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내가 수학을 잘했지.’ ‘나는 수학을 정말 좋아했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대단히 드물 것으로 생각한다. 수학은 영어보다 훨씬 더 뛰어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수학을 포기한 사람을 가리키는 ‘수포자’라는 말은 수험생 중 절반 이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고교 시절에 수학을 포기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중학교 시절까지 수학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평균 시험 점수를 올려주는 과목이라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만난 수학은 좀처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고교 1학년 말부터 나는 수학 공부에 한계를 느꼈다.
평소 사회문화와 정치 과목에 관심이 있어서 문과를 선택했지만 ‘수학’이라는 과목에 도저히 정을 둘 수가 없어서기도 했다. 고교 시절을 떠올리는 것조차 10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지금도 여전히 수학에 대한 낯선 감정과 어려움은 수학에 고개를 돌리게 한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라는 책을 보았을 때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문을 품어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쳐다보기만 해도 멀미가 날 것 같은 수학을 소설처럼 아름답게 이야기로 그릴 수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엔 저자 김정희 작가가 수학을 좋아한 이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의 첫 장 프롤로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문과라는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진짜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수학을 한다는 것, 과학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알고 싶었다.
- 6쪽
겨우 두 문장을 통해서 책을 읽기 전의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작가 또한 이과가 아니라 문과 출신이었다. 어릴 때는 수포자 중 한 명이었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수학을 접하면서 ‘수학적 사고’를 통해 조금 더 삶에 새로운 즐거움을 더하는 인물이었다. 도대체 수학이 뭐가 좋아서?
저자는 제일 먼저 1장 「취미의 재발견」을 통해 어떻게 수학이 취미가 되었는지 말한다. ‘취미를 가진 사람은 고독을 즐길 줄 알고, 혼자서 잘 노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취미로 수학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바로 아래와 같이.
머리가 복잡하거나 무기력증에 빠질 때 수학 문제를 풀면 머리가 맑아지고 개운한 게 양치질을 하고 난 후의 느낌, 훌륭한 고전문학을 한 편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이 든다.
- 31쪽
작가는 수학 문제가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며 문제를 생각하고 답을 찾아내는 과정이 즐겁다고 말한다. 여기에 책을 읽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수학은 몇 분 내에 답을 얻어낼 수 있어 더 실용적이라고 덧붙인다. 언뜻 작가가 주장하는 ‘취미로서 수학’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오늘날 현대인이 우울증에 자주 괴로워하는 이유는 혼자 보내는 ‘고독’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혼자 편의점 수입 맥주 4캔을 만 원에 사서 마시는 것도 고독한 시간을 나름대로 즐기면서 보내기 위해서고, 그림이 그려진 책을 사서 홀로 색을 칠하며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취미는 돈이 상당히 들지만 수학은 수학 문제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다. 저자는 지하철을 비롯해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에서도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다면서, 책을 읽는 대신 수학 문제를 풀기도 한다고 한다. 내심 그렇게 수학을 좋아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바로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 저자는 다양한 수학 이야기를 독자에게 소개해준다. 우리가 수학을 포기했더라도 이름만큼은 여전히 기억하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비롯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유명한 데카르트의 수학 이야기를 통해서.
나 또한 ‘데카르트’라는 이름을 익히 알았지만 철학자가 아니라 수학자로서의 이야기를 읽는 건 처음이었다. 데카르트가 발견한 ‘데카르트의 좌표제’ 이야기는 어릴 적 수학을 공부하던 시기에 만난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병약한 어린아이였던 데카르트도 이 천장의 무늬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앞에 언급된 수학자들과 는 다르게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순탄한 삶을 살았다. 그는 프랑스 귀족의 자제로서 편안하게 자랐다. 어머니가 그를 낳자마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를 안쓰럽게 생각한 아버지는 데카르트의 모든 응석을 받아 주었다. 그는 눕고 싶으면 눕고 먹고 싶으면 먹고, 아무튼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잠자기였다.
칸트의 경우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하는데, 데카르트는 정반대의 경우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부지런한 아침형이 있는가 하면, 밤이 되어야 말똥해지는 올빼미형도 있는 법이다. 모두에게 자신만의 일상이란 것이 있는 법이니까.
‘데카르트의 좌표계’는 바로 침대에 누워서 천장의 무늬를 관찰하던 도중에 발견되었다. 그는 천장에 그려지는 직선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파리들을 발견하고, 직선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파리들의 위치를 수로 표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 아이디어로부터 서로 직교하는 좌표가 탄생하게 된다. 좌표계가 파리 한 마리에서 비롯되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 151쪽
철학자로 알려진 데카르트가 발견한 좌표계의 이야기가 제법 흥미롭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는 이렇게 모두가 아는 이름을 통해서 수학자와 수학 공식의 뒤에 있는 이야기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무릇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단순히 결과만 보는 게 아니라 과정을 볼 때 즐거운 법이다.
데카르트를 통해 발전한 좌표계는 수의 이단아로 취급받던 음수(-1, -2)도 수의 반열에 당당히 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수학책에 적힌 공식을 그대로 받아 적어 외우면서 문제 풀기에 연연한 수학과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수학을 배울 때 함께 배우면 무척 좋지 않을까?
실제로 이 책은 교육부 추천도서로 올라있을 만큼 교육적 의미가 있다고 인정받았다. 이제 수학을 갓 시작한 초등학생(5~6학년)을 대상으로 한다면 난이도가 높아 맞지 않지만, 중학생 이상의 자녀를 둔 부모님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어쩌면 부모님이 더 책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 「아마추어 수학자가 되자!」는 아마추어 수학자를 위한 수학 서적, ‘수학을 취미 삼으려면 반드시 버려야 할 습관’과 수학과 다시 친해지기 위해서 경계해야 할 부분,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수학 문제를 소개한다. 혹시 아래에서 가볍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있다면 한 번 풀어보자. 나는 몇 문제밖에 풀지 못했다.
요즘 학습지 공부를 하는 성인들이 늘었다고 한다. 어릴 때는 ‘공부’라는 개념이 시험과 이어지는 거라 즐기지 못했다면, 성인이 된 때부터는 ‘취미’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시작한 일본어 공부, 영어 공부만 아니라 수학 공부도 어쩌면 새로운 발견에 가깝다.
혼자서 한참을 고심하다 드디어 문제 푸는 방법을 알아차렸을 땐 ‘아하!’하고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게 된다. 이럴 때 공부는 마치 놀이와 같다. 오감을 몽땅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문제를 푼 후에 혼자 남에게 설명하듯이 말을 하면서 다시 풀어 보는 것이다. 공부방에 작은 칠판이나 화이트보드를 준비해 두고 강의를 준비하는 교수처럼 연구에 몰두하거나, 준비한 것을 다른 이에게 설명하는 연습을 해 봐도 좋겠다. ‘밑줄 쫙, 돼지 꼬리 땡야’ 등 재미난 말투도 섞어가면서.
- 293쪽
한국에서 수능 시험을 치르기 위해 수학을 공부한 사람들 대다수가 수학은 절대 취미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수학에 숨겨진 이야기를 하면서 ‘수학은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알고 보면 재미있다’며 수학에 친근함을 품게 해준다.
수학과 친해지는 일은 어렵다. 『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을 읽어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수학 공식에 ‘역시 수학은 아름다울 수 없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앞서 소개한 데카르트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자신만의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수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이 글을 통해 중고교 시절에 배우지 못한 수학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겼다면 이번 기회에 수학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선택은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독자의 몫이다.
원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