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고 중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여전히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의 이런 태도를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이런 얘기가 될 것이다.
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검찰이 혐의를 조작해 덮어씌운 것이다. 법원은 그런 검찰과 손잡고 판결문을 찍어 내고 있다.
한술 더 뜨는 이명박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한술 더 뜬다. 검찰이 뇌물수수, 횡령, 조세포탈, 직권남용 등등 16개의 범죄혐의를 적시해 구속기소 하자 입장문을 내놓았다. 그는 입장문에서 검찰의 수사결과를 ‘가공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놓고 진행한 초법적 신상털기와 짜 맞추기’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을 간악한 모리배로 취급한 것이다.
중형을 선고받아 옥살이까지 하고 나온 뒤에도 자신이 죄를 부인하는 전직 대통령도 있다. 전두환이 바로 그다. 지난해 자신이 펴낸 회고록에서 ‘5.18은 북한의 조종으로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자 반란’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30년 넘도록 계속되는 부인이다.
왜 전직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범죄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걸까. 보통 사람들의 경우 증언과 진술, 증거들이 쏟아져 나오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눈물로 용서를 빌게 된다. 그래야 정상참작이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모든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들이 쏟아져 나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고는 깡그리 부인하기 어렵다. 어차피 중형이 선고될 수밖에 없다면, 범죄혐의를 인정한다고 해도 형량이 대폭 줄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버텨보자. 그러다 보면 ‘믿는 구석’이 현실화될 기회가 오지 않겠나. 아마도 이런 생각 때문에 엄청난 배짱을 부리는 것은 아닐는지.
어떤 사형수의 옥살이 고작 750일
‘믿는 구석’이 뭘까. 특별사면이 그것일 수 있다. 전두환은 1995년 12월 3일 구속된다. 1심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됐지만, 대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한 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7년 12월 22일 사면을 받았다. 구속된 지 불과 750일 만이다. 사형수였던 전두환이 옥살이를 한 기간은 고작 2년 남짓이었다. 전두환과 같은 혐의로 구속됐던 노태우 역시 766일 만에 풀려났다.
당시 특별사면과 복권은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국민 화합과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이뤄졌다. 무기징역과 17년 형을 받았던 두 전직 대통령이 2년 만에 사면된 사건은 좋지 않은 전례로 남게 됐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문재인 정부도 4년 후면 끝난다. 이어서 어떤 정권이 들어설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앞날이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게 정치다. 특별사면 카드가 다시 등장할 수 있는 정치적 여건과 명분이 마련될 경우, 현재 구속 중인 두 명의 전 대통령들 역시 ‘전두환-노태우의 전례’를 따를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봐야 한다.
특별사면. 과연 옳은 일일까. 사법의 정의에 부합하는 것일까. 국민의 눈높이와 정서에 합당한 것일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법의 여신’의 정반대 모습, 특별사면
그리스 신화 속 법의 여신 아스트라이아의 모습에는 세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눈을 감거나 가린 채 한 손에 법전을, 다른 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 재판할 때 피고와 원고를 주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가린 것이며, 법대로 판결하고 치우침을 방지하기 위해 법전과 저울을 들고 있는 것이다.
특별사면과 아스트라이아의 모습은 서로 대척점을 형성한다. 눈을 뜬 채 법전과 저울을 내려놓은 모습이 특별사면이기 때문이다. 특별사면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을 바라본 결과이자, ‘법대로’라는 기본원칙을 깨는 파격이다. 동시에 달아볼 저울조차 필요하지 않은 ‘특별함’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무기수 전두환이 옥살이를 한 기간은 고작 750일. 특별사면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지금도 감옥에 있어야 한다. 오래 옥살이를 하며 반성할 기회를 충분히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최소한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자 반란’이라며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별사면의 모습은 법의 여신의 그것과 정반대다.
원문: ‘사람과 세상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