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말하셨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어려서부터 지켜온 나의 꿈… 그것은 하루 종일 먹고 마시면서 편하게 사는 것이다. 학생 때는 소박했던 이 꿈이 사실은 노벨상을 급식 먹듯 타는 것보다 어려웠다. 생각해보자. 종일 음료수나 마시면서 감상문 몇 편 쓰는 직업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응?).
하지만 과거에는 ‘마시고 벌기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와인 사랑이 넘쳐났던 유럽에서는 와인과 관련된 독특한 직업들이 있었다. 오늘의 그 꿀알바… 아니, 역사 속의 이색 와인 직업을 소개한다.
로마: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포도를 심을 뿐이다
포도 병사
- 장점: 전장에서 가장 안전한 군인
- 단점: 퇴역할 때까지 살아 있어야 시켜줌
로마 병사들은 하루에 1리터씩 와인을 마셨다. 그것은 군령이었다. 전투가 있는 날이면 2리터를 마셔야 했다. 오늘날로 치면 와인 3병을 마신 후 칼부림을 한 것이다. 로마에 취권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와인이 병사들을 용감하게 해준다고 믿었다.
위생문제도 겹쳤다. 이탈리아반도를 정복하고 내륙으로 진출한 로마 병사를 방해하는 최대의 적은 ‘물’이었다. 유럽의 물에는 석회질이 들어있어 잘못 마시면 배탈과 폭풍 설사가 이어졌다. 때문에 로마 병사들은 목이 마르면 와인을 물에 타서 마셔야 했다. 모름지기 술에 취한 군대가 설사가 터진 군대보다는 나은 법이니까.
문제는 하루에 한 사람이 1리터를 마시는 와인을 들고 이동하는 일이었다. 피크닉이 아니라 군대가 움직이는 일이었다. 결국 로마 병사들은 출정을 할 때 포도나무를 들고 떠났다. 그리고 유럽 곳곳에 포도밭 멀티를 만들기 시작했다. 포도 농사와 와인 제조는 섬세한 작업을 요구했다. 때문에 포도를 담당하는 역할은 퇴역군인이 맡았다.
프랑스의 보르도, 부르고뉴를 비롯한 유럽의 와인 벨트(Wine Belt)가 바로 포도 병사가 지은 포도밭 멀티였다. 유럽을 정복한 로마는 망했어도 로마의 포도 병사가 심은 포도나무들은 여전히 유럽을 정복한다.
프랑스: 와인이 왔어요! 새로 나온 와인을 맛보세요!
고함치는 사람
- 장점: 소리만 지르면 합격
- 단점: 완판 못 하면 성대결절
로마의 포도 병사가 들여온 포도나무는 중세 유럽의 가장 귀중한 자산이 된다. 수도원은 1년 내내 와인을 가지고 미사를 드려야 했고, 왕과 귀족은 포도농장을 통해 권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프랑스 왕은 몽마르트르 언덕과 루브르궁전에 심은 포도나무로 와인을 만들어 백성에게 내려주기도 했다.
‘메이드 인 킹’ 궁궐에서 만들어진 와인은 선술집에 도착한다. 이때 선술집은 세상이 흔들리게 “프랑스 와인 만세!”를 외쳐야 했다. 이것은 일종의 판매허가 절차였다고 한다. 선술집에는 왕 다음에 영주, 수도원장이 내린 와인이 온다. 선술집 사장은 의전서열에 맞춰 소리 질러야 했다.
결국 선술집 사장들은 ‘고함치는 사람’을 단기 고용한다. 그들은 하루에 2번씩 고함을 질러야 했고, 병과 잔을 들고 거리에 나가 와인을 소개했다. 일종의 영업직이었다.
고함치는 사람은 장례식을 치를 때도 와인이 함께했다. 떠나가는 그의 관 뒤로 후임으로 들어온 고함치는 사람 두 명이 와인과 잔을 들고 따라간다. 그리고 그가 묻힌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와인을 나눠주었다. 고인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모두 그 자리에 모여 와인을 시음했다고 한다.
프랑스: 포도 주자는 언제나 달리고 싶다
포도 주자
- 장점: 주인이 외출 시에만 일함
- 단점: 안 나가도 고생, 집 나가면 X고생
프랑스의 와인 사랑은 ‘포도 주자’라는 창조적인 직업을 만든다. 포도 주자는 와인과 빵 등 음식이 담긴 쟁반과 바구니를 들고 주인을 따라다니는 직업이다. 일종의 와인 셔틀이랄까?
베르사유의 마지막 장미라고 불리는 ‘마리 앙투아네트’도 포도 주자가 있었다. 그녀로 말하자면 파이퍼 하이직(Piper-heidsieck)이라는 최애 샴페인이 있었을뿐더러, 와인을 욕조에 부어 피부에 양보할 정도로 부자였다. 루이 16세는 그녀가 사냥을 가거나 여행하다가 배가 고플 때를 대비해 포도 주자를 고용했다.
안타깝게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포도 주자는 뛸 일이 없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소식가였기에 식사시간 외에 포도 주자를 부를 일이 없었다. 거기에다가 사냥과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결국 그녀의 포도 주자는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유럽의 일자리 창출, 와인이 해냅니다
유럽에서 와인은 음료가 아닌 문화 그 자체다. 한 모금이라도 더 완벽하게 마시고 싶은 그들의 와인 사랑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고 그러한 시도가 문화적 토양이 되었다. ‘무엇을 좋아하는가’보다 일단 ‘취업’ 자체에 목적을 두는 우리 사회도 작은 취향을 기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원문: 마시즘
참고문헌
- 최영수 외, 『와인에 담긴 역사와 문화』
- 고형욱, 『와인의 문화사』
- 이기태, 『와인 상식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