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를 생각함에 있어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관념은 ”가격’과 ‘가치’의 관계’이다. 이들의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투자의 초보이자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간단한 개념도 투자에선 무작위로 섞여 쓰이고 있어 정리가 필요하다. 정리만 잘해도 먼 길을 갈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투자 상품의 가격은 그 가치를 좇는다고 믿고 있다. 오를 부동산, 오를 펀드를 선택하는 것도 그 근저에 깔린 ‘가치’를 헤아림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무척 자연스러운 관점이다. 지식인으로서 사회 경제의 현상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투자에서도 그렇게 접근한다.
반면 시장을 조금 봐온 사람들은 가격은 수익을 주는 ‘독특한 패턴’이 있다고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이들은 가치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도 한다. 소위 기술적 분석과 패턴을 알기만 해도 돈 벌기 쉽다는 주장도 있다. 주식으로 X 억 벌기, 같은 책을 보면 대부분 이런 내용이다.
이 두 진영이 서로의 의견을 부정하기 위해 온갖 반론들을 쏟아낸다.
가치를 계산하고 공부하는 사람은 두 부류다. 한 부류는 모든 가격 움직임이 무차별하므로 패턴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고, 결국 가치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한 부류는 현재의 가격들이 특정한 뉴스의 변화로 인해, 경제적 효과의 변화로 인해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투자의 ‘이유’를 공부하고 분석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두 부류는 가치를 공부한다는 점만 비슷할 뿐 서로 완전히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반면 가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믿는 사람도 두 부류다. 가치를 봐도 전혀 가격을 예측할 수 없으므로 아무 생각 없이 분산 투자해야 한다고 믿는 부류가 하나이고, 가격 자체의 움직임에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고 믿는 부류가 또 하나이다.
이렇게 네 개의 관점이 싸우고 있다. 초보자가 이 네 부류를 만나 이야기를 듣게 되면 혼란에 빠질 것이다. 첨예하게 다른 관점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과서에도 이들 내용이 혼용되어 쓰이고 있거나, 최소한 한쪽 관점을 강력하게 지지하지조차 않는다. 이들 관점의 대가들을 보자. 익숙한 사람들일 것이다.
첫 번째 부류는 워런 버핏이나 국내의 이채원 부사장 등으로 대표되는 가치투자자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가치 있는 투자가 돈을 벌 것이라는 관점이다. 장기 수익률이 이를 증명한다.
두 번째 부류는 애널리스트들과 금융업계 종사자들로 대표된다. 좋은 뉴스가 나오면 기업의 가치가 변할 테니 가격에 바로바로 반영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물론 나머지 모든 부류는 이 의견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하지만 일견 일리가 있고 상식적으로 보인다.
세 번째 부류는 인덱스 펀드의 아버지, 뱅가드의 창업주 존 보글이다. 어차피 1, 2, 4번 부류가 사기꾼투성이니까 저렴하게 분산 투자해서 중간이라도 가자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최근엔 워런 버핏도 ‘딴짓하지 말고 인덱스 펀드만 사시라’라는 이야기를 한다.
네 번째 부류는 가격 패턴을 통해 단기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조지 소로스로 대표되는 트레이더들이다. 트레이더들 중에는 나머지 부류의 장점들을 두루 활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트레이더가 아닌 사람 중에 가격 움직임 안에 패턴이 있음을 주장한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까진 학계 사람들이 이 네 번째 부류의 이야기를 인정한 적이 없어 일종의 도시 전설처럼 실체가 불분명했다. 최근에서야 충분한 양의 데이터가 확보되고 연구가 쌓이면서 학계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예전엔 ‘차트 분석가’라고 불리기도 했고 ‘기술적 분석가’라 불리기도 했다. 사기꾼들도 많은 편이다.
이에 대해 나와 수많은 트레이더들의 결론은 아래와 같다.
장기적으로 가격과 가치는 강력한 관계가 있지만, 단기적으론 거의 없다.
가격과 가치, 길게는 2~3년의 기간 안에 서로 동행한다는 보장이 ‘거의’ 없다. 가치는 가치대로 움직이고, 가격은 가격만의 춤을 춘다. 그러니 당장 가격과 가치가 함께 동행하리라는 일련의 논리를 들을 필요도 없고 시간을 쏟을 필요도 없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거나 FTA가 맺어진다고 그에 반응해 시장이 엄청나게 움직이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다.
특히 첫 번째나 두 번째 부류가 순간적으로 그 말을 믿고 주식을 많이 사면 가격이 춤추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 투자자는 가치를 보지 않거나, 각자의 가치체계를 따로 가지고 있다. 분초를 다투며 시장이 움직이는 이유는 가치나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러니까 한두 달간의 움직임도 역시 경제적 이유가 아니다. 예컨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주식 투자 세력 중 하나인 국민연금이 실시간 뉴스 보고 주식 비중을 늘리는 경우는 없다. 가격이 오르면 좀 팔고, 가격이 내리면 좀 사는 것을 근본적으로 반복한다.
언론이나 증권사에서 경제적 이유를 들먹이며 가격 움직임을 설명하는 것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에 쏟아내는 궁색한 변명이 대부분이다. 시장을 설명하는데 억지로 갖다 붙일 수 있는 경제적 이유는 하루에도 수천 개가 쏟아진다.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그만이고, 실제로 그렇게 아무거나 갖다 붙인다.
예컨대 삼성전자가 높은 실적을 발표했는데 장이 오르면 ‘높은 실적에 의해 장이 올랐다’고 하면 그만이고, 장이 빠지면 ‘높은 실적을 발표하자 수익 실현으로 장이 빠졌다’고 해석하면 되고, 장이 안 움직이면 ‘높은 실적 발표에도 불구하고 장은 반응이 없었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매일 오후에 언론이 하는 일이다. 아무 지적 능력이 필요 없는 행위이므로 인공지능으로 대체가 시급하다.
그러나 3년 정도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 가격은 가치 변화의 압도적인 영항을 받는다. 우주가 만유인력으로 돌아가듯이, 성장하거나 하락하는 가치는 중력처럼 가격을 끌어낸다. 예컨대 올해 배당이 1만 원인 주식이 5년 후에 배당을 100만 원씩 한다면 가격이 이를 결국은 반영할 것이다.
얼마를 반영할지는 유추할 수 있지만, 그 3~5년이라는 시차 때문에 정확한 유추는 어렵다. 심지어 회사의 오너나, 회사 전체를 인수하려는 사람도 회사의 합당한 가격을 정확하게 추정하기 어렵다. 다만 가격과 가치는 장기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동행하려는 성질이 대단히 높아진다는 것만 알면 된다.
가치와 아무 상관 없는 가격의 패턴도 존재한다. 가격은 가격만의 춤을 춘다고 했으니, 그 춤 안에는 복잡하고 기괴한 형식들이 존재한다. 다만 찾기가 쉽지 않다. 가장 두드러진 패턴은 방향성을 지속하려는 ‘관성’이지만, 이러한 관성도 단순히 이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관성에 역행하는 ‘평균 회귀’의 성질은 이상한 가격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강력한 힘이다. 결국, 단기적으로 보면 가격은 ‘거의 무차별’하게 움직이는 변덕쟁이이고, 장기적으로는 ‘가치’라는 부인에게 끌려가는 말 잘 듣는 남편이다.
이를 워런 버핏과 그의 스승은 ‘변덕쟁이 미스터 마켓’이라는 인격체로 표현하였고, 케인즈는 ‘단기적으로 시장은 미인 선발 대회의 다수결 표 싸움 같고 장기적으로는 계량기 같다’고 이야기했다. 정치인의 평가가 단기적으로는 인기투표와 감성에 의해 좌우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역사적 맥락에서 평가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결론은, 부류를 믿고 싶으냐에 따라 따라야 할 규칙이 다르다는 것이다.
가치투자를 할 것이면 절대로 단기 투자성과를 기대하면 안 된다. 그런 작동 원리가 아니다. 반면 공부만 열심히 하면 일반인도 80% 이상은 성공할 수 있는 것이 가치투자이다.
인덱스 펀드를 통해 장기적인 분산투자를 하려면 장기적인 비용 절감만 생각하고 나머지 모든 것은 운명으로 받아들여라.
기술적 분석을 하려면 뉴스나 정보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철저하게 패턴에만 집중해라. 일반인이 기술적 분석을 취미로 연구해서 성공할 가능성은 1%가 채 안 되니,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 반면 단기투자는 가치분석을 통한 장기투자로 연결시킬 생각은 추호도 하면 안된다. 졌을 땐 진 것을 빨리 인정하라. 물려 있다고 갑자기 경제 논리를 운운하며 헛소리를 시작하면 이도 저도 안 된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 부류로 소개한 뉴스 분석 투자를 하려면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공부를 하면 된다. 그러나 이를 통해 투자에 성공하는 전문 투자자는 흔치 않다. 가격과 가치가 단기적으로 큰 연결고리가 없다는 전제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거나, 단순히 단기 수급 단타의 또 다른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간단한 이치 같아서 맥이 빠질 수도 있지만, 이 관계성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오죽 힘들면 앞서 설명한 네 개의 부류가 각자 자기주장을 하며 수십 년간 싸우고 있겠는가. 이 관계를 명심하면서 다른 이론들을 접하면 참고가 많이 될 것이다.
원문: juliusch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