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를 고백하기에 가장 적절한 언론은 어디일까. 결과로 보면 그 언론은 한 곳으로 모아졌다. JTBC다. 서지현, 김지은, 최영미, 엄지영 씨는 모두 JTBC 뉴스룸을 택했다. 김지은 씨는 뉴스룸에 출연해서 이런 말을 했다, 방송을 통해 안전을 보장받고 국민이 자신을 지켜주면 좋겠다고. 절박한 개인이 기본적인 생명권을 보호받고자 찾아가는 곳이 공영방송도 아닌 JTBC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우리 사회 미디어 지형에서 JTBC가 자리 잡은 지점을 생각해보게 한다. JTBC는 어떻게 자신을 약자들의 쉼터로 포지셔닝 했는가.
JTBC에 대한 시청자들의 인상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세월호를 보도하며 앵커가 눈물을 흘린 곳, 최순실 태블릿PC를 처음으로 보도하여 촛불 혁명을 촉발하고 세상을 바꾼 곳. 그리고 이 중심에 손석희가 있다. 그는 시사IN이나 시사저널 등이 실시하는 조사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에서 10년 넘게 줄곧 1위를 차지해왔다. JTBC는 최근 2년간 KBS를 누르고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가 되기도 했다. 미디어 신뢰도를 높일 만큼 손석희라는 개인의 브랜드 가치는 공고하다.
스타 언론인 손석희는 균형, 공정 따위의 저널리즘 정신 자체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소비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특히나 언론계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좌클릭하는 걸 뜻한다. 그렇지만 JTBC는 좌파적이지 않다. 끝내 좌파적일 수 없다. 중앙미디어그룹은 미디어 재벌이다. 조중동으로 묶이는 침묵의 카르텔은 엄연히 존재한다.
“JTBC가 진보적 논조를 펼쳐 젊은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얻지만 손석희 역시 삼성 미디어 제국이 확장하는 과정에서 도구로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언론학자 김춘효의 지적이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은 뉴스를 읽어드립니다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손석희 사장이 이질적인 컬러가 있음에도 중앙미디어그룹 안에서 터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홍석현 회장 1인 지배력의 소산이다.”
보수적인 중앙일보의 계열사인 JTBC에서 손석희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오너의 지지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뜻이다. 결국 JTBC는 개인회사다. JTBC가 견지할 현실적인 논리, 기득권 세력으로서 보수적인 스탠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시청자들은 잠시 그것을 잊을 뿐이다, JTBC 뉴스룸을 시청할 동안만, 손석희에게 빠져드는 그 시간만큼만.
또 다른 종편인 TV조선은 어떨까. TV조선은 대표적인 기득권 매체다. 수구 매체의 타깃은 기성세대이며 그들을 TV 앞으로 불러내기 위해 TV조선은 그들 안의 뿌리 깊은 레드 콤플렉스를 건드린다. 정파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수구 매체가 정파적으로 사안을 다루는 방법 중 하나는 좌파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좌파운동은 약자의 편에 선다는 명분이 있어왔다. 권위주의 시기 저항적 사회운동이 대중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저항세력의 도덕적 청렴을 대중이 믿었던 부분도 있다. 수구 세력에게는 사상검증이, 저항 세력에게는 도덕성 검증이 비밀병기다. 수구 세력은 자신의 취약점인 도덕적 청렴을 좌파에게도 전가하고자 한다. 좌파 인사의 도덕성이 문제가 되면 그것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이런 까닭에 TV조선은 미투 운동에 대해 JTBC와는 다른 태도로 접근한다. 안희정 지사의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뒤 TV조선은 이 문제를 좌파의 도덕성 결함으로 프레이밍 했다. “지사직 사퇴 정치활동 중단” “정치인 안희정 존경해서 갔는데” “안희정 출당, 제명” 따위의 헤드라인으로 점철된다.
충남도지사 관사 유리창을 깨는 남성을 보여주는 뉴스 영상은 수구세력이 좌파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은유다. 미투를 고발하는 약자와 그의 고통을 조명하기보다는 미투를 둘러싼 정치적 역학관계에 집중한다. JTBC와 TV조선 모두 미투 보도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점은 공통된다. 미투 보도에서 굵직한 사건이었던 서지현 검사와 김지은 정무 비서에 관한 보도를 보면 그 경향이 두드러진다.
서지현 검사 보도의 경우 1월 29일 JTBC 뉴스룸은 1시간 중 미투에 20분(1꼭지와 인터뷰), MB와 관련된 사안에 8분(4꼭지), 대북 사안에 2분(1꼭지)을 할애했다. 1월 30일 TV조선 뉴스9는 1시간 중 대북 관련 사안에 11분(4꼭지), 미투에 13분(6꼭지), MB에 2분(1꼭지)을 할애했다. 김지은 정무비서 관련 보도의 경우 3월 5일 JTBC는 대북 관련 사안에 9분(5꼭지), 미투에 28분(5꼭지와 인터뷰), MB 관련 사안에 6분(3꼭지)을 할애했다. 3월 6일 TV조선은 대북 관련 사안에 18분(7꼭지), 미투 운동에 17분(8꼭지), MB 관련 사안에 2분(1꼭지)을 할애했다.
서로 다른 두 언론이 공통으로 미투 보도에 많은 시간을 쓴 이유가 무엇일까? 미투는 가져다 쓰기 좋은 흥미로운 내러티브이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은 하나의 플롯처럼 전개된다. 줄거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순서대로 이해하는 것이라면 플롯은 뒤얽힌 사건의 순서 속에서 인과관계를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미투 운동은 숨죽여온 한 개인의 폭로로 느닷없이 시작된다. 영문도 모른 채 시작되는 일 같지만 당사자들 사이엔 촘촘한 인과관계로 엮여 있다. 시청자들은 그 인과관계를 발견해내며 흥미로움을 느낀다. 플롯의 또 다른 재미는 프로타고니스트(주인공)와 안타고니스트(적대자) 사이에 구축되는 관계에 있다. 두 인물이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눈다는 점까지는 JTBC와 TV조선이 모두 같다. 차이는 누구를 프로타고니스트로 보고 누구를 안타고니스트로 보는가에 있다.
JTBC에서 프로타고니스트는 권력관계에서 약자(서지현, 김지은 등)이고 안타고니스트는 강자(안태근, 안희정 등)다. JTBC는 자신이 이 플롯에 직접 등장해 개입하기보다는 한 걸음 뒤에서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 사이의 대결을 지켜보고 패배한 프로타고니스트에게 다가와 위로를 건넨다. 손석희를 필두로 한 뉴스룸은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려는 기조를 보인다. 그래서 JTBC는 진보에게 도덕성을 기대하게 만드는 마지막 언론으로 남아있다. 사실 그렇게 느껴지게 하는 것에 가깝다.
TV조선은 JTBC의 이런 지점을 공격한다. 진보의 도덕적 우월성이라는 신화를 깨고자 하는 것이다. TV조선이 선거에서 여태까지 해온 역할은 보수층을 결집하는 것이었으며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그들을 다시 결집하고자 미투를 활용하려 한다. TV조선이라는 보수세력은 뉴스 보도에서 언제나 자신이 주인공임을 자처해왔다. 적대적인 방해꾼은 진보세력(안희정, 블랙리스트 이윤택, 현 정부 부처)이다. 보수 세력에게 위협을 가하는 존재는 진보 세력이라고 상정하는 것이다. TV조선이 JTBC와 달리 균형성과 공정성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방송사 자신이 플롯에 직접 개입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프로타고니스트로 보고 누구를 안타고니스트로 보는가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대중이 주권자로 등장한 근대사회 이래로 좌파와 우파는 그 견해차만큼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기 때문이다. 내가 프로타고니스트로 간주한 이가 다른 사람에게는 안타고니스트가 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완전하게 선한 주인공도 절대적으로 악한 적대자도 없다. 누구의 편도 들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가해자가 피해자화하고, 피해자는 가해자화하여 그 피해자에 2차 가해를 해도 된다는 논리를 탄생시킨다.
프로타고니스트가 누구건 안타고니스트가 누구건, 결국 남는 건 JTBC와 TV조선 둘 다 자기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미투 운동을 써먹는다는 것이다. JTBC는 보편적 인권을 다루는 젊은 방송사로 자리매김하려고, TV조선은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정파적 언론으로 자리매김하려고. 그 과정에서 언론의 프레임이 결정된다. 그러다 보니 미투 관련 보도는 넘쳐난다.
이 와중에 한편으로 묻히는 사안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미투가 남긴 숙제는 그 밖의 다른 문제적 사안에서도 미투의 본질을 발견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MB 비리, 남북·북미대화 등 권력 관계에서 비롯되는 모든 근본적 부패는 본질적 측면에서 뒤틀린 위계질서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미투와 같다. 미투의 본질을 다른 사안에까지 확장해야 하는 이유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반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