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보통 순간의 기억 혹은 추억을 의미하고, 좋은 기억만 연속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만족은 삶을 되돌아보거나 그동안 해왔던 일 혹은 생활이 전반적으로 평탄했음을 되돌아보는 회한에 가깝다. 결국 여러 종류의 질과 양이 다른 행복이 모여 삶의 만족을 끌어내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커리어 상 어떤 선택이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줄까… 답은 없다. 그 답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대신에 우선 세상과 커리어에 대한 관점부터 바꿔보자.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사회(社會), 그 속의 구성원을 갑 또는 을로 나누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단지, 다 같이 먹고살기 위해 더불어 살아가라고 배웠지만 어른이 된 이후 경험한 세상에서 본질적으로 상생의 삶을 실천하는 이들은 극히 일부의 종교인뿐이라는 사실을 쉽게 발견했다. 세상은 학교에서 알려준 대로 돌아가진 않는 게 분명하고 학교에서 배운 거로는 더 이상 먹고살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중에 영원한 ‘갑’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최근에 다시 알게 됐다. 물이 고이면 썩고 지배 권력도 마찬가지다.
2017년 우리는 전 세계가 놀란 일을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광장으로 몰려나와 우리가 사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라고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가 믿었을 것이다. 언젠가 어떤 이유로든 바뀔 것이라고 말이다. 수없이 반복된 역사가 그래 왔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계급 다툼이 그랬고,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이 그래 왔다. 두 계층 간의 끊임없는 갈등은 그동안의 역사가 반증한다. 혁명 또는 쿠데타를 통해 상호 간의 위치가 바뀌거나 새로운 지배계층이 등장하기도 했다.
영원한 승리자도 영원한 패배자도 없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 바뀐다는 것이고, 우리에게도 그럴 만한 기회가 온다.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비즈니스상에서 ‘슈퍼 을’을 꿈꾸는 사람 중 하나로서 그런 세상 또는 기회가 오기를 바라고, 스스로 그런 이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조직 안에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고, 조직을 나와서도 그 선택을 유지하도록 조직 안에서 갈고닦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나오면 고생이다. 그렇지만 그 고생을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관점만 조금만 바꾸면 새로운 기회가 보인다. 평소에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만 비로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대신에 조직에 있을 때 무언가를 들고나와야 한다. 떳떳하게 밖에서도 통할 만한 것으로 말이다.
줄 서기에 따라 생존과 행복이 결정되던 세상
“줄을 잘 서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다. 직장에서도 여지없이 통한다. 누구 밑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는가에 따라 리더의 권한과 책임, 조직 내 파워가 달라지고 조직 속 내 생존과 행복에도 직결되기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 IMF 이후 ‘평생직장’에 대한 개념이 점차 퇴색했다.
- 정보의 투명성으로 모든 직급의 레퍼런스 평가가 가능해졌다.
- 매해 사업평가 후 개인평가에서 이어지는 인력상 구조조정은 희망퇴직으로 이어졌다.
개인은 자신의 성과와 성취의 연장의 가능성에 따라 직위(직급)이 결정된다. 결국 개인은 살아남기 위해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사내 및 팀 내 경쟁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협력과 협업은커녕 질투의 온상이 되었다. 일 잘하기 위한 실력을 갖추기보다 당장의 조직 속 생존을 연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변화했다.
자연스럽게 인사권을 가진 이에게 어떻게 해서든 잘 보이려는 움직임만이 조직에 남았다. 어느덧 평소 성실한 태도로 읍소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정치 우월적 세상이 되었다. 피터의 원리(Peters Theory)에 나온 현상이 그대로 벌어진 것이다. 실력 안에 정치력이 포함되었고, 그것이 올라갈수록 중요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조직에 기생한 삶은 행복하기 어렵다
줄 서기는 모두가 불안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각자의 선택이기도 하고, 나름 잘 보이기 위한 것,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올라가는 문은 늘 한정되어 있다. 거기서 떨어진다면, 혹은 점차 멀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애석하게도 위로 올라가려는 이들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 그저 올라가거나, 그런 기회가 나에게 올 때까지 끊임없이 기다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나에게도 올까?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여기서 나가면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그렇다면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한 번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았던 질문에 답을 해야 하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냥 안에서 가만히 있다. 불안하기에 납작 엎드릴 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버틸지 의문이다.
기업은 매해 사업평가에 이어진 대규모 정리해고를 손쉬운 비용 절감의 기회로 이용하기도 한다. 수많은 대기업에서 매해 40대 이상의 차장급 인력에게 3년 연봉을 미리 주는 퇴직금 옵션을 제시하면서 퇴직을 유도했다. 최근 GM 또한 이를 볼모로 정부로부터 지원금 삥(?)을 뜯으려 했다. 그 외에도 많은 기업이 이런 행위를 계속해서 해왔다. 행위 자체를 질타하자는 것이 아니다. 조직의 생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다만 그로 인해 희생되는 개인의 미래와 행복은 어떻게 또는 누가 보장해줄까 하는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노사의 협의 아래 이뤄진다고 해도 일부 개인들이 희생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의식에서부터 벗어나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남도록 고통을 분담하거나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조직에 기생하려는 우리의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것이 직장 속 행복의 시작이다.
조직은 결코 개인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조직의 생리에 맞추면 신입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차·부장급의 저성과자(C-Player)를 억지로라도 내보내기도 한다. 현대의 조직은 비용 절감과 업무 효율 및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인사상 조치라고 말하면서 매년 그렇게 한다. 그 선택으로 고위급 인력 한 명당 최대 신규인력을 2-3명까지 채용할 수 있고, 신입들의 업무 생산성이 몇몇의 관리직(시니어 레벨)을 초월했다고 평가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또한 수평적 조직 문화의 발전으로 인해 더 많은 관리직이 필요 없어지면서 소위 임원급 승진에서 물을 먹은 아버지 세대는 회사를 더 다니고 싶어도 더 다닐 수 없다. 학교라면 기분 좋게 졸업이라도 할 테지만 회사는 졸업하면 그 길로 끝이다. 그러면 여기서 가까스로 생존한 이들, 조직에 남아있는 분들은 행복할까?
NO라고 말하고 싶다. 살아남더라도 희망퇴직 제의를 거부한 몇몇 인원을 본래 보직이 아닌 일부 영업직 및 성과를 내기 어려운 직무로 이동시켜 일종의 ‘벌’을 세우기도 했다. 권고사직이 아닌 자진퇴직을 유도하고, 각종 치열한 업무 평가를 통해 결국 내뱉는 것이다. 이는 조직이 생존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행해진 일종의 고인 물 걷어내기 방식이다.
정리해고는 조직이 생존하기 위해 개인에게 행하는 편법이자 하나의 방편이 되고 새로운 인력(바람)을 받기 위한 계기이자 비용 절감 전략에 의한 인건비 최소화 정책으로 확장되었다. 결국 제 살 갉아먹기 식으로 진행되어 자멸하는 조직도 많이 나타났다. 당장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물론 직장을 잃는 것, 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다면 슬픈 일이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탓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지금 다니는 조직에 충성한 죄 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때로는 죄가 된다. 조직을 더욱 영악하게 이용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적어도 조직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조직 자체를 손해 보는 선택은 하지 않는다. 그 책임은 개인이 지는 것이지 결코 조직에서 져주지 않는다. 개인의 행복은 본인 스스로 좇아야 한다. 조직 안에서도 밖에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주고받는 이, 상황, 사건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직 밖에서의 행복은 조직 안으로부터 시작하자
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해 조직 안에서 미리 준비하라고 꼭 이야기한다. 자신이 경험하는 일을 통한 행복 속에서 나름의 적성 찾기를 멈추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가급적 ‘행복하면 생존 가능하다’에 걸라고 말한다. 꼭 조직 안에서 생존할 필요는 없다. 지금 걸어가는 삶 속에 ‘이런 삶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말하고 싶다. 조직 안의 본인이 하는 일에서 힌트를 얻어 스스로 세운 직장(직업)으로서 온전히 직장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
수십 년을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서 토사구팽당하면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다. 결국 계속해서 경제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재취업 혹은 이직하거나 자영업자로 변신해 결국 기존의 자신이 꿈꾸던 삶과는 멀어진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지금 세상이 그렇다. 너무나 빠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 현 주류 혹은 유행의 리드는 아니지만 적어도 왜 그런 흐름이 밀려오는지 이해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부류다.
어쩌면 생각의 폭을 단순히 조직 내 생존이 아니라 정글 같은 사회에서의 생존으로 넓혀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때로는 고립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한 삶일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특정 조직에 들어가서 일하는 선택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바라왔던 일을 하는 사람이 적은 현실에서는 더더욱, 지금의 선택이 최선이 아닌 차선 또는 차악의 선택이 아니기만이 절실하다. 조직이 잠시 삶을 책임져주지만 언젠가는 날 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조직 안에서 조직 바깥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어른들의 이야기도 답이 아닐 수 있다
간혹 이런 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듣는다. ‘대학만 가라, 대학 가면 뭐든 다 할 수 있다, 멋진 여자(남자) 친구도 생길 거다.’ 취업할 때가 되면 이렇게 바뀐다. ‘취업만 해라, 취업하면 돈도 벌고 지금 더욱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 이런 말을 하는 분에게 어느 누가 어느 정도 동조할까 싶다. 세월이 흘러 지금 젊은 세대가 명예퇴직을 앞뒀다면 그때는 뭐라 말할까? ‘명예퇴직하지 마라, 잘만 버티면 임원(생존)을 할 수 있다, 조금만 버텨라.’ 버틴다고 가능할까?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자신이 가진 역량과 실력, 흥미, 커리어 상의 비전(이미지)을 최대한 살려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투리 시간을 만들어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어쩌면 숨은 적성과 재능을 직장 속 경험을 통해 발견하고, 이를 내가 하려는 비즈니스와 연결하는 일이 될지 모른다. 그것이 행복할 것이고, 중장기적 관점의 생존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때 조직 안에 있건 밖에 있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조직 안에 있을 때 비즈니스 생존력(전문성)과 시스템 구축 및 운영 능력을 키운다면 더 향상된 행복을 누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행복한 커리어를 위해 고려해야 할 몇 가지
1. 개인의 행복 속에 조직을 담아보자
조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서양과 동양은 ‘우선순위’의 차이를 보인다. 자기소개할라치면 한국인을 포함한 대부분 동양인은 자신이 몸담은 조직부터 말한다. ‘○○○○에 다니는 부장 △△△입니다.’ 하지만 서양인은 자신의 이름이나 닉네임, 기호, 취향 등에 집중해서 말한다.
만나 본 외국인 친구들은 누리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행복의 이미지가 소속된 조직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지 않을 때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과감히 그만두었다. 늘 커리어 선택에서 개인의 행복이 조직의 행복 위에 있었다. 조직보다 자신이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문화적으로 내재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한국 젊은 세대가 그런 문화를 받아들이며 당장 눈에 보이는 몇몇 가치에 반응하다가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남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경우를 과거보다 심심치 않게 본다.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나만의 행복 속에 조직을 담아보자. 필요 또는 목적에 의한 선택만큼 합리적인 것은 없다.
2. 커리어 상 행복을 위한 나만의 가치 우선순위를 갖자
아이러니하게도 이직 사유를 물어보면 늘 1위에 ‘연봉’이 올라오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직은 당장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몸값을 오판해 때로는 무리한 시도를 한다. 이런 부분에서 여전히 자본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인식한다. 나조차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연봉보다 좀 더 자기중심적 가치에 집중해 커리어를 선택해야 한다.
중장기적 생존을 위해 성장 가치를 중시하고 눈에 보이는 성장보다는 내적 성장을 요하는 것이다. 현실을 희생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연봉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커리어 상의 가치, 여러 조건 중 비전이 커리어 상 선택에 더욱 높은 순위를 차지해야만 더욱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먼 미래일지 모르지만 자신이 목표로 한 연봉 혹은 경제적 보상을 얻는 일이 더 많아지는 사회가 오길 바라며 오늘도 노력한다.
3. 고정된 커리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이제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진로를 단순화시키기 어려운 시대이다. 과거처럼 정해진 길도 없을 뿐 아니라,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시기나 유행이 지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불확실한 것에 올인할 수 없지 않은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스스로에 대한 확신뿐이다. 내 커리어에 확신을 갖고 남이 아닌 어제의 나와 경쟁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우선적으로 일을 사랑하는 것이 선행조건이다.
커리어 상의 행복에서 무엇을 우선시해야 할지 개인이 가진 가치관에 달렸다. 다만 직장을 여러 번 옮겨본 이들이 말하는 기준은 결국 자신의 ‘행복’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무엇에 집중하고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서 모든 선택은 열려 있다. 오히려 닫힌 선택으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닫아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안전성 또는 안정적인 직장만을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그 직장을 떠나는 순간 가장 큰 불안감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자신의 커리어 상 목표 또는 비전을 질문을 통해 수시로 점검하자
그래서 커리어 상의 방향과 단계에 대해 늘 고민해야 한다. 가끔은 커리어를 되돌아보고 잘 가고 있는지, 현 조직에서 나를 어떻게 성장시키고자 하는지, 현재 가진 경험과 실력으로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그 일은 내가 그리는 커리어 상 비전에 얼마나 가까운지 등을 그려봐야 한다. 다소 모호한 부분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답이 없는 문제에도 답에 가까운 것을 때로는 내려야 한다. 커리어가 그렇다.
평소에 관리하지 않으면 삶에서도 일에서도 주도권을 조직에 빼앗기거나 점차 잃어갈 수 있다. 커리어 상 원하는 모습 또는 목표를 일하는 행복 또는 생존의 기준을 통해 늘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매 순간의 갈림길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가져야 할 기준은 스스로의 행복이다. 평소에 자신의 결정에 후회가 없도록 충분히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과 생존을 위해, 평범한 우리들의 선택은?
불완전해서 불편한 세상에 편하게 사는 사람은 몇 없다. 그러려니 사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은 없다. 마치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 속 도인처럼 수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들어가서 세상과 단절하면서 살면 혹시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용기는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조직에서 나와서 창업을 하거나 자신의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나름의 전문가 혹은 지금 몸담은 직무의 스페셜리스트로 조직 내에서 자리매김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다양한 경로와 채널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이 곧 생존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의외로 전문가는 높은 수준의 기술이나 테크닉을 요하지 않는다. 함께 일하는 이들과 일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을 통해 행복감을 가져가고 다른 이를 설득해 이런 철학과 가치를 실현하는 이들을 말한다. 꼭 특별한 학위 또는 남들이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전문적 영역이 아니어도 좋다. 조직 없이도 일을 만들며 일로부터 얻는 행복이 뚜렷하면, 그저 묵묵히 오래도록 일하면서 행복감을 오래도록 이어가면 그만이다.
나는 어떤 영역에서 어떤 경험을 통해 어떤 커리어를 갖고,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어떤 전문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여기에 답을 찾아가야 한다. 평소에 말이다. ‘어떻게 해야 행복할까?’보다 ‘어느 편에 서야 생존할까?’라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하는 세상에서 직장 속 개인의 행복을 존중하는 세상으로 가기 위한, 보통의 우리가 생존하고 행복해지는 길을 찾기 위한 유일한 질문의 답이다.
원문: 김영학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