 고시원 총무이며 경력은 3년 6개월(1,280여 일)이다. 고시원 총무에게 분리수거는 가장 일상적이면서 지저분한 일과다. 그만큼 사람들의 분리수거 습성에 관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
지난 1,280일 동안 내가 분리수거한 쓰레기의 양은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일반쓰레기 11.52톤, 음식물쓰레기 1.28톤, 플라스틱 및 비닐류 1.92톤, 고철 및 유리류 4.48톤, 종이류 0.64톤 정도다. 환경부 ‘전국폐기물 통계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버리는 생활폐기물 양은 929.9그램이어서 80년으로 환산하면 2.72톤이다.
정리하면, 나는 29년밖에 안 살았는데도 한 사람이 평생 분리수거할 양의 7.3배나 되는 19.85톤, 즉 584년 치(!)나 분리수거한 셈이다. 내 역할은 일종의 ‘중간전달자’다. 쓰레기를 처음 버리는 사람들이 어떤 상태로 버리는지, 폐기물 업체에는 어떤 상태로 전해지는지 매일같이 목격한다. 아래 사진은 분리수거 상태가 평소보다 ‘그나마 양호한 날’ 우리 고시원의 분리수거 규정 위반사례 일부만 찍은 사진이다.
음식물이 그대로 묻은 플라스틱 용기, 비우지 않은 치킨 무, 라면 용기(일반쓰레기)에 국물(음식물쓰레기)을 비우지도 않고 휴지(일반쓰레기)를 쑤셔 박은 채 비닐봉지(비닐류)로 대충 묶어 ‘비닐류’에 버린 사례, 내용물이 그대로 들어있는데도 비닐류에 버린 라면 수프, 음식물쓰레기통이 아닌 일반쓰레기통에 버린 바나나껍질 등.
보기만 해도 부신이 울부짖고 코티졸이 샘솟는다. 나는 이런 상태의 쓰레기들을 다시 분리수거해 지정된 장소에 내놓는 일을 한다. 업무가 너무 과중해 나조차도 100% 규정에 부합하게 만들어 전달하지 못할 지경이다. 내가 작업을 끝내면 밤늦게 폐기물 업체가 비로소 수거해간다.
가장 힘든 건 ‘파봉’이다. 파봉이란 사람들이 묶어서 쓰레기통에 대충 던져놓은 봉투를 일일이 뜯어서 내용물을 확인하고 다시 분리수거하는 작업을 말한다. 파봉을 하는 이유는 봉투 열에 아홉은 규정 위반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파봉할 봉투 수가 많은 날일수록 스트레스가 심하고 자는 시간이 늦어진다.
가장 두려운 날은 주말이다. 일부 사람들은 평소에 쓰레기를 조금씩 꾸준히 버리지 않고 모아뒀다가 일요일에 버리는 습관이 있어서, 주말 낮에는 3시간마다 파봉할 봉투가 3~4개씩 쌓인다. 밤에 한꺼번에 처리할 수도 없다. 일반쓰레기통이 금방 꽉 찬다. 정말 종일 파봉만 하다가 시간 다 보내는 주말도 잦다. 거주자들에게 협조를 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이미 충분히 요구했다. 결정적으로 사람들이 자기들이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처음 입주를 하는 사람마다 계약서 4항 마목에 “쓰레기는 반드시 분리수거하며 악취가 없도록 조처한다.”라고 명시해놨음을 안내하고(계약서에 이런 내용이 없어도 분리수거는 당연히 해야 한다), 분리수거장으로 데려가 잘 좀 이행해달라고 읍소까지 한다.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어디다 뭘 버려야 하는지 안내표도 부착했다.
사람들에게 높은 기대수준을 가진 것도 아니다. 서울시와 환경부의 분리수거 지침을 보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누구나 최소 23가지 이상의 규칙을 숙지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거주자들이 5가지 규칙만 지키도록 간소화했다. 초등학생도 지킬 수 있다.
- 플라스틱과 비닐류는 왼쪽 쓰레기통에,
- 유리류와 고철류는 오른쪽 쓰레기통에,
- 종이류는 비치해둔 큰 박스 안에,
- 이 세 가지를 분리수거하고도 남는 쓰레기는 일반쓰레기통에 버리되,
- 음식물은 항상 주방에서 버리면 된다.
사람들이 이 다섯 가지 규칙만 지켜주면, 내가 2차적으로 좀 더 23가지 규칙에 부합하게끔 꼼꼼하게 재분류 작업을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1,280번 이상의 관찰 결과 사람들은 이 다섯 가지 규칙조차 잘 안 지킨다. 결코 ‘일부’만이 아니다. ‘대부분’이 나쁜 습관 최소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면전에서는 밝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사람도 등 뒤에서는 온갖 쓰레기가 다 섞인 비닐봉투를 대충 묶어서 툭 던져놓으면 상처받는 일이 흔하다.
나는 인간에 관한 신뢰를 잃었다. 고시원에서 24시간 근무, 근무대기를 하다 보면 의식적으로 사람들을 지켜보지 않아도, 알고 싶지 않아도 그들에 관해 알게 된다. 고시원 거주자들은 성별, 연령, 직업, 교육수준, 출신 지역 등이 다양하다(다만 소득수준은 대체로 중산층 이하다). 당신이 나처럼 이렇게 사회인구학적 다양성이 있는 표본 집단을 매일같이 뒤치다꺼리한다면 인간에 관한 신뢰를 잃지 않고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분리수거를 하든 안 하든 쓰레기통에 넣기나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래 사진은 우리 고시원에 살던 사람이 퇴실하면서 방에 남긴 흔적이다. 설명이 필요할까. 계약서 3항 라목에 “퇴실 시 입실 시와 동일한 상태로 환경유지(청소 포함), 모든 쓰레기는 배출하고 관리인의 점검을 받고 퇴실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는데도 만료일 방에 열쇠만 던져놓고 퇴실했다. 이 정도로 심한 사례가 흔치는 않지만 대부분 적은 양이라도 방에 쓰레기를 방치한 채 무책임하게 떠난다.
몇 번 직접 항의해본 적도 있다. 그래 봤자 문자메시지를 보내 분리수거 업무의 과중함을 호소하면서 한 봉투에 혼합배출하지 말고 배달음식이나 음식물쓰레기만이라도 신경 써서 버려달라는 읍소 정도다. 손님의 기분을 거스르면, 나를 자를 수도 있는 사장에게 전화를 하거나 방을 빼겠다고 나올 수가 있어서 직원은 을(乙)인 입장이다. 그런 을이 도저히 참다못해 장문의 읍소를 하면 10명 중 5명은 사과도 없이 “네 알겠습니다.” 딱 8자로 답장을 보내고 며칠 신경 쓰는 것 같다가 다시 원래 습관대로 버린다.
그리고 3명 정도는 “죄송합니다.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라고 하고, 2명 정도는 트집을 잡는다. 밤이든 낮이든 시간 날 때 읽으면 그만인 문자메시지를 받아놓고 “밤에 문자 보내지 마세요.”라거나 “제가 여기 1년 넘게 살았는데요. 이전에는 이런 문자 받은 적이 없는데, 생각해보니 기분이 더럽네요. 제가 분리수거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세요?” 하는 식이다. 반응들은 각양각색 같지만 공통점이 있다.
‘별것도 아닌 일로 그러네.’ 혹은 ‘니가 이런 일로 감히 나를?’이라는 생각. 정말 그렇다. 분리수거를 ‘별것도 아닌 일’로 생각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읍소한 지 며칠 만에 원래 습관대로 버릴 수가 있고,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끔 시스템을 갖췄는데도 “잘 몰라서 그랬다.”는 변명이 나오고, 사과할 타이밍에 트집을 잡겠는가. 나쁜 행동을 했지만 나쁜 사람으로 평가받기는 싫으니 내가 ‘별 것 아닌 일’로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식이다. 한두 번 당하는 갑질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비로소 상황에 관심을 가지며 그 관심조차 자기중심적이다. 최근 ‘분리수거 대란’에 관해 네티즌들이 보이는 반응은 이 성향을 잘 보여준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 4월 1일부터 수도권에서 재활용업체들이 폐비닐 수거를 거부하고 그다음 페트병과 폐지 배출 실태가 문제가 되면서다. 국내 뉴스 소비자의 70%가 이용하는 양대 포털 메인에도 관련 기사들이 수차례 걸렸다.
하지만 네티즌들께서 그 기사에 “경비원 아저씨, 폐기물 업체 직원 여러분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이제라도 노력할게요.” 같은 내용을 베스트 댓글로 올려주는 걸 본 적이 없다. 꼼꼼하게 찾아보면 혹시 한두 개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관련 기사를 여러 건 봤지만 찾지 못했다. 그만큼 자성의 목소리는 비중이 작다.
내가 처음 본, 추천 수가 많았던 베댓은 식품제조회사의 과대포장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과대포장 문제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과대포장 문제는 이번 분리수거 대란의 본질을 벗어난 별개의 문제다. 내가 보여준 사진들이 대체 과대포장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현장의 목소리 앞에서 생뚱맞게 과대포장을 이야기하는 건 대체 무슨 몰예의한 행동들인지.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가정에서 깨끗이 세척해서 배출하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이 분명 있을 텐데, 가정에서는 이득이 없기 때문에 Fail.” “선진국에서는 쓰레기를 정부에서 무료로 수거해가니 우리도 그렇게 합시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분리수거 대란을 도덕적 의무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기 개인이 포장지보다 내용물이 많은 식품을 먹을 수 있고 쓰레기를 간편하게, 돈 안 쓰고 버릴지 생각하는 모습이다.
물론 ‘일부를 가지고 국민성 전체를 일반화하지 말라’는 말도 나올 것이다. 나도 인간에 관한 신뢰의 끈을 선뜻 놓지 않기 위해 많이 버텼다. 통계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고시원이라는 표본집단에서 축적된 584년 치 데이터를 전국으로 일반화했을 것이다. 내가 우울할 때마다 나의 또 다른 자아인 통계학도는 표본집단의 구성원들이 ‘완전하게 무작위적으로’ 추출된 것이 아니며, 소득 수준도 대체로 낮고 도시근로자들이므로 전 국민으로 일반화하기에는 대표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우겼다.
최근 분리수거 대란은 이런 실낱같은 희망조차 박살 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전국적으로 대부분 사람이 분리수거를 ‘별 것 아닌 일’로 생각해왔다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선진국이라는 서방 국가들도 자신들이 처리할 쓰레기를 중국에 떠넘기고, 중국이 “부끄러운 줄 알라”며 거부하자 한국과 동남아시아로 떠넘긴다. 폐기물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나처럼 심리상담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인간혐오, 대인불신, 우울증이 생겼다. 물리적 폭력만이 학대가 아니다. 쓰레기로도 정서적인 학대를 가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인간이 악하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더 이상 삶을 버틸 수가 없다. 내 앞에서 친절하던 사람이, 내가 안 본다고 배달음식 쓰레기들을 대충 봉투에 묶어 분리수거장에 던져놓고 가는 일을 끊임없이 겪다 보면 배신감과 모욕감에 괴로워 몸부림치게 된다. 그러니까 애초에 인간은 원래 악하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악하다는 건 단순히 이기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인간은 종종 이타적인 행동도 한다. 그러나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대부분 인간은 도무지 주변을 돌아볼 줄 모르는 지독한 근시안과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낮은 자존감의 소유자들인 듯하다. 이 치명적인 결함이 언젠가는 균형을 무너뜨리고 모두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사람들이 다섯 가지 규칙만 지켜준다면 나는 치킨 무를 비우는 시간을 폐지에 붙은 테이프와 페트병의 라벨을 좀 더 꼼꼼하게 제거해 폐기물 업체에 전달하는데 쓸 수 있다. 업체 역시 쓰레기를 보이콧 할 일이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애초에 이 다섯 가지 규칙조차 안 지켜서 모두가 불편해진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쓰레기 배출 습관부터 비판하지 않고, 돈과 정책과 같은 거시적인 이야기만 하는 재활용 담론은 거부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이익을 말하기 전에 당신 뒤치다꺼리하는 타인의 존재를 상상할 줄 아는 존중부터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