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는_가격결정권이_없다.
농협 주도로 작년부터 꾸준히 농산물 제값 받기 운동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마디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생산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완전독점시장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농산물 시장은 완전 독점 시장이 아니다. 가격이 오르면 정부에서 값싼 수입품을 들여와서 가격을 떨어뜨린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더 싼 대체재를 사거나, 해당 품목을 아예 구입하지 않는다. 미국 소고기의 인기로 인해 한우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모든 농산물의 제값을 받겠다고 가격을 올려버리면, 한우같은 사태가 반드시 일어난다. 정부가 보조금을 주어 그 갭을 줄이는 것에도 한계는 있다. 말하자면, 농산물 제값 받기 운동은 국산 농산물을 무덤으로 몰아가는 지름길과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농민들과 농업조직들은 소비자 알기를 너무 우습게 안다. 시작부터가 잘못되었다. 모든 것을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국산 농산물 가격을 제값 받겠다고 올리기보다는 지금보다 더 싸게 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전체 생산되는 농산물 중 식품으로 유통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바이오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료, 비료, 산업 소재 등 기타 분야로의 유통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식량은 최저마진으로 식량 공급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나머지를 고부가가치로 만들어 전체적인 이익을 보게 만들어야 한다.
현재 농정당국자와 농업전문가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미래의 농업은 식량에만 국한된 산업이 아니다. 지구상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는 기본 산업으로서 농업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농업 생산물을 그저 식량으로만 판단하면 그 가치를 너무 낮게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반적인 활용도가 너무 낮다. 그동안 국가 연구과제로 개발된 국산 농산물 이용 고부가가치 기술이 실용화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고부가가치를 부여할 국산농산물의 양이 충분히 많이 생산되지 않아서이다. 기껏 기술을 개발해놓고 원료는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구하려고 기웃거린다. 이게 무슨 짓인가.
우리나라는 단위 면적당 생산성이 매우 낮기에 국산 농산물이 비싸고, 생산량도 적다. 지금은 고부가가치를 적용할 때가 아니라 생산량을 늘리는 게 우선적 농업전략이 되어야 한다. 더불어 쏟아지는 잉여생산물을 가공기술로 커버, 소재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 유통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국에서 단위 면적당 생산되는 농산물과 관련 산업으로의 이용도가 1이라고 한다면 선진국은 10이 넘는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이 고도화되지 못한 저개발도상국의 농산업 모델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강소농업 네덜란드가 부러운가? 그럼 기술과 사업모델을 그만큼 개발해서 농산업의 효율을 지금보다 엄청나게 높여야 한다.
한번 고도화된 농산업 생산모델을 이룩하면 그 이후로는 여유롭게 나머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환경? 자원? 그 주장을 가만히 들어보면 이만큼 농업이 중요하니 정부가 돈을 줘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하지만 시작부터 정부 돈이 들어가면 끝까지 정부 관료가 이 프로젝트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작은 좋은 취지였어도 결말이 그리 좋지 못한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많은 사례가 입증한다.
나도 농산물 제값 받기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이런 식은 아니다. 소비자의 부담만 늘릴 뿐이다. 소비자의 부담을 늘리는 변화는 어느 경우라도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한국 농업이 제 길을 가려면 지금보다 가격이 싸져야 한다. 싸지면서도 농민들이 이익은 충분히 가져갈 수 있는 혁신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불가능하다고? 전략을 잘 짜놓고, 정부의 적당한 도움을 받아 열심히 협업하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원문: 여러가지 식품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