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큐 선생께.
날씨가 영하로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추우시지요. 최근에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자들이 경제학자를 가르치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체감기온은 더 낮으리라 짐작합니다. 게다가, 이런 되어 먹지 못한 자들의 선두에 교황이 서 있으니, 선생이 느낄 참담함은 가히 짐작하기 힘들 듯합니다.
평소 성격을 미루어 보아, 선생께서 내버려 두지 않을 걸로 알았습니다. 수억명이 읽었다는 교과서의 저자이자, 경제학의 수호자이신데 당연히 한 말씀 하셔야지요. 선생이 블로그에서 그 답답한 심경을 드러내었다고 제 페친들이 알려주었습니다.
아주 짧더군요. 하지만 교황의 핵심적 문제의식이 담긴 한 문단을 두고 체계적으로 따졌더군요. 선생의 교과서처럼, 직설적이고 에둘러가는 게 없없습니다. 천생 경제학 교과서의 저자이시더군요.
교황의 낙수효과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이 문제로 삼은 교황의 주장은, 자유시장주의에 기초한 낙수효과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자는 취지입니다. 이미 언론에서 많이 나왔고, 일부 경제학자들도 거들었던 얘기지요. 교황은 이런 걸 종합 요약 정리해서 널리 배포하신 겁니다. 선생이 선생의 신념을 교과서에 통해 학생들에게 널리 전파하듯이 말이지요.
세 가지를 문제 삼으셨더군요.
첫째,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도덕적 사회 구현의 원동력이다.
둘째, 낙수효과는 이론이 아니라 반대 좌파진영에서 만들어 낸 혐오용어 (pejorative)다. 이런 면에서 우파는 좌파 이론을 “부자 벗겨 먹기”로 묘사할 수 있다.
셋째, 교회가 누리는 세제혜택이 대단히 궁금하다. 그 혜택이야말로 낙수효과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교황께서 바쁘시니, 얼치기 경제학자인 제가 대신해서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선생의 교과서를 아직 정독해보지 않은 자격미달자라는 걱정도 있습니다 (늘 비용편익분석한 후 합리적으로 행동하라는 경제학 지침에 따라 아직은 구매하질 못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한마디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이것이 선생께서 주장하시는 “자유시장 경제”의 도덕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예이겠지요. 그래서 선생께서도 흔쾌히 응하시리라 믿습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낮았습니다
첫째, 선생께서 “자유시장 자본주의”라고 하실 때 그 반대말로 “공산주의”를 염두에 두신 건 아니겠지요? 교황이 말하는 “자유시장주의”는 시장경제를 운용하는 특정한 방식이 관한 것입니다.
낙수효과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신 것도 그런 맥락이지요. 교황은 모든 걸 시장에게 맡기면 잘 되거라는 믿음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런 각도에서 역사적 반추를 해본다면, 시장에 대한 개입이 높았던 이차대전 직후부터 시장주의 득세 이전까지, 그러니까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한 시기에 경제성장율이 더 높았습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신 “자유시장 자본주의” 시기 동안 경제성장률은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얘기입니다. 전혀 자유시장적이지 않은 중국마저 없었다면, 선생의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정말 곤란할 뻔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하신 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료인 Ben Friedman의 책을 인용하셨더군요. 그 책도 물론 유용하지만, 수억 명 경제 교육을 담당하고 계신 분이라면 책을 두루 읽으셔야겠지요. A. Etzioni나 A. Sen 같은 분들의 책도 읽으셨으면 합니다. 그분들은 선생의 동료 Ben과는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비도덕적이고, 이를 통제하는 게 관건이라고 하시더군요.
최근에는 D. Acemoglu나 J. Stiglitz도 이런 문제를 거론하더군요. 늘 보시는 분들이니까, 더 말씀드릴 필요는 없겠지요.
낙수효과는 자유방임이론의 핵심을 그대로 전합니다
둘째, 낙수효과와 같은 “문학적” 표현이 당연히 선생의 실용적인 교과서에 등재될 리가 없겠지요. 낙수효과는 이론이 아닙니다. 하지만 낙수효과도 억울합니다. 이론인 척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선생의 비판을 들으면 억울하겠지요.
낙수효과는 선생의 “자유방임이론”이 정책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힘을 얻을려고 생산된 대중적 버전입니다. 이걸 일종의 혐오용어로 선생이 보신다니, 제가 좀 놀랐습니다. 우파에 계신 분들이 이 용어를 더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각종 정책토론에서 강의실에서 열정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낙수효과 지지자 한 분은 “시장을 통한 사회주의 실현”을 표현한 것이라 농담까지 하더군요.
낙수효과가 “자유방임이론”의 핵심을 정확히 묘사했다는 얘기입니다. (참고로 어느 좌파를 가리키는지는 모르겠으나, 좌파에게 “부자 벗겨 먹기”라 하면 싫어할 겁니다. 기분 나빠서 그런 게 아닙니다. 부정확하기 때문입니다)
바티칸에서는 자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 세금 문제입니다. 설마 “너나 잘해라”라는 의미는 아니겠지요. 그런 식이라면, 선생께서 오랫동안 옹호해 주셨던 월스트리트와 “1%”에 대해서 같은 얘기를 돌려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선생께서 이런 걸 모를 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낙수효과를 몸소 증명하는 교회이길 바라는 시민의 바람으로 하신 말씀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그 점이 바로 이번 교황 당신 스스로 정한 핵심과제입니다. “가난한 교회”가 바로 그것 아닌가요. 일련의 개혁조치에 대해서 선생께서 미처 소식을 듣지 못하셨나 봅니다.
교황께서 하시는 일에도 이런 미진한 부분이 어찌 없겠습니까. 바티칸 소식지를 선생께 정기적으로 보내드리라고 부탁드려 보겠습니다.
제네바에서
3류 경제학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