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shington Post의 「‘women’ or ‘ladies’? At the Winter Olympics, that depends on the sport」를 번역한 글입니다.
미국의 페기 플레밍 선수가 우아한 안무와 완벽한 싱글 악셀 점프로 1968년 그레노블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지 50년이 흘렀습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알리나 자기토바 선수가 올림픽 챔피언을 차지했죠. 그간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기술은 이처럼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관련 용어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합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해당 종목의 정식 명칭은 ‘레이디스 싱글(Ladies’ Singles)’로, 여성 선수들이 참가하는 부문에 ‘우먼(women)’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종목과 다릅니다. 이 명칭은 1892년 확립된 것으로 빙상종목을 관장하는 국제기구인 국제빙상연맹(ISU)의 설립과 역사를 함께 합니다. ‘레이디스’가 들어간 종목 명칭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들도 있지만 이 명칭이 구시대적이고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남성 종목은 ‘젠틀맨(gentlemen)’ 대신 다른 종목들과 마찬가지로 ‘맨(men)’을 사용하니까요.
1998년 올림픽 챔피언 타라 라핀스키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NBC 방송의 애널리스트로 제2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라핀스키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 종목의 전통을 대부분 존중하는 편이지만 종목 명칭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불평등하다고 생각한다’며, ‘레이디스’를 ‘우먼’으로 바꾸는 안에 동의한다고 밝혔습니다.
역시 평창 현지에서 NBC 해설자로 활약 중인 1984년 올림픽 챔피언 스캇 해밀턴도 트위터에서 해시태그(#letschangeit)를 달며 같은 의견을 밝혔습니다. 한편 미국의 미라이 나가수 선수는 어떤 명칭도 괜찮다는 쪽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없어요. 둘 다 괜찮습니다. 저는 강하고 자부심을 가진 여성이지만, 동시에 숙녀(lady)이기도 한 거겠죠. 저는 페미니즘을 지지합니다.”
피겨스케이팅 외에도 현재 평창 올림픽에서 여성이 참가하는 14개 종목 중 명칭에 ‘레이디스’를 사용하는 종목은 알파인스키, 스키점핑, 스피드스케이팅, 스노우보딩 등 총 7개입니다. 봅슬레드와 컬링, 아이스하키는 ‘우먼’을 사용하죠. 각 종목을 관장하는 국제기구가 각자 정식 명칭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각 연맹이 사용하는 종목 명칭을 그대로 가져오죠. 종목 명칭에 통일성도, 논리적인 근거도 없는 이유입니다.
캐나다빙상연맹은 약 10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국내 대회에서 종목 명칭에 ‘우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공영방송인 CBC 역시 자문을 거쳐 해설자들에게 종목 명칭을 ‘우먼’으로 쓸 것을 권고했죠. CBC 대변인은 “우리 방송국이 스포츠 중계의 글로벌 리더로서, 남녀 스포츠 종목이 보도되는 방식에 있어서도 앞장서서 평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방침도 마찬가지로 ‘레이디스’ 대신 ‘우먼’을 쓰자는 것입니다.
반면 NBC는 미국빙상연맹과 뜻을 함께하며 굳건히 ‘레이디스’를 고수합니다. 미국올림픽위원회는 정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한 관계자는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용어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현재 추진 중인 ‘성 평등 점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명칭 변경을 먼저 들고나올 가능성도 있고요.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이 여전히 결정권자라면, 여성은 올림픽에 참여하지도 못할 겁니다. 그는 올림픽이 ‘남성의 스포츠열을 주기적으로 발산하는 엄숙한 자리’이며 ‘그 보상으로 여성의 박수를 받는 곳’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여성의 신체는 생물학적으로 스포츠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시한 바 있죠.
이런 정신으로 시작된 스포츠 행사라면, 오늘날 여성 선수들은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까요? 명칭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사치일 뿐일까요? 수많은 박사 논문이 ‘레이디’라는 단어의 정치성을 논하지만 스포츠의 영역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이 단어가 존경의 의미인지, 비하의 의미인지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일관성의 문제죠.
‘남성과 여성’을 ‘맨’과 ‘우먼’으로 쓰면 그저 중립적인 지칭일 뿐입니다. ‘레이디스’와 ‘젠틀맨’에는 더 구체적인 뉘앙스가 담깁니다. 특정한 매너나 몸가짐을 암시하는 단어죠. 윔블던 대회는 남녀 부문에 모두 ‘젠틀맨’과 ‘레이디스’를 씁니다. 이것을 문제 삼는 이는 없죠. 남녀 부문을 동등하게 칭하고 있으니까요. ‘맨’과 ‘우먼’을 쓰는 US오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남성을 ‘맨’으로 부르면서 여성만 ‘레이디스’로 칭하는 종목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관장 기구가 많은 종목의 문제는 더 복잡합니다. 골프가 좋은 예죠. US 여자 오픈과 브리티시 여자 오픈은 ‘우먼’을 쓰는 반면, LPGA투어를 관장하는 기구는 명칭 자체에 ‘레이디스’가 들어있죠. 브리티시 오픈 1주일 전에 치러지는 레이디스 스코티시 오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가수 선수 등을 지도하는 톰 자크라섹 코치는 “피겨스케이팅이 유래된 지역과 시대를 생각하면 ‘레이디스’가 적절한 용어였을 것”이라면서 “정당한 이유는 없지만 모두가 그 명칭을 사용하고 우리 종목에서 일종의 전문 용어가 되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