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가 나기 전까지 대다수 일본인은 원전의 안전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원자력 프로파간다(선전)’의 영향이 컸다. 일본의 2대 광고대행사인 하쿠호도(株式会社博報堂)에서 18년간 영업 담당으로 일했던 혼마 류(56)는 2017년 국내에 번역된 『원전 프로파간다: 안전신화의 불편한 진실』에서 여론 조작의 실상을 폭로했다.
혼마에 따르면 도쿄전력 등 원전을 운영하는 9개 전력회사는 1970년대부터 후쿠시마 참사 무렵까지 원자력 홍보를 위해 약 2조 4,000억 엔(약 24조 원)을 쏟아부었다. 전력회사 등 ‘원자력마을(원전마피아)’은 대형 광고대행사를 창구로 언론에 광고를 공급했고, 언론은 원자력 마을에 제압당해 반원전 보도를 거의 하지 못했다. 일본인들은 이 특수한 구조 속에서 ‘원전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는 선전을 단단히 믿게 됐다는 것이다.
엄청난 홍보비로 ‘원전 안전 신화’ 만든 일본과 한국
원전 폭발 사고 후 후쿠시마는 절망의 땅이 됐다. 한때 일본 후쿠시마현 후타바읍 중심가 마을 입구에 걸렸던 “원자력은 밝은 미래의 에너지(原子力明るい未来のエネルギ)”라는 구호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된 현실과 참담한 대조를 이뤘다.
우리나라의 ‘원전 프로파간다’도 일본과 비슷한 면이 많다.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전 관련 기업과 기관들은 광고와 협찬 등을 통해 신문 지면과 방송 전파를 사실상 ‘구매’해, 보도 내용에 영향을 미쳤다.
《단비뉴스》는 지난해 6월과 지난 2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하 원자력공단)의 문화예술 사업예산 및 광고비 집행 내역,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의 홍보예산 집행 내역(2012~2017)을 받았다. 내용을 종합한 결과 우리나라 언론 대다수가 이들로부터 광고 외에 협찬 명목으로 돈을 받아왔고 그 거래는 ‘친원전’ 논조의 보도와 프로그램 제작으로 이어졌음을 확인했다.
대표적으로 지상파 방송인 SBS의 경우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원자력공단으로부터 총 4억 1,200만 원, 한수원에서는 총 2억 1,000만 원을 받았다. SBS가 2012년 제작한 특선다큐멘터리 ‘갈등, 길을 묻다’는 원자력공단에서 받은 1억 6,000만 원의 제작비로 스웨덴 현지 취재 등을 거쳐 국내 건설 중인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의 안전성을 부각했다.
SBS는 2014년에도 원자력공단이 지원한 1억 2,000만 원으로 특선 다큐멘터리 ‘방폐장 이제는 상생이다’를 제작했다. 이 다큐는 방사성폐기물에서 나오는 방사선량을 자연 방사선 수치와 비교하며 방폐장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이는 1991년 일본 정부가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 높아진 반핵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해 ‘원자력 대중 수용성 대책’을 만들면서 “방사선이 일상적 존재라는 것을 주지시키라”고 강조한 것과 비슷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광고 외에 취재 협찬 등으로 보도에 영향
《단비뉴스》가 받은 정보공개청구 자료를 보면 YTN도 2012년 3월과 2013년 9~12월 세 차례에 걸쳐 한수원으로부터 방송제작협찬비 4억 7,200만 원을 받았다.
2013년 12월에는 TV조선이 1억 8,000만 원, 연합뉴스TV가 1억 3,000만 원, JTBC가 1억 원, 채널A가 5,000만 원, MBN이 4,000만 원을 같은 명목으로 받았다. 2014년에는 시사교양 제작 명목으로 KBS에 7,500만 원, 한국경제TV에 두 차례 총 5,000만 원, MTN에 1,500만 원이 제공됐고 채널A에는 특집다큐멘터리 제작 명목으로 3,000만 원이 지원됐다.
한수원은 또 지난 2012년부터 2017년 6월까지 총 222억 2,500여만 원을 언론사 광고비로 썼다. 이중 방송광고가 171억 6,600여만 원, 인쇄광고는 50억 5,867만 원이었다. 광고를 받은 언론사는 주요 방송 및 신문은 물론 지역지, 각종 전문지, 잡지, 인터넷 매체, 심지어 대학 학보사까지 다양했다. 핵폐기물처리장을 관리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역시 같은 기간 총 27억 860여만 원의 광고비를 집행했다.
탐사전문언론 《뉴스타파》가 지난해 8월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SBS는 지난 2013년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전 한국원자력문화재단)으로부터도 원자력 및 에너지 정보제공 목적으로 총 3,000만 원의 취재 지원비를 5회에 걸쳐 받았다.
MBC도 2014년 같은 재단으로부터 1억 1,000만 원을 지원받아 그해 12월 11일 방영된 MBC 다큐프라임 ‘미래에게 말을 걸다―원자력 세대의 선택은?’을 제작했다. 이 다큐는 “후쿠시마 사고 후 확산되는 방사능 공포는 과도한 것이며, 원전은 경제적이고 안전하기 때문에 정부가 국민을 잘 설득해서 발전시켜야 한다”는 논조로 구성됐다.
원자력 공공기관을 ‘노다지’로 보는 언론
지난해 10월 24일 국회 산업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홍익표(51)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관섭(57) 당시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한수원을 비롯한 원자력 관련 기관이 언론 집단에게는 그야말로 ‘노다지’예요. 금맥이죠. 광고비, 언론 협찬비, 기사 협찬도 해 주고 기자들 데리고 가서 외유성(출장) 보내 주고, 그러면서 (언론은) ‘원전이 안전하다, 경제적이다’ 이런 얘기를 계속 반복적으로 써 줍니다… 이런 와중에 소위 우리가 얘기하는 ‘원전마피아’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원자력산업계, 정부 기관, 언론계, 정계, 관계, 다 유착 관계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홍 의원은 이날 국정감사 질의에서 한수원으로부터 돈을 받고 협찬 기사를 써 준 언론사로 《동아일보》, 《국민일보》, 《매일경제》,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5개사를 거론했다. 그는 경제학 이론 중 하나인 ‘포획이론(capture theory)’를 거론하며 감시자가 되어야 할 언론이 감시 대상인 원자력계에 포획돼 입맛에 맞는 기사를 써준다고 개탄했다.
홍 의원에 따르면 《동아일보》는 2016년 7월 13일 자에 중앙대 정모 교수의 칼럼 「신고리 안전성 논란, 사고관리계획으로 풀어야」를 실었다. 이 칼럼은 한수원의 ‘기획 작품’이었다. 정 교수는 한수원의 섭외를 받고 자신의 칼럼이 어느 신문에 실릴지도 모른 채 글을 썼고, 《동아일보》는 한수원으로부터 1,000만 원을 받고 지면을 내줬다는 것이다.
홍 의원은 “보통은 신문이 (글쓴이에게) 원고료를 지불하는데, 반대로 한수원이 동아일보에 1,000만 원을 지불했다”며 이관섭 당시 한수원 사장을 힐난했다. 이에 정 교수는 “당시 한수원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원고 부탁을 받고 평소 생각한 대로 글을 썼을 뿐 칼럼 게재와 관련해 돈이 오간 사실은 몰랐다”며 “동아일보나 한수원 측으로부터 원고료를 받은 일도 없다”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지난 2015년 새해 벽두부터 7개월간 기획시리즈 ‘원전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연재했다. 총 102건의 기사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당시 원전을 둘러싼 찬반 논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실었고, 원전정책의 문제점도 비판했지만 전반적인 논조는 경제성장의 동력인 원전 산업을 육성·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시리즈는 국민일보 측이 먼저 한수원 측에 협찬을 제안, 총 29편의 기사에 대해 1억 5,000만 원을 받았다고 홍 의원이 밝혔다.
《매일경제》가 2016년 3월부터 총 10회에 걸쳐 연재한 ‘원전과 함께하는 미래 50년’ 시리즈도 마찬가지였다. 《매일경제》는 한수원에 보낸 ‘원전기획시리즈 시행안’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5주년 등 부정적 이슈가 제기되는 시기에 이번 기획을 통해 한국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산업기여도, 상생의 문화 등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소개해 오해를 불식시키는 한편 긍정적인 여론을 조성해 한국원전이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일조하고자 한다”며 약 1억 원의 협찬비용을 요구했다. 홍 의원에 따르면 한수원은 《매일경제》에 총 9,167만 원을 지급했다.
이날 국감장에서는 《조선일보》, 《문화일보》가 한 건당 각각 1,500만 원, 1,000만 원씩을 받고 한수원에 홍보성 기사를 써준 사례도 공개됐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19일 《오마이뉴스》의 「그 기사가 1억짜리? 한수원의 ‘속 보이는’ 기획기사 협찬」 기사에 따르면 이는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오마이뉴스》 기사는 《동아일보》가 2012년부터 2016년 9월까지 한수원을 옹호하는 기획특집기사를 총 11회 실어 1억 8,945만 원을 챙겼고 《조선일보》도 같은 기간 15회 기획특집기사를 쓰고 1억 6,440만 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경향신문》, 《한겨레》 역시 각각 3,600만 원, 2,300만 원의 협찬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인터넷신문윤리강령 등 각종 언론윤리강령에는 협찬 등을 받아 취재한 경우 이 사실을 보도 시점에 밝히게 돼 있으나 이들 신문 중 이를 이행한 곳은 거의 없었다.
지난해 11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간판을 바꾼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도 그동안 수많은 협찬기사를 언론에 청탁해 왔다. 지난해 9월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국내 35개 언론사가 당시 원자력문화재단으로부터 총 7억 3,460만 원을 받고 123건의 협찬기사를 썼다. 이중 원자력문화재단의 협찬을 받았음을 명시적으로 알 수 있게 쓴 기사는 《전기신문》과 《디지털타임스》의 보도 2건밖에 없었다.
국민들 내는 전기요금 떼서 원전 홍보비로
원자력문화재단의 출연금은 전액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충당한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국민들이 매달 내는 전기요금의 3.7%를 떼어 조성되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관리한다.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원전 홍보에 쓰는 셈이다.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권칠승(53)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원전 홍보비로 나간 돈은 824억 1,200만 원이었다. 반면 원전의 대안으로 꼽히는 신재생에너지 홍보에는 같은 기간 2억 6,700만 원. 원전 홍보비의 300분의 1이 지출됐을 뿐이다.
이재경(64)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지난달 5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관련 사항을 자세히 알지 못해 조심스럽지만, 돈을 받은 언론사가 여론을 좌우할 만한 중요한 기사를 독자 입장에서 협찬성 기사인지 판단할 수 없는 일반적 형태로 게재하는 건 명백히 언론윤리를 어긴 것”이라며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준엄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영철(65)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지난 22일 전화인터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시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는 언론의 본질적 역할이 무너졌다는 것”이라며 “원전 문제처럼 중요한 이슈에 대해 언론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고 대가성 기사를 써댄다면 시민들은 왜곡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수원 초청 취재 후 쏟아진 ‘수명연장 찬성’ 기사들
한수원과 원자력문화재단 등은 기자들의 취재를 직접 지원하기도 한다. 《뉴스타파》가 지난해 7월 한수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과 2016년 한수원은 《내일신문》 논설위원, 《신동아》 편집위원, 산업부 출입기자단 등에 총 6차례 1억 9,814만 원을 들여 국내외 원전 시찰 취재를 지원했다. 교통비(해외의 경우 항공료), 식비, 숙박비, 기념품비 등을 제공했다.
특히 월성원전 1호기 수명연장 여부를 놓고 사회적으로 논쟁이 뜨겁던 2015년 2월 한수원은 산업부 출입기자단이 캐나다·미국 내 원전 지역을 시찰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산업부 기자단의 해외원전시찰은 2월 1일부터 8일까지였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는 2월 12일로 예정돼 있었다.
기자단이 귀국한 직후인 2월 10일과 11일, 각 신문방송에는 월성1호기와 기종이 같은 캐나다 ‘포인트 레프로’ 원전의 수명연장 가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원안위는 회의를 한 차례 연기한 끝에 2월 27일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 허가를 결정했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나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