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주먹 인사를 테러리즘으로 보도한 폭스 뉴스
2008년 미국에서 꼴통 뉴스로 가장 유명한 폭스 뉴스의 한 앵커는, 오바마가 대선 후보로 결정된 민주당 전당대회(인지 하여간 그런 곳에서)에서 주먹인사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fist bump (주먹 마주 대어 인사하기) 장면을 두고 테러리스트의 주먹 찔러박기(terrorists fist jab)이라고 폄훼하는 발언을 한다. 대선 기간, 그리고 대선 이후에도 우파에서 줄기차게 제기해온 오바마의 출생지 의혹과 이슬람 테러리스트 관련 루머들의 연장선 상에 있는 발언이었다.
이것은 또한 미국적 맥락에서 인종 정치의 부분이 있는 것이기도 했다. 주먹인사는 미국의 큼지막한 후드티셔츠나 입고 다니는 마약 판매상이나 폭력배들 혹은 그걸 빌리는 랩가수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퍼져 있던 하위문화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먹인사를 테러리스트의 주먹찔러박기로 표현한 것은 흑인 하위문화에 대한 지독한 혐오와 편견 그리고 오바마를 둘러싼 온갖 루머와 협잡 등이 동시에 얽혀 비난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에 화가 난 시민들은 폭스 뉴스 본사 앞에서 대규모의 시위를 벌였고 온라인 상에서도 엄청난 반향이 일어났다. 극우파에게 “진보적”이라고 비난받는 미국의 몇몇 미디어에서도 이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했고, 뉴요커지 같은 잡지들은 이를 풍자하는 캐리커처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결국, 폭스 뉴스의 앵커는 공식 사과를 전달하였고 사태는 일단락된다.
오바마와 백악관의 대응: 고소도, 사과 요구도 없이 역관광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은 이것에 직접적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오바마와 백악관이었다. 그들은 폭스 뉴스 앵커의 이러한 보도와 관련해서 한국에서 걸핏하면 들먹이는 명예훼손과 사과와 반성 따위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명예훼손이란 권력을 쥐고 있는 자가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것이 정작 소송의 나라 미국 사회에서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평가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것이 단순히 대형 미디어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있어서의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라고 (진짜로 그렇게 믿든지 아니든지 간에)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백악관에서는 엄청난 사진들을 보도자료로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라크 파병지역에 간 미군들과도 오바마는 주먹인사를 하는 사진, 백악관에 찾아온 상원의원과도 주먹인사를 하는 사진, 백인 꼬마 아이와도 주먹인사 하는 사진, 미셸 오바마가 아침 프로에 나가 여성 리더들과 대화를 나눈 뒤 다 함께 주먹인사를 하는 사진,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주먹인사를 하고 다니는 것이다.
폭스 뉴스 앵커의 말처럼 이것이 테러리스트의 주먹질이었다면, 오바마 부부가 하고 다니는 “미국이 가장 자부하고 미국적 가치를 고수할 것이라고 전제되는” 군인과 꼬마 아이 등등은 모두 테러리스트인 것인가 하고 조롱을 하는 것이다. 유치하게 사과와 명예훼손 따위를 걸지 않은 채, 그것을 조롱했던 것이 얼마나 저질스러운 일인지 의미를 해체하고 재구성해버리는 작업을 해버리는 것이다. 공략하기보다는 낙후시켜라.
주먹인사를 둘러싼 논란을 오바마의 백악관은 이런 식으로 뚫고 나갔다. 오바마는 쉴새 없이 여기저기서 주먹인사를 하고 다녔고, 물론 그중에는 백악관 청소부와도 주먹인사를 하는 사진이 올라오게 된다.
쿨한 오바마와 쿨한 미국? 우리의 욕망이 반영된 착각
주먹인사를 둘러싼 여러 사회문화적 정치적 요소들은 쏙 빠진 채, 한국 사회의 온라인에서는 청소부와 한 손을 바지에 넣은 채 주먹인사를 하는 사진이 몇 년 동안 계속해서 회자되며 평등한 미국 사회와 쿨한 오바마에 대한 부러움으로 넘쳐나는 글들을 아주 많이 보았다.
물론 그것은 부분적으로 사실이지만, 그 맥락은 사실 고도의 정치 싸움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채 말이다. 쉽게 말해, 폭스 뉴스 앵커의 저런 발언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발언에 대해서 고도의 정치적 게임을 하지 않았다면 오바마가 실제로 백악관에서 청소부와 주먹인사를 하든 안하든 간에 저 사진은 찍힐 일도 공개될 일도 없었다는 뜻이다.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의 국회 청소노동자 관련한 발언이 분노를 이끌었나 보다. 비정규직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갖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김태흠의 발언으로 인해서 청소부와 오바마의 주먹인사 사진은 다시 한 번 인터넷 세상에 대규모로 등장한다. 쿨한 오바마와 쿨한 미국으로 여전히 포장되어서 말이다.
하지만 이 둘은 기본적으로는 그 성격을 같이한다. 단지 어떤 정치적 술수가 눈뜨고 봐줄 수 없을 만큼 저질인가와 깔깔깔 대고 웃으면서 통쾌해하느냐의 차이 정도이다. 하지만 이 사진이 한국의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게 “등록”될 때, 언제나 모든 타자의 것들이 자신의 사회로 진입할 때 그러하듯 (예를 들어 시셰이도 화장품이 한국에 처음 들어올 때처럼), 완전히 다른 맥락과 의미로 배열되어 자리 잡게 된다.
그것은 미국 사회가 어떠하고 오바마가 어떠하다는 것이 사실상 아니라, 어쩌면 한국 사회가 욕망하는 지점들을 나타내주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재현되는 타자이다. (결국, 오리엔탈리즘이랑 논리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오바마의 주먹인사 사진이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는 방식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미국 사회가 아니라 되려 한국 사회이고, 한국 사회의 특정한 욕망이며, 그 대상으로서의 미국과 오바마이다.
주목해야 할 대상은 오바마의 쿨함이 아닌 불법체류자의 외침
청소부와 주먹인사 사진과 더불어 오바마의 샌프란시스코 연설 도중 갑자기 튀어나와 오바마에게 “강제추방을 중지하라”라고 외치는 한 한국계 청년의 “난동”에 오바마가 그를 끌어내려는 경호원들을 멈추고 얼마나 아름답게 그 청년을 설득했는가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페이스북에 청소부와의 주먹인사 사진과 더불어 이 “미담”이 계속 타임라인에 떴다. 이에 대해 나만 그렇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전문가인 토론토 대학의 한주희 교수의 글을 인용하자면 이러하다.
“이거. 오바마의 반응을 뛰어난 포용력 또는 ‘민주주의적 소통’이라 이해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이민자 옹호 정책을 지지하는 듯하면서도 오바마는 역사상 제일 많은 이민자를 추방하고 있는 대통령이고, 이 한인 청년과 그 자리의 지지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이 시위를 준비해왔을 활동가들입니다. 대화하는 게 아닙니다. ‘불법체류자’ 신분의 시위자를 그 자리에서 ‘추방’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권위주의적인 관용을 베풀고, 동감하는 표정과 미소까지 겸하면서 투표할 수 없는 청년에게 ‘합법적인’ 발언과 민주주의적 절차에 관한 (말하자면, ‘데모하지 마’라는) 강연까지 억지로 듣게 하는 탁월한 통치자입니다.”
오바마의 “미담”에 앞서서, 그리고 그는 어쨌든 적이든 우방이든 모조리 미국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도청을 계속 해왔고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추방인구를 기록한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우선 생각하기에 앞서서, 어쩌면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그 소리 지른 청년의 동기일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전해지는 바로는, 그 또한 한국 출신의 “비합법적 체류자”라고 한다. 비합법적 체류자, 불법체류자인 그가 오바마의 연설자리에서 “추방”을 각오하고서 그렇게 소리를 질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얼마나 절박한 일이었을까?
하지만 이 사건을 두고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의 관심은 (좌우를 막론하고) “권력이 베풀어준 아량”에만 쏟아져 있다. 그 권력이 어떤 정당성을 갖고 있든 간에 그것이 권력이 베푼 아량을 미담으로 그것을 아름답게 보기만 하고 정작 약자에게는 한 번도 시선이 가질 않는 것은 사실 아주 익숙한 그림들이다. 지난 한국 근현대사의 정권과 주류 언론이 그러하였고, 모든 독재 국가와 북한도 그러하다. 권력은 욕을 먹고 욕을 할 대상으로 있는 것이지 미담을 듣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 지인데, 이렇게 권력에 대한 미학은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편집 : 이승환 / 감수 : capc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