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음료수 트렌드세터가 있다
워너원, 마시즘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무엇을 만지든 날개가 돋치는 워너원이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음료 트렌드세터라는 사실은 당혹스러울 수 있다. 동종업계(?)에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문재인 대통령은 전문적인 장르를 가진 훌륭한 음료 트렌드세터다.
그는 ‘문재인 블랜딩’으로 대표되는 커피로 시작했다. 그리고 기업인들과의 만남에 만찬주로 수제 맥주 ‘강서 마일드 에일’을 골랐고 그 뒤로는 가평잣막걸리, 풍정사계 춘, 평창 서주 등 전통주 쪽으로 장르를 굳혀갔다. 대통령이 고르는 전통주마다 완판 행진이라고 하니 과연 마시즘이 인정한 음료 트렌드세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나라의 정상들은 어떤 음료를 좋아하고, 즐겨 마실까?
오바마 전 대통령: 화이트 하우스 허니 에일
미국 대통령과 술의 관계는 진하다.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은 임기가 끝난 후 양조장을 만들어 제2의 인생을 시작했고,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와인을 모으다가 파산했다. 하지만 여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중에 무려 ‘백악관에서 맥주를 양조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있다.
그는 홈 브루잉기를 사비로 구매하여 백악관 한구석에서 맥주 만들기에 매진했다. 맥주에는 아내가 양봉한 꿀을 첨가해서 독특한 풍미를 냈는데 ‘화이트 하우스 허니 에일’이라는 이름 거창한 수제 맥주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화이트 하우스 허니 에일 100여 병을 슈퍼볼 경기에서 개봉했다. 맥주 완판을 한 오바마는 그 후에도 맥주 만들기를 하겠다고 말했다고. 과연 크래프트 비어의 성지인 미국의 대통령답다.
트럼프 대통령: 다이어트 코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르다. 오바마는 술을 즐겼지만 트럼프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트럼프는 오직 ‘다이어트 코크’를 마신다. 하루에 12캔을 해치우는 코카콜라 덕후다(반대로 오바마는 펩시만 마신다고 한다). 그가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는 형인 프레드가 알코올중독으로 사망했기 때문.
트럼프의 책상에는 빨간색 버튼이 있다. 한창 북한과 핵부심 대결이 있었을 때 트럼프는 자신에게는 엄청난 핵단추가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었다. 한 기자가 트럼프에게 물었다. “이게 바로 북한을 위협하는 핵단추인가요?” 트럼프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죠”라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다이어트 코크를 든 비서가 나타났다. 핵단추의 정체는 코카콜라 단추였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트럼프의 코카콜라 사랑은 짝사랑이다. 코카콜라는 지난해 슈퍼볼을 관람하는 트럼프 면전에 ‘반트럼프 광고’를 쏘아버렸다. 그 뒤 트럼프는 코카콜라를 ‘쓰레기’라고 규정한다. 그렇게 그는 하루에 12캔이나 다이어트 쓰레기를 마신다고…
메르켈 총리: 라데 베르거 필스너
그렇다면 맥주국이라 불리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맥주를 좋아할까? 당연한 이야기다. 메르켈은 맥주순수령 500주년 기념식에서 ‘맥주 없는 사람에게는 마실 게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맥주 사랑은 한 행사장에서 돋보였다. 모두가 맥주를 마실 때 종업원이 실수로 메르켈의 옷에 맥주를 쏟았다. 하지만 그는 여유 있게 자신의 맥주잔을 들어 웃어 보였다. 내 맥주잔만 괜찮으면 된다는 쿨함. 이것이 맥덕국의 총리다.
메르켈이 좋아하는 맥주 브랜드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단서는 러시아의 푸틴이 제공해주었다. 푸틴은 자신과 메르켈의 친밀함을 자랑하며 “메르켈이 때때로 맥주병을 보내준다”고 말했다. 푸틴이 말한 맥주는 독일의 ‘라데 베르거 필스너’다. 비스마르크가 사랑했던 독일의 대표 맥주 중 하나다.
마크롱 대통령: 보르도의 레드, 브로고뉴의 화이트
독일의 맥부심과 함께 프랑스의 와인부심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마린 르풴 후보는 “프랑스에는 와인을 잘 아는 대통령이 필요하다”며 와인 양조자의 표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 당시 경쟁관계였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보르도 블랑과 프로방스 로제를 정확하게 찾아냈다. 게임 끝. 마크롱 당선.
마크롱은 와인 전문 매거진 《Terre de vins》에서 “와인은 프랑스인의 영혼”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산업부 장관에 재직할 때부터 깐깐하게 와인을 고르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마크롱이 좋아하는 와인은 샹파뉴의 샴페인(샹파뉴와 샴페인은 같은 말이다), 보르도의 레드와인, 브로고뉴의 화이트 와인. 마지막으로 론 지방의 레드와인이다.
푸틴 대통령: 보드카는 싫어요
독일 총리는 맥주를, 프랑스 대통령은 와인을 사랑한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대통령은 보드카를 사랑하지 않을까?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보드카를 즐겨 마시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실제 보드카를 권했는데 그것을 꽃이 핀 화분에 부어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꽃이 무슨 죄라고 술을 먹이니.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푸틴은 맥주를 좋아한다. 젊은 시절 독일에서 KGB 요원으로 일할 때 음료의 습관이 굳어진 듯하다. 겸사겸사 메르켈과의 맥주 이야기를 꺼내며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데도 능하다. 지난 소치올림픽에서는 외신 기자들 앞에서 중국의 명주 ‘마오타이주’를 소개하기도 했다. 훌륭하고 매우 독한 술이라고. 설렘주의보에 걸린 마오타이주는 다음 해 러시아에 진출한다. 이런 전략적인 사람.
김정은 위원장: 보르도 레드와인
마시즘의 호기심은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은 그곳에 이르렀다. 바로 북한, 그리고 대상은 김정은 위원장이다. 북한의 이전 지도자였던 김정일은 ‘헤네시 코냑’의 VIP로 유명했다. 한 해에 65만 달러 이상의 코냑을 구매했다. 당시 코냑 홍보담당 이사 제니퍼 유에 따르면 김정일의 널리 알려진 코냑 사랑은 “나쁜 반응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판매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라고.
김정은은 코냑보다 와인에 더욱 흥미가 있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후지모토 겐지’의 월간중앙 인터뷰에 따르면 프랑스 남부 보르도의 레드와인을 좋아한다고 한다. 한 끼 식사에 보르도를 10병 비울 정도라고. 유난히 스위스 에멘탈 치즈를 좋아해서 다리를 절었던 그의 덕력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 잔의 음료수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각 나라의 리더들이 즐기는 음료를 통해 그들의 성격, 자부심, 취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사소하게 여겨지는 부분에서 오히려 그 사람의 숨김없는 면모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음료를 좋아하는 리더를 지지할까? 그리고 나 자신은 어떤 음료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될까?
원문: 마시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