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저희 본부장님은 사원 대리 시절에는 후배들의 ‘큰형님’이자 소위 ‘야당 당수’였습니다. 후배들이 고충이 있으면 언제나 잘 들어주고. 후배들과 소주 한 잔 걸치며 함께 사장님 뒷담화도 까고.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에는 대놓고 불만을 나타내고. 한 번은 팀원들을 선동해서 새로 임명된 팀장을 왕따 시킨 적도 있었죠.
그런데 이 분이 임원이 되더니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어요. 더 이상의 ‘왕당파’가 없을 만큼 매우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후배들이 고충을 얘기하면 “네가 너무 좁게 생각해서 그래”라고 하시고. 사장님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 “로열티가 없다”라고 혼내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릴 때도 있고. 어쩜 그렇게 권위적이신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심하게 변할 수가 있죠?
Answer
저런. ‘변절자’ 선배님을 두셨네요. 저도 그런 분 많이 알죠. 선배 중에도 있고 후배 중에도 많습니다. 회사의 잘못이나 사장님의 비리에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비호하고. 사원 대리들의 정당한 요구에는 “아직 사회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비판하고.
사원 대리 시절에는 “투쟁! 투쟁!”을 외치던 분들이 막상 간부나 임원이 되니까 완전 사장님의 충복이 되었죠. 한 번은 술자리에서 변절자 선배에게 조심스럽게 여쭤봤죠. “예전에 제게 하신 말씀과 지금 행동이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라고. 그랬더니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세요?
“사람은 상황에 맞게 대응하기 마련이다. 상황이 바뀌면 입장과 태도도 변해야지.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이상한 거야.”
그 선배님의 말씀에 살을 조금 덧붙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 학창 시절에는 우리 과 동기들 대부분이 학생운동권이었지. 대부분 시민 혁명을 꿈꿨고. 남한보다 북한이 더 살기 좋은 사회라고 주장하던 애들도 있었어. 걔네들 지금 뭐 하는지 알아? 다들 회사 잘 다녀. 상사 비위 맞추고. 술집에서 바이어 접대하고. 그게 우리들 인생이고 현실 사회야. 언제까지 과거 이상주의에 머물러 있을래?”
왜 갑자기 뜬금없이 과거 학생운동권을 들먹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술에 약한 저로서는 당시 술자리에서 그 선배에게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죠. 술 마시면 금방 아이큐가 떨어지는 사람들 있잖아요. 제가 좀 그렇거든요. 그런데 다음날 술에서 깨어 맑은 정신으로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리 그래도 그 선배님이 충복이 된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혁명가가 소시민이 된 것까지는 세상의 이치라고 하더라도 “투쟁! 투쟁!” 하시던 분이 둘도 없는 충복이 된 것은 설명하기 조금 어려웠죠. 아니, 설명하기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그것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릅니다. 순수하고 위대한 분들도 집권 후에는 변하는데 하물며 우리 주변의 평범하고 세속적인 보통 직장인 중에는 나중에 출세한 뒤에 변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사원 대리 시절에는 선배들의 정말 작은 불의에도 부르르 떨며 불만을 터뜨렸던 분들이 나중에 간부나 임원으로 승진하면 앞선 선배 빰칠 만큼 더욱 독선적인 분으로 탈바꿈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습니다. 여러분들 주변에도 몇 명 있지 않나요?
불만 많던 사원 중에서 더 지독한 상사가 나오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 글은 “여러분, 불만을 품지 마세요”라는 말씀을 드리는 글이 아닙니다. 불의에 대해서 불만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죠. 불만을 품으시고 부조리를 바꾸십시오. 그게 바람직한 직장인의 태도입니다.
이 글은 단지 ‘우리 주변에는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 이기적 발로에서 변화를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으니까 그러한 분들을 너무 믿지 말고 조심하라’는 뜻에서 쓴 글입니다. 또한 지금 임원이나 간부가 되신 분들께는 ‘올챙이 적 시절을 한 번 더 생각해 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의도도 약간은 있습니다. 좋은 뜻에서 쓴 글, 좋은 뜻으로 해석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경험담 1
제가 매우 좋아하던 선배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같은 회사 옆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저를 잘 챙겨주시고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하던 분이었죠. 사적으로 깊은 얘기도 서로 나눴고 회사에 대한 불만도 함께 토로했고요.
이 분은 아무리 작은 불의라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그런 분이셨죠. 언론에서 대기업의 갑질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 마치 자기가 당한 것처럼 분노를 표출하셨고. 직장 상사의 무리한 지시에 대해서는 대놓고 비판하셨고. “이런 부조리는 철저하게 응징해야 나중에 재발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신념을 갖고 계신 분이었죠. 나중에 자기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라면서 몇 번이고 다짐하셨고요.
그런데 웬걸. 그렇게 정의감에 불타오르던 선배님이 임원이 되니까 한술 더 뜨더라고요. 사무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면 “약속을 잡지 않고 막 찾아오면 어떡하냐, 임원이 네 친구인 줄 아느냐”며 성질을 내고 자기 말에 이의를 제기하면 “너 혹시 정신 이상 아니냐?”며 팀원들의 정신 상태마저 의심하고 툭하면 욕하고 볼펜 집어 던지고.
임원이 되기 전 이 분이 품은 불만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뜻에서의 불만이 아니라 ‘내가 손해 보고는 절대 못 살겠다’는 뜻에서의 불만이었나 봅니다.
경험담 2
이번에는 또래 한 명을 소개하죠. 이 사람은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하던 분이었죠. 후배들이 불만을 토로하면 술 마시며 토닥여주고. 함께 직장 상사 욕해주고. 정치적으로는 자칭 ‘좌파’였습니다. “나라를 말아먹은 ○○당 국회의원은 모두 검찰 조사받아야 한다”는 식의 과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죠.
실제로 정치 활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무슨 모임 회원으로도 가입해서 선거 운동도 하고. 자기와 정치 성향이 다른 후배들에게는 무슨 당을 지지하라고 설득하기도 하고. 그러던 친구가 팀장이 되더니 입장이 완전 달라졌습니다. 후배들이 불만을 얘기하면 “그건 네가 생각이 짧아서 그래”라고 훈계하고. 성희롱을 당한 후배가 고민을 상담하면 “네 잘못도 있어”라고 주의를 주고.
지금은 자기가 다니는 회사 사주의 충복이 되었습니다. 회사 사주를 위해서라면 사회적 통념을 거스르는 주장도 서슴지 않습니다. 과거 자기가 지지하던 정당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요. 이런 분들은 한 마디로 ‘자기본위주의’에 빠져 있는 분들입니다.
이들은 위대한 혁명가들과는 달리 어떠한 ‘주의’나 ‘이즘’도 없이 그냥 순수한 ‘자기본위주의’에 취해 있는 분들이죠. 올챙이 시절 기억 못 하는. 아니, 올챙이 시절 기억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설사 기억이 나더라도 ‘그때는 그랬지만 그때는 틀렸고 지금이 맞다’는 식으로 항상 현재의 입장에서 자기합리화하는.
우리 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오래 할수록 이처럼 카멜레온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분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직장 생활에 회의가 들기도 하고요. 물론 그런 생각을 계속하면 안 되겠죠.
불만 많은 사원이 더 지독한 상사가 되는 이런 모순된 사회에서 순수하고 소박한 보통 직장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이에 대한 제 자신 없는 51% 정답을 말씀드립니다.
제안
1. 절대로 부화뇌동하지 말자
어느 회사든 질문하신 분께서 말씀하신 ‘큰형님’이나 ‘야당 당수’ 같은 분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분들과 가끔 어울리는 것은 좋지만 너무 가까이 지내지는 마십시오. 자신에겐 큰형님일 수 있어도 회사 경영진 입장에서는 그냥 ‘불만둥이’일 뿐입니다. 불만둥이와 엮여서 좋을 건 없습니다. 이런 분들의 견해는 그냥 참조만 하십시오. 너무 많이 섭취하면 나 또한 부정적인 직장관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본인만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큰형님의 말씀이 무슨 대단한 고견인 줄 알고 한동안 믿고 따랐는데, 정작 그러한 큰형님이 어느 한순간 충복으로 변신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큰형님 말씀을 따르던 후배들만 ‘닭 쫓던 개’ 되는 꼴이지요. 후배들은 큰형님이 변했다고 하겠지요. 반면 큰형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그로우 업!(Grow up!)”
2. 상대방 입장에서 역지사지하자
“이따위 회사 팍 망해버려라!”라는 생각이 들거나 “우리 팀장님, 미친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때, 한 번쯤은 상대편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물론 그 회사가 사회 발전을 위해서 꼭 망해야만 하는 회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팀장님께서 정말로 싸이코일 수도 있고, 아니면 순간적인 착오로 잘못된 판단을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내 입장에서는 정답이 상대방 입장에서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 입장에서 한번 역지사지해보면 내 과격한 생각의 농도가 옅어질 수도 있습니다.
3. 실력을 키워서 회사에서 인정받자
본인의 실력을 키우십시오. 자기계발에 항상 힘쓰십시오. 회사에서 인정받으실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러고는 승진해서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가십시오.
4. 무슨 일이 있어도 초심은 잃지 말자
단 처음에 품었던 초심만은 변치 말아야 합니다. 사원 대리 시절 품었던 변화를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그리고 내가 사원 대리 때 가졌던 불만을 항상 가슴에 새겨 두고 또 되새기십시오.
5. 그리고 언젠가 내가 꿈꿔왔던 이상을 후배들에게 펼쳐주자
그리고 언젠가 그럴 만한 지위에 오르면 내 이상을 펼치십시오. 내가 팀원 시절 가졌던 불만을 내 팀원들에게는 세습시키지 마십시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팀원들을 위해서. 그것이 궁극적으로 나를 위하고 회사를 위하고 이 사회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지금까지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아마 이런 의문이 생기실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넌? 너는 지금 뭐 하니?” 아, 저요… 저는 그럴만한 위치에 아직 오르지를 못해서… 핑계라고요? 아, 저는 조언은 잘하지만 막상 본인은 잘 못 하는 ‘훈수파’라서… 그것도 핑계라고요? 저는… 저는…
Key Takeaways
- 현대사의 혁명가 중에서 집권 후 독재자가 된 사람이 많듯 우리 주변에는 사원·대리 시절 작은 불의에도 분개하던 사람 중 임원이나 간부로 승진한 뒤에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변절자’가 많다.
- 사회 변혁을 열망했던 이유는 민족주의도,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자기본위주의’ 때문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변절자들도 마찬가지?
- 가급적 ‘불만둥이’의 주장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상대방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는 동시에 실력을 키워서 회사에서 인정받자. 단 초심은 잃지 말고 언젠가 내가 꿈꿔왔던 이상을 후배들에게 펼쳐주자.
원문: 찰리브라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