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성장’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전쟁의 굴레로부터 빠져나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해주는 나라로 초고속 성장을 경험했다. 물론 고속 성장의 배경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우리 민족 특유의 근면성’이 현대 자본주의와 첨단 기술을 만나면서 비즈니스 현장에 ‘빨리빨리’의 성장 속도 중심의 철학을 통해 가난함을 탈출하자는 공감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저성장 시대. 직장인에게 우리 윗세대가 살았던 나름의 성공 방식으로는 더 이상의 생존과 성장은 어렵다. 무조건 ‘열심히’ 또는 ‘빨리’ 보다는 잃어버린 ‘방향’을 되찾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 주제를 고민한 지는 꽤 됐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시책이나 정책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어, 개인의 생존과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을 위한 리더, 혹은 리더를 꿈꾸는 이들이 갖추어야 할 관점에 대해 논하는 것에 집중하여 개인의 성장과 생존을 위한 내용을 주로 서술했습니다.
초고속 성장주의, 이러다 모두 망한다
20여 년 전 일본이 겪었던 저성장의 굴레가 그대로 우리나라로 넘어온 것 같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생산 및 소비 가능 인구의 감소로 전체 총생산은 점차 하락세로 접어들게 된다. 과거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같은 생산성을 가지지 못하며, 자연스레 효율성 또한 점차 하락세로 접어든다.
만들어도 소비할 만한 시장이 없으니 기업들은 모험을 통해 기회를 잡을만한 엄두도 내지 못한다. 세상은 ‘잘 만들었던 시대’에서 ‘많이 만드는 시대’로, 다시 ‘많이 만들어 잘 팔던 시대’에서, 이제 ‘팔리는 것만 만들어야 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초연결사회 : 기술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시대
세상은 모두가 연결되는 ‘초연결사회’로 진입 중이다. 그동안 연결이 과연 될까라고 생각했던 부분까지 다양한 네트워크 기술 및 기기로 점, 선, 면 너머의 입체적 또는 실시간으로 연결이 가능해지고 있다. 그 연결고리를 단순히 나 그리고 다른 사람, 사물과의 물리적 연결만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과 이미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많은 연결 속에서 작지만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나타나고 있다. 그 속에서 얼마나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하는 것에 집중하는가에 따라 달린 것이다. 여전히 다양한 플랫폼을 포함한 SNS, 커뮤니케이션을 목적으로 하는 서비스 등의 온라인상의 네트워킹은 오프라인까지 확장 및 규합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는 중이다.
지금은 New Normal Generation
2000년대 이후로 태어날 세대가 보는 세상은 분명 이전 세대가 보던 것들 이외의 다른 것들의 탄생이 이어질 것이다. 이른바 ‘보통’이라고 했던 것에 새로운 보통이 생겨나는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즐겨보고,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 이전 세대가 전혀 겪지 못했던 당연하지 않은 개념들이 그들에게는 매우 ‘보통의 경험’이 되었다.
그만큼 세대가 겪는 경험의 종류와 폭이 변화한다는 뜻으로, 기존의 기업들이 고객을 대하는 방식, 직장인들이 일하는 방식, 사람들의 삶의 방식 모든 것이 새롭게 재정의 되는 시대이다. 세월이 흘러 그들은 주류가 될 것이고, 역사상 가장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속도를 자랑하는 세대가 될지 모른다.
정치 주도의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 주도의 사회로
초고속 성장에는 국가 및 정부 주도의 사회였다. 국가 정책과 경제 전략에 따라서, 육성 및 발전해야 할 산업이 결정되고, 국가 성장발전의 주요 에너지로 자리매김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가 변화하는 속도보다 ‘기술 및 과학 주도의 사회’로 변화하고 있고, 이미 여러 사례가 기술에 의한 시장의 변화를 정치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어쩌면 ① 정치가 적절한 기술을 받아 경제와 함께 시장 및 세상에 상용화를 하던 시대에서, ② 기술이 시장에 뿌려지고 정착되면, 정치가 이를 보완하기 위한 활동을 하기 시작하는 사회로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몇 년에 상용화되었던 상품 및 서비스의 기술적 배경이 위와 같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어, 언젠가는 모두 또 다른 ‘New Normal’에 의해 교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사회 각 분야마다 주류의 기류가 확 하고 바뀔지도 모르겠다.
위와 같은 세상의 변화를 우리는 너무 초단기 간에 경험했다. ‘압축성장’으로 우리는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되었지만, 한계를 금방 경험하게 되었고,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성장을 기대할 수도,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다시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 노력 중이다. 소위 믿을 만한 구석을 너무 믿어버린 나머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만한 빈 구석을 만들어놓을 생각을 못 하는 것이다.
분명 우리는 저성장의 굴레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이에 대한 「다른 측면으로 접근한 방향 설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말로는 4차 산업 혁명 또는 나라가 살려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만 하고 있지 그게 왜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이가 많지 않아 참으로 안타깝다. 방향에 대한 근거와 여러 사례를 빌려 설득해야 하는데, 그냥 지금 상황에서 당장 벗어나려는 ‘가즈아~!!’식 움직임만 보이고 있다. 우리는 느린 성장을 겪어본 적이 없고, 이에 대해 효과적인 대책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조차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 모두 진짜 망할 것만 같다.
초고속 자본주의 속 성장의 세 가지 괴물
① 방향 없는 속도전의 결과물
미국과 유럽이 약 4~500년 동안 이루었던 결과를 우리는 약 40년 만에!
① 방향 없는 속도전의 결과물
미국과 유럽이 약 4~500년 동안 이루었던 결과를 우리는 약 40~50여 년 만에 이룩했다. 소위 기적을 만들어냈다.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그 비결을 배우려고 했고, 심지어 ‘새마을 운동’이 수출되는 이상한 현상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유례가 없는 기이한 성장을 경험했다. 전쟁 이후에는 전쟁 이전으로 재건이 필요했고, 재건 이후에는 당장 큰 투자 없이 가능한 인력 중심의 제조 산업 구조가 들어섰고, 그러다 사람이 점차 기계로 대체되는 경험을, 그렇게 남은 잉여 노동력이 서비스 산업으로 이동하면서 산업에 대한 전방위적 개선과 개혁이 단기간에 이루어졌다.
② 벗어나지 못한 리더의 제조업자 마인드(생산자 마인드)
그러다 보니 늘 수십 년 동안 ‘만드는 행위’에 집중하였다. 전쟁을 복구하는 과정 속에서 발전한 토건 중심의 제조 및 생산 중심의 사고방식은 최대한 많이 만들어서 수출하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시장이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조건 많이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현재는 장치산업에 이르기까지 제조 전 산업의 시스템 또는 규모에 대한 것이 ‘대량 생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래서 “잘 만들어야만 팔 수 있다”라는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늘 기능적(Functional)인 부분을 이야기하다 보니, Good과 Well 그리고 Fashionate, Remarkable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
③ ‘경쟁’에만 최적화된 시스템이 만든 양적 성장
잘 만든다는 의미가 생산의 ‘Good’에 국한되어, 경쟁자와의 비교는 필연적이었다. 시장 내 생존은 경쟁자에 비교한 우리의 ‘기능적 우위’에 집중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경쟁의 의미를 내 안으로부터 ‘다름’으로부터 찾기보다, 안정되고 누군가 걸어갔던 정해진 방향 또는 영역 안에서 남들과 비교하여 우위를 점하는 속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들보다 크고, 길고, 무겁고, 많고 하는 등 비교하기 쉬운 지표들에 집착하며, 과도한 경쟁의 굴레에 스스로 뛰어들게 만들었고, 이를 조직에서 끊임없이 실천받기를 강요받은 개인의 삶 또는 기업의 비즈니스는 ‘여유’와 ‘차별화’를 잃어갔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위의 세 가지 요인들에 의해 지금의 사회ㆍ경제적 리더들은 무언가를 실제 하는 것을 만들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과거 대통령들의 공약 속에 ‘무엇을 만드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나 싶었다.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걸 채우기 위해 실질적인 무언가를 만들려고 노력했으며, 극히 일부의 소수가 필요한 것임에도 국가 차원의 역량을 무리하게 동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압축성장의 폐해의 진통을 온몸으로 겪고 있고, 부작용에 몸살을 앓고 있다. 사적인 욕심이든 공공의 필요성 때문이든 이제는 더할 때가 아니라, 뺄 때이다.
‘속도를 강조한 압축성장’이 개인에게 만들어 준 부작용
미국과 유럽의 400년의 역사를 40년 만에 관통한 우리는 사회 깊숙이 박힌 여러 좋지 못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기술을 아우르는 ‘정신적 산물’을 만들고 공유하게 되었다. 반면에 우리는 압축성장을 통해 속도에 민감한 민족이 되었고, 그로 인하여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늘 남과 나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자기만족을 얻는 등, 조직보단 나를 우선시하지만, 그 안에 들어간 이후에는 나보다는 조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이한 모습이 나타났다. 이를 5가지 정도로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1. 리더십의 부재 : 보스를 리더로 믿는 착각
압축성장에는 늘 속도만 중요했기에, 우리는 우리의 방향에 대해서 의심해본 적이 거의 없다. 당연히 우리의 방향을 지정해 줄 누군가(메시아)를 기다려 왔고, 그때마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의 창조주라 불리는 Leader에게 맡겨두었다. 그렇게 우리가 리더라고 믿었던 이가 사실은 ‘Boss’였다. 늘 Boss의 말에 따라 전체가 좌지우지하게 되었고, 그래서 결과상의 편향성은 늘 Boss와 그 주위를 둘러싼 거대 그룹에 모두가 동원되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 조직에 가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리더라고 말하지만, 사실 행동은 Boss에 가깝다. 심지어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Boss를 만들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래서 독단에 빠져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고, 무조건 하라고만 한다. 그렇게 우리는 리더를 본 적이 없기에, 우리가 리더가 될 가능성도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결국, Leader라고 쓰고 Boss라고 읽게 되었다.
2. 효과보다 효율성에 집착 : 생각보다 행동이 강조된 문화
방향에 대한 고민 없이 속도와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효과보다는 주어진 일을 어떻게 하면 ‘빨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일을 하는 업무 현장은 ‘쳐내기’식으로 진행이 되고, 당장 높은 효율성을 자랑하는 일만 남고, 조직 전체가 그러한 일을 하는 것에 혈안이 된다. 그렇게 ‘일을 잘한다는 것’이 ‘일을 빨리한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해석되고, 심지어 성실과 속도는 한 몸뚱이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을 얼마나 빨리하기보다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지 않고, 만약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검증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시대」이다. 말 그대로 방향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무언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무언가 하지 않는다는 것의 죄책감 때문에 우리는 늘 방향 없이 ‘바쁘게만’ 살고 있지 않은지 되짚어봐야 한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했지만, 어쩌면 과거의 논리일지 모른다. 기본 소득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세상에 직장인 모두에게 “내가 하루를 사는 것인지, 하루가 나를 사는 것인지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그것도 조직 또는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거나, 역량이 쌓이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모른 채 말이다.
3. 산업화를 위한 일원화된 교육 : 산업 역군만을 만들기 위한 천편일률적 교육의 몰개성화
당장의 산업화된 시대에 맞는 인재를 구하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두에게 동일한 지적 수준을 요구하게 되었다. 왜 배워야 하는지 영문도 모르는 과목과 내용을 공부하고, 그걸로 줄 세우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로 인해 어렸을 적 경쟁에 노출되었던 경험이 어른이 되어 각자의 개성보다는 서로 간의 비교에 집중하는지도 모른다. 분명 다름의 미학을 이해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인다.
예를 들어, 누구나 대학에 가야 하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그래야 하는 줄 알았고, 졸업하면 당장 취업을 해야 하는 현실에 내팽개쳐졌다. 보이지 않는 Social Value 및 Rule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강요받았다. 그게 자신이 행복한 길이라고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학습하였다.
유년시절 갖고 있던 다양한 삶에 대한 이상적인 접근은 나이를 먹어가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갖은 압박을 당하기 시작하고, 스스로 가능성을 단절해버리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소위 현실의 한계를 체험하고, 이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자칫 자존감 저하에 핵심적인 요인이 되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다. 동년배들과 다른 것에서 오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오늘도 더욱 닮아지기 위해 노력한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배운다. 학습에 학문적 호기심보다는 가까운 이익이 늘 수반되어 있다.
4. 시장의 성숙도 부재 : 빠른 성장은 다양성의 부족을 낳았고, 시장 변화의 적응력을 감소시킴
다품종 소량 시대임에도 상품, 서비스, 사람도 획일화를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됨과 동시에 성장하기 바쁘게 확산 원리에 의해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당장 우리가 지정한 경쟁자보다 당장 눈에 띄는 무언가를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수를 두게 된다. ‘더 빨리, 더 많이’의 코드가 메인을 차지하고, 고객을 확보하기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매출에 목숨을 걸면서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되었다.
이는 최초 시장이 발생하고 성장할 때는 Functional 한 접근이 잘 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이 성숙하고 대중화된 시장으로 진입하게 되면 시장의 성장 속도는 둔화되게 되고, 더 많은 다양한 시장으로 분화하기 시작한다. 이때 체질 개선의 노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변화된 시장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이전과 비슷한 성과만을 좇으며, 더 이상 경쟁에 뛰어들 수 없게 된다. 시장에서 고객 욕구 변화에 의한 자연 발생적인 다양성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축소되는 것만 남았다.
5. 자본주의를 물질만능주의로 인식 : 돈이 최고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자본주의의 폐해
과거에 비하면 우리의 삶은 풍족하게 바뀌었다. 짧은 시간에 대역전극은 양적 발전이 질적 발전을 리드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이 줄어들어, 시장 내 다양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요동치는 시장일수록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활동을 기대할 수 있지만, 모두가 한 곳을 바라봤기에 경쟁 밖에는 존재하기 어려웠다.
이는 눈에 보이는 욕구만 채워주면 된다는 생각이 우리 성장의 발목을 잡았음을 의미한다. 단순 비교의 차원에서 먹더라도 남과 비교하여 좀 더 좋은 공간 또는 분위기가 중요했다. 가치의 중심으로부터 점차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것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기업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되면서 물가는 빠르게 성장했다. 당연히 풍요로운 삶을 기준으로 생각할 때, 자본 또는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물질적 가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결정하는 대부분의 선택 요인 중 하나가 ‘돈’에 집중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얼마 또는 어떻게 돈을 버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위의 5가지 결과는 앞으로 닥칠 ‘저성장 국면’에서 우리네 직장인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될 것이다. 과거의 좋은 시절을 살아본 이들과 저성장 시대부터 경험할 사람들 간의 세대갈등, 실적 및 성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업주들의 직원들에 대한 횡포로 기업 자체가 망가지거나 도산하는 경우를 보게 될 것이다. 적절하게 적응하고 대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몸집을 줄이거나 체질을 개선하는 기업들도 많이 나오지만, 이것도 임시방편이다.
저성장 시대에서 생존하려면 (개인의 생존을 위해)
위와 같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개인이 생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없다. 하지만, 일정한 방향은 있다. 우리 윗세대들이 살았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쫓아서 하다가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말 그대로 윗세대의 길을 잠시 빌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을 말한다.
1. 남과 다른 생각과 관점을 통해 ‘다양성’을 가져야 한다
지금 익숙한 것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기존에 하던 방식을 계속해서 고수하여 자신의 ‘효율성’을 드높이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계속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Skill 및 Technique이 아닌 ‘나’로부터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생각이 곧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만들고, 숙련이 아닌 ‘노련’해지는 쪽으로 발전이 가능해진다. 삶에 대한 이해력과 포용력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것, 다양성을 위한 필연적 선택이다.
2. 지식근로자다운 생각과 실천 그리고 습관화가 필요하다
과거의 농업 및 공업적 근면성은 앞으로의 시대의 최우선적인 덕목이 아니다. 지식근로자에게 어울리는 전문성 그리고 그에 맞는 태도와 철학 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전보다 나은 결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과정과 결과를 동시에 고려하는 ‘효과성’으로 더 많은 일이 아닌, 같은 결과를 내면서 더 일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마케팅의 방향도 고객의 구매 유도를 통한 매출이 아니라, 마케팅 4.0의 ‘재구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메커니즘을 내가 하는 일에도 투영시켜 이를 습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3. 남을 의식하지 않되, 혼자 하지 않고 함께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동안 늘 있어 왔던 ‘타인과의 비교’에 의한 성장은 오래가지 못한다. 특히 저성장 시대에는 단순 비교는 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경쟁보다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모습 또는 상태’에 집중해야 한다.
대신에 나 혼자가 아닌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 그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그중에 내가 일부를 차지하는 것이지, 절대 혼자서는 그 이상의 시너지를 내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목적과 목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하기보다는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찾고, 그중에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4. 방향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필요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지만, 그렇게 얻어낸 것에 대해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향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잠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뒤따라가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확고한 가치관을 다지는 것으로 시작하여, 타인에 의한 영향력으로부터 최대한 벗어나 자기중심을 잡는 노력으로 전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자유로운 모습을 얻을 수 있다.
5. 빠르든 느리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제대로 가고 있다면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지금보다 속도를 높여 더 빨리 가는 것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문제는 남들보다 빨리 올라가는 경쟁에 취해 빨리 올라갔다면 이제 내려오는 일만 남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저성장 시대는 나만 빨리 커서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 난관을 함께 타계할 수 있고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생각과 체질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신만의 삶의 원칙과 거기에 어울리는 유연성으로, 나중에 있을 예상치 못한 큰 후회를 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저성장 시대, 함께 살기 위한 New-Culture가 필요하다
2007년에 개봉한 <나는 전설이다>는 “직장에서 행복하게 살아남기”의 개념을 만드는데 모티브를 제공한 영화이다. 영화 속 배경은 폐허가 된 도시에서 생존하는 한 인간의 처절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가 살아가는 모습은 외관은 현대이지만, 모두 파괴되어 매우 원시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
그게 지금 실제 우리의 세상 속 저성장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다. 이전의 성공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기에, 새로운 방식을 끊임없이 찾아 나가야 하는 것, 이는 각자 삶의 방식이 다양화되고, 결국 혼자만이 생존하는 형태로 이어져 가고 있기에 비유해볼 수 있다. 그래서 계속 이렇게 살다가 망할 것 같다. 고속성장이 멈추고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과연 맞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속한 사회, 조직, 기업 등의 공동체 등에서 직접 보여주는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 할 수 있다.
원문: Eden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