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습관적 잔소리’가 존재한다
척 보아도 나보다 나이를 꽤나 많이 잡순, 이제 삼촌보다는 부모뻘의 호칭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와 며칠간 같이 지내게 되었는데, 그는 끊임없이 ‘조언’을 해댔다.
산을 오르며 힘들어하면 그는 뒤에서 웃으며 평소에 운동을 하라 했고, 다 같이 밥을 먹을 때면 젓가락질이 그게 뭐냐고 꾸짖었다. 우리가 결혼에 대한 고민을 주고받고 있으면 돈을 모아 결혼하려고 하면 끝이 없다와 같은 말을 지껄이는 식이었다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시간은 대학 시절 외부 초청 강사가 진행하던 교양특강 시간 같았다. 뻔한 말을 마치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자신만의 연륜과 경력에서 깊이 우러나온 것인 마냥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그 사람은 똑똑하고, 연륜이 드러나 보이는, 필요한 말 만을 해주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신을 여겼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었다. 나는 타인이 내주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박적으로 나에게 답을 정해주곤 했다.
누군가에게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려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습관적 조언자들은 그런 부분들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이 나를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술술 내뱉던 조언은, 이미 그들 입에서 무수히 반복된 습관적 레퍼토리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과정들
유익하다고 취급 받는 수많은 잠언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그 말들은 만능도 아니며, 시대에 따라서 퇴색될 수도 있다. 때와 장소와 경우가 맞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좋은 말들은 자기 할말만 하고 남의 말은 듣지 않는 헛똑똑이들로 인해 자주 소비된다. 책 『이 방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운전을 하다 당신보다 느린 사람은 멍청이이고 당신보다 빠른 사람은 미친놈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는가?”
모든 판단의 기준은 결국 나일 수밖에 없다. 마치, 내가 이 도로에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속도로 달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해봐서 안다는 생각은 어느덧 고집이 되어 우리의 눈을 가리는 속임수가 되어버리곤 한다.
책 『이 방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우리가 ‘안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모순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전달한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일련의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경찰들이 있다. 그 장면은 변하지 않지만 목격자가 의경 출신이거나, 혹은 노동조합에 관심이 많은가에 따라서 해석은 정 반대가 되고 말 것이다. 모두가 자기가 느낀 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꼰대의 습관적 잔소리가 아닌, 지혜를 위하여
이쯤 되면 조금씩 무서워진다. 나도 언젠가는 편협한 해석으로 세상을 훈수하게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렵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딱히 필요하지 않은,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대단하게 특별한 것도 아닌 말을 마구 던지면서 ‘나는 그런 귀중한 조언을 할 수 있는 훌륭한 상급자’라는 자기 위안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자라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쩌면 좋을까?
이 책의 뛰어난 장점은 화두만 던지고 사라지는 비겁함을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 실제 사례를 통해 꼰대가 되지 않고 일상적인 시련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익한 방법들을 제안한다. 특정한 단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제안승인을 최고 85%까지 올린다던가, 중요한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의 멘탈을 위해 어떤 물음을 해야 하는지와 같은 실용적인 것들이다.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고민들과 익숙한 구조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여러 사건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한층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이 책에서 나오는 것들도 ‘편향된 자기 경험’에서 나오는 말일지 걱정이라고? 다행스럽게도 코넬대와 스탠퍼드대의 심리학자들이 알려주는 여러 가지 ‘지혜’들은 사화과학과 역사학을 바탕으로 우리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객관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언제나 어리석은 조언에 너무도 질려버린 사람이라면 단순한 잔소리를 넘어, 진정한 지혜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덧붙여, 진정한 지혜를 구할 수 있는 어른이 부족한 이 시대에 더욱 많은 지혜가 보급된다면 좋겠다. 그때쯤이면 내가 만난 ‘꼰대 어르신’과도 얼굴을 붉히지 않고서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