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는 게 무엇일까? 를 고민해 본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답은 ‘돈’과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중 돈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니 여기선 논외로 하고,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24시간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고 일어나면 또다시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래서 자기 계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시간 관리’에도 대부분 관심이 많다. 나 역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고, 그런 측면에서 이런저런 관리 방법의 시도를 많이 했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라는 성격유형 검사가 있다. 이 중 JP 지표가 있는데 계획적인 생활을 선호할 수록 J성향이 강해지고, 즉흥적인 생활을 선호할수록 P성향의 점수가 높게 나온다. 고등학생 시절 이 검사를 처음 접했을 때는 P성향(즉흥적인 생활을 선호)이 강했었다.
그 후 군대에 갔다. 많은 남성이 알겠지만 군대는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이 굉장히 도움이 되는 곳이다. 그냥 넋 놓고 있으면 시간이 안 가는데, 뭐라도 하나 붙들고 꽁냥꽁냥 하고 있으면 그 재미에 시간을 채울 수 있다. 그때 내가 꽂힌 것이 프랭클린 플래너였다.
프랭클린 플래너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으로 유명한 스티븐 코비가 만든 시스템 다이어리다. 그냥 일반 다이어리와는 다르게 하루의 할 일 리스트에 우선순위를 표시하게 되어있다. 최고 중요한일은 A, 중요한 일은 B, 중요하지 않은 일은 C와 같이 분류하는 것이다. A등급의 일도 순서에 따라 A1, A2, A3 이런 식으로 구분한다.
뭐에 꽂혔었는지 열심히 분류하고 성실히 기록하며 플래너를 썼다. 2년 정도 쓰고 전역해서 나오니, 이제는 꼭 이 플래너를 사용하지 않아도 일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처리하는 일이 몸의 습관처럼 붙었다. 그렇게 시간과 일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대학에 복학해서 다시 MBTI 검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결과가 나왔을 때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다른 항목은 고등학교 때 한 것과 달라진 게 없었는데, 유독 앞서 말했던 JP 지표가 변해 있었다. P성향이 강했던 이전과 달리 J성향(계획적인 생활을 선호)의 점수가 매우 높게 나왔던 것이다. 군대에서 매일 계획을 세우고 일처리를 했던 2년이 성격유형 자체를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책 읽기가 사람을 바꾼다고 믿는다. 그런 측면에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책 읽기를 권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마다 공통적으로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책 읽는 거 정말 중요하죠. 저도 충분히 알고요, 근데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어요!”
이는 비단 독서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습관처럼 꺼낸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바쁘다는 것 자체에 안정감을 두고 사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학 시절 과제와 공부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평범한 이해수준과 암기수준을 가진 내 머리로는 따라가기 버거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자연히 따라가기 위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잠을 줄이기만 하면 피로가 누적 될 테니, 잠을 줄이되 자는 시간은 충분한 숙면을 취해야 했다. 하루에 4시간을 자면서 대학 생활을 했다.
자는 동안 소화에 에너지를 쏟지 않기 위해 저녁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텼다. 말 그대로 생활 자체가 버티는 삶이었다. 정신없이 그날의 과제를 끝마치고, 그때부터 이해 안 되는 공부를 하고 잠이 들고…돌이켜 보면 그다지 효과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지도 못했다. 그냥 내가 4시간씩 자고 대학생을 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다는 것에 마음의 안정감을 두고 살았다는 것을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 깨달았다.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는 글 중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하루를 시간별로 기록해 보라는 글을 읽었다. 그래서 궁금한 마음에 하루를 거의 실시간으로 무엇을 하는데 얼마의 시간을 썼는지를 쭉 기록했다. 자잘한 일을 포함해서 워낙 많은 일들이 있어 기록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2일을 이렇게 꼬박 기록하고 나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자투리 시간이 많이 버려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시간들을 잘 활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가지 느낀 것은 생각보다 스마트폰을 많이 들여다보는 구나, TV를 오래 보는 구나를 알 수 있었다. 예상외로 나의 바쁨의 많은 부분을 이런 류의 일이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만 줄여도 꽤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 맞는 시간 관리 방법들을 찾기 위해 대표적인 몇 가지 방법을 삶에 적용해 봤다. 앞서 말했듯 군에서 체득한 프랭클린 플래너의 소중한 것 먼저 하기 방식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고, 또 다른 유명한 방식인 GTD(Getting Thing Done) 방식도 적용해 봤다. 이 방식은 일의 우선순위나 중요도와는 관계없이 닥치는 대로 처리하기의 방식인데, 적용하고 나서 금세 나랑은 안 맞는 방식인 것 같아 포기했다.
시간 관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할 일 관리이다.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할 일 리스트(To Do List)를 작성해서 관리했었다. 이 방식은 꽤 오래 사용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그 이유는 끝나지 않는 할 일의 리스트 때문이었다.
리스트로 정리해서 일을 관리해본 사람은 경험이 있겠지만 일이 끝나서 리스트에서 지워지는 속도보다 새로운 할 일이 리스트에 추가되는 속도가 단연 빠르다. 그렇게 되면 리스트를 사용해 오래 관리할수록 결국 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아지는 기이한 현상을 겪게된다. 늘 할일 리스트를 가득 채우고 있는 할 일들은 보기만 해도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이 방식도 실패했다.
현재 정착해 있는 방식은 캘린더 시간관리이다. 인터넷상에서 To do List를 버리고 캘린더로 시간을 관리하라는 류의 주장의 글을 몇 개 읽기 시작하면서 삶에 적용해본 방식이다. 예전과 비교해 간단히 설명해보면, 예전에는 업무 보고서 작성하기라는 일이 주어지면 To do list에 일단 추가를 하고 시간이 될 때 처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반면 지금은 업무 보고서 작성이라는 일을 To do list에 추가하지 않고 바로 구글 캘린더 같은 캘린더에 요일과 시간을 지정해 그만큼의 시간 블럭을 예약해 버린다. 이미 익숙한 업무라면 이 업무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 일인지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시간을 지정해두면 되는 것이고, 처음 하는 업무라면 일단 예상치로 시간을 예약해 두고 이후 수정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캘린더 관리 방식으로 방식을 바꾸면서 좋아진 점이 있다면 더 이상 남아있는 To do list의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To do list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할 때는 가장 큰 문제점이 자신의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미 다음 주에 활용 가능한 시간이 넘어섰는데도 추가로 요청 받는 약속과 회의 등을 거절하지 못하게 되고, 자연히 몇 개의 일들을 처리할 시간의 부족으로 그 다음 주로 넘어가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게 된다.
캘린더로 시간 관리를 할 경우 이미 캘린더 상에 기존의 약속들이 예약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약속이나 요청을 받았을 때 수락 가능 여부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이 방식으로 시간과 할 일들을 관리하고 있고 나름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 관리야말로 시도-실패-다른 방식 시도-실패-또 다른 방식 시도를 거듭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방식도 최종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아마 또 진화될 것이다. 관리한다고 모든 것이 관리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주어진 시간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또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원문: Peter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