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식도 불편하다. 대용식으로 간다.
가정 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HMR)이 대세다. 앞으로도 계속 대세일까? 국내에서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 1인 가구 비율이 거의 절반에 달한다. 아침 식사를 거르는 주된 이유는 대부분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할 수만 있다면 균형 잡힌 식사를 원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의 영양 균형과 건강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아침에 밥할 시간은 없다. 간편식이 있지 않는가? 씻고 나가기 바쁜데 전자레인지 3분 돌려먹을 시간도 부족하고 귀찮다. 편의점에 들러서 도시락 사 먹기도 부담스럽다. (아침부터…)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척 긴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매일 삼시 세끼를 요리하고 챙겨 먹기란 꿈도 못 꿀 일이다. 밥상의 형태도 이미 변했다. 1-2인 가구에서 밥과 찬이 동반된 한상차림은 이제 한 그릇 음식으로 대체되고 있다. 게다가 서울이 직장인 사람들의 평균 출퇴근 시간이 두 시간을 넘어가고 있는 마당에 너덧 시간 ‘고아’ 먹는 꼬리곰탕은 사치 그 자체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요리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어에서 ‘고다’라는 단어는 이제 가정에서 쓰는 일상적 단어가 아닌, 식당 주방에서나 쓰는 전문용어로 바뀌고 있을 지경이니 말이다.
이런 필요에 따라 요리 시간을 절약하는 가정간편식에서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먹고 치우는 시간까지 줄여주면서도 포만감과 영양 균형을 맞춘 ‘대용식’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등장했다. 그동안 많은 식품 기업, 편의점 기업에서 아침 식사용 도시락이나 샌드위치, 죽 등 다양한 시도를 해 왔지만 이목을 집중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대용식이 이 틈새시장에 파고들어 직장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면서 아침 식사 시장의 판을 새롭게 짜고 있으며, 점심 식사 시장에도 상당히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대용식의 정의
대용식이란 정확히 무엇을 얘기하는 걸까? 여전히 대용식의 정의는 매우 모호하다. 국내에서는 대용식을 ‘주식 대신 먹는 음식’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한다. 캐나다의 경우 ‘하루에 한 끼 또는 그 이상을 대체할 수 있는 가공식품’으로, 최소 열량이 225kcal 이상이어야 하고 구체적으로 명시된 양질의 단백질이 있어야 하며, 지방은 35% 미만이어야 한다는 보다 까다로운 기준도 덧붙인다. 영양 구성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하나, 여전히 정의가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대학교 푸드비즈니스 랩에서는 대용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위해 다양한 인터뷰와 문헌 및 사례를 조사한 결과 “재료를 손질하거나 조리하지 않고, 전통적으로 먹어 온 주식이 아니지만 한 끼의 영양분을 도구 없이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정의하는 데 이르렀다. 여기서 핵심은 도구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곧 수저를 쓰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야 대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용식의 탄생에 대해 살펴보자.
대용식의 탄생
‘바쁜 일상, 미래식’이라는 마케팅으로 대용식 개발을 제일 먼저 시도한 기업은 미국의 소일렌트(Soylent)다. 밥 한 끼 먹으러 나가기도 바쁜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을 타깃으로 개발한 제품이다.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2013년 벤처사업가 롭 라인하트는 30일 동안 자신이 개발한 ‘소일렌트’만 먹는 실험을 블로그에 게재한 이후 소일렌트는 대규모 자본 투자를 유치하는 등 대박을 터뜨렸다.
뒤이어 100% 채식을 표방한 ‘휴엘’(영국), 유기농 재료만 쓰는 ‘암브로나이트’(덴마크) 등이 세계적으로 나왔다… “밥 먹을 시간조차 아까운 벤처 기술자들과 사업가들에게 미래식은 하나의 유행이 되었고, 미래식이 나오는 파티가 열릴 정도라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소일렌트는 바쁜 이들을 위한 간편하면서도 영양이 완벽하게 구성된 한 끼를 제공하는 것이 그 목표였고,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소일렌트의 개념을 도입한 대용식이 잇따라 출시됐다. 현재 한국 대용식 시장을 견인하는 이그니스(랩노쉬)와 인테이크푸드(밀스) 두 회사의 점유율은 90%에 이른다. 두 기업은 “식사의 새로운 대안”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진화하는 식사” 등의 콘셉트를 가지고 다양한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한국에서 대용식 열풍은 랩노쉬가 올리브영의 매대 위에 올라가면서 시작되었다.
팬시하게 생긴 랩노쉬 보틀은 소녀들의 감성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취향존중 잇템이 되며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핸드백 안에 넣어 다니기 적당한 크기와 가벼운 무게, 그리고 꺼내서 물을 넣고 섞어해서 마실 때 창피하지 않고 팬시하게 보이는 제품, 랩노쉬. 한편, 단단한 고정 고객층을 갖고 있던 인테이크푸드사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밀스를 판매하게 되었다. 랩노쉬는 갖가지 튀는 맛으로, 밀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곡물과 견과류를 중심으로 한 듬직한 맛으로 시장에서 경쟁하며 시장을 키워 나갔다.
그럼 이 대용식이 예전부터 먹던 ‘선식’과 어떤 차이가 있냐고? 그렇다, 실제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말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대용식은 영양구성이 완벽한 한 끼여야 한다. 즉 평생 이것만 먹어도 살 수 있는 완전식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용식에는 미숫가루나 선식에 부족한 단백질과 지방이 적절히 함유되어 있다. 둘째, 대용식은 고루한 선식의 이미지와 차별화 전략을 택한다. 이름도 선식이 아니고 미래형 식사! 랩노쉬! 밀스! 패키지 역시 선식 쉐이커나 사발이 아닌 예쁜 모양의 통에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누가 대용식의 타깃인가?
대용식은 제품의 특성상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 미리 주문해서 쟁여 두었다가 원할 때 꺼내서 물을 부어 흔들어 섞어 먹는다. 많은 이들이 대용식을 다이어트용으로 먹는다. 그러나 대용식은 칼로리가 높다. 대부분 200kcal 이상으로 가장 높은 것은 400kcal까지 올라간다. 영양학적으로 평생 이것만 먹어도 살 수 있도록 ‘완벽한 한 끼’로 설계되어 있다. 적어도 밀스와 랩노쉬의 타깃은 ‘바빠서 간단히 먹지만 완벽한 한 끼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아침식사할 시간이 없는 이들은 출근하자마자 물에 타서 셰이킹한다.
물론 매일 점심때 부장님과의 부글부글 끓는 찌개 식사가 지겨운 사원들의 도피용 식사로도 훌륭하다. 꽤 많은 이들이 점심 때 쟁여두었던 대용식으로 간단히 때우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길 원한다. 밀스를 제조해서 판매하는 인테이크푸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30~40대 남성 고객 비중이 높다고 한다. 점심 한 끼 먹으러 나가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게 더 중요한 요즘 트렌드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부터 오프라인 매장의 대표 선수인 편의점에 대용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어떤 편의점에서 대용식이 가장 많이 팔릴까? 일반적인 오피스 밀집가나 주거지역보다 학교 도서관 내 편의점, 그리고 병원 내 편의점에서 대용식이 많이 판매되고 있음이 관찰되었다. 학교 도서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면 병원에서는 누가? 환자? 환자 가족들? 아니다. 놀랍게도 의사와 간호사들이 주 고객이었다. 밥 먹을 시간조차 부족한 의사와 간호사들이 1분 만에 끝낼 수 있는, 그러면서도 완벽한 영양 구성을 가진 유일한 식사가 바로 대용식인 것이다.
새롭게 대용식 시장에 들어오려고 하는 업체들은 고민이 될 것이다. ‘완벽한 한끼’ 시장을 노릴 것인가, 아니면 불패의 ‘다이어트’ 시장을 노릴 것인가? 현재 가루 형태의 대용식 시장에는 별다른 기술적 장벽이 없어서 누구나 진입하기 쉽다. 시장의 성장 단계로 보자면 아직 극초반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장에 들어오려고 하는 업체들은 어떤 무기를 장착해야 할까? 가루형이 아닌 고체형이나, 액상형은 어떨까?
대용식의 제형
현재 대용식 제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대용식의 최초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바형, 죽과 비슷한 액상형, 파우치나 병에 담긴 가루에 물이나 우유를 섞어 먹는 가루형이다. 바형은 꽤 오래전부터 ‘에너지 바’라는 이름으로 국내 시장에 많이 출시되었는데, 한국인의 식습관상, 이런 에너지 바는 간식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식사를 대체하긴 어렵다. 액상형은 현재 죽의 형태로 출시되고 있는데, 지금 이 시장은 지금 죽 쑤고 있다. 생각보다 식사 대용으로 포장 죽에 대한 선호가 올라가지 않는다. 이름이 ‘죽’이라서 더 어렵다.
‘너 지금 뭐 먹니?’
‘응. 나 죽.’
‘죽? 왜? 어디 아파?’
이런 반응이니 소녀들이 죽을 먹을 수 있을까? 창피해진단 말이다.
그런데 국내보다 먼저 대용식을 출시한 미국의 소일렌트는 액상형 대용식이 가장 반응이 좋다. 액상형 제품의 크기는 중간 사이즈의 생수통만 한데 양이 장난이 아니다. ‘배부르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 묵직한 편이다.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 어려운데 힘 좋은 미국 친구들은 잘 들고 다니나 보다. 미국 시장과 달리, 국내 시장에서는 역시 가루형 제품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다. 랩노쉬도 밀스도 주력 제품은 모두 가루 형태이다. 가루형 대용식 시장은 2016년 1분기 대비 2017년 2분기 매출이 약 5배 성장했다. 불과 1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 가루 형태의 대용식 시장에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으니, 우리나라 다이어트 시장의 최강자인 쥬비스의 “밥바”다. 아름다운 패키지에 열두가지 다른 종류의 맛으로 골라 먹을 수 있는 현미로 만든 밥바. 인터넷에서 핫하다. 밥이니 덜 질린다. 밥맛도 좋다. 다만 냉동 보관해야 하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밀스의 경우는 가루형에 이어 비스킷 형태의 대용식에 도전하고 있다. 어떤 식감으로 만들어야 고객들이 간식으로 먹는 과자가 아닌 대용식으로 느끼도록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작 욕구와 포만감을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
지금의 대용식은 쉽게 질린다. 세끼 연속으로 먹기 어렵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렇게 꿀떡꿀떡 마셔서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 중 하나인 저작 욕구(씹고 싶다는 욕구)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 씹지 않으면 욕구 충족이 안 된다. 불안해지고 짜증난다. 그래서 랩노쉬는 말린 과일 조각을 살짝 집어넣고, 밀스는 견과류가 살짝 씹히도록 제품을 만든다. 가루형 대용식에 아침에 먹는 시리얼 조각을 함께 넣어 놓은 제품도 있다. 확실히 씹는 느낌은 좋은데, 뭔가 시리얼을 비싸게 사 먹은 느낌이기도 하고. 도대체 어떤 식감을 얼마나 넣어야 할까?
씹지 않으면 포만감이 잘 올라오지 않는다. 먹었다는 시그널이 뇌로 전달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욕구 불만이 더 생긴다. 뿐만 아니라 꿀떡꿀떡 마시면, 꿀떡꿀떡 잘 소화되어 버린다. 빨리 배가 고파진다. 포만감이 문제다. 어떻게 하면 충분한 포만감을 느끼게 하고 또 오래 지속되게 할 수 있을까? 이 문제가 해결되면 대용식은 매우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식품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대용식의 미래
대용식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우리가 바빠지면 바빠질수록 대용식 시장은 더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고민이 있다. 가루 형태에서 액상, 바, 고체 등 어떤 제형으로 나아갈 것인가, 어떻게 다양성을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또한 인간의 저작 욕구와 포만감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해결만 하면 대박이다. 그래서 여러 식품 스타트업 기업들이 이를 연구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들과 유통에 대한 고민이 있기는 하지만 대용식은 원료와 제형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화할 수 있다. 말린 과일이나 견과류, 곡물 등 다양한 원료가 사용되는 대용식 시장의 성장은 국내 농업인 입장에서는 식품 원료로 곡물이나 과일, 채소를 간단히 가공하여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일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대용식 기업들이 제품 원료로 우리 곡물을 이용하고 있으며, 대용식 시장이 커질수록 지금보다 더 다양한 곡물과 식품 소재가 사용될 것이다.
또한 여전히 “이걸 어떻게 밥으로 먹어?’ “팬시해 보이지만, 역시 뭔가 인공적으로 보인다” “완전식품이긴 하지만 이것만 먹으면 안 될 것 같다”라고 의문하는 소비자들의 인식은 대용식 기업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햄버거 역시 완전식품이지만 그것만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심리적 압박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누구나 먹을 수 있는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성분이 들어있지는 않은지, 원료는 무엇인지 등 대용식 제품군에 대한 인지도가 여전히 낮은 편이기 때문에 소비자와의 거리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영양 균형이 잘 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사 대용으로 먹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하며, 소비자는 ‘굶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대용식을 선택한다. 대용식이 완벽한 한 끼가 될 수 있다는 인식 확산을 위해 기업들은 조금 더 분발해야 할 것이다.
건강과 간편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나타난 대용식은 새로운 식문화를 만들어 내며 앞으로 전진하는 중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용식이 우리의 식사를 완전히 대체하거나 주류 식사의 자리를 꿰차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대용식은 틈새시장이다. 바쁘고 힘든 이들을 위한 보조적 역할을 하는 음식이다. 마음의 여유가 있고, 시간의 여유가 있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대용식 시장은 소멸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대용식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식문화와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에서 솟아오른 것이다. 대용식 시장은 아직까지는 기술적 진입 장벽이 낮아 다양한 소형 브랜드들이 도전할 만한 곳이다. 유통과 마케팅이 중요한 대용식 시장에서 어떤 기업이 새로운 혁신의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 본 글은 문정훈 교수의 아래 책『푸드 트렌드 매거진 No. 1 취향존중』에서 발췌, 심화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