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장 쉽게 군산공장 폐쇄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프레임이라면 ‘GM이라는 회사가 나쁜 놈이라서 그렇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기업의 의사결정을 이런 윤리적 틀로 바라보면 그저 질타밖에 남는 것이 없다.
게다가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면, GM이 비윤리적으로 경영을 했다기보다는 그저 너무 야박하게 경영을 했다는 말이 더 적합해 보인다. 이제 GM은 장기적인 비전이니 글로벌한 가치 창출이니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의 자부심이니 이런 레토릭은 다 벗어버렸다. 그냥 최소비용 최대수익의 원칙에 철저하게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똑같은 프레임으로는 노조 책임론도 있다. 노조가 너무 고임금이라서 어쩌고저쩌고. 물론 자동차 기업은 산업의 특성상 노조가 강력하기 마련이고 기업이 성장하면 고임금 구조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명 자동차 기업 중 노조 약한 기업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한국GM이 08년 이전의 미국 자동차 노동자들처럼 엄청난 고임금을 받는다고는 누구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인건비 부담이야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이것 때문에 철수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나이브한 논리이다.
군산공장 철수 배경의 변화
군산공장의 철수에는 몇 가지 주요한 트렌드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가 전부 군산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첫째, 저유가 시대로의 전환이다. 유가가 낮아지면 사람들이 차를 많이 타고, 그래서 차를 많이 바꾸고, 그래서 자동차 회사에는 호재인 게 보통이다. 그런데 저유가로 인해 사람들이 기름 많이 먹는 차를 너무너무 선호한다는 것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대한민국 자동차산업은 기본적으로 세단이 중심이며, SUV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 이 트렌드의 변화는 일단 한국GM에 치명타를 안겼고, 현대기아차에도 매우 큰 악영향을 끼쳤다. 이 SUV 열풍이 얼마나 심각하느냐면 미국 시장을 기준으로 신차 판매의 70%가 SUV를 포함한 LT(Light Truck)이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30%대였다.
한국GM은 기본적으로 GM 전체 자동차 포트폴리오에서 소형차 생산기지이다. 제일 대표적인 모델이 크루즈 같은 준중형 세단 모델이다. 이게 사실 08년 금융위기 이후로 세계적으로 히트를 하기도 했고, 한국GM으로서도 매우 큰 효자상품이었다. 한국GM은 주로 스파크, 크루즈, 트랙스 등을 생산해 세계로 수출하는 기지다. 트랙스는 그럭저럭 잘 팔리는데 크루즈가 정말 심각한 판매 부진에 빠져 버렸다.
둘째, 미국GM의 경영전략이 타이트해졌다. 과거 GM은 말 그대로 제너럴 모터스였고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브랜드와 차종을 유지하는 기업이었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GM은 뽀대를 포기하고 현찰을 사랑하는 기업으로 변신해 버린 것이다. 가장 먼저 브랜드를 싹 다 정리했다. GM이 갖고 있던 전통 브랜드가 다 사라졌다. 올즈모빌, 폰티악, 새턴, 사브가 일차로 날아갔고, 이후로 대우가 쉐보레에 편입되었고, 결국 홀덴이 날아가고, 오펠(복스홀)도 팔려 나갔다.
오펠을 PSA에 매각한 것은 진짜 충격이었다. 오펠은 유럽 내 미국 차의 상징 같은 브랜드였다. 이에 앞서 GM은 유럽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해 버리기까지 했다. 여기다가 지역을 싹 다 포기했다. 현재 GM은 오로지 미국 + 중국만 보고 있다. 그 외의 지역은 돈이 안 된다는 판단으로 그냥 다 포기. 앞서 말한 대로 유럽대륙 전체를 다 포기하고 홀덴으로 유명했던 호주 시장도 그냥 포기.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도 돈이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며, 실제로 돈 안 되는 지역이다.
한국GM의 태생적 한계
여기에 더해 한국GM의 태생적 한계가 있다. 바로 GM 전체 브랜드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한국GM은 과거 GM대우에서 지금 쉐보레 브랜드로 전환한 상태이다. 독자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 르노삼성은 삼성 꼬리표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지만 어쨌건 독자 브랜드를 지키며 쌍용도 마힌드라 산하에서 쌍용 브랜드로 판매 중이다.
한국GM의 쉐보레는 전체 GM의 쉐보레 브랜드의 개발 및 판매 정책에 종속될 수밖에 없으며 한국GM의 역할은 생산 하청기지 성격이 매우 강하다. 이번에 군산공장 철수 결정이 난 데는 내수를 어느 정도 맡아 주어야 할 크루즈가 대실패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과거에도 한국GM은 내수 비중보다 수출 비중이 컸지만 최근에는 한국GM의 수출을 받아줄 나라들이 확 줄었다. 일단 미국시장은 미국 내 공장에서 생산하고, 유럽은 통째로 안 팔고, 중국도 관세 때문에 수출은 불가능하다. 그럼 크루즈는 내수 비중이 확 올라 가야 하는데 불행히도 내수 판매에 대실패한 것이다. 그 결과로 군산공장 가동율이 20%대로 추락하고 만다.
크루즈가 왜 안 팔렸느냐의 문제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아주 길어지겠지만… 글로벌 모델로 기획해서 한국에 판매하는 것의 미스 매칭이 극적으로 나타난 모델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실 가솔린 터보 엔진은 단가가 비싸기 마련이고 크루즈는 좀 비싼 게 당연한 모델이었다. 그게 한국 소비자들에겐 전혀 설득 안 되어 결국 한 달에 수백 대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든 것이다.
특정 주체의 과오가 아니다
미국GM 경영진, 한국GM 경영진, 한국 노조 등의 과오가 있겠지만 특정 주체의 과오가 결정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또한 일부러 철수하려고 작전 썼다는 논리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로직이 안 서기 때문이다. 그냥 철수하면 되는데 일부러 왜 작전까지 써 가면서 철수를 했겠는가?
그리고 미국GM이 돈 다 빼먹어서 그렇다는 주장도, 노조가 너무 세서라는 주장도 부분적일 뿐이며 자동차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모두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트랜드가 변했고, 한국GM은 이를 구조적으로 따라갈 수 없었고, 미국GM은 상황을 타개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군산공장 폐쇄이다.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면서도 구조적이다. 그러니 대책도 어려우며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온갖 정치적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결정의 불가피성을 국민들이 최대한 이해해주는 것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고 여긴다. GM이나 노조를 악마화해 비난하는 것으로는 어떤 문제해결도 불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