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구속되었다
이명박의 구속사유나 그의 경제적 법리적 죄악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더 추구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사자방이라 칭해지는 사대강, 자원외교 그리고 방산비리 역시 철저히 수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일은 많은 사람들이 잘 하고 있고 이명박이 구속되었으니 이제는 오히려 이명박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명박, 괴물을 알아보지 못했던 죄
이명박 시대는 왜 도래한 것일까 그리고 이명박은 시대적인 의미에서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명박이 한국 사회의 의사결정 시스템의 성능보다 더 높았던, 대중의 욕망이 만들어 낸 괴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그 욕망의 결과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10년안에 또 다른 이명박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 6월 항쟁이후 한국 사회는 빠르게 자유로운 곳이 되어 왔다. 노태우의 당선이나 김영삼의 3당야합이 시대의 변화를 막는 것같기도 했지만, 결국 군부독재는 종식되고 문민화는 이뤄졌다. 해외 여행도 자유로워졌다.
무엇보다 이 시기는, 한국에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었던 시기이다. 한국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서로와 만나는 것에 그야말로 광분했다. 외국에서 아직도 뚜뚜거리는 전화모뎀을 쓰고 있었을 때 한국은 고속인터넷을 썼었고 외국이 그런 한국을 경이의 눈으로 보던 때가 바로 이 시기이다.
인터넷 보급의 절정은 세계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일컫어지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자본에게 지배당하던 언론들이었음에도 불구, 돈도 없었던 노무현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을 무시하고 있던 보수 진영들 덕분이었다. 그들의 무관심 덕에 인터넷 공간이 진보세력의 대화의 창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노풍은 인터넷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해방의 흐름속에서 사람들의 욕망과 기대는 한없이 증가했다. 높아진 기대는 결국 사기꾼을 출현시키게 되기 쉽다. 지금 돌아보면 이명박은어떻게 봐도 실패한 사업가였고 사기꾼이었다. 공직을 맡는다는 것의 기본전제는 그 사람이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고 싶어한다는 것이어야 했는데, 이명박의 과거를 보면 그가 공익을 위한다던가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일했던 일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경쟁에 이겨서 출세하고 돈벌어 큰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만 보일 뿐이다. 그는 세상을 맑게 하는 물이 아니라 가장 더러운 것에 익숙한 가장 더러운 물이었다.
이명박은 결국 공격적 투자자일 뿐이었다. 물질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무소유로 꼽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희극적으로 들리는 이유다. 그의 언행을 볼 때 그가 인간의 내면적 가치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긴 안목으로 개발이 우리의 생활과 내면에 주는 영향을 고민하기 보다는 말끔한 아파트에서 비싼 옷입고 살면 행복하다는 것이 그가 추구하고 상징하는 가치였다. 그가 역사를 지워버리며 만들어 낸 청계천이나 4대강 운하를 보면 이것이 너무나 잘 드러난다. 그는 무한정한 개발을 상징하는 토건자본의 화신이었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 실패한 것은 그가 아니라 우리였다
노무현 정권 시절, 노무현은 높아진 국민의 기대를 잘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은 개혁뿐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에서 부정한 돈들을 쥐고 있으며 대다수 시민의 피땀을 착취하는 기득권들은 같다. 대기업들, 종교 단체들, 사학재단들 그리고 군 세력이다.
사학법은 사학재단의 운영을 좀 더 투명하게 해보자는 것이었으며 종교단체의 세무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명박 시대에 이뤄진 삼성 이재용의 승계는 뒤집어보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 그걸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관습헌법이라는 농담같은 판결로 뒤집어진 수도 이전도 결국 서울이 모든 것을 가지는 나라에서 더 이상의 진정한 발전은 있기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를 담합으로 억압하면서 새로운 변화가 있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는 세력들을 치워버려야 국민들의 높아진 기대는 충족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시도들은 좌절되었다. 오히려 노무현은 탄핵위기까지 몰렸다가 촛불집회로 겨우 살아난다. 노무현 대통령을 힘들게 한 사람 중 하나는 단언컨대 이명박이었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은 뉴타운 건설 바람을 일으켜서 시대를 거꾸로 돌리려고 한다.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실패였다면 그 실패의 상당 부분은 이명박 때문이기도 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노무현 정권이 실패라고 말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이래 빠르게 사회가 활력을 찾아가는 이유는 결국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만들어 둔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반도 평화 협상도 그렇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전쟁위기까지 갔던 분위기가 빠르게 진정되는 배후에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그림자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혹은 노무현 정부 시절의 한국은 개혁에 실패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런 개혁이 가능할 동력이 그때는 없었다. 일단 개혁을 추진할 인력이 부족했고, 국민적 합의도 부족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이후에 등장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한국 사회의 과제가 뭔지를 뼈저리게 절감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노무현 정권 무렵부터 뿌려진 인력의 성장이 문재인 정부를 풍요롭게 하고 있지만, 노무현 정부는 인력도 없었을뿐더러 김대중 정권보다 더 뛰어나기를 요구받았을 뿐이다.
노무현을 힘들게 했던 것은 그의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독재적 분위기에 빠져 있었던 국민들은 대통령이면 어떤 개혁이든 이뤄낼 힘이 있다고 착각했다. 현실적으로는 노무현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고 그토록 쉽게 직무가 정지될 정도로 힘이 없었는데 말이다.
모든 노무현의 지지자와 진보세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힘을 몰아줘도 개혁은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그들은 오히려 이제는 ‘너무 권력이 세진’ 노무현을 견제해야겠다고 말하는 판이었다. 돌아보면 노무현이 가진 것은 그저 대중적 인기라는 힘 하나뿐이었다.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져서 불평만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무현이 무시당하고 직무 정지를 당하는 일이라도 있어야 다시 모여 겨우 대통령직을 유지하게 만들어 줄 뿐이었다.
또 한 번의 실패는 없다. 괴물의 시대를 지나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다시 시대를 뛰어넘어 이명박이 구속된 문재인 정권시대를 살면서 나는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를 거치면서 좌절되었던 기대와 욕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부풀어 오를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그렇게 했듯이 문재인이 최초로 해내는 일은 금방 누구나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만만한 일로 여겨지기 쉬울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당선될 때, 모두가 기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선된 후는 어땠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당선될 수 있었던 일이었던 듯 말했다. 결국, 이렇게 기대치는 증가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 이후 다시 다른 정상적인 사람이 대통령을 한다고 해도 그 다음번 쯤이면 우리는 또다시 또 다른 이명박을 소환해서는 암흑기를 만들지 모른다. 어쩌면 문재인 다음번 대통령이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내릴 결론들은 극히 자연스럽다. 하나는 이번에는 그래서 개혁이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학재단과 종교단체를 투명하게 운영하게 하고, 재벌의 불법적 행위를 근절해서 상식적인 기업들이 되게 해야 한다. 군대조직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재용 재판이나 사학법개정은 그래서 문재인 정권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학법이라고 하니 중요하지 않은 사안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멀리 갈 것도 없이 국회의원들을 보면 된다. 장제원이나 나경원이니 하는 여러 의원들이 지역유지라고 할 수 있는 사학재단으로 축재한 가문의 후손들이다. 대학을 보수자본이 지배하는 한,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지식인들이 많이 뿌리 내릴 수가 없다.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것은 지역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한반도 평화정착은 중요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그것이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했지만, 남북한의 소통이 시너지를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 그것은 개혁에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또한, 지방의 발전도 중요하다. 지방의 발전이란 결국 한국의 발전이다. 좁아터진 수도권에 있는 아파트 가격을 종이 위에 올리는 것은 진정한 발전이 아니다. 지방의 발전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있게 해줄 것이고 그것은 한국사람들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이다. 당장 살아갈 방법에 대한 대안이 없으니 모두 대책없는 높은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도 못 하고 아이를 낳을 수도 없고 탈출만을 꿈꾼다. 그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결국, 행복만이 괴물을 막는다
우리는 높아진 기대와 욕망의 출구를 만들어 내자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조금 다른 면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기본적인 물질이 충족된다면, 그 후 한국은 삶에 대한 관점을 다양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굶어 죽기 직전일 때의 인간은 그저 먹어야 사는 생명이지만 굶주림을 면하고 나면 인간의 욕망은 결코 먹는 것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대한 예술작품을 남긴 사람들이나, 학문의 길에 매진하는 사람들, 그리고 높은 산에 오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나 공동체 운동에 헌신하는 사람들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욕망의 길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더 배부르게 먹는다던가, 더 많은 돈을 통장에 가지는 것이 주는 즐거움 이상의 것을 다른 것에서 찾은 것이다. 심지어 종교적 깨달음을 얻겠다고 출가하는 사람들의 길도 따지고 보면 욕망의 추구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사람들이 가지는 욕망이 분출될 출구가 다양해지는 것이 바로 사회가 성숙해지는 길이다. 문화적 학문적 부흥이 곧 사회적 성숙의 척도이다. 가치관이 다양해지면 누군가가 프라다 옷을 입거나 BMW를 탄다는 것이 인생의 승리로 여겨지는 일이 없어진다. 사람들이 투기에 몰입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각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자기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삶에 대해서 불만을 덜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가지 잣대 하에 모여든 기대가 지나치게 높은 압력을 만들어서 사기꾼을 지도자로 뽑는 일이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눈앞의 과제가 잘 해결되길 빈다.
또 다른 이명박은 이제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