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가득 실은 카트 너머 분주하게 물건의 바코드를 찍는 계산원들이 보인다. “멤버십 적립해 드릴까요?” “2만 9,940원입니다.” “봉투 드릴까요?” 등의 말들이 오간다. 이곳은 바로 계산대다. 그런데 마트 계산대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심리학적 설계가 들어 있다. 도대체 무엇일까? 정답은 계산대를 나가는 곳에 있다. 마트 계산대에 숨은 심리학적 설계를 살펴보자.
몸풀기: 계산대 앞 물건의 비밀
알다시피 마트는 쇼핑카트의 크기를 늘리거나 인체공학적 설계를 바꾸거나 매대 위치를 절묘하게 바꾸는 등의 전략을 통해 당신이 최대한 많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계산대에 줄 서서 기다릴 때 흔히 건전지, 세정제, 껌, 초콜릿 등을 파는 걸 볼 수 있다. 이 물건들이 굳이 계산대 앞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빠뜨린 건 없으신가요?
계산대 앞에는 당신이 차마 챙기지 못했을 것 같은 물건들을 전시한다. 쇼핑을 하면서 이것저것 고르는 것에 심취해 막상 세부적인 물건을 구매하는 것을 놓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장은 건전지, 세정제, 간단한 먹을거리 등을 배치해 ‘빠뜨렸을 테니 집으세요’라고 고객을 유혹한다.
상대적 가격 비교해보셨나요?
계산대 앞의 물건들은 앞서 당신이 구매한 물건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1만 원어치 고기를 산 뒤 3,000원짜리 초콜릿을 보면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이유는 앞서 구매한 고기가 초콜릿의 구매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또한 계산대 앞 물건의 가격이 높을수록 계산대 앞의 물건을 고를 확률이 높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소비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무감하다. 3,000원에서 3,000원을 더 구매하는 사람과 30만 원에서 3,000원을 더 구매하는 사람이 3,000원이라는 추가 가격에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다른 것은 앞서서 소비한 물건들의 가격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어도 줄을 서는 이유
계산대의 실제 역할은 계산하는 것뿐 아니라 소비자가 구매한 물건을 다시 철회하는 상황을 최대한 막는 것도 포함한다. 소비했다가 환불하고 다시 다른 것을 구매하는 과정은 기업에게 썩 좋은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이 거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이 많든 적든 줄을 서야 하고, 사람이 많든 적든 줄의 길이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계산대별로 줄도 일정하게 선다. 왜 그러는 것일까?
전제: 적당한 기다림
기다림은 무의식적으로 구매행위에 희소성을 넣을 수 있다. 10분 동안 기다려 산 물건과 바로 집어서 산 물건의 주관적 희소가치는 상대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너무 많은 기다림은 불만을 가져온다.
계산할 때 줄을 30분이나 선다고 가정하면 당신은 아마 마트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할지도 모른다. ‘시간’이라는 요소를 일종의 교환가치라고 보기 때문이다. 30분을 투자한 것이 내가 할인을 받은 가격보다 가치가 높다면 마트를 벗어나 동네 슈퍼 등 다른 곳을 갈 가능성이 높다.
뒷사람이 기다려요
줄을 세우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들이 뒷사람에 대해 의식하기 때문이다. 이는 심리학적 요인이라기보다는 사회 관습을 이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계산을 끝내는데 뒤에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흔히 뒷사람을 위해 뒤에 아무도 없을 때보다 빠른 속도로 계산행위를 마친다. 내가 늑장을 부리면 뒷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
실제로 동네 마트에서 뒤에 사람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계산 속도를 비교한 결과 사람이 있을 때는 평균 74초를 기록한 반면 사람이 없을 때는 평균 103초를 기록했다. 또한 구매한 물건 교환 및 환불도 사람이 있을 때는 2회, 사람이 없을 때는 15회였다. 결국 뒷사람이 우리의 행동을 빠르게 만드는 또 다른 변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바심이 나고 구매했던 물건을 바꾸거나 환불하는 상황 등을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산 물건을 밖에서 확인해야 하는 이유
계산해야 하는 물건은 보통 안에서 보지 못하고, 계산대 끝부분에 가야 볼 수 있다. 물론 공학적인 설계도 들어 있겠지만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면 밖에서 가격을 볼 수 있는 구조는 소비자가 선택한 물건을 그대로 사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계산원이 바코드를 찍는 행동 때문이다.
바코드를 찍는다고 해서 물건을 교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코드를 찍는 후 사람들은 이 물건을 내가 소유했다는 무의식적인 느낌을 받고 교환 및 반품 생각보다 소비의 기쁨에 더 집중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카드를 받는 슈퍼와 현금을 받는 슈퍼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일주일 동안 관찰했다. 바코드를 찍는 행동을 본 이들이 구매행위를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56명 중 1명), 바코드를 찍지 않았을 경우 현금을 내는 순간을 소유하는 순간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계산 전 물건을 바꾸는 일이 더 많았다(52명 중 16명).
바코드를 만든 목적은 그게 아니지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바코드를 찍는 것이 곧 구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계산대를 바깥에 둠으로써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구매한 물건들을 잘 되돌아보는 행동을 잘 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 무의식적인 행동에서 차이가 난다
계산대 속의 넛지는 의식적으로 의도한 것도 있지만 무의식적인 압박으로 인해 소비자가 스스로 대안을 선택한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매장 구조부터 시식 코너, 하나의 계산대까지도 우리가 몰랐던 행동설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트는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 도처에 도사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계산대에 가기 전 본인이 사야 하는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자. 사고 싶은 것을 사는 게 아니라 사야 할 것만 산다면 불필요한 과소비, 그리고 불필요한 시선을 마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원문: 고석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