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성(sex)’을 논하는 것은 금기 사항이라 ‘성’만 얘기하면 모든 게 경직된다. 하지만 섹스는 억압과 외면, 그리고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 실제로 섹스는 사람들이 가장 ‘밝히는’ 행위다. 이 ‘밝힘’에 성별 차이가 없다는 연구들이 제법 제시되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섹스를 밝힌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억압, 외면하거나 타도하지 않고 장려 및 직시하며 보듬을 대상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만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섹스가 왜 이토록 혐오와 수치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는가? 여러분은 의문이 가지 않나? 나는 이게 궁금해 못 살겠다. 사실 나도 그 이유를 모른다.
글을 써 가면서 알아 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글을 쓰는 과정은 깊은 사유를 동반하는 동시에 많은 자료와 이론에 대한 공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불처럼 번진 ‘#MeToo 운동’을 보면서 섹스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를 느꼈다. 이제 한번 시작해보자. 나도 결론을 모른다.
1. 섹스에 관한 나의 개똥철학
사실 나 역시 ‘섹스학’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어 그런 걸 공부할 생각도 가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자가 아닌 이상 나도 20대부터 남 못지않게 실천해온 역전의 용사다. 제도적 지식경제학에서는 ‘사유에 의한 학습(learning by thinking)’만큼 ‘실행에 의한 학습(learning by doing)’도 중요하다. 실행을 통해 나도 좀 안다!
1.1 섹스의 형식적 조건
모두가 가장 바라는 섹스방식은 양자적이다. 곧,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의 목적은 즐거움, 곧 ‘쾌락’이다. 한 사람이 고통을 지고 다른 사람만 쾌락을 누린다면 그건 정상적인 섹스가 아니리라. 그런데 그 쾌락의 정도가 더 중요하다. 최고의 쾌락을 ‘오르가슴’이라고 부른다. 둘 다 오르가슴을 경험하면 가장 이상적인 섹스를 체험했다고 볼 수 있다. 둘 다 윈윈하면서 ‘지복(至福)’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지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가 자유의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억지로 강요하는 섹스는 고통만 가중할 것이다. 몸은 대단히 민감하다. 둘째, 두 사람이 서로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 권력의 차이가 존재하면 쾌락은 불균등하게 분배될 것이다. 정의롭지 못하다. 이 두 조건을 섹스의 ‘형식적 조건’이라고 부르자. 지복을 누리지면 이런 형식적 조건만으로는 불충분하다.
1.2 섹스의 실질적 조건 그리고 ‘도덕재’
그래서 두 가지 ‘실질적 조건’이 추가되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세 번째 조건이다. 사랑 없이도 섹스가 가능하겠지만 그건 동물의 몸짓일 뿐이다. 깊이 있게 사랑하지는 못하더라도 대다수 인간의 성적 교류는 둘 다 최소한의 ‘호감’과 ‘매력’을 전제로 깔고 있다. 사랑하면서 섹스가 이루어지는 것은 인간의 고유성이다. 넷째, 합일로부터 오는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희열, 곧 ‘사랑’ 외에 더 이상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아야 한다.
두 가지의 형식적 조건과 실질적 조건을 포함하는 이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섹스는 둘에게 지복을 가져다준다. 섹스라는 ‘재화’에 부가되는 핵심적인 고유성이다. 이 재화는 빵, 청바지, 자동차 등 보통재(normal good)와 다르다. 섹스는 도덕재(moral good)다. 동등한 지위를 갖는 자유로운 당사자가 서로 사랑하면서 정신적·육체적 합일과 쾌락, 곧 지복을 누리며 사랑 말곤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는 행위가 외면당하고 억압되는 것을 넘어 왜 타도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지 알 수 없다.
나처럼 역전의 노장, 늙수구리 꼰대가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의 아름다운 청춘남녀들이 불필요하게 이 ‘도덕재’를 혐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섹스를 도덕재로 기쁘게 소비하라. 물론 모든 게 과유불급이다! 쓰다 보니 이거 참 내 개똥철학의 결론이 이렇게 되네.
2. 돈으로 구매되는 섹스
7-8년 전이었나? 어느 학과 학과장이 내게 경제학 강의를 부탁했다. 학생들 사이에 명강의로 추천받았다는 것이다. 놀랐다. 우리 과의 적지 않은 학생으로부터 항상 기피대상이 되는 내가 그렇게 소문났다니! 학과장이 얼마나 홍보를 하며 애썼던지 당시 그 과는 우리 학교에서 입학성적이 가장 높았다. 강의해보니 실제로 수강학생들의 이해능력이 높고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내친김에 내 강의방식을 들이댔다. 무조건 암기하지 말고 문제를 제기하라. 대학의 강의실은 물리적으로 폐쇄되어 있어 육체의 자유를 심각히 제약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신의 자유를 무한히 허용한다. 자유를 누려라! 며칠이 지나고 ‘장자연 사건’이 터졌다. 잘 알듯이 소속사에 의한 성 성납 강요로 몸서리치다 성 상납을 받은 사회지배층을 고발하면서 장자연이라는 배우가 자살한 사건이다.
2.1 신고전학파경제학의 섹스시장
준비된 강의 내용을 유보하고 ‘성’과 경제학(economics)의 관계를 토론 주제로 제시해 보았다. 성이 시장에서 거래되어도 되는가? 성의 상품화를 경제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성 상품화를 반대하는 학생은 주로 상식적 차원에서 반론을 제기한 반면 그게 별 문제 될 것 없다는 찬성 쪽의 주장은 제법 탄탄해 보였다.
시장은 상품을 두고 수요자와 공급자가 각각 효용과 이윤을 극대화하는 곳이다. 시장에 대한 참가는 자유롭다. 효용과 이윤을 얻고자 하면 시장에 참가하고 그럴 의사가 없으면 시장에서 퇴거하면 된다. 자유의사에 따라 시장에 참여했으니 그들의 행위는 존중되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타인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 섹스시장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섹스를 수요하는 사람과 그 수요에 맞추어 그것을 공급하는 사람이 있음을 의미한다.
수요자는 ‘화대’를 가격으로 지불하면서 육체적 쾌락이라는 효용을 극대화하고, 공급자는 ‘인내’라는 비용을 감수하면서 이윤을 극대화하였다. 각각 효용과 이윤의 극대화를 달성했으니 만족스러운 것 아닌가? 이들은 바로 ‘파레토최적(Pareto Optimum)’에 도달했다. 파레토최적 상태에서는 타인의 행복을 해지치 않고 나의 행복을 증대시킬 수 없다. 곧, 모두가 최상의 행복을 만끽하기에 더 이상의 변동이 불가능하며 불필요하다! 따라서 ‘성의 상품화’는 문제 될 사안이 아니다.
2.2 신고전학파경제학, 섹스산업의 활성화
인간의 효용을 극대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여 ‘지복’을 누리기 위해 성 산업을 활성화함으로써 고용증대에 이바지하자. 성 시장 규제를 철폐하고 자유의사에 맡기자. 성을 자유롭게 팔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만들자. 재미 보면서 돈 벌고, 일자리가 늘어 소득도 높아지니 꿩 먹고 알 먹는 격이고, 임도 보고 뽕도 따니 그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신고전학파경제학으로부터 도출되는 성 산업 활성화 정책이다.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 섹스를 팔아라. 효용(쾌락)을 즐기고 싶은가? 섹스를 구매하라. 이 신고전학파경제학의 교훈에 따라 적지 않은 남성이 거리낌 없이 시장에서 성을 구매한다. 더욱이 돈 있는 자에게 ‘고품질’(!) 섹스는 무한정 공급된다. 경제학으로 성의 상품화는 간단히 설명될 뿐 아니라 오히려 장려해야 할 산업으로 승화되니 반대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놀라운 사실은 나 역시 할 말을 잃고 그 논리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자유인의 자유로운 결단,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자유로운 만남, 효용과 이윤의 극대화, 그리하여 쾌락과 소득의 극대화, 고용의 증대! 자유, 평등, 기쁨, 소득, 고용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단어가 없으니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이 동일한 무력감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2.3 섹스시장에 대한 제도경제학의 비판
그러나 섹스가 상품으로 거래되는 순간 앞에서 제시한 두 가지 실질적 조건이 충족되지 못한다. 가격이 지불되는 섹스는 지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진정한 섹스는 사랑 외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우스트』의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생의 쾌락을 추구해 보았지만 별 것 없었다. 결국 본래의 생을 돌아보고 구원받는 그는 인간이 진정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이야기하였다.
파우스트의 영혼 없는 쾌락은 섹스구매자의 사랑 없는 성행위와 유사하다. 나아가 상품으로서 섹스는 사랑을 동반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동물의 몸짓에 불과하다. 개돼지 안 되고 싶다면 섹스를 상품으로 구매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섹스가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면 섹스라는 재화가 갖는 고유성이 사라질 뿐 아니라 도덕재가 보통재로 타락하고 만다. 따라서 섹스는 시장에서 거래되면 안 된다.
자유로운 의사결정, 동등한 지위라는 두 가지 형식적 조건이 충족될 때도 이 결론은 변하지 않는다. 섹스는 도덕재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게 섹스하는 모든 당사자가 지복을 함께 누리는 방법이다. 섹스의 상품화는 ‘비도덕적’이다! 7-8년 내가 왜 이 말을 못 했을꼬? 경제학이 성숙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든 재화는 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신고전학파경제학에 매몰된 나머지 섹스가 보통재와 다른 속성을 갖는 도덕재임을 알지 못했다.
‘재화의 속성은 재화마다 다르다’는 제도경제학의 시각이 정리되지 못한 채 섣불리 토론을 진행하는 바람에 오히려 신고전학파경제학의 논리에 말려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공부하지 않은 선생이 똑똑한 학생에게 낳은 무지의 결과는 슬프다. 그 학생들은 성의 상품화, 그리고 보수정당의 성 산업 육성정책에 대한 확신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할 것이다.
3. 폭력으로 약탈당하는 섹스
섹스가 시장거래를 거쳐 소비되는 것만은 아니다. 시장에서 거래되려면 최소한 두 가지 형식적 조건은 구비되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동등한 지위’가 두 가지의 형식적 조건이다.
3.1 섹스시장의 공급 부족
섹스시장이 형성되었지만 사실 전체 피용자 수와 총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수요자와 공급자 수가 다른 보통재에 비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공급자를 ‘자발적’ 공급자와 ‘비자발적’ 공급자로 나눌 수 있겠다. 이것도 내 개똥철학으로부터 붙인 이름이다.
자발적 공급자란 다른 생존대안이 충분히 있는데도 성을 상품으로 공급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비자발적 공급자는 생존을 위해 또는 강제 때문에 성을 상품으로 공급하는 사람들이다. 요즘 내게 무시로 친구 신청하는 ‘섹알바’들이 전자에 해당된다면 생계와 납치, 사기, 부채 등으로 집창촌에 묶인 직업여성들이 후자에 속할 것이다.
비자발적 공급자 규모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자발적 공급자 수가 약간씩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는데,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수시로 ‘섹알바뛰기’를 권유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까지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상황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면 ‘총’ 공급자 수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섹스의 제한된 공급, 그것은 섹스시장의 본래 모습이다.
육체적 한계로 인해 성이 무한대로 공급될 수 없고, 돈 된다고 그것을 시장에 막 내놓는 막가파는 본래 많지 않다. 대다수는 섹스를 도덕재로 간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짝이 안 맞아 섹스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청년들의 슬픈 현실, 그리고 혼외섹스수요자, 껄떡거리는 ‘비아그라형 꼰대’로 인해 수요자는 많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현상, 곧 ‘공급 부족’이 일상화된다.
3.2 비시장영역에서 소비되는 섹스
공급이 부족하고 수요가 많아지면 일반 시장에서는 공급이 확대되겠지만, 섹스시장은 그렇지 못하다. 비록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지만 섹스는 본래 도덕재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시장을 넘어서는 ‘비시장영역’이 활성화된다. 비시장적 경로를 통한 섹스에 대해 우리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바로 사랑으로 매개되는 섹스다. 그게 안 될 때 강제가 동원된다. 그리고 강제적 섹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방법은 권력과 지위를 동원하는 것이다.
앞에서 본 바처럼 성은 시장을 통해 거래되지만 이 경우와 같이 지위와 권력을 통해 강간되기도 한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첫째, 폭력으로 탈취됨으로써 공정성이 훼손된다. 강간은 정의롭지 못하다. 둘째, 피약탈자의 육체는 크게 훼손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된다. 쾌락은커녕 고통만 지게 된다. 지복은 고사하고 개인에게 평생 고통과 한숨만 안겨 줄 뿐이다. 강간은 고통스럽다.
4. 누가 구매하고 약탈하는가?
‘보통재’로서 섹스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두 가지 방식으로 소비된다.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매되는 방식과 비시장에서 폭력으로 약탈되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섹스를 시장에서 구입하는가?
4.1 시장을 통한 고품질 섹스의 소비
일반인들은 조직의 ‘공돈’으로 성을 구매한다. ‘룸살롱’으로 대표되는 유흥주점은 유흥과 접대를 위한 대표적 공간이며 종종 ‘2차’(!)로 이어진다. 2016년 기분 대한민국의 유흥업소 종사자는 13만 9,904명이고 이들에게 한 해 동안 지급되는 총금액은 1조 9,151억 5,000만 원이나 된다. 공급이 제한되는 상품의 가격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중 고품질 상품의 가격은 매우 높다. 아무나 못 산다. 재력가와 그에 기생하는 수요자들만 구매할 수 있다.
따라서 ‘고품질’(!) 섹스의 주요고객은 주로 재력가들이다. 숨겨놓은 첩을 거느리는 고관대작, 동영상에 찍힌 이건희 삼성회장, 질펀한 섹스파티 의혹을 받는 김학의 전 법무차관과 그 무리들, 배우 장자연을 성 노리개로 삼은 저명인사들, 영화 〈내부자들〉에서 벌거벗은 채로 룸살롱 회동 중인 기업·언론·정치인이 섹스를 고액으로 구매하는 사례다. 이 모두는 섹스를 도덕재로부터 보통재로 타락시켜 버리는 주범이다.
4.2 권력을 통한 섹스의 약탈
성이 강압에 의해 약탈당하는 현실은 너무나 잘 알려졌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의 ‘치안전망 2018’ 보고서에 따르면 강간·강제추행 사건이 2014년 2만 1055건, 2015년 2만 1,286건, 2016년 2만 2,193건으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나타냈다. 최근에는 권력으로 성을 약탈하는 사례가 속속 드러났다. 고은, 이윤택은 물론 안희정까지 모두 충격적이며 더욱이 김기덕과 조재현은 실로 엽기적이다. 그런데 일반인, 재력가, 예술가 모조리 남자다.
5. #MeToo와 ‘좋은 경제’
섹스를 주요 소재로 선택했지만 의도적 성추행과 ‘터치’, 무심한 행동, 음담패설, 시대착오적 행동, 나아가 문화적 성차별도 마찬가지다. ‘어른’으로 존경받아야 할 찬란한 몇몇 남자를 제외한 모든 남자가 석고대죄해야 한다. 그리고 성찰하며 언행에 조심해야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성찰의 기준은 분명하다. 섹스는 보통재와 같이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면 안 된다. 그것은 구매의 대상이 되면 안 되는 특수한 속성을 지녔다. 따라서 섹스가 상품으로 진화하면 섹스는 타락한다. 섹스는 도덕재로 남아 있어야 한다. 나아가 성을 폭력과 권력으로 약탈하면 안 된다. 그러한 행동은 정의롭지 못하며, 타인에게 엄청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엽기적이고 무서운 행동이다. 섹스는 최소한 정의롭고 자유로워야 한다.
이처럼 도덕과 정의, 그리고 자유가 간직되는 경제는 ‘좋은 경제’다! 좋은 경제에서 섹스는 시장과 폭력, 권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매개된다. 섹스는 동등한 지위를 가진 자유인들이 사랑을 기반으로 즐거움을 공유하는 행위이며, 사랑 말곤 어떤 대가도 지불되어서는 안 되는 행위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섹스하지 마라. 반면 이런 조건이 충족된다면 즐겁게 하라.
단, 과유불급! 물론 우리 같은 늙수구리들은 제외다. 비아그라형 꼰대처럼 그런 거 너무 밝히면 추하다. 이런 성찰을 마다하고 헛소리하는 양반을 보니 남성으로 더 부끄럽다. 홍준표 왈, “안희정 사건, 임 실장이 기획했다는 얘기가 돈다.” 아, 얼굴에서 쌍심지가 사라지지 않는 이 꼰대 얼굴을 안 보는 날만 기다린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 남자에겐 비록 불편할지언정 #MeToo 운동은 촛불 혁명만큼 위대하다! ‘재화의 속성은 재화마다 다르다’는 전제와 더불어 ‘좋은 삶(eudaimonia)의 전통’에 따르는 제도경제학에 따라 써 보니 이런 결론이 도출된다. 부끄럽다. 그래도 #MeToo, #WithYou.
원문: 한성안 교수의 경제학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