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의 끝은 창작이라고. 올해 나의 목표는 직접 맥주를 만드는 게 되었다. 비록 만들어진 첫 작품이 맥주보다 보리차 같이 생겼고, 마시려면 한국수자원공사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는다. 동생은 이 맥주에 ‘요단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가 맥주를 만드는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맥주회사’를 만들기 위함이다. 이 꿈을 이룬다면 나는 식사시간, 근무시간, 심지어 자면서도 맥주를 마시고 살아도 욕을 먹지 않을 테니.
하지만 우리의 요단강은 갈 길이 멀다. 세상에 잘 난 맥주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맥주’를 알아보았다. 그들이 이토록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10위. 쿠어스 라이트(Coors Light)
1978년생. 미국 콜로라도 출신의 맥주. 쿠어스 라이트. 회색빛을 띠는 생김새 때문에 ‘실버 불릿’이라는 중2병스러운 별명을 갖고 있다. 쿠어스 라이트에 그려진 하얀 산은 ‘로키산맥’인데 맥주의 온도가 차가워지면 산이 하얀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초사이언 블루 간지가 나는 맥주다.
독특한 디자인과 달리 맛은 가볍고 청량감 있는 평범한 라거다. 하지만 부담 없는 맛 덕분에 미국에서는 버드와이저, 밀러와 함께 미국 3대장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조만간에 한국에 상륙한다고 한다고 한다. 오너라!
9위. 브라마(BRAHMA)
1988년생. 브라마는 브라질에서 태어난 브라질을 대표하는 맥주다. 브라질이라고 하면 축구나 좀(아니 많이) 잘하지, 맥주는 뭐 있겠냐고 무시하지 말자. 브라질은 중국과 미국 다음가는 최대의 맥주 생산지다. 동시에 맥주를 많이 마시기로도 유명하다.
브라마는 오랫동안 브라질 국민에게 맥주와 동의어처럼 살아왔다. 때문에 ‘1등 맥주’라는 마케팅을 했으나, 현재는 타이틀을 빼앗겨 만년 2인자 콩라인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런데도 세계 9위다. 브라질. 도대체!
8위. 하얼빈 맥주(Harbin Beer)
1900년생. 하얼빈 맥주는 중국 최초의 맥주다. 물론 중국인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닌 만주 철도를 건설하던 러시아 노동자에게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씁쓸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맥주지만, 중국사람들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이기에 하얼빈을 좋아한다.
하얼빈 맥주는 하얼빈의 추위만큼이나 순하고 가볍다. 중국 현지 사람들은 하얼빈 맥주에 사랑과 리스펙을 담아 ‘하피(哈啤)’라고 부른다. 하얼빈에서 현지 느낌을 내려면 이 말을 기억하자. “이모 하피!”
7위. 하이네켄(Heineken)
1864년생. 하이네켄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맥주이자, 한국에 가장 먼저 수입된 맥주이기도 하다. 하이네켄을 모르는 맥덕은 없을 정도로 편의점에 항상 출몰하는 녀석이다.
무엇보다 하이네켄은 마케팅이 유명하다. 특히 축덕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데, 하이네켄이 유럽 챔피언스 리그의 메인 스폰서이기 때문이다. 광고에서도 여자친구를 볼 거냐, 축구를 볼 거냐며 질문을 던진다. 여자친구가 있냐고 먼저 물어보는 게 먼저 아닌가?
6위. 연경 맥주(Yanjing Beer)
1980년생. 연경 맥주는 중국 베이징을 주름잡는 맥주다. 연경이라는 이름은 베이징의 옛 지명이다. 하얼빈 맥주가 하얼빈에서 잘 나가듯, 연경 맥주는 베이징을 꽉 잡고 있다. 베이징에서 100병의 맥주가 팔리면 85병이 연경 맥주라던데. 맥주가 살려면 고향 이름을 울부짖어야 하는 건가. 물론 베이징 인구가 약 2150만 명이니까 가능한 소리다.
5위. 스콜(SKOL)
1964년생. 스콜은 브라마를 꺾고 브라질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맥주다. 원래는 영국과 캐나다, 스웨덴, 벨기에 양조장이 만든 글로벌 브랜드로 시작했다. 그렇게 스콜은 브라질에 공격적으로 진출했고, 그 결과 브라질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 빠져나올 수도 없다. 브라질에서 이미 스콜을 매입했으니까.
스콜의 뜻은 스웨덴어로 ‘당신의 건강을 위해’다. 세상에 음주가 깊어질수록 건강을 외쳐야 한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4위. 버드와이저(Budweiser)
1876년생. 미국 출생이다. 버드와이저는 앤하이저 부시가 체코의 부데요비체 여행을 갔다가 그 지방의 맥주를 마시고 감동을 받아 만든 맥주다. 너무 감동을 받아서 이름까지 똑같이 쓴 것이 문제. 때문에 유럽에서는 체코의 버드와이저와 상표권 분쟁에 붙어 ‘기무치’ 취급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유럽에서는 철자를 바꾸거나, 이름을 버드로 줄여 팔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잘 나가는 맥주다. 맥주의 왕(King of beer)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한때 코카콜라, 말보로와 함께 미국 3대 기호식품으로 불렸다. 사실 말이 왕이지 맛은 서민에 가깝다. 큰 특징 없이 가벼운 맛 덕분에 어떤 음식과 장소에서 마셔도 참 잘 어울린다고.
3위. 버드라이트(Bud Light)
1982년생. 버드라이트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맥주다. 시작은 버드와이저의 확장판이었지만, 이미 버드와이저의 인기를 추월한 지 오래다. 시원한 파란색이 상징인데 나중에 버드와이저를 기억할 때 빨간색이 아닌 파란색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가벼운 맥주에 대한 요구가 증가했다. 기존의 맥주는 나이 든 사람이 먹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맛도 칼로리도 낮은 ‘라이트’ 버전의 맥주를 냈다. 지금은 다이어트도 맥주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최후의 맥주 같은 느낌이랄까?
2위. 칭따오(TSINGTAO)
1903년생. 칭따오 맥주는 양꼬치엔 칭따오로 다른 나라 사람이 중국 맥주를 말할 때 첫 번째로 꼽히는 맥주다. 칭따오는 홍콩에 정착한 독일인이 만들었다. 하얼빈 맥주가 맑고 순한 러시아 스타일이라면, 칭따오는 단맛이 제법 남는 독일 스타일의 맥주다. 1906년 독일 뮌헨의 맥주 세계 박람회에서 금상을 타면서 맛으로 제법 유명세를 얻었다.
칭따오는 일찍이 봇짐을 싸서 해외 진출을 준비해왔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과 독일, 멕시코, 브라질까지 양꼬치를 한 손에 들고 문을 두드리고 있다. 전 세계가 양꼬치의 매력에 빠지는 그 순간, 칭따오는 중국 맥주가 아닌 글로벌 맥주가 될 것이다.
1위. 설화맥주(Snow Beer)
1993년생. 설화맥주는 이 리스트에서 가장 나이가 적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다. 세계 맥주 판매량의 5.4%를 설화맥주가 차지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중국에서만 팔린다는 거. 독일 사람이 아무리 맥주를 좋아하고, 미국 사람이 아무리 맥주를 많이 마셔도 음주의 인해전술에는 당할 수 없다. 중국 1등이 곧 세계 1등이다.
설화맥주는 지난 10년 동안 500%가 넘는 성장을 했다. 중국에는 칭따오나 연경맥주, 하얼빈맥주도 있는데 설화가 잘 팔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낮은 도수와 가벼운 목 넘김? 아니다. 가격이 가벼운 것이 크다. 1L에 약 1달러 정도의 가격. 마치 우리가 “이게 맥주냐!”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계산대에 가져가는 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어떤 매력이 맥덕의 지갑을 열게 했나?
사실 각각의 맛을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맛이 깨끗하고, 탄산기가 있는 ‘페일 라거’다. 우리가 마시는 카스도 하이트도 모두 페일 라거다. 다양한 맛의 크레프트 비어가 대세라고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이 끌리는 것은 부담 없는 맛과 가격이었다.
아무래도 요단강의 세계정복은 잠시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