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흔히 김리뷰라고 불리는 천재 콘텐츠 기획자다. 2011년부터 인터넷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 2013년에 ‘미제사건 갤러리’라는 페이지로 소셜미디어에 데뷔, 이듬해 ‘리뷰왕 김리뷰’라는 타이틀로 사람들에게 다시 알려진 뒤부터 수년 동안 콘텐츠를 기획, 창작, 배포해왔다. 책도 몇 권 냈고, 강연도 몇 번 하고, 비교적 최근에는 창업까지 해서 다수 유저들이 콘텐츠로 먹고살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다가 폭삭 망한 경험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온라인 콘텐츠로 먹고사는 것에 있어선 상당한 경험이 있다고 하겠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얘기를 왜 이리 거창하게 풀어서 이야기하느냐? 그것도 ‘후킹’이 존나 중요한 서두(웃음)에서? 왜냐하면, 멍청한 광고주들은, 이렇게 뻔한 경력을, 줄줄 늘려서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않으면, 말을 들어 처먹지 않기 때문이다. 광고주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 대행사의 경우 스스로 의도치 않더라도 그렇다. 뭐 중간에 낀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진상 광고주에 나 같은 또라이 콘텐츠 기획자가 걸리면, 고생하는 건 죄다 중간에 낀 대행사 팀원들이다. 멍청한 광고주들을 까는 이 글에 앞서, 지금 이 순간에도 고생하고 있는 대행사 놈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해본다. 이런… 충격보호용 에어캡 같은 사람들….
거래에 있어서는 항상 더 답답한 사람이 을이 된다. 돈을 가진 쪽이 늘 갑이 되는 건 아니다. 콘텐츠는 본질적으로 재고가 쌓이거나, 지금 팔지 않는다고 딱히 좆되는 것도 아니다. 콘텐츠 마케팅 시장에서, 결국 콘텐츠를 쥐고 있는 것은 기획자 내지 창작자다. 광고주는 안 팔리고 안 알려진 상품과 돈밖에 없으니 오히려 을의 위치에 있는 셈이다. 심지어 나 같은 경우에는 영업을 거의 하지도 않았다. 늘 쓰던 콘텐츠만 올려도, 광고주로부터 알아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답변은 거의 안 해주지만.
광고주들에게 미운털 박힐만한 이런 글을 구태여 쓰는 이유는, 쉴 새도 없이 바삐 움직이는 콘텐츠 시장에서 아직도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광고를 집행하려 하는 사업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며, 한편으로는 그깟 돈 몇 푼 받아먹겠다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개답답한 광고주들에게 온갖 스트레스 받아가며 머리를 쥐어뜯는 대행사 직원들과 콘텐츠 사업자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과연 위로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료는 받아야 하니 일단 써보기로 한다.
1. 사람들은 광고를 싫어하지 않는다, 재미없는 광고를 싫어할 뿐
놀랍게도, 사람들은 광고를 싫어하지 않는다. 뭔 개소리냐 싶을 수 있는데 엄연한 사실이다. 대부분 광고를 싫어하는 이유는 대부분 광고 콘텐츠가 느그 광고주들 눈치 보고 컨펌받느라 개노잼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은 그 콘텐츠가 광고인지 광고가 아닌지 관심도 없다. 단순히 재미있냐, 재미없느냐의 문제다. 재미있는 광고는 찾아서라도 본다. 그게 길든 짧든, 영상이든 카드뉴스든, 페이스북에 있든 유튜브에 있든 간에.
그럼에도 광고주들은 ‘대중들은 이 콘텐츠가 광고라는 걸 알면 싫어할 거야’ 하는, 일종의 미신에 가까운 두려움이 있다. 웃긴 건 ‘광고인 티를 내고 싶지 않은 광고주’들의 컨펌을 받으면 더 광고인 티가 난다는 것이다. 전혀 바이럴이 안 될 것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놓고 ‘바이럴 콘텐츠’라며 이곳저곳 채널에다 돈 뿌려가며 수치를 뽑아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난 모르겠다. 그 돈으로 좀 더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2. 콘텐츠에 보장된 수치는 없다
놀랍게도, 콘텐츠에 보장된 수치는 없다. 채널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모든 콘텐츠가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소셜 미디어들은 그렇게 멍청한 방식으로 알고리즘을 짜지 않았다. 채널의 규모가 100만 명이라고 해도 콘텐츠의 성격과 흥미도에 따라 숫자의 사이즈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요컨대 콘텐츠 마케팅이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콘텐츠 기획자가 최선을 다해서 콘텐츠를 만들 수는 있지만 결과물이 얼마큼의 좋아요를 받고, 댓글을 받고, 공유를 만들어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소셜 미디어에서의 수치란 정말이지 수많은 변수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만들더라도 시와 때가 맞지 않아 묻혀버리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때문에 콘텐츠 마케팅에서 ‘몇십만 명 도달 보장’처럼 써놓는 일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수틀리면 페이스북 자체 광고 때려서 부족한 만큼을 채우면 되는 거니까. 그럼 그 수치는 콘텐츠에 투자한 만큼 나온 것인가, 페이스북에 투자한 만큼 나온 것인가?
그런데 광고주들은 늘 ‘평균 도달 수’ ‘평균 조회 수’ ‘평균 좋아요 수’ 같은 피상적 평균치에 매달린다. 평균은 정말 평균일 뿐이고 미래에 나올 콘텐츠의 수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순간 콘텐츠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 아이디어와 감각 같은 것들이다. 사업자 입장에서 퍼포먼스적 접근을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콘텐츠에 한정해서 이 같은 접근이 비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3. 돈을 많이 쓴다고 무작정 좋은 콘텐츠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많은 사업자, 심지어 콘텐츠 제작자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돈을 많이 쓸수록 질적으로 더 우수한 콘텐츠가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업 분야에서 돈을 많이 처바를수록 일반적으로 더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콘텐츠만큼은 그렇지 않다. ‘콘텐츠로서의 퀄리티’와 콘텐츠가 띠는 ‘형태로서의 퀄리티’는 생각보다 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큰돈을 주고 콘텐츠 기획을 맡긴 사업주 입장에서는 형태적인 퀄리티가 어느 정도 안정감을 줄 수도 있다. ‘휴, 그래도 이 정도 퀄리티로 만든 거면 돈 낭비는 아닐 거야’ 하는. 물론 목적성에 따라 이 같은 객관적 퀄리티의 콘텐츠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객관적 퀄리티가, 콘텐츠로서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데 있어선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면 재미있는 만화를 그릴 수 있는가? 그저 영상촬영 능력이 우수하면 역사적 명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사진을 수백만 원 호가하는 DSLR로 찍든, 그냥 휴대폰 카메라로 슥 찍든, 그 콘텐츠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잠재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데는 큰 차이가 없다. 사람들이 콘텐츠로부터 기대하는 바는 표면적 퀄리티가 아닌 강렬하고, 새롭고, 매력적인 메시지이며, 이 메시지로부터 느낄 수 있는 신선한 감각이므로.
4. 목적에 알맞은 콘텐츠를 골라라
세상에는 수많은 서비스와 제품이 있고, 그만큼 많은 광고주가 존재한다. 잘 나가는 콘텐츠, 재미있는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상품을 홍보하고, 판매하고자 하는 욕구는 대부분 사업주가 가진 것이다. 돈과 시간이 허락하는 매력적 기획이 있다면 누구든지 광고를 때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아무리 나처럼 천재적인 콘텐츠 기획자라 한들 한계는 있다. 콘텐츠의 정체성이 명료할수록, 주제 영역이 확실할수록 콘텐츠가 소화할 수 있는 서비스와 상품의 범위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건 콘텐츠 기획력 상의 문제가 아니라 광고주가 얼마나 핏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내는지의 문제다. 영화 리뷰어에게 콘돔 리뷰를 요청하거나 뷰티 유튜버에게 자동차 시트 홍보영상을 만들어달라고 했다가 무산되는 게 그 콘텐츠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콘텐츠 기획자면 어떻게 핏 맞출지는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뭐… 돈을 정말 많이 준다면 어찌어찌할 수는 있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콘텐츠 마케팅도 효율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고, 되도 안 한 걸 억지로 끌고 가다가 양쪽 다 얼굴 붉히는 상황이 생기면 돈을 안 쓴 것만 못하다. 따라서 광고주는 ‘잘 나간다’ ‘흥한다’ ‘요즘 핫하다’는 파트너 대신 ‘그림이 잘 그려지는’ 파트너를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라 하겠다.
5. 아 설명 좀 그만하라고 ㅅㅂ
콘텐츠를 통해 잠재고객에게 다가가는 데 있어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장점을 어필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채널과 콘텐츠 성격을 고려해 이러한 특장점 중에서 가장 괜찮은 부분을 추출해 콘텐츠에 녹여내는 것 역시 콘텐츠 기획자의 몫이기도 하다. 그런데 콘텐츠 전반에 제품 설명을 줄줄 깔아달라고 하는 것은 좀 다른 얘기다.
…이해는 한다. 광고주로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킬링파트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점은 ‘어느 부분을 강조해달라’ ‘어떤 부분에 대한 설명을 더 써달라’ 하는 요청은 대부분 광고주 본인의 주관이다. ‘이런 부분에 사람들이 열광하겠지?’ ‘이 부분을 어필했을 때 매출로의 전환이 더 커지겠지?’ 하는, 광고주의 주관적 가설에 기인한 가이드라인이다.
당연히 사업자가 가설을 설정하고 실험하는 거야 상관이 없는데, 이 경우에는 검증실패 원인을 쉽게 콘텐츠 기획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광고주로서 ‘한 줄이라도 더 설명하고 싶은’ 욕구를 부정하고, 이 같은 욕구로 말미암은 콘텐츠 상의 개입이 문제가 됐음을 인정하는 것이 쉽겠는가, 아니면 콘텐츠 기획자를 그냥 ‘돈값 못하는 놈’으로 취급해버리고 마는 게 쉽겠는가?
광고가 필요한 대부분 상품과 서비스로부터 뽑아낼 수 있는 흥미 유발요소란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하물며 글이 세 줄만 넘어가도, 영상이 3초만 재미없어도 안 읽고 안 본다는 소셜미디어에서 광고주의 욕구를 몽땅 반영한 설명충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어필하면 얼마나 어필하겠는가? 그러다 반응이 밋밋하면 ‘이렇게 공들여 만든 콘텐츠를 왜 아무도 안 보는 거지? 채널이 작아서 그런가?’라고 생각하며 노잼 영상에다 구태여 페이스북 광고까지 때린다. 이런 걸 세간에서는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꼴이라 한다.
6. 단점이 좀 드러난다고 해서 망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내가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인데… 자유롭게 리뷰를 해달라고 해놓곤 조그마한 단점의 언급도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아니, 그럴 거면 그냥 상품설명서 올리고 거기다 광고를 때리지 구태여 왜 리뷰를 써달라고 요청까지 하는가? 구린 걸 안 구리다고, 심지어 좋다고 쓰는 건 구독자에게 거짓 정보를 알려주는 일이며, 장기적으로는 리뷰어 자체의 진정성을 깎아 먹는 짓이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좋은 게 좋고, 구린 게 구린 줄은 개돼지라도 금방 알 수 있다. 하물며 대중을 개돼지 취급하면서 좆밥 같은 상품을 그럴듯한 마케팅으로 때우기 급급했던 사업자들이 어떤 말로를 겪었는지, 우리는 ‘스베누’를 통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사람들은 단점이 없는 상품이 아니라 원하는 장점이 극대화된 상품을 선택한다. 애시당초 단점이 적은 상품은 있어도 없는 상품은 없다. 물론 사업자 입장에서 크든 작든 상품의 단점이 드러나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콘텐츠의 성격과 기획에 따라 구겨지고 망가진다는 것은 때때로 콘텐츠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정말로.
7. 결국에는 느그 매출이 중요하다
콘텐츠든 어디든, 결국 사업자가 광고를 하는 이유는 매출과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사업의 지상과제인 ‘이윤 극대화’에 콘텐츠의 형태가 과연 알맞은지, 그냥 하고 싶은 기분 때문에 질러버리는 건 아닌지, 그 핫하다는 SNS에 뭐라도 안 하면 손해 볼 것 같은 기분에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마케팅이든 콘텐츠든 어디까지나 목표지향적인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뭐… 콘텐츠를 통한 마케팅이 심하게 매력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잘 됐을 땐 감히 국정원도 멈추지 못할 것 같은 폭발적 반응을 불러오고, 그래프는 수직 상승해 종전 기록을 몇 배로 경신하며, 셀 수 없이 많이 달린 좋아요와 댓글을 일일이 체크하며 우쭐대는 데만 하루가 금방 지난다.
그러나 이 같은 시너지를 내는 콘텐츠에는 창작자의 정교한 고민, 창의적인 기획과 사업자의 시기적절한 판단 그리고 상호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부디 크고 작은 모든 사업자가 콘텐츠 창작을 흉내 내는 양아치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기를, 진정성 있는 콘텐츠의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