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 비커 BBC 한국 특파원이 한국 언론의 외신 오역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3월 18일 로라 비커 기자는 본인의 트위터에 ‘한국 언론은 제 기사를 공정하게 번역해달라’는 트윗을 올렸습니다.
로라 비커 기자는 ‘자신의 기사는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우익 역사학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관련 기사:“리영희-신영복 존경하는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로라 비커 기자는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알려진 BBC 한국 특파원입니다. 도대체 로라 비커 기자는 왜 이런 트윗을 올렸을까요? (관련 기사:외신기자가 본 ‘문재인 vs 박근혜’ 신년 기자회견)
‘BBC가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했다?’
3월 9일 로라 비커 기자가 작성한 「트럼프와 북한 대화: 21세기 정치적 도박」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사이트에 게재됩니다.
3월 12일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인용해 “BBC는 문 대통령에 대해 ‘외교의 천재’ 또는 ‘나라를 파괴하는 공산주의자’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했다”고 보도합니다.
이어서 3월 17일, 《동아일보》도 ““천재이거나 공산주의자” 영국 BBC 방송은 (중략)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외교의 천재이거나 자신의 나라를 파괴하는 공산주의자 중 하나일 것”이라고 평가했다.”라고 보도합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사만 보면 《BBC》가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누구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depending on who you speak to)라는 문장은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 거나 외교적 천재’라는 문장은 《BBC》가 문재인 대통령을 평가한 말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다는 의미로 봐야 합니다.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도 오역 지적’
로라 비커 기자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기사를 제대로 번역해달라고 한 이유는 한국 언론의 외신 오역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6일 《연합뉴스》는 「페리 전 美국방 “北, 실전형 ICBM보유때까지 시험발사 안멈출 것”」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의 전직 국방 장관이 무기 관련 세미나에서 ‘한국과 일본이 독립적인 핵전력을 갖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연합뉴스》는 “전직 국방부 장관이긴 하지만 미국 내에서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옹호하는 언급이 나오는 것은 이례적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발언 당사자였던 월리엄 페리 전 장관은 직접 트위터에 《연합뉴스》와 《조선일보》, 《코리아헤럴드》 등을 지목하며 “나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떤 나라에서든 핵무기 배치를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연합뉴스》는 지난 9월에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북한에서 기름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Long gas lines forming in North Korea)라고 올린 글을 ‘가스관’이라고 오역한 적도 있습니다. (관련기사: 기레기 대참사,트럼프 트윗 ‘오역’을 그대로 받아쓴 언론사들)
‘르몽드의 조중동 비판을 멋대로 오역한 조선일보’
언론의 외신 오역은 기자가 언어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도 있지만,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원문을 왜곡해 보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03년 프랑스 《르몽드》는 「한국 정부는 언론의 지나친 비판에 대응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조중동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르몽드》는 기사에서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세 신문이 “노무현 대통령과 공개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족벌 왕국을 형성하고 있다”며 “이들 신문들은 87년 민주화가 시작된 후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과거와 마찬가지로 보수진영과 재벌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기사를 번역해 보도하면서 엉뚱하게 자신들 입맛대로 바꿔버립니다.
“국영방송과 경제적 강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3대 신문의 무게 때문에 보다 독립적인 미디어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여론이 야기되고 있다.”
(오마이뉴스 번역문,상지대 김정란 교수)
“한국 국영 방송사와 재계를 대표하는 3대 일간지가 더욱 독립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조선일보 번역문)
김정란 교수(상지대 불어불문학)의 번역문을 보면 조중동 때문에 독립적인 미디어가 필요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자신들을 비판하는 외신 기사를 멋대로 참여정부가 언론의 독립성을 더 보장해줘야 하는 식으로 번역 보도합니다.
결국, 《조선일보》는 “chosun.com이 자체적으로 번역해 보도한 기사 전문에 일부 오역이 있어 정정한다”라고 밝힙니다. (관련기사:<조선>, 르몽드 기사 “번역 잘못했다” 인정)
‘번역 논란에 ‘독재자의 딸’로 표현한 미국 타임’
지난 2012년 12월 미국의 시사 잡지 《타임》은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를 표지로 ‘The Strongman’s Daughter’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독재자의 딸’로 번역했지만, 새누리당은 《타임》이 ‘강력한 지도자의 딸 : 역사의 후예’라는 제목으로 박근혜 후보를 표현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논란이 되자 《타임》은 인터넷판에는 ‘The Dictator’s Daughter’라는 제목으로 친절(?)하게 ‘독재자의 딸’이라고 표현합니다. 외신을 정치적으로 해석해 외신으로부터 망신을 당한 셈입니다.
외신을 100% 완벽하게 번역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기사가 말하는 사실 관계만큼은 왜곡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한국 언론이 전문가 번역이나 검증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그 누가 봐도 엉터리 오역 보도는 막을 수 있습니다.
로라 비커 BBC 기자가 말했던 공정 보도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입니다. 외신 기자마저 한국 언론이 공평하고 올바르지 못하다고 보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원문: The 아이엠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