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김세의 기자가 쇼트트랙 김아랑 선수의 헬멧에 부착된 노란 리본을 비난했습니다. 지난 18일 김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아랑 선수에게 묻고 싶다’며 ‘세월호 침몰에 대한 추모인가, 박근혜 정부의 책임도 함께 묻기 위함인가’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를 옹호하는 김 기자는 2017년에도 프로야구 이대호 선수의 글러브에 부착된 노란 리본을 가리켜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며 ‘스포츠 현장에서 정치적 표현은 바람직한가’라는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김 기자가 운동선수들의 노란 리본을 문제 삼는 모습은 박근혜 씨를 옹호하는 극우 친박 단체의 주장과 매우 흡사합니다. 정치적 표현이라고 비난하지만 실제로 김 기자 본인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셈입니다.
김 기자는 ‘올림픽 헌장 50조에 따르면 그 어떤 정치적, 종교적 선전도 금지’가 있네요’라며 ‘판단은 여러분들께서 해달라’는 글도 올렸습니다. 김 기자가 판단해달라고 했으니 올림픽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통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올림픽 시상식에서 벌어졌던 검은 장갑 퍼포먼스
1968년 멕시코올림픽 육상 남자 200m에서 미국의 토미 스미스 선수는 금메달을 존 카를로스 선수는 동메달을 땄습니다. 시상식에서 미국의 국가가 연주되자 갑자기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번쩍 들었습니다. 두 선수의 행동은 흑인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경례 방식이자 미국의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퍼포먼스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흑인과 백인이 같은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거나 같은 버스를 타지 못할 정도로 인종 차별이 심했습니다. 시상식에서 스미스가 착용한 검은 장갑은 ‘우리는 흑인이다’라는 표현이었고 검은 양말은 흑인의 가난을 상징합니다. 스미스가 손에 든 상자 속 올리브 나무 묘목은 ‘평화’를 의미합니다.
은메달리스트였던 호주의 피터 노먼 선수도 미국 선수들의 인종 차별 항의에 동참하기 위해 ‘인권을 위한 올림픽 프로젝트(Olympic Project For Human Rights)’ 배지를 가슴에 달았습니다. 원래 검은 장갑은 스미스와 카를로스 모두 착용하기로 했는데 카를로스가 장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고, 피터 노먼 선수가 ‘나눠서 끼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세 선수의 마음과 아이디어가 합쳐진 퍼포먼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명 및 차별당했지만 영원히 기억되는 선수들
올림픽 시상식에서 검은 장갑을 끼고 인종 차별에 항의했던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다음날 올림픽 숙소에서 쫓겨났습니다. 두 선수는 미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의 비난과 토마토 세례를 받았고,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이유로 미국육상연맹에서 제명당하기도 했습니다.
노먼 선수도 인종차별 항의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육상계에서 배척당하고 호주 신기록 보유자임에도 올림픽 출전에서 제외되는 차별과 수모를 겪었습니다. 2006년 노먼이 사망하자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장례식에 참석해 관을 들었습니다. 2012년 호주 의회는 뒤늦게 공식적인 사과를 했습니다.
미국육상연맹은 노먼이 죽은 10월 9일을 ‘피터 노먼 데이’ ‘인권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피터 노먼은 지금도 위대한 은메달리스트이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2등으로 불리며 기억되고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류애
올림픽과 정치의 연관성을 알기 위해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등장했던 세 명의 인물을 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가장 먼저 에이버리 브런디지 IOC 위원장입니다. 브런디지는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검은 장갑 퍼포먼스를 벌인 스미스와 카를로스를 추방한 인물입니다. 동시에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 아돌프 히틀러 앞에서 ‘나치식 경례’를 했던 친나치 인사였습니다.
독일의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아리안 인종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100m, 200m, 400m 계주, 멀리뛰기 종목에서 우승해 4관왕을 달성한 선수는 제시 오언스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레이스’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인물은 우리도 잘 아는 손기정 선수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장기를 달고 출전해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는 베를린에서 사인할 때는 꼭 한국이름을 썼으며, 옆에 한반도 지도를 그렸습니다.
김세의 기자가 올림픽 헌장 50조를 운운하며 김아랑 선수의 노란 리본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 히틀러에 협력해 놓고 “올림픽이 정치적으로 오염돼선 안 된다”고 했던 에이버리 브런디지가 떠오릅니다. 올림픽의 본질은 ‘인류애’입니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을 비난하는 그들이 진정으로 스포츠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며 인류를 사랑하는지 의문입니다.
원문: 아이엠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