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분노 사회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인 분노가 너무도 작은 것들에서 싹튼다. 가족은 물론이고 동료나 친구, 처음 보는 이에게도 사소한 이유로 화를 낸다. 의학·과학적으로 정의된 개념이 없는 ‘분노조절장애’가 한국에서는 하나의 ‘질병’으로 여겨진다. 조절되지 않는 분노는 ‘비정상적 폭력’으로 둔갑해 대개 강자가 아닌 약자를 향한다.
아파트 주민이 밧줄을 잘라 건물 외벽노동자를 살해한 사건에서 밧줄에 생명을 의지한 채 아파트 외벽에 매달렸던 노동자는 이 비정상적 폭력의 피해자였다. 10대의 잔인함에 전 국민이 경악한 부산여중생 폭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피해 여중생은 이미 1차 폭행을 당한 상태에서 경찰에 신고했으나 보호를 받지 못해 2차 폭행을 당했다.
이 사건들의 가해자 역시 같은 계층의 약자라는 점이다. 밧줄을 잘랐던 40대 남성은 자신이 살해한 외벽노동자와 같은 육체 노동자였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갔다가 일감을 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일하던 다른 노동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의 가해 학생은 가정의 보호가 절실한 미성년자였다. 어머니와 언니에게 지적장애가 있어 아버지와 할머니가 생계를 위해 새벽부터 집을 비웠다고 한다.
프랑스 사상가 프란츠 파농은 약자끼리 행사하는 폭력을 ‘수평폭력’으로 규정하고 그 원인으로 ‘수직폭력’을 지목했다. 알제리 독립운동에 헌신한 파농은 알제리 국민 사이에서 자주 벌어지는 충동적 살인과 폭력범죄의 원인을 연구했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그는 자신이 치료한 알제리인들의 기록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그들의 폭력성은 유럽인들의 주장처럼 그들이 선천적으로 저열하고 범죄성향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한 프랑스의 알제리를 향한 수탈과 폭력 때문에 발생한다고 결론지었다. 파농의 분석결과는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 수평폭력의 원인과 같다.
한 사회에서 가해지는 폭력의 일반적인 구조는 수직적이다. 상위 계층에서 권력을 쥔 자가 하위계층에게 수탈과 폭력을 가하는 구조다. 이 수직폭력을 당하는 일반 시민이나 약자는 폭력의 근본을 보지 못한 채 고단한 삶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그래서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내가 불편하다’ ‘내 것 빼앗긴다’는 심리로 충동적인 폭력이 표출되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보수 기득권층은 수평폭력을 조장한다. 수평폭력의 원인이 자신들이 가하는 수직폭력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약자들이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선동한다. 그들이 ‘동성애는 전염병이야’ ‘국민의 삶이 고달픈 것은 좌파정부 때문이야’ 등 분열의 언어를 열심히 구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해자들의 폭력이 정당하다고 감싸려는 게 아니다. 가해자들의 행동은 무거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하고 분노하면서 수평폭력을 부추긴 수직폭력의 가해자들에게도 분노해야 한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안형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