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새활용플라자 2층 소재라이브러리실. 초등학생 20여 명이 다 쓴 칫솔을 책상 앞에 두고 강사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운다. 강사가 탁자 앞에 놓인 알록달록한 가방을 들어 올렸다. 어쩐 일인지 가방 외관이 낯설지 않다.
여러분이 마시고 버린 음료수 포장재로 만든 가방입니다. 이 화분은 여러분이 쓰다 버린 칫솔로 만들었어요. 이처럼 쓰레기도 얼마든지 새로운 물건으로 탄생할 수 있어요. 자 그럼 우리도 칫솔로 팔찌를 만들어볼까요?
아이들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제일 먼저 칫솔에서부터 솔을 힘껏 뜯어냈다. 그 후 플라스틱만 남은 칫솔 자루를 끓는 물에 담그자 딱딱했던 플라스틱이 점차 말랑말랑해졌다.
꺼내어 손목 둘레에 맞게 구부리자 팔찌의 기본 형태가 완성됐다. 아이들은 그 위에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 캐릭터와 반짝이 스티커를 붙여 세상에 유일한 팔찌를 만들었다.
칫솔이 팔찌가 된다는 건 상상도 못 했어요. 엄마 갖다 드릴 거예요.
- 월곡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
지난 6월까지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 진행된 이 체험학습 교육 프로그램은 오랄비의 후원을 받아 ‘테라사이클 코리아‘가 기획했다. 2001년 설립된 테라사이클은 매달 200kg 이상의 폐기물을 재활용하고 비영리단체와 환경단체에 100억 원 이상을 기부했다. 이들이 기획한 자원순환 프로그램에는 6000만 명 이상의 소비자들이 동참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테라사이클은 ‘폐기물 제로(Zero Waste)’를 미션으로 추구하는 친환경 사회적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21개국에 지부를 두었다. 한국의 경우 자원순환법 시행에 때맞춰 지난해 9월 출범했다.
테라사이클의 주 수입원은 기업 컨설팅이다. 세계 초콜릿 업계 1위인 MARS 사를 비롯해 피앤지(P&G)·헹켈(Henkel)·다농·코카콜라 등 유명 다국적 기업들이 주요 고객이다. 테라사이클은 이들 기업이 재활용이란 방법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테라사이클 코리아는 자원이 더 잘 순환될 방법을 연구 개발하고 소비자들의 환경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캠페인도 수행한다. 지난해 10월부터는 글로벌 구강 전문 기업 오랄비와 함께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폐칫솔 모으기 캠페인을 벌였다. 이를 위해 서울의 22개 초등학교에 칫솔 수거함을 설치했다.
어린이들이 열정적으로 재활용에 참여해요. 1차로 12개 학교에서 칫솔을 수거했는데 무려 60kg에 이르는 폐칫솔 3900개가 모였습니다.
- 강윤정 테라사이클 코리아 매니저
수거된 칫솔은 세척과 분리 – 분쇄 등 처리 과정을 거쳐 원료화돼 화분으로 만들어진다. 화분은 칫솔 재활용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든 학교에 기부된다. 1000개 이상 폐칫솔을 모은 학교 중 가장 많은 수거량을 보인 학교에게는 3D 프린터를 증정할 계획이다.
테라사이클 코리아는 이와 별도로 서울새활용플라자 건물 안에 칫솔 수거함을 설치해 다 쓴 칫솔을 모았다. 이 칫솔 역시 재활용 화분으로 만들어 오는 4월 7일과 8일 진행되는 서울새활용플라자 ‘리버마켓’과 광화문 ‘나눔장터’에서 식물과 함께 판매된다. 강 매니저는 “화분의 판매 수익금은 저소득층 아동들의 치과 진료비로 쓰인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학교보건진흥원의 도움을 받아 치과 진료가 시급한 저소득층 아동 100여 명을 추천받을 예정입니다. 기초수급 아동들은 국가보험의 형태로 어느 정도 치과 진료가 이뤄지지만 바로 그 윗단의 아동들은 의료사각지대에 놓여있어요. 한 대학병원과 협업을 통해 이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 중입니다.
테라사이클 코리아는 현재 P&G사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플라스틱 재활용에 주력한다.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평균 98.2kg이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재활용이 어려운 품목이기도 하다.
플라스틱의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 한 용기에 3가지 이상의 재료가 혼합된 경우 이를 다 선별해 원료화하려면 판매 수익금보다 물류·가공비가 더 드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2차로 선별장에서 매립 혹은 소각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 이지훈 테라사이클 코리아 매니저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은 38% 수준이다. 국제적인 평균 수준 14%에 비하면 무척 높은 수치다. 하지만 그 숫자엔 허점이 있다. 국제적인 통계는 실제로 플라스틱이 물질로 원료화된 수치인데 반해 국내 통계는 재활용업체로 넘어간 수치를 말한다. 이 매니저는 “선별장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소각 또는 매립되는 실태를 감안하면 38%란 허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재활용업체를 방문하면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이들의 고객인 기업 입장에선 재생원료가 새 원료보다 비싸다면 재생원료를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테라사이클 코리아는 플라스틱 재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서울의 아파트 단지 3곳 약 만여 세대에 분무기 수거함 30개를 설치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9월 부산 해운대에서 진행한 해변 정화 프로그램에서 수거해 창고에 보관 중인 플라스틱 120kg을 원료화해 오는 5월 놀이터를 만들어 기증할 계획이다.
5월에 기부될 놀이터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면 환경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가 될 겁니다.
- 이지훈 매니저
테라사이클이 진출한 세계 21개국에선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폐플라스틱이 재활용된다. 놀이터뿐 아니라 세계 최초로 재생 플라스틱을 활용해 샴푸 용기를 만들었고 일본에선 차량용 탈취제 플라스틱을 원료화해 반사경을 만들어 아이들의 자동차 사고 예방에 기여한다.
홍준형 테라사이클 매니저는 애연가다. 그의 관심은 요즘 담배꽁초 재활용에 쏠려있다. 홍 매니저가 구상하는 담배꽁초 재활용 캠페인이란 이렇다. 먼저 흡연자들을 위한 흡연 구역을 지정하고 그곳에 담배꽁초 수거함을 비치한다. 담배꽁초는 마른 상태로 수거돼야 좋은 품질의 원료가 되기 때문이다.
국내 담배 소비자들의 몸에 밴 습관 중 하나가 땅에 비벼 끄는 게 아니라 물에다 끄는 거예요. 담배꽁초는 젖으면 재활용 원료로 쓸 때 품질에 큰 차이가 납니다. 지자체에 건의해 담배꽁초가 마른 상태로 수거될 방법을 모색해보려고 합니다.
- 홍준형 매니저
그는 “길거리에 마구 버려지는 담배꽁초는 비라도 내리면 길거리 낙엽과 함께 하수구를 막는 가장 큰 요인이다”며 “이는 여름철 모기와 같은 해충이 알을 낳는 온상이 돼 여러 가지 환경적 문제를 낳는다”고 덧붙였다.
담배꽁초의 성분은 안경테와 단추를 만들 때 쓰는 원료인 ‘셀룰로스 아세테이트(cellulose acetate)’와 같습니다. 마른 상태로 잘 수거가 된다면 이를 원료화해 재떨이·팔레트·안경테·단추·벤치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2000년대 들어 폐기물 처리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줄이는 차원을 넘어 자원순환형으로 바뀌어간다. 자원을 단순히 매립하거나 소각하는 대신 최신 기술을 통해 재활용을 극대화해 자원순환의 사회를 지향한다. 국내에서도 2018년 자원순환법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한 대단위 아파트 단지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분리수거업체의 거부로 포장용 소형 스티로폼에 이어 비닐 포장재도 4월부터는 수거가 불가하니 일반 쓰레기봉투에 버려주세요.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버려지는 세태. 열심히 분리수거하는 국민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문: 이로운넷 / 필자: 백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