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음악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함께걷는아이들’
“보통의 아이들에겐 음악이 취미이거나 사치일지 몰라도 그들에겐 하나의 대안적인 삶입니다.”
- 유원선 ‘함께걷는아이들’ 사무국장
지역아동센터를 다녔던 우영(가명, 18세) 군의 어릴 적 별명은 ‘아메바’였다. 그는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무기력하게 늘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탓에 원시 생물인 아메바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4년 전 그의 손에 타악기가 쥐어지자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던 아이가 스스로 연습실을 예약하고 꾸준히 연습하더니 전국음악캠프에서 베스트 연주상을 받은 것이다. 더욱 놀란 건 그가 심사위원들로부터 성실상 후보로 지목됐다는 점이다. 유원선 함께걷는아이들 사무국장은 그것이 바로 음악이 주는 힘이라고 했다.
“저소득층 아이들의 문제는 산만하다거나 폭력적인 것이 아닙니다. 무기력증이 가장 심해요. 음악은 아이들에게 큰 힘과 위로를 주는 것 같아요. 공부를 못한다거나 소심해 눈에 띄지 않던 아이들이 학교에서 칭찬받고 주목받는 경험을 하면서 삶에 변화가 오는 것이죠.”
친구들의 호기심에 찬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네가 악기를 연주한다고?”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정말 청와대에서 공연해 본 적 있어?” 우영이는 점점 활달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전국 10개 관악단 운영… 악기 대여·전문가 레슨 무상 제공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은 전국에 걸쳐 10개의 관악단을 운영한다. 지역아동센터가 주축이 돼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3에 이르기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이 가운데 서울 은평, 경기도 안양군포, 경남 김해 관악단 3곳은 5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서서히 독립할 채비를 갖췄다.
재단법인이 직접 운영하는 상위 관악단(Honour Orchestra)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다. 세월이 흘러 졸업생이 생기면서 오빠·언니란 뜻이 담긴 오니 관악단도 탄생했다. 이들을 아우르는 이름은 모든 아이를 위한 오케스트라라는 뜻의 ‘올키즈스트라’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이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으로 2010년부터 하고 있다.
아이들은 전문 강사의 지도 아래 악기 연주법을 익히고 합주 연습을 한다. 음악캠프와 연주회를 통해 다양한 무대에 설 기회도 갖는다. 연주 봉사라는 나눔 무대를 통해 배려와 소통을 배워간다. 악기 대여부터 연주회까지 전 과정은 무상으로 제공된다.
음악이 준 선물… 자존감과 꿈꿀 권리
“소심하고 무기력했던 아이들, 낯가림이 심했던 아이들이 활달해지고 성장하는 것이 너무 신기합니다.”
지역 오케스트라를 맡은 선생님들의 공통된 이야기이다. 함께걷는아이들이 운영하는 ‘올키즈사회실천연구소’는 의미 있는 결과물을 꾸준히 발표했다. 음악을 접한 아이들은 자존감과 친구 관계,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뚜렷하게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아이들은 학교에서조차 음악을 접할 기회를 점차 잃어가요. 가정 형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음악과 단절된 아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신나는 음악 경험을 선물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 김나희 기획경영팀 간사
전공 희망자에게 3년간 최대 1,500만 원 지원
저소득층 아이들이 음악 전공을 꿈꾼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주변에 음악 전공한 사람 보기도 어렵고 부모들은 어서 졸업해 취업하길 원한다. 함께걷는아이들은 음악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오디션을 거쳐 장학금을 지원한다. 연 500만 원씩, 3년 동안 최대 1,500만 원이다. 또한 전공 레슨 선생님을 구하기 어려운 만큼 뜻있는 선생님들을 수소문해 연결해준다.
전공 지원 수혜자 1호인 기훈(가명, 24세)이는 춤과 노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는 뒷전이었다. 고3 올라갈 무렵 갑자기 트롬본을 전공 하고 싶다고 했고 부모는 ‘무슨 음악이냐’며 뜯어말렸다.
“지역센터 선생님께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저 아이가 저렇게까지 뭘 해보겠다고 해본 적이 없다며 가능성이 있다면 좋은 대학이 아니더라도 그 아이에게 희망을 주게 될 것이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시작한 전공 지원 사업은 올해로 17명의 수혜자가 나왔고 그중 11명이 음대에 진학했다. 기훈이는 군대도 군악대로 다녀왔고 복학 후 오니 관악단의 조교로 활동한다. 유 국장은 전공 지원을 받은 아이들 연주회에 가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의 지원을 듬뿍 받고 자란 것이 눈에 확 띄어요. 우리 아이들은 후원금으로 버텨온 나날들이지만 그 틈에서 모든 걸 이겨내는 힘과 의지가 보여 기특하기도 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나눔 악기 5,926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전달
지난해 올키즈스트라 사업에는 약 8억 5,000여만 원이 소요됐다. 음악이 아이들에게 신나는 세상을 선물해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200여 명의 정기후원자가 든든한 버팀목이다. 여기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나 기업들의 사회 공헌 활동이 보태져 뒷심을 발휘한다.
함께걷는아이들은 2013년부터 악기 나눔 캠페인 올키즈기프트를 진행했다. 악기가 없어 음악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악기 나눔으로 음악을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바이올린과 기타, 플루트, 우쿨렐레, 오카리나, 트럼펫 등 총 5,926개의 악기가 기증돼 아이들에게 전달됐다.
2016년 함께걷는아이들은 ‘우리들의 낙원상가’와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우리들의 낙원상가는 악기 기부자를 연결해주고, 나눔 받은 중고 악기의 수리와 조율을 재능기부로 도맡는다.
함께걷는아이들은 2년 전 우리들의 낙원상가 소개로 일렉기타와 통기타 411대를 삼아프로사운드로부터 기증받아 지역아동센터와 그룹 홈, 청소년 쉼터, 방과 후 아카데미 등 177개 기관에 전달했다. 여기에 우리들의 낙원상가는 매년 1,000만 원 상당의 새 악기를 구입해 함께걷는아이들에 전달한다.
“전국의 지역아동센터가 5,000개가 넘습니다. 한 곳에 평균 20-30명의 아이들이 있으니까 숫자로는 10만 명이 넘지요. 우리는 매년 어떤 악기들이 필요한지 논의한 후 악기 나눔을 진행합니다.”
우리들의 낙원상가는 오는 4월 30일까지 ‘반려악기 릴레이 캠페인’을 진행한다. SNS에서 나만의 반려악기를 소개하거나 손글씨로 캠페인을 지지하는 글을 올리면 콘텐츠 1개당 1,000원이 적립된다. 글을 올린 사람이 다음 캠페인 주자를 지목하는 릴레이 방식으로, 참여자가 5,000명에 이르면 우리들의 낙원상가에서 ‘함께걷는아이들’에게 500만 원의 기금을 전달한다.
올키즈스트라의 목표는 재능 있는 음악가 양성이 아니다. 누구나 음악을 즐길 기회를 얻는 것이다. 학교에서 주눅 들고, 집에서도 하고 싶은 걸 지원해주지 못하지만 음악 활동을 하며 친구도 만나고 무대에 서기도 하면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반려악기 릴레이 캠페인은 모든 아이가 환경에 상관없이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길로 안내하는 등불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고귀한 선물이기도 하다.
원문: 이로운넷 / 필자: 백선기 / 사진 제공: 함께걷는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