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움직인 열정’으로 가득 찼던 평창 패럴림픽이 18일 막을 내렸다.
이번 평창 패럴림픽은 패럴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입장권이 팔렸고, 가장 많은 나라와 선수들이 참가했던 대회였다. 우리나라는 신의현 선수가 남자 크로스컨트리 7.5km 좌식 경기에서 금메달 1개, 같은 종목 15km 좌식 경기에서 동메달 1개를 따냈고, 장애인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동메달을 얻어 종합 16위를 기록했다.
이렇게 끝난 열흘 동안의 패럴림픽 기간 중 단 하루도 빠짐없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곳이 있다. 올림픽에는 없고 패럴림픽에만 있는 ‘패럴림픽 닥터’ 진료소. ㈜오토복 헬스케어(이하 오토복) 기술지원 서비스 센터다.
패럴림픽 참가 선수들이 착용하고 있는 인공 의지(義肢)는 경기나 훈련 도중 망가지거나 고장 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선수들에게 있어 ‘의지’ 고장은 비장애인 선수에게는 팔다리 부상과 같다. 이런 장애인 선수들의 ‘의지 부상’을 열흘간 무료 치료해 준 오토복 기술지원 서비스센터를 17일 찾았다.
“의지부터 신발에서 안경까지 전부 고쳐 드렸어요”
“지난 열흘 동안 이곳을 찾아온 모든 나라 선수들의 문제를 다 해결해 드렸어요.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많이 왔는데, 몸싸움이 많고 격한 경기를 하다 보니 의지 고장을 수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른 종목 선수들도 의지와 함께 스키나 신발 등의 장비 수리를 하러 많이 찾아 왔어요.”
오토복 기술지원 서비스센터 신영준 모빌리티 사업부장은 “심지어는 안경다리 부러진 걸 고쳐달라는 사람도 있었다”며 “고쳐달라고 하면 뭐든지 고쳐드리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오토복은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을 계기로 공식 후원 파트너사로 선정됐다. 그때부터 각종 세계 장애인 선수권 대회와 동·하계 패럴림픽 때마다 선수촌에 상주하며 참가선수들의 의지와 휠체어를 무상으로 수리해 주고 있다. 패럴림픽 참가 선수들의 의지 부상을 고쳐 주는 ‘패럴림픽 닥터’역할을 해 온 것이다.
서비스센터는 장애인 선수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선수촌과 식당 가까이에 설치됐다. 하루 평균 30여 명 이상이 이곳을 찾아 왔다.
“2년 전 리우 패럴림픽 때는 북한팀의 한 여자 선수가 찾아와서 이런 부탁을 한 적도 있어요. 패럴림픽 끝나고 돌아가면 결혼식을 할 예정인데 결혼식 때 꼭 한 번 일어서 보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센터에서 두 다리(의족)를 만들어 주었지요. 만들어 주면서 키도 더 크게 해 드릴 수 있다는 농담도 했는데, 용기를 갖고 잘 헤쳐 나가자는 격려였지요.”
“장애인 선수에게 의족 고장은 ‘부상’과 같아”
패럴림픽 선수에게 ‘의지’가 망가지거나 고장 나는 것은 올림픽 선수들의 ‘부상’과 같은 충격이라 할 수 있다. ‘의지’에 문제가 생기면 몸에 상처가 나기도 하고 훈련에 지장을 주기도 해서 선수들은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오토복 기술지원센터는 선수에게 맞춤식 의지를 제공하고, 장비의 불편한 부분을 선수와 지속해서 소통해 가며 조절하고 개선해 주고 있다. 한국 선수 중에는 아이스하키 정승환 선수, 좌식 크로스컨트리 신의현 선수, 스노보드팀 등이 지원을 받았다.
“정승환 선수는 다섯 살 때 다리를 다친 뒤에 달려본 적이 없었다고 해요. 체력도 좋고 운동신경도 좋고 빠른데 실제로 트레이닝하면서 뛰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상체운동만 했죠. 오토복에서 제공한 달리기용 의족(러너)을 처음으로 착용하고 뛴 적이 있었어요. 사고 이후 처음으로 뛰어본 거죠. 본인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저희도 놀라고 가슴이 뿌듯했어요. 20여 년 만에 달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선수도 굉장히 만족하며 좋아했어요.”
장애인들이 착용하는 의족은 일상생활용 의족과 체력단련용 의족, 경기용 의족 등이 있다. 올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노보드의 한국 대표팀은 오토복에서 의지를 지원해주기 전까지만 해도 높은 장비 가격 때문에 몸에 맞는 제품을 살 엄두를 못 냈다.
신 부장은 패럴림픽 기술지원 서비스센터운영을 통해 모든 나라에서 장애인과 장애인 체육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좀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의지나 장비를 고쳐 주다 보면 형편이 어려운 나라일수록 장비가 무거운 소재로 돼 있어요. 심지어 어떤 선수는 다른 선수들의 장비를 물려받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중앙아시아 쪽 어느 나라 선수는 좌식 스키를 들고 와서 자기 몸에 맞게 크게 만들어 달라고 해서 일일이 분해하고 자르고 해서 고쳐 준 일도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 선진국 선수들은 국가 지원을 받아 가볍고 튼튼한 장비를 사용해 경기력도 향상되고 좋은 성적을 내지만, 국가적 지원이 부족한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여건에서 훈련하고 경기를 한다는 것이다.
“장애 발생 때 딛고 일어설 발판 만들어 줘야”
신 부장은 “북유럽 국가들이 동계 스포츠 참여율이 높은 것은 북반구에 위치해 겨울이 긴 지리적 기후적인 특성도 있지만, 장애가 생겼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인 발판이 잘 마련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애인 선수나 장애인이 도전하고 극복해 보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지원해주는 기관이나 단체가 많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201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장애인 수는 272만7000명이다. 전체 인구의 5.6%다. 전체 장애인 중 사고 등으로 장애가 발생한 후천적 장애인이 88.9%다. 이중 의지 등 보조기구 ‘구매 비용이 없어’ 기구 없이 생활한다는 사람이 61.8%나 됐다. 장애인에 대한 국가 사회의 지원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
현재 정부는 의료보호 1종에 해당하는 장애인에게 무릎 아래 의족은 181만 원, 무릎 위 의족은 227만 원을 지원한다. 의지 제작 전문가들은 “이걸로는 가장 기본적인 의족을 제작할 수 있는 정도”라며 “중도장애인이 다양한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의지를 사려면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만큼 본인 부담액이 커지기 때문에 경제력이 약한 장애인들은 의지를 살 때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기 어렵다.
신 부장은 “패럴림픽 참가 선수들의 기구나 장비를 수리해 주면서 느낀 점은 아직은 장애인 스포츠 선수는 물론 장애인들이 본인 스스로 알아서 일어서야 하는 상황에 부닥쳐 있다는 점”이라며 “좀 더 많은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국가에서 충분한 지원을 해 준다고 한다면 돈에 맞춰 보조기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한테 필요한 장비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더 좋은 의지를 선택할 수 있는 거죠. 독일, 스웨덴 같은 복지 국가들은 이런 좋은 지원제도를 갖고 있으니까 장애가 생겼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운동도 하고 빨리 장애의 벽을 넘을 수 있죠.”
독일의 경우 의사, 치료사, 보조기 기사가 함께 특정 장애인에게 맞는 의지를 결정하고 국가가 그 구매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다. 국가 사회가 장애인의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고 있는 셈이다.
“기술이 좋아져서 첨단 장비가 많이 나와 있는 데도 정보 부족으로 알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알더라도 경제적으로 새로운 기구를 살 형편이 안되니 더 힘들고요. 경제적 지원을 조금만 더 해주고 정보를 제공해 주면 장애인들이 신체적 제약이라는 벽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요.”
장애인들의 장애 보장구 보조금도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해가 바뀔수록 제작 기술이 발전하고, 소재도 티타늄, 카본 등으로 다양해졌지만 지원 금액은 그대로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기능이 개선되고 사용이 편리한 기구를 사기 힘들다. 물가상승분도 반영되지 않아 보장구를 선택해야 하는 장애인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
보장구 지원 제도의 주기도 문제다. 패럴림픽 스노보드 박항승(32) 선수는 “우리 법에는 3년에 한 번 생활용 보장구를 청구할 수 있는데, 주기가 너무 길다”고 말했다. 잠들거나 쉴 때나 벗어두는 의지는 사용 빈도에 따라 내구연한이 달라진다. 의지를 ‘몸’처럼 사용하는 장애인에게 3년은 너무 긴 주기라는 것이다. 박 선수는 “특히나 일반 의족으로 운동을 하면 쉽게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며 실제 보드를 타다 자신의 의족도 몇 번 부러진 적이 있다고 했다.
“장애인 처우 나아지고 있지만 남은 벽 아직 높아”
오토복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신영준 부장은 “여기서 일하면서 보니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한국에 병원용 휠체어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개인별 장애 특성에 맞게 휠체어의 종류가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보건복지부는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휠체어에만 48만 원의 구매비용을 제한적으로 지원해 왔었다.
올 7월부터는 일반형 휠체어는 물론 경량화된 활동형 휠체어에 100만 원, 의자 각도를 조절해 눕거나 설 수도 있는 상하 조정 형과 리클라이너형 휠체어에 각각 80만 원을 지원하게 된다. 휠체어 기술이 개발돼 한국에 보급된 지 10년 만에 시행된 지원이다.
“힘들게 활동하는 장애인들이 좀 더 나은 장비를 사용해 더욱 자유롭고 편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운동 능력이 있는데도 보조 기구가 없어 못 하는 분들이 하고 싶은 운동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 가능성이 크다”며 “장애인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더 늘어난다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김미나, 유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