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New York Times에 Christine Yared가 기고한 「Don’t Let My Classmates’ Deaths Be in Vain」을 번역한 글입니다.
저는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에 있는 메이저리 스톤맨 더글라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 17명이 목숨을 잃은 뒤로 제 머릿속에서는 그날의 끔찍했던 장면들이 끝없이 반복해서 재생됩니다.
화재 경보가 울린 건 학교가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재무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이미 교실을 떠난 뒤였고, 교실 안에 남아 있던 우리 모두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죠. 저도 재빨리 짐을 챙겨 교실 밖으로 몸을 피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복도는 우왕좌왕 뛰어다니는 학생들과 고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당장 교실로 돌아가 있으라고 소리쳤죠.
저는 당장 선생님이 쓰는 큰 사물함에 들어가 온갖 서류와 서류철 사이에 몸을 숨겼습니다. 이미 옷장 안에 들어와 있던 학생도 여럿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총기 난사 사건을 대비한 모의 대피 훈련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제 핸드폰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온 문자메시지가 그야말로 빗발쳤습니다.
다른 주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 온 메시지도 있었는데, 하나같이 제가 괜찮은지 걱정하는 문자였습니다. 정작 사건이 일어난 곳에 있던 우리보다도 온 세상이 먼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챈 것 같았습니다. 우선 언니에게 문자를 보내 괜찮은지 물었고, 이어 다른 친구들에게도 문자를 돌렸습니다. 다행히 대부분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거나 현장에서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가족들에게도 문자를 보내 상황을 알리며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재빨리 인터넷을 뒤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뉴스 속보를 확인했습니다. 총을 든 범인이 1학년 건물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실에서 15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좁은 임시 대피소에서 어떻게든 놀란 마음을 달래보려 애를 썼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걸 멈출 수 없었고 그사이 범인의 신상에 대한 소문과 누가 총에 맞았다는 소식, 기사들이 문자 메시지나 스냅챗을 통해 속속 들어왔습니다. 교실 밖인지 건물 밖인지 알 수 없었지만 먼 곳에서 계속해서 무언가 큰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총격이 계속되고 있는 건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집에 왔는데도 좀처럼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억지로라도 다른 생각을 해보려고 TV를 켰지만, TV에 나온 연예인도, 정치인도 온통 우리 학교 얘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화면 속에 나오는 학교가 우리 학교가 맞긴 한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끔찍한 악몽을 꾸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우리 전쟁으로 얼룩진 레바논을 떠나기 전이나 떠나 이민 온 뒤에도 항상 피땀 흘려 일하셨습니다. 자신이 겪은 폭력과 궁핍한 삶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는 마음 하나로 모진 세월을 버티셨을 겁니다. 아버지는 레바논 적십자 응급구조팀에서 자원봉사로 일하셨습니다. 공학 학위를 받은 뒤에는 제너럴 일렉트릭 프랑스 지사에서 일하셨고, 이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오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유타, (제가 태어난) 콜로라도, 미네소타를 거쳐 마침내 플로리다에 정착했습니다. 부모님이 파크랜드를 정착지로 정한 이유는 단연 메이저리 스톤맨 더글라스라는 훌륭한 학교의 존재였습니다. 게다가 가족이 살기에 무엇보다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죠. 안타깝게도 이곳은 전혀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안전, 치안에 관한 우리 가족의 믿음과 바람은 눈앞에서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미국에서 파크랜드라는 플로리다주 교외 지역의 작은 마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검색창에 “메이저리 스톤맨 더글라스”를 치면 당장 연관 검색어로 “총기 난사,” “총격” 같은 단어가 뜹니다. 희생자는 모두 저의 친구고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 그리고 우리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언론은 희생된 학생들을 하나같이 착하고 똑똑했던 좋은 어린이로 묘사하며 추모했습니다.
이들이 품어 온 생각의 깊이와 미처 펼치지 못한 꿈의 너비는 훨씬 더 깊고 넓습니다. 제 친구 지나도 죽었습니다. 지나가 숨진 날 아침에 저는 지나와 같이 미술 수업을 들었습니다. 농담을 주고받고, 같이 노래를 부르고, 같이 웃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지나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얼마나 비열해야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저는 분노에 치가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들의 죽음을 절대로 헛되이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지지하는 정당을 떠나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합니다. 총기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차를 운전하거나 술을 마실 수 없는 법정 기준 미성년자도 수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살해할 수 있는, 전장에서나 쓰일 법한 무기를 아무런 제재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습니다. 우리는 이번 참사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살인마의 정신병이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총기를 판매할 때 아주 상식적인 신원 조회 절차만 있더라도 총기에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들의 수중에 총기가 들어가는 일은 최소한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유권자들은 더욱 엄격하고 강력한 총기 규제를 도입하겠다는 사람에게 표를 줘야 합니다. 반대로 아무런 행동을 할 의지도 없어 보이는 사람은 입법기관에서 축출해야 합니다. 총기로 인한 사망자,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데이터와 사실을 알려야 하며, 총기 규제를 둘러싸고 오가는 자금과 부패에 관해서도 명명백백히 규명해야 합니다. 제발, 꼭 그렇게 해야 합니다.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날이 사랑의 상징과도 같은 밸런타인데이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참담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이라도 더 꼭 안아주고, 매일 잊지 말고 사랑한다고 꼭 말해 주세요. 끔찍하지만, 언제가 마지막일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다른 이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신다면, 제발 이번 기회에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여러분의 지지를 보여주세요.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이런 끔찍한 고통을 다른 어린이들이 겪지 않게 해주세요.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부디 끊어주세요.
여전히 이런 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총기로 인한 사망자는 끊이지 않고 있어요. 다음번은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 당신의 소중한 친구, 당신과 마음이 잘 맞던 이웃이 희생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 희생자가 당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