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에서 가장 큰 축복은 상사(팀장) 복이다. 사회초년생부터 경력 많은 팀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가 직장생활의 질을 좌우한다. 세계적인 기업 구글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회사 자체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얼마 전 만난 후배는 큰마음 먹고 이직한 회사를 1년 반 만에 그만뒀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회사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팀장이 너무 힘들고 싫어서다. 후배 역시 사람을 떠난 것이다.
사람이 중요한 이유다. 당장 많이 주어진 일거리는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고, 힘든 업무는 노하우를 배우며 조금씩 적응한다. 회사의 못마땅한 방침이나 정책 등에 대해서는 동료들과 불평불만 몇 마디 주고받으면서 서로 위안으로 삼고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 문제는 다르다. 그중에서도 지금 당장 너무 힘든 사람, 즉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사와의 문제는 현실적으로 심각할 수밖에 없다.
상사 때문에 힘들다는 동료나 후배들에게 “평생 그 사람하고 일하는 거 아니잖아, 의외로 팀장 바뀌는 경우도 많으니까 1-2년만 참는다는 생각으로 버텨”라는 조언을 내주곤 한다. 그런데 1-2년이 아니라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며 비참한 눈빛으로 전하는 푸념에는 마땅한 답이 없다. 실제로 상사가 팀원에게 끼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상사는 출근길을 즐겁게도 지옥 같게도 만들 수 있고, 일을 자발적으로 또는 의욕적으로 하게 만들 수도, 마지못해 혹은 대충대충 하게 만들 수도 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하면 팀원들은 심리적인 불안을 경험하고 업무 의지를 상실한다. 분노를 동반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하고, 존경심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된다.
이 모든 게 곧 업무 성과로 직결되기 때문에 상사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혹자는 ‘팀장 자리는 욕먹는 자리다’라며 ‘잘해도 못해도 욕을 먹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 완벽한 팀장도 없다고 본다. 아래한테 잘하면 위에서 욕을 먹고, 위에다 잘하면 아래에서 욕을 먹는 그런 자리라고나 할까? 뭐든 그렇듯 균형이 중요할 터. 물론 팀원의 입장에서는 잘해도 욕을 먹는다는 말에는 크게 공감할 수 없다.
친구들이나 동료, 선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팀원들 입장에서 원하는 것이 의외로 단순한 경우가 많았다. 상사의 작은 변화가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열정을 되살리며 업무적 성과로 이어질 것이다. 모두가 윈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두 계층 ‘팀장:팀원’ 간의 이해가 절실하다. 과연 후배의 사소한 바람들은 무엇일까?
1. ‘무능력’은 팀원들을 퇴화시킨다
팀장의 무능력은 팀 내 참사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일단 팀 업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상사가 해당 팀 업무에 전문가라면 팀은 물론 잘 굴러갈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생소한 업무를 맡아도 배움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무능력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예전에 모셨던 팀장은 화학을 전공했음에도 팀 업무인 유니폼과 디자인 등에 대해 공부하며 담당자를 수시로 불러 배우고 또 배웠다. 금세 팀원들의 업무를 파악했고 팀원들은 그에 버금가는 노력을 이어가야 했다. 또한 40대 후반의 나이에 SNS 업무를 총괄 관리하면서 수시로 책을 사서 공부했고 직접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가입해 활동하며 업무의 감을 익혔다. 이런 경우 팀원들은 ‘팀장은 잘 모를 거야’라는 생각을 진작에 털어 버리고 더욱 열심히 자신의 업무에 매진한다. 모두가 윈윈하는 선순환이다.
그런데 팀장이 업무에 능통하기는커녕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면 팀원들은 업무처리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지 못한다. 상사가 잘 모르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속이거나 대충 넘어가기도 할 것이다. 배움이 부족한 팀장의 무능력이 불러오는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상사의 배움이 곧 팀의 능력이 되며, 이는 곧 팀원들의 능력 배양에도 영향을 준다.
2. ‘무책임’은 팀원을 떠나게 한다
“이런 건 팀장이 책임지는 거야. 니들은 맡은 일이나 열심히 해.”
입사 후 첫 팀장이 자주 내뱉던 말이다. 세상의 모든 팀장이 다 이런 생각을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왜 사람들이 제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말을 수시로 내뱉는지…
책임을 회피하는 상사가 의외로 많다. 자신이 지시한 일이었음에도 발뺌하고 엄한 사람을 쥐 잡듯 했던 팀장도 있었다. 회사가 떠나갈 듯한 호통 소리에 팀원들은 누구 하나 찍소리 못하고 늘 당해야 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팀원들은 일을 벌이기 싫어진다. ‘잘되면 내 탓 안 되면 네 탓’이라는 상사 마인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팀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될 수밖에 없다.
무책임은 다른 형태로도 나타난다. 싫은 소리도 제대로 못 하고, 업무적으로 케어도 해주지 않고 방치하는 모습이다. 업무 진행 시 팀과 팀 간 문제가 발생해 SOS를 보냈을 때 의외로 ‘알아서 해’라는 신호로 응수하는 상사가 꽤 있다. 자기 손에 더러운 무언가를 묻히기 싫기 때문이다. 팀원들은 귀신같이 눈치챈다. 그리고 보스의 무책임함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조금씩 그와 멀어지고, 상사에 대한 믿음은 서서히 바닥을 치면서 떠날 준비를 하기도 한다.
3. ‘무관심’은 팀원을 혼돈에 빠뜨린다
“알지도 못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보다는 아예 관심 안 주는 게 나아.”
라고 말하는 동료가 있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머릿속에는 다양한 상황들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이 없으면 일하는 데 편할 수는 있다. 그런데 무관심은 양날의 칼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뒷감당과 뒤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겪어온 나의 고생과 노력을 알아주기는 할까? 어떤 상황에서도 혼자서는 확신을 가지고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업무는 팀장을 거쳐야 한다. 관심이 없는 듯해 혼자 알아서 업무를 진행했다 해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상사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한다.
이럴 때 ‘당신이 관심이 없어서 혼자 진행하다가 이 사달이 났잖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을 혼자 온몸으로 막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때문에 일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팀장의 관심이 절실하다. 관심과 협조 속에서 일에 대한 열정이 싹트고 의욕이 샘솟는다는 것을 보스가 부디 알아줬으면 한다.
4. ‘무기력’은 전염병이다
상사가 부지런하고 의욕이 넘치면 팀원들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한다. 하지만 무기력에 빠진 사람 밑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태평해지기 마련이다. 상사가 무기력하면 팀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염된다. 어떤 면에서 보면 무기력은 게으름에서 기인한다. 무사 안일하거나 천하 태평한 성격의 팀장은 팀원들의 마음을 까맣게 태운다.
실무자들은 업무를 진행하기에 앞서 상사의 결재 완료와 피드백을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 하지만 결재 서류를 책상 깊숙한 곳에 넣어둔 채 고이 모셔두는 상사가 꽤 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담당자의 발등에 불로 돌아온다.
피로와 무기력에 찌들어 있는 근면 성실과는 거리가 먼 상사도 마찬가지다. 늦게 나타나 일찍 사라지거나 전날의 숙취를 그대로 떠안고 출근하는 상사도 많다. 생기 없고 무기력한 상사의 상태는 팀원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된다. 이러한 모습은 팀원들의 마음속에 ‘나도 적당히 대충 지내면 되겠네’라는 검은 마음을 품게 만들기도 한다. 번아웃 증후군과는 또 다른, 팀원들이 보는 상사의 무기력함이다.
후배들의 소박한 바람
팀원들은 팀장에게 완벽함을 바라지 않는다. 능력, 카리스마, 너그러움, 책임감, 의협심 등을 두루 갖추길 절대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직장생활의 의욕을 꺾는 4가지를 좀 버려 달라고 외칠 뿐이다. 더 이상 사람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말이다.
상사로 거듭나기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 중인 후배들도 상사가 되기 전에 앞서 언급한 ‘4가지 無’를 반드시 버렸으면 한다.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욕 덜 먹고, 부하직원들에게 인정받는 보스가 되는 게 좋지 않을까.
원문: 직딩H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