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습니다. 프로배구 남녀부 샐러리캡(연봉 상한선) 차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김연경(30·상하이·사진) 이야기입니다. 확실히 이런 이의 제기는 ‘배구 여제’가 아니면 하기 힘든 게 사실. 하지만 배구 여제이기에 신중했어야 할 부분도 있었습니다.
먼저 김연경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 남긴 글부터 보겠습니다. 김연경이 직접 한국배구연맹(KOVO)을 겨냥한 건 아니지만 읽는 사람이 그런 ‘뉘앙스’를 느꼈다고 해서 크게 잘못됐다고 하기는 힘든 내용입니다.
이어서 기초 사실 확인. KOVO는 6차 이사회와 임시총회를 5일 열고 샐러리캡 인상을 의결했습니다. 아래는 KOVO에서 웹사이트에 올려둔 내용을 갈무리한 것입니다.
남녀부 샐러리캡 인상
이사회는 남녀부 평균 샐러리캡 소진율이 약 90%를 초과하여 샐러리캡 인상이 필요하다고 공감하고 남녀부 모두 인상키로 하였다. 남자부는 향후 3년간 매년 1억원씩 인상키로 하고 18-19시즌 25억 원, 19-20시즌 26억 원, 20-21시즌 27억 원으로 인상된다. 여자부는 현행 13억에서 1억 원이 증가한 14억으로 인상하고 2년간(18-19시즌, 19-20시즌) 샐러리캡을 동결키로 하였다. 여자부의 경우 선수연봉의 최고액은 샐러리캡 총액의 25%를 초과할 수 없다는 단서조항을 추가하였다.
혹시 모르는 분께 설명드리면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가 그런 것처럼 KOVO 이사회 역시 ‘각 구단 어르신 모임’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KOVO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린 게 아니라 남자부 7개 구단 높으신 분이 모여서 이렇게 결론을 내고, 여자부 6개 팀 대표가 만나 저렇게 결론을 낸 겁니다.
따라서 김연경이 이야기한 것처럼 2019~2020 시즌까지 여자 배구 선수는 아무리 많이 받아도 3억 5,000만 원 이상을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현재 ‘연봉 퀸’은 양효진(29·현대건설)과 김희진(27·IBK기업은행)으로 나란히 3억 원을 받습니다.
배구 선수 남녀 임금 격차는 벌어지고 있는가?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실은 현재 여자부 샐러리캡이 13억 원으로 남자부(24억 원)보다 적었다는 점입니다. 이건 프로배구에서 남녀부 모두 샐러리캡 제도를 도입한 2005~2006 시즌부터 그랬습니다(남자부는 프로배구 원년인 2005 시즌부터 팀 연봉 총액을 10억 3,500만 원으로 제한했습니다).
당시 남자부 샐러리캡은 여자부 1.95배였는데 2019~2020 시즌에는 1.86배로 오히려 차이가 줄어듭니다. 2005~2006 시즌과 비교하면 남자부 샐러리캡은 2.2배가 됐는데 여자부는 2.3배로 더 많이 늘었습니다. 요컨대 김연경이 “왜 점점 좋아지는 게 아니고 뒤처지고 있을까”라고 쓴 게 100% 사실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겁니다.
또 남자부는 이번 시즌 기준으로 한 시즌이 36경기인데 여자부는 30경기라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남자 선수는 대부분 대졸인데 여자 선수는 고졸이라는 점도 연봉 차이가 나는 이유로 꼽을 수 있습니다. (V리그뿐 아니라 한국 프로 스포츠 리그는 ‘구단’이 아니라 사실상 ‘모 기업’에서 연봉을 부담합니다.) 또 남자부 샐러리캡에는 ‘군 보류 수당’도 들어있다는 점 역시 차이를 만드는 요소입니다.
말하자면 그저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남자 프로배구 선수가 평균 1억2,620만 원을 받을 때 여자 선수는 7,440만 원(이상 올 시즌 기준)을 받지는 않는 겁니다. 여자부 경기 숫자가 적은 건 팀이 적기 때문이고, 시장 규모가 다르다는 걸 방증하고, 여자 선수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프로팀에 입단하는 건 성별에 따른 신체적 차이 때문이고, 군대는 남자만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닙니다.
여자 농구와 배구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
그러면 “여자 선수만 1인 연봉 최고액이 샐러리캡 총액의 25%를 초과할 수 없다”는 내용은 어떨까요? 이 조항 원조는 여자 프로농구입니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2009년부터 같은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시장이 작기 때문’입니다. 개인 연봉 상한선이 있으면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빛을 잃게 됩니다. 원소속 구단에서 현재 WKBL 최고액인 3억 원을 제시하면 FA 자격을 갖춘 선수라도 해도 그 어떤 팀으로 이적하는 것도 불가능하거든요. 3억 원에 다른 팀으로 가면 안 되냐고요? 네, 안 됩니다.
WKBL FA 규정 제4조⑤는 “타 구단과 선수는 선수가 1차 협상 기간 중 소속구단에 제시한 연봉을 초과한 금액으로 계약을 체결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FA를 영입하려면 무조건 원소속 구단에서 제시한 금액보다 높은 금액을 불러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못하면 FA 계약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여자 프로농구는 KDB생명(위 사진)이 해체 수순에 들어가는 등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제도를 마련해 인위적으로 FA 최고 몸값을 제한하게 된 겁니다. 이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지만 WKBL에서 규정을 손질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KOVO에는 이런 규정이 없습니다. 프로배구 여자부 FA는 현재 소속 구단에서 3억5000만 원을 제시해도 이를 거부하고 다른 팀으로 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WKBL 규약 제92조에는 “구단은 선수와 체결한 선수 계약서에 기재된 보수 외에 어떠한 명목의 금전 또는 물품 등을 지급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나와 있지만 KOVO 규정집에서는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있는 게 차별입니다. V리는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공개 선수 평가) 공고에 승리 수당 기준을 적어 놓는 리그니까요. 말하자면 프로배구 여자부는 얼마든 ‘옵션’ 등을 내세워 몸값을 더 올려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어른들 사정’까지 따져 보면 저 25% 규정을 만든 건 ‘긁어 부스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고 몸값 배구 선수는 여자 선수?
또 WBL에서는 이미 연봉 상한선(3억 원)을 받은 선수가 여럿 나왔지만 프로배구 여자부에서는 현재 제도를 유지하는 2019~2020 시즌까지 3억5000만 원을 받을 만한 선수가 나올 수 있을지도 불확실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2019~2020 시즌 전에 이 정도 ‘잭팟’을 터뜨릴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양효진 한 명뿐입니다. 양효진은 한국 나이로 서른한 살이 되는 2018~2019 시즌까지 계약한 상태입니다. 이때 계약을 어떻게 맺는 게 깔끔한지 현대건설보다 잘 아는 구단이 있을까요?
KOVO에는 있는데 WKBL에는 없는 규정도 있습니다. KOVO 자유계약선수관리규정 제2조③에는 “4시즌(고졸 입단선수는 5시즌) 이후 해외 진출 자격을 부여한다. (단, 구단과 사전합의 시 시즌제한은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3억5000만 원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면 종목을 막론하고 전 세계 프로 선수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해외 리그로 눈길을 돌리면 됩니다. 당장 김연경부터 그런 길을 걷습니다.
터키 리그에서 뛸 때 김연경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120만 유로)을 받던 배구 선수였습니다. 여자 선수뿐 아니라 남자 선수를 포함해서도 그랬습니다. 이번 시즌에도 중국 여자 대표팀 에이스 주팅(朱婷·24·바키프방크)이 135만 유로로 전체 1위입니다.
김연경이 아시아로 눈길을 돌리면서 한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중국 리그를 선택한 것 역시 가장 자기 가치를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 아니었나요? 그러니까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김연경이 박찬호(45)처럼 ‘통 큰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V리그 자체가 김연경을 품기에는 너무 작은 겁니다.
다른 선수도 자기 가치를 3억 5,000만 원 이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리그가 있다면 얼마든 그 리그로 가서 뛸 수 있습니다. 올해 출범하는 일본 프로배구는 ‘아시아 쿼터’를 따로 배정하면서 문을 열어두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선수가 나올까요? 15만 달러(약 1억 1,250만 원)를 받고 뛰는 외국인 선수보다 확실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선수가 그리 많은가요?
치솟는 몸값 때문에 정말 리그 망할까?
아니, 그렇다고 제가 여자 선수가 돈을 적게 받는 게 당연하다거나 한국 배구 선수 몸값이 거품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저는 ‘유리 천장’을 깬 테니스를 칭송하며 선수 몸값이 올라서 리그가 망한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단, 이렇게 몸값이 올라가는 과정이 ‘리그 내부 요인’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내부 요인’에는 해외 리그의 존재도 물론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프로야구 FA 시장에서 100억 원을 넘게 받는 선수가 나온 건 구단에서 선수를 일본 프로야구나 메이저리그라는 ‘오떼(大手·큰손)’에 빼앗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리그 외부에서 ‘선수들 몸값이 왜 이렇게 적냐’는 목소리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는 겁니다.
반면 여자 프로농구는 최고 몸값을 제한하는 제도를 마련하고도 구단 해체를 막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현상 유지의 저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일 터. V리그는 일단 반대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KOVO는 올 시즌 남녀부 일정을 분리한 데 이어 다음 시즌부터는 여자부 평일 경기를 오후 7시에 배정하는 등 더욱 여자부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는 방침. 남자부 의존적이던 여자부가 ‘홀로서기’에 성공하면 샐러리캡 격차 문제도 절로 해결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궁극적으로 이 임금 격차 문제는 좋은 여자 배구 선수가 더 많이 나올 때만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축구 대표팀에서는 남녀 선수가 똑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미국 남자 축구 선수는 누가 누가 있는지 잘 몰라도 미아 햄(46)이나 알렉스 모건(29)은 들어보셨잖아요?
그러려면 유소년 배구에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서 운동에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배구를 선택하도록 하고, ‘이 선수들 다 계약하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여자 구단이 늘어야 남녀부 샐러리캡 격차가 줄어들 겁니다. 모 기업 본사가 있는 지방 소도시로 연고지를 옮기고 나서 ‘우리 경기당 평균 관중이 남자부 1위 현대캐피탈하고 100명 정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고 자랑한다고 돈이 들어오는 건 아니니까요.
KOVO (실제로는 별개로 존재하지 않지만) 여자부 이사회에서 이런 투자를 하기로 결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예 그 어떤 일이든 벌리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구단도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오죽하면 일부 한 남자 구단 관계자는 “몇몇 고집 센 여자팀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차라리 MKOVO(남자배구연맹)를 만들어 나가고 말지…’하고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뻔하지만 KOVO(이번에는 진짜 그 조직)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각 구단을 설득하는 작업을 벌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 첫 단계가 남녀부 모두 경기 숫자를 늘리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것보다 선수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확인하는 방법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야 선수들이 전부 자기 가치를 받아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