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의 안정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일말의 의심 없이 대기업·공기업 등 안정적으로 보이는 직장으로 돌진하는 이를 보면 한 편으로는 공감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씁쓸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과연 안전한 일자리는 존재할까?” 하는 물음이 떠오른다. 이 질문에 근본적인 답을 하려면 안전한 직장과 일자리는 어떻게 다른지, 좋은 회사는 있는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필요하다.
좋은 일자리는 없다
‘좋은 일자리는 있을까?’ ‘좋은 회사는 있을까?’는 얼핏 같은 의미의 질문 같지만 다른 걸 지칭한다.
- “좋은 회사 있을까”는 누구의 관점에서 평가를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대표, 직원, 고객, 관계자, 파트너, 주주 등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 하지만 “좋은 일자리 있을까”는 오롯이 (예비) 직원을 향한다. 직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좋은 회사, 좋은 일자리의 기준은 직원 이외의 다른 이에게는 철저히 다른 이야기이다.
부정적일 수 있지만 좋은 일자리는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오직 나한테 맞는 회사만 존재한다. 이성 교제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처럼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닮은 이, 오래도록 다양한 경험을 함께 나누며 점차 닮아 가고 싶은 이와 함께 해야 한다. 함께하는 사람들, 각자가 가진 욕구의 관점의 유사성이 조직이 바라는 시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여기서 선두에 있는 것이 리더이다. 리더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야만 좋은 인력의 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 채용도 마케팅적 관점으로 내/외적 가치를 발굴·발견하고 적합한 대상에게 그러한 가치를 잘 전달해야 한다. 문제는 좋은 가치를 만드는 좋은 사람의 지속적인 유입이 뒷받침이 되어야 비즈니스가 성장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늘 좋은 일자리보다는 사장 또는 고객 등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더욱 우선시되는 회사에 머무른다. 먹고사니즘의 문제가 늘 우리의 회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드는 데 발목을 잡는다.
좋은 회사가 순서상 먼저이기에 수동적으로 좋은 회사를 만들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직장인의 답은 명확한 목적과 목표에 의한 적극적이고 전략적 태도로 전환하는 데 있다. 수동적 자세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주어진 환경의 지속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마음가짐과 유연성을 견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직장 생활에도 분명 전략이 필요하다. 목표는 좋은 회사에 두고 목적은 좋은 회사와 일자리를 동시에 잡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당장의 돈벌이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직장생활로 목적을 수정하고 그에 적합한 당장의 목표를 세팅해야 한다. 해당 전략은 누구를 짓밟고 남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조화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통해 더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적어도 조직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나만 잘하면 돼”라는 생각보다 나와 연결된 이가 더욱 일을 잘하도록 돕자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가치를 상생이라는 코드를 통해 같이 일하는 이와 나눠야 한다.
복잡하고 어렵다면 ‘우리 브랜드를 ○○○이 잘 팔리는 회사를 만들면…’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고, 고객·직원과의 상생을 꿈꾸고, 공존을 회사의 최우선 가치로 만들고, 적정 이윤의 추구로 시장의 성장과 함께 우리 기업의 성장을 함께 꿈꿔야 우리가 몸 담은 메타마켓(Meta-market) 속에 시장의 논리를 해치지 않는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20세기 리더, 21세기 직원
이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일지 모른다. 여러 회사를 거치며 일개 직장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동시에 리더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리더 때문에 이직을 결심하기도 하고 심지어 입사를 꺼리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는 많지만 진짜배기 회사는 많지 않다. 제대로 된 시스템과 인재가 어우러져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으로 결과를 내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임에도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리더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누구와 함께 하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를 줄 수 있다.
1. 과거 집착형 20세기 리더
리더가 20세기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세상의 속도와 변화에 둔감하고 자신의 고집에 맞추어 조직을 만들어가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과거의 성공이 세기를 초월한 매우 우월한 방법이라 자신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과거의 영광은 뜻하지 않은 산물임에도 거기에 사로잡혀 계속 자신의 방법만 고수하는 망령에 불과하다.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제 막 사회에 취업 또는 창업으로 진출하는 이는 20세기 세상을 극히 적게 경험했거나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다. 그런 이에게 계속 20세기 방식으로 꼰대처럼 굴면 아무도 남지 않는다. 채용 방식부터 업무 방식까지 한창 일할 세대에 맞추어 유연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대부분 기업이 이를 소홀히 한다. 21세기의 시장과 고객, 직원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할 20세기 리더는 겉모양만 멋있게 변했지 생각은 아직도 제조 및 관련 산업이 주도하던 20세기에 머무른다.
최근 나타나는 조직 내 다양한 갈등이 이를 말해준다.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 겉만 21세기 리더는 20세기 방식으로 21세기 직원들을 끊임없이 명령으로 자행한다. 사실, 21세기 직원이 생각하는 권위는 누군가로부터 일방적 지시와 명령을 듣고 실행하는 것이 아닌 이해와 설득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에도, 각종 핑계를 대면서 극렬한 반대를 한다. 그게 쌓이면서 성과 저하 또는 조기 퇴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각종 커뮤니티와 사이트를 통해 소문이 퍼지고, 아무리 탄탄하고 좋은 회사라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확산된 네거티브로 인해 좋은 인재가 입사 지원을 주저한다. 결국 좋은 인재 유입의 경로가 막히고, 나아가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수도 있다.
제도는 문화를 앞서갈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좋은 일자리는 좋은 조직 문화”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최초 비즈니스가 만들어진 후 회사는 성장 및 발전하며 고객이나 직원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들과의 내·외적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많은 인력이 조직에 드나들면서 조직 문화를 형성한다.
그 중심에는 리더 또는 대표가 있고 그들의 말과 행동이 곧 회사의 모든 부분을 대변한다. 수많은 세월 일했던 방식, 대화, 회식, 회의 등의 다양한 회합으로 보이지 않는 의사 결정 기준 및 일하는 방식이 생기는 것이다. 그게 곧 조직 문화다. 쉽게 바뀌기도 어렵고, 설사 제도적으로 바꾸려고 해도 언제든 과거 문화의 잔재는 있다.
조직을 사람에 비유, 하나의 유기체로 해석하면서 조직 문화도 뚜렷한 계기 없이는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많은 기업이 각종 호칭 및 직제 및 구조 개편 등으로 조직에 적합한 문화로 전환하려고 제도를 활용하려다 한계를 인정하고 두 손 두 발 다 든다. 물론 잘 활용하면 조직의 성과와 직결되며 나아가 훌륭한 시스템 속에서 우리 조직에 적합한 조직원을 만드는 것 또한 가능하겠지만, 단순 제도 개편으로는 한계가 있다.
회사를 소유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20세기 리더는 자신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문화까지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법인이고 다른 주주가 있음에도 대부분 비슷하다. 한국사회 수십 년 동안 정경유착과 압축된 고속성장도 뜯어보면 지들끼리의 보이지 않는 거래로 나타난 결과에 가깝다. 과거의 성공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에 과거 성공 방법의 반복으로 더 큰 성공을 꿈꾸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리더가 있다. 그래서 나(리더)를 위한 길이 회사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구멍가게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는 1인 기업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구성원 전체가 함께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체라면 함께 일하는 이의 생각을 무시할 수 없다. 구성원의 정체성 합(合)이 곧 기업의 커다란 맥락을 함께하는 철학과 문화로 나타나고, 고객을 맞이하는 여러 접점과 함께 제품 및 서비스로 표현된다. 도전 또는 창의라는 핵심가치가 있지만 수 년째 변화 없이 움직이는 조직에 도전과 창의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나아가 조직의 리더가 고객 또는 직원을 대하는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도를 만들지만 원칙, 범주, 체계도 없는 제도는 조직을 지배하려는 리더십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리더가 제도의 출발점이라 해도 조직 내 대부분 구성원과의 충분한 상의, 이해, 동의 없이는 원하는 수준만큼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제대로 된 조직문화는 충분한 신뢰 관계의 구축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여러 해를 거친 비즈니스상 문화적 정체성은 조직을 거쳐간 개인의 정체성과의 결합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생존 기업을 탄생시킨다. 이들은 자신들을 대표하는 문화를 만들면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간다.
.
20세기형 좋은 일자리는 21세기에 환영받지 못한다
기업을 좋은 기업 또는 나쁜 기업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객관성이 없다고 판단한다. 지금은 21세기형 일자리가 필요하다. 자율 출퇴근제, 4.5일제, 파격적 대우 등 특정 제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변했듯이 과거 20세기에 최고의 조건이라고 이야기했던 것들, 또 개인이 조직을 바라보는 기준이 변화했다.
20세기에 좋은 일자리는 개인에게 정신적 성장 경제적 부흥을 가져다주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신의 직장’ 삼대장은 최고의 연봉, 조직의 명성, 정년 보장이었다. 이 기준은 현재까지도 유효한 것처럼 오도되어 많은 이가 이 기준으로 직장을 선택한다. 생각해보면 이미 수년 전에 모두 무너졌다. 몇몇 대기업 속 극히 일부 인원에게 제공되는 혜택이지 조직 내 모든 인원이 누리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될 것 같거나 될 수 있다고 믿고, 우리 부모님 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위 지표는 조직에서 제공한 단순한 수익성과 안정성에 기초한 지표이다. 온전히 조직의 목적과 목표, 성과 등을 한 사람의 개인이 책임질 수 없기에 나만 잘한다고 보장받는 것이 아니다. 21세기에 중요해진 성장 가능성, 직무적 가치의 지속성, 은퇴 이후의 생활 보장은 결코 조직에서 책임져 줄 수 없다. 이는 조직의 몫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의 몫으로, 조직 안에서 해당 기회를 찾아야 한다.
21세기에도 유효한 일부 20세기 신의 직장에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또한 극소수에게 주어진다. 대부분 정년도 채우지 못하고, 충분한 성장 기회도 얻지 못하고, 쓰다 버린 껌처럼 여겨지며, 충분한 보상(이라 쓰고 희망퇴직 위로+퇴직금이라 부르는 것)을 받는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퇴직을 종용한다. 이렇게 아낀 비용으로 더 값싸고 가치 있는 사람을 둘 또는 셋 이상 고용한다.
20세기 리더에게는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사용했던 방식이다. 주니어 시절 계속 누군가 대체되는 것을 목격하고 소위 물갈이를 통해 조직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고 경쟁에서 승리했는지 확인했다. 효율성 극대화라는 혁신의 방향으로 비용절감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의 정리로부터 시작했다. 이런 방법을 더 이상 통하지 않을 21세기 뉴 노멀 세대에게 사용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꼭 필요한 이를 제외하고 과감히 버리는 방식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는 조직의 논리에 개인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논리로 밖에 이해될 수 없다. 21세기형 일자리를 꿈꾸는 이에게 위와 같은 방식은 점차 통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조직을 찾는 사람들의 눈이 다른 쪽으로 변화했다. 조직 안에서 자신만의 생존력을 길러 크기에 상관없는 ‘나만의 비즈니스’를 꿈꾸는 이가 많아졌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20세기 지표에 사로잡혀 능력(사실은 불필요한 거대 스펙만 가진)만 믿고 입사하려는 사람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같은 인력에 속아 잔뜩 채용한 조직은 제대로 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개인의 보이는 능력만 믿고, 개인주의적 문화와 방법은 ‘개인 성과는 높지만 조직 성과는 아주 바닥을 치는 기이한 조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럼 21세기 환영받는 일자리는?
20세기에 아래 5가지 조건은 주목받지 못했다. 연봉과 직업적 안정성에 밀려 순위가 뒤로 밀렸다. 하지만 경제 및 사회의 불확실성 가중이 불러온 직업 불완전성이 평생직장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우리가 더 괜찮은 인재를 키워 더 괜찮은 회사에 보냈다’는 것이 인사상 경쟁력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 좋은 회사가 아니라 착한 회사 또는 괜찮은 회사가 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조건이나 연봉 및 복리후생 등 기능적 측면과 더불어 조직문화(OC) 관련된 내용 또한 함께 갖추어야 한다.
1. 기업과 직원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
먼저 꼽고 싶은 것이 ‘직원의 성장에 조직이 얼마나 투자를 하는가’이다. 사람은 보통 일을 통해 일하는 법을 배운다. 새로운 일과 함께 새로운 날을 하루하루 맞이하면서 일을 해내는 노하우를 얻는다. 그렇게 숙련되면서 점점 수준 높은 일을 하고, 직급도 올라가고, 때론 직책도 가져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도 주어진다. 직원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다.
- 새로운 일을 할 기회와 함께 그에 어울리는 적절한 권한을 주는 것,
- 그 일을 하기 위한 충분한 내·외부 트레이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를 제공하는 기업은 흔하지 않다. 키워놓으면 경쟁사 또는 타사로 이직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리더가 “개인의 노하우는 회사에 제대로 쌓이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 퍼포먼스는 직원의 실력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적극 추진해야 한다.
직원 성장이 곧 조직 성과의 성장이라고 믿고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더 많은 인재가 우리 기업으로 몰려들게 만들고 이 과정을 정돈하며 좋은 회사를 넘어 좋은 일자리가 되는 것이다. 이는 모든 기업이 겪을 만한 구인난으로부터 탈출시켜줄 중요한 열쇠일 수도 있다.
2. 일한 만큼 받는 적합한 보수, 보상, 기회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너무 많으면 그에 비례한 일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높은 연봉에 비례한 실력이 있다면 문제될 것 없지만 비슷하거나 그 이하면 현재 조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많은 이가 연봉을 쫓아 계속 점프하듯 이직하는데 그때마다 자신의 능력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결국 연봉 절벽에 가로막힌다.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 연봉 절벽에 부딪히지 않는 것이다.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도 좋지만 그게 꼭 내가 받게 될 급여일 이유는 없다. 오히려 내 성장을 위한 기회일 수도, 맡기도 어려운 특정 임무 또는 직책 일수도 있다. 주니어나 조금 낮은 시니어 레벨이라면 이를 담보로 한 이동이 더 먼 미래를 위한 투자적 성격의 선택이다.
자신의 노고가 급여를 통해 100% 보상될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지금 받는 급여가 부족하다 느껴지면 현재 받는 여러 혜택에 주목해봐야 한다. 조직에서 인정받는 부분은 무엇인지, 인정 이상으로 주변 및 업계에서 충분한 신망을 얻는지, 어울리는 기회가 어떻게 나에게 주어지는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비교 분석해봐야 한다.
3. 사람과 함께하려는 이타적·합리적 문화
세상이 각박해진다지만 회사를 다니는 목적 중 하나는 친구 또는 동지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들과 뜻을 나누고, 함께 나아가며 여러 교감을 나누고, 그 안에서 얻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은 또 다른 보이지 않는 혜택이다. 더불어 함께 일하는 문화가 없는 기업이 오래갈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언제든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거나, 드러나지 않는 움직임으로 인해 기업 시스템이 붕괴할 수도 있다.
모든 기업이 스테이션이 되는 세상이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면 운이 좋아 명맥을 유지할 수는 있어도 절대 성장하기는 어렵다.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곧 망한다는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다. 조직에 동지애가 있어야 21세기형 일자리다. 불확실함이 더욱 가중되는 저성장 시대에 조직 안에서만큼은 서로를 감싸주고, 그들의 목적에 맞게 함께 영위하는 일을 응원하고 힘을 실어주는 문화만으로도 조직은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
4. 적당한 물리적·심리적 거리
따뜻함도 조직 고유의 문화, 일처리 방식 및 방법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정말 가족 같은 조직이라면 모르지만 내로남불의 가족 같은 기업이 많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회사와 집은 심리적·물리적으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것이 좋다. 적당한 거리 유지로 일하는 긴장감을 가지는 동시에 출퇴근 길이 피곤하지 않을 정도.
지방에서 올라온 후배가 회사 사무실로부터 50m 정도의 거리에 집을 얻었다가 팀 하우스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 회사와 집의 거리는 적당히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또한 내가 맡은 일과 함께 하는 동료들과 심리적 거리도 일정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너무 가까우면 하는 일과 동료, 조직에 대한 객관성을 잃어버린다. 무엇보다 평가가 걸렸다면 평가의 공정성 또한 의심받는다.
직장 상사 또는 조직에 과도하게 충성하는 것이 때론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영위하는 데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부분에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다른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또한 직장인의 처세에 필요한 덕목이다. 나아가 조직 내부에 거리 유지의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5. 다음 회사로 언제나 점프 가능한 쿨함
‘박수 칠 때 떠나라’라는 말처럼 언젠가 회사를 떠난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름다운 이별을 할지 늘 생각해봐야 한다. 꼭 헤어져야 하는 이유는 없지만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늘 알아야 한다. 떠난다고 할 때 쿨하게 보내주어야 한다. 이곳에서 충분한 경험을 했고, 성장했으며, 지금보다 높은 수준의 일을 하러 떠나는 이에게 축복을 빌어주어야 한다.
다행히 지금은 이와 같은 회사가 많아지는 것 같다. 여전히 동종 업계 취업 금지 조약 등이 있지만 유명무실해지기도 하고 비즈니스에 위기가 초래할 정도가 아니라면 강조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좋은 직장상사와 동료를 만나는 것도 복이다. 나부터 내 곁을 떠나는 동료에게 박수를 보내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현명하다. 존중받아야할 각자의 선택이고, 함께 있는 동안 같은 목적과 목표를 좇아서 일을 했던 동료일 뿐이다.
덧: 구인난에 처한 대표께
국내 기업 대부분은 21세기 기술을 20세기 사고방식으로 관리하는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성장은 멈췄고 일본의 뒤를 이은 저성장의 굴레로 들어갔다. 전 세계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했지만 급속한 노령화가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를 불러왔다. 앞으로 닥쳐올 인구절벽은 곧 구인난과 구직난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런 추세는 거시적 인구감소 현상에 국가적 리더십이 관심이 없으며 사람들의 사고가 여전히 20세기에 머무름을 방증한다.
위기라고는 하지만 위기라고 믿고 싶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이제 그런 생각으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20세기를 살았던 사람, 앞으로 21세기를 살아갈 사람 간의 충분한 교감이 필요하다. 이제 막 조직에 들어갈 사람은 21세기에 익숙하다. 누가 누구를 이해해야 할까. 이미 답은 나와 있다. 둘 사이의 충돌이 거대한 사회적 문제로 번졌을 때 누가 더 피해볼 지를 생각하면 누가 더 노력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소위 구인난 또는 구직난이 사회적 문제가 된 것도 이런 부분에서 몇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21세기 모두가 바라는 괜찮은 일자리는 결코 최신식 PC나 모바일, 화려한 인테리어의 사무실 등 기능적·도구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더 인간적인 환경, 개인의 적절한 성장 존중, 직원 및 고객과의 상생, 성숙한 합리적 기업문화, 성장형 보상 등이 조건이다. 어찌 보면 20세기의 회사를 21세기 일자리가 대체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태어날 때부터 종이책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쥐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뉴 노멀 세대에게 종이책 세대의 방식을 강요하고 당위성 없는 명령만 자행한다면 아무도 남지 않는다. 그들의 섬세함을 최대한 현재 몸 담은 비즈니스 안에 투영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기회를 가지도록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가 경험하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원문: Eden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