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대중음악사(史) 및 음악산업에 대한 강의들을 매 학기 해왔지만 수업에서 교재로 쓰거나 더 깊은 이해를 위한 참고 서적으로 추천할만한 책을 찾으려고 하면 막상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음악산업의 특징이나 음악사 등에 대해 잘 설명하는 책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 책들은 지나치게 ‘비즈니스’적인 관점에 치중해 음악 자체에 대한 설명을 결여하거나, 명색이 대중음악 관련 서적임에도 해당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둘 만한 음악인 및 노래를 제대로 소개해주지 않는다. 게다가 대중음악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즉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분야임에도 내용이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딱딱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는, 정말 딱 ‘수업용 교재’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중음악산업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미국과 영국, 그리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의 음악 시장을 자랑하는 일본에 갖가지 주제를 내실 있고 흥미롭게 다룬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대중음악 관련 서적들이 많이 발간되어 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이렇게 척박하다면 척박하다고 할 수 있는 국내 대중음악 출판계에서, 남무성은 관련 분야의 서적을 꾸준히 집필해 온 몇 안 되는 저술가이다. 그는 재즈 음악 전문 잡지들을 창간하고 편집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한 재즈 평론가이자 재즈 트리오 젠틀레인(Gentle Rain)이나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 같은 음악인들의 음반을 제작한 프로듀서/제작자, 그리고 각종 콘서트의 음악 감독으로도 활약해 온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더불어 그는 『Jazz It Up: 만화로 보는 재즈의 역사』나 『Paint It Rock: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와 같은 대중음악 전문 서적을 쓰고 네이버뮤직을 통해 ‘All That Rock’과 ‘All That Jazz’라는 이름의 칼럼을 꾸준히 기고하면서 일반 독자들에게 대중음악의 역사와 다양한 모습을 알려왔다.
특히 남무성은 기초 지식이 없으면 자칫 이해하기 어렵고 흥미가 떨어질 수 있는 재즈와 록의 역사를 만화라는 친근한 방식을 통해 그려냄으로써 해당 장르에 대해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초심자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음악에 대한 관심과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2018년 3월 발간된 또 하나의 대중음악 서적 『Pop It Up(Music Craft Studio): 만화로 보는 대중음악 만들기』에서 남무성은 ‘나는 가수다’의 심사위원이자 밴드 ‘빛과 소금’ 출신의 음악인, 그리고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교수로도 활동하는 장기호와 함께 ‘어떻게 하면 멋진 대중음악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음악학(音樂學, musicology) 서적이자 실제적인 작곡 방법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실기(實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책은 실용음악과 학생 및 작곡 지망생 등 해당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용해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읽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다. 실제로 책 속에서 저자들은 이들을 주요 독자로 삼아 이야기를 건네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무성이 쓴 책들이 그랬듯 『Pop It Up』은 음악 마니아나 음악인 지망생뿐 아니라 대중음악에 대한 약간의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들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을 많이 담았다.
우선 책의 앞부분에서 ‘대중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들을 정리하고 대중음악의 기원과 역사를 간단히 훑으며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또한 ‘후크송’이라는 용어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훅(hook)이라든지 버스(verse), 코러스(chorus), 그루브(groove), 리프(riff) 등 미디어나 음악 리뷰 등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자주 언급하지만 정작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용어의 쉽고 자세한 설명을 통해 대중음악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20세기 말부터 국내외 대중음악계에서 꾸준히 이슈가 되는 표절의 정의와 판단 기준 및 논란 등에도 비교적 명확하면서도 간단하게 설명한다. 대중가요에서의 표절은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임에도, 정확한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상대적으로 모호한 편이다. 이런 내용이라면 이 책의 주요 타깃 독자라고 할 수 있는 음악 마니아나 음악인 지망생 외에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있는 또 하나의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꼭 들어보면 좋을 명곡 구조를 자세하게 분석하고 그 외에 들어보면 좋은 노래 및 음반들을 잘 짚어준다는 점이다. ‘비틀즈(The Beatles)가 왜 그렇게 위대한가요?’라는 질문은 사실 대중음악 관련 게시판뿐 아니라 일반 인터넷 대형 커뮤니티의 자유게시판에도 잊을만하면 올라오는 질문인데, 이 책의 저자들은 왜 그들이 위대한지 쉽고 정확하게 이야기해주며 예시를 통해 자신들의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 외에도 평론가들 사이에서 명반으로 꼽히지만 정작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인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Bitches Brew〉에 대한 재미있는 묘사나 팝의 명곡 〈All By Myself〉에 대한 분석 등은 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더불어 이 책의 주인공처럼 여기에서 언급된 노래들을 아직 많이 못 들어봤다면, 그 노래를 찾아 들으며 책에서 분석한 곡의 구성과 느낌이 잘 맞는지를 직접 느껴보는 것도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자 감상법이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저자들은 “[히트곡의 구성 방식]을 공부하지 않고 작곡을 하게 되는 경우 어쩌다 한두 곡은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창작이 불가능해진다. 음으로 스토리를 끌고 가는 방법론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음으로 이야기(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며, 동시에 이를 통해 막연하게만 알던 ‘좋은 노래의 매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이기도 하다.
스케일이니 조성이니 하는 용어와 계속 등장하는 콩나물(음표)이 다소 친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구조로 이루어진 노래가 많은 이에게 사랑받아왔는지, 대표적인 예시로는 무엇이 있는지 아는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은 재미있다. 대중음악은 이론과 학습을 바탕으로 탄생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듣는 이가 자신의 감성을 투여해 즐기는 예술이자 즐거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