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아이템이 ‘재화’인 시대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아이템들이 있다. 억대를 호가하는 가격으로 사회적으로 물의(!)까지 일으켰던 무슨 황의 무슨 검이라든지, 악마 때려잡는 어떤 게임의 이런저런 전설 무기라든지.
한때 게임 아이템은 무형의, 게임 속에서만 존재하고 또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이유로 재화로서 취급받지 못했다. 게임 아이템을 현금을 주고받고 거래한다는 것이 사회 문제인 것처럼 여겨졌을 정도.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예전처럼 그렇게 분명히 나뉘지 않는다. 어떤 게임의 어떤 아이템이 굉장한 가치가 있다는 걸 설명하기에 제일 좋은 방법은 그게 얼마에 거래된다는 것이다.
게임 아이템의 가치는 법적인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우리 법원은 게임머니와 아이템을 부가가치세법상의 ‘재화’, 법률상 ‘재산상의 이익’으로 인정한다. 아이템 그 자체가 직접적인 재산은 아니지만,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는 경제적 재산, 재산상의 이익으로서 보호된다는 것. 뭔가 복잡한 이야기지만, 어쨌든 게임 아이템이 가치가 있다는 것, 그게 법적으로 보호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익스큐즈된 이야기다.
게임 아이템은 어떻게 거래되는가
그렇다면 이런 게임 아이템은 어떻게 거래되는가? 거래방식이 사실 그다지 매끄럽진 않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중개소를 통해 거래하는 것이다. 검색 사이트에 ‘게임 아이템’ ‘게임 아이템 거래’ 등을 검색하면, 게임 아이템 거래 중개소를 표방하는 사이트들이 나타난다. 아이템○○○, 아이템XXX, 아이템□□□ 등의 이름을 단 사이트들이다. 여기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온라인 게임 ‘ㅍㅍㅅㅅ 온라인’을 즐기는 리승환 씨. 게임에서 보스 ‘낫 파운드 404’를 쓰러뜨리고 아이템 ‘폭풍의 귀/여운알/파카’를 획득한 그는 이 아이템을 다른 사람에게 판매할 계획을 세운다.
리승환 씨는 판매를 위해 중개소 사이트에 접속하여, 사이트에 자신이 ‘ㅍㅍㅅㅅ 온라인’의 아이템 ‘폭풍의 귀/여운알/파카’를 팔고 싶다는 글을 올린다. 시간이 지나 이 아이템을 구입하고자 하는 구매자가 나타난다. 그는 아이템 거래소에 해당 아이템 구입 의사를 표시하고, 아이템 가격에 해당하는 현금을 중개소에 맡겨놓는다.
이걸로 거래가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게임상의 아이템을 게임 시스템 밖의 중개소에서 거래할 순 없는 법. 이 상태에서, 판매자와 구매자가 약속을 잡고 함께 게임에 접속한다. 게임상에서 서로의 아이디를 확인한 뒤, 게임상의 특정 장소에서 아이템을 거래한다.
아이템 거래를 완료한 두 사람은 다시 아이템 거래 중개소 사이트로 돌아와, 거래가 완료되었음을 중개소 측에 밝힌다. 무사히 거래가 완료되었음을 확인한 중개소 측은 구매자가 맡겨두었던 현금을 판매자에게 지급한다. 이렇게 판매자 리승환은 ‘폭풍의 귀/여운알/파카’를 팔고 현금을 손에 넣었다.
거래의 불안정성
‘아이템 거래소’가 아니라 ‘아이템 거래 중개소’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렇다. 여기에서 하는 일은 ‘중개’다.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주고, 먹튀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구매자의 돈을 잠시 맡아주는 것. 실제로 거래는 게임에 접속한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는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허점이 있다. 게임이란 가상 공간에서 아이템이 거래되는 만큼, 아이템이 실제로 거래되었다는 분명한 물적 증거(택배 송장이라든가)가 없다는 것이다. 구매자가 게임상에서 아이템을 건네받은 뒤 아이템 거래소 측에는 아이템을 건네받지 못했으니 돈을 돌려받아야겠다고 이야기한다면?
판매자 입장에선 자신이 아이템을 건네주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게임 화면 스크린샷? 조금만 능력이 있어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완벽한 입증을 위해서는 거래 과정을 스마트폰으로 아예 녹화해두는 게 안전할 것이다.
높은 수수료율 문제
아이템 거래에는 수수료도 들어간다. 물론 중개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수수료가 들어가는 부분은 크게 세 군데다.
구매자는 아이템을 구입하기 위해 일단 중개소 측에 돈을 입금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입금 수수료가 들어간다. 무통장 입금으로 입금하면 건당 1,000원 수준의 비교적 저렴한(!) 수수료가 책정되지만, 그 외의 방법으로 입금하면 수수료가 껑충 뛴다. 예를 들어 휴대폰 소액결제의 경우 거의 20%가량이 수수료로 빠진다.
물론 거래 시에도 수수료가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거래금액의 5% 정도가 중개소의 몫. 10만 원짜리 아이템을 팔면 5,000원이 수수료로 쑥 빠져나간다.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받은 돈을 출금할 때도 수수료가 들어간다. 이때도 건당 1,000원 정도의 수수료가 든다.
중개소의 수수료 정책이 무조건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중개소가 없었더라면 게이머들은 훨씬 불안한 방법으로 아이템을 거래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부담은 부담이다.
게임 내 거래소의 수수료 문제
이처럼 아이템을 게임 밖에서 현금으로 거래하는 것은 번거로울 뿐 아니라 위험성도 높고, 꽤 높은 수수료를 중개소 측에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미성년자가 부모 몰래 휴대폰 소액결제 등을 이용해 게임 아이템을 현금 거래하는 등, 사회 문제도 빈번히 발생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게임은 게임 내에서, 게임 내 화폐를 통해 아이템을 거래하도록 한다. 이런 아이템 거래는 주로 게임 내의 아이템 ‘거래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중개소’가 아니라 ‘거래소’라 불린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여기에선 실제로 거래가 일어난다.
판매자는 이 값을 받고 아이템을 팔고 싶다며 거래소에 물건을 올려놓고, 구매자는 게임 내 화폐를 지불하고 아이템을 구매한다. 그러나 완전한 시스템은 없는 법. 이런 거래소도 현금 거래를 원천 차단하진 못한다. 어떤 게임에서는 현금 거래를 위해 대대적으로 게임 내 거래소의 시세를 조작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거래소의 수수료다. 일반적으로 이런 게임 내 거래소에서의 수수료는 2~3% 수준으로 외부 중개소의 수수료보다는 낮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어떤 경우 수수료가 10~30%대에 달하기도 한다.
근래 화제가 된 모바일 게임의 경우 처음에는 개인 간 거래를 열어줄 것처럼 홍보하다가 정작 출시된 게임에서는 이를 막아 놓기도 했다. 차후 거래소 기능을 오픈하긴 했지만 역시 중앙 거래소를 통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일정 비율의 수수료도 지급해야 해 이용자들의 원성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게임 내 개인 거래 시스템의 구축
이용자 입장에서는 사실 개인 대 개인 거래가 게임 시스템 내에 존재하는 것만큼 좋은 시스템이 없다. 게임 시스템은 현실 사회와 비교하면 사실상 ‘정부’와도 같다. 정부가 모든 상거래시스템을 틀어쥐고 특정 방식만을 강요한다면 그만큼 답답한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이런 중앙 통제식 ‘거래소’가 일률적으로 책정하는 수수료율도 문제다. 적어도 2~3%의 거래 수수료는 물론 아이템 등록 시에도 등록 수수료가 필요하므로 아이템 거래가 활발해지면 활발해질수록 게임 내 화폐가 자연스레 소각되고 이용자들이 빈곤해지는 효과가 생긴다(!).
최근에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 대 개인 거래를 완전히 개방한 게임도 등장했다. 모바일 게임으로서는 ‘반반’ 같은 게임이 대표적. 중앙이 통제하는 거래소도 물론 존재하지만 개인 간 1:1 거래 또한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 이용자가 원하는 거래 방식을 말 그대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길고 긴 길을 돌아와 비로소 자유시장경제라는 게 게임 내에도 구축된 셈이다.
한때는 게임 아이템을 거래한다는 개념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처럼 여겨졌던 때도 있었지만, 이젠 아니다. 아이템 거래가 얼마나 활발한지가 그 게임이 얼마나 흥했는지를 재는 척도로 쓰일 정도. 그렇다면 이제 게임 아이템이 거래되는 경제 구조에 대해서도 더 관심을 기울일 때다. ‘실물’과 ‘가상’의 경계가 이렇게까지 흐려진 시대라면 더욱이 그렇고 말이다.
네. 이제 반반을 합시다! ▶링크 [안드로이드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