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참의원 무소속 초선의원인 야마모토 타로가 구설수에 오르기 시작한 건 지난 10월 31일. 천황과 국회의원, 각료 등이 함께하는 가을 연회에서 취한 행동이 불씨가 되었다. 그는 연회자리에서, 천황에게 다가가 ‘아이들의 미래가 위험합니다. 건강 피해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의 원전사고 수습 작업원은 정말 끔찍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에 그 실상이 쓰여 있습니다. 읽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하며 전날 자신이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천황은 별다른 대답 없이 편지를 받아들었다. 다른 모든 의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朝日新聞』 2013.10.31)
정치권에선 난리가 났다. ‘천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다’는 비판이 한 편에서 나타났으며, ‘폐하께 어떻게 감히 그런 불경한 짓을’ 이라는 비난이 한 편에서 쏟아졌다. 여야 좌우 할 것 없이 야마모토 타로에 대해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그를 두둔하는 목소리는 소수였으며, 심지어 그의 의원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야마모토 타로 의원은 탤런트 출신이다. 2011년 반 원전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을 계기로 배우 활동을 접고 정치 활동을 시작한다. 2012년, 탈핵, 탈원전, 자유무역협정(TPP) 반대를 내세운 그는 일본미래당과 사회민주당의 지지를 업고 도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다음해 2013년 제 23회 참의원 선거에서 다시금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국회에 성공적으로 입성한다. 국회에 들어온 그는 본격적으로 다른 야당과 함께 반원전, 반TPP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의정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러던 와중 이런 스캔들이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왜 천황에게 편지를 건낸 게 문제인가: 정치와 분리된 천황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전후 잠시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때 기존의 헌법인 ‘대일본제국헌법’은 완전히 폐기되고, GHQ의 통제 하에 현재의 ‘일본국 헌법’이 만들어진다. 당시 최고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맥아더는 헌법 초안에 3개의 원칙을 제시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천황에 관한 규정이었다.
GHQ는 천황이 일본 국민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잘 인식하고 있었으며, 불필요하게 이를 건드림으로써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의회민주주의의 도입과 천황이라는 절대권력자의 존재는 절대로 양립할 수가 없었다. 또 전쟁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했기에 천황을 ‘오로지 상징적이기만 한’ 존재로 끌어내리는 선에서 타협을 했고, 이 내용은 일본국 헌법 제1장을 통해 고스란히 규정되었다. 이렇게 재편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상징으로서의’ 천황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국 헌법에서 천황을 규정하는 조항은 앞서 말한 제 1장의 8개조이다. 그중 제4조는 “천황은, 이 헌법이 정하는 국사에 관한 행위만을 행하며, 국정에 관한 기능을 가지지 않는다. 천황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국사에 관한 행위를 위임할 수 있다” 고 정하고 있다. 천황이 일본 정치에서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은 사실상 내각과 국회가 정한 것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승인’을 하는 것뿐이다. 이렇듯 천황의 존재는 오로지 상징으로서만 인정되며, 국회 혹은 내각에서 이뤄지는 논의에 전혀 간섭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일본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치 현안과 철저히 분리된다.
이런 배경을 파악하고 야마모토 타로 의원의 행동을 다시 살펴보자. 야마모토 타로 참의원 의원은 일본국 헌법에 규정된 대의제 기구의 일원, 즉 국민에 의해 정치권력을 위임 받은 존재이다. 반면 천황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도 않았으며, 정치적 실권도 전혀 행사할 수 없고 그럴 자격도 없다.
선의로 포장될 수 없는 국회의원의 의무
상징적인 의미에서 천황보다 더 높은 존재는 일본에 없지만, 의회민주주의라는 제도만 놓고 본다면 국회의원의 지위는 천황의 위에 위치한다. 국회의원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한 존재여야 하지, 천황의 의사를 대변하는 존재여서는 절대로 안 되며, 천황의 생각이 일본 국내 정치에 영향을 줘서도 안 된다. 이는 ‘헌법‘으로 규정된 사항이자 일본 정치의 기본중의 기본이기 때문에, 국회의원 자신도 항상 이를 자각하고 있어야 했다.
야마모토 타로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행동이 천황의 정치적 이용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건 정치 이전의 문제이다. (…) 정말 앞으로, 이 나라가 어떻게 되어갈지 하는 걱정에, 그런 마음이 가슴에 가득했다.”, “(천황을 통해 관심을 끌어보려는 목적이) 아니고, 정말로 자신의 기분,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천황폐하께서 알아주셨으면 했다.”고 말했다. (『朝日新聞』 2013.10.31)
그에게는 물론, 원전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일본을 구해야만 한다는 그런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고, 그의 진정성에 구태여 의문을 제기할 생각도 나는 없다.
문제는 그가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에 의해 선출되어 일본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가지게 된 자로서의 기본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천황이 아니라 국민과 국회의 의원들을 향해 원전사태의 실상을 목놓아 전하고, 설득해야 했다. 그에겐 그럴 권한이 있었고, 한편으로 그럴 책임이 있었다.
천황에게 아무 실권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태를 천황폐하께서 알아주셨으면 했다’는 그의 발언과 행동은, 그에게 아주 기초적인 정치적 학습조차 되어 있지 않다고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국회의원은 우상에게 축복을 비는 자가 되어선 곤란하다. 입법부에서의 활동으로 많은 국민에게 다대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국회의원이, 헌법으로 규정된 아주 기초적인 것조차 모른다는 건 (혹은 과소평가한다는 건) 대단히 곤란하다. 이런 자가 과연 국회의원으로서 권력을 행사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물음은 충분히 정당하다.
노동 3권조차 무시하는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
헌법도 모르는 ‘기본이 안 된 국회의원’의 문제는 일본만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한국 국회에는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기본이 안 된’ 모습을 비추고도 아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비판을 받고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자신을 되돌아볼 생각조차 안 하며 뻔뻔하게 무식을 과시하는 자들이 판을 친다.
가장 최근의 좋은 예시는 김태흠 새누리당 초선의원이다. 그는 “무기계약직이 되면 이 사람들 ‘노동3권’이 보장된다, 툭하면 파업에 들어가면 어떻게 관리하겠느냐”고 발언했으며, 이 발언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자, 보도자료를 내어 “발언 취지는 노동3권이 보장된다는 것이고, ‘파업’ 발언 부문은 파업이 일어날 경우 관리 측면에서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말씀드린 것”, “노동3권이 보장되기에 파업을 우려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 ‘반박’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자신이 국회의원으로 있는 국가의 헌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며, 자신이 한 발언이 도대체 어떤 면에서 잘못되어 있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33조는 다음과 같다.
①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②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③법률이 정하는 주요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아니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똑같이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이라는 노동기본권, 노동3권을 보장받고,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당연히 노조를 결성할 수 있으며, 파업을 할 수 있고, 단체교섭을 할 수 있다.
김태흠 의원은 지금까지 그런 권리를 갖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정규직 전환으로 인해 비로소 그런 권리를 갖게 되고, 따라서 파업도 가능하게 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는 명백히 틀린 인식이다.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든, 국회 청소부든, 삼성에 근무하는 직원이든 노동 3권을 헌법으로 보장받으며, 이를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것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가 명백한 ‘비정상’이다.
만약 그의 말대로 청소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이 그들의 노동 3권을 ‘비로소’ 보장하게 된다고 한다면, 그건 오히려 국회가 부끄럽게 여겨야만 하는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청소 용역 노동자들에게 그런 권리를 인정하지도, 보장하지도 않았다는 말이 되니까. 무엇보다 법에 엄격해야 할 기관에서, 헌법 조항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었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파업을 우려한다”라는 발언 자체도 황당하다. 그가 노동권에 대해 어떤 수준의 인식을 갖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파업은 ‘단체행동권‘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이다. 헌법은 왜 이런 권리를 노동자에게 부여했을까? “툭하면 파업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노동자들에게 이런 권리를 부여한 걸까? 이런 권리를 부여하지 않으면,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을 하고 노동력을 거래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가 상대적 약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관철하기 위해, 즉 사용자와 동등한 힘싸움을 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노동 3권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권리들은 헌법의 차원에서, 법률조차 이를 건드릴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이라는 말이다. 노동하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 행사 그 자체를 ‘우려한다’는 것이 과연 헌법에 근거해 법률을 제정하는 국회의원의 올바른 자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헌법도 제대로 모르는 국회의원은 이뿐이 아니다. 김진태 새누리당 초선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국정원에 의한 선거 부정개입을 규탄하는 집회를 연 사람들을 보고 “이번에 파리에서 시위한 사람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채증사진 등 관련증거를 법무부를 시켜 헌재에 제출하겠습니다. 그걸 보고 피가 끓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민 아닐걸요.” 라는 발언을 했다.
이를 통해 그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한 헌법 제1조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제 21조 1항을 정면으로 부정함과 동시에,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함으로써 법치국가의 근간인 죄형법정주의 혹은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을 무시하는 면모까지 보여주었다. 일반인이 한 발언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노릇이겠으나, 적어도 ‘국회의원‘이라는 지위를 가진 자가 해서는 결코 안 될 발언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헌법도 모르는 아마추어 국회의원들
국민에 의해, 법을 다룰 정당한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은, 적어도 ‘법‘이라는 부분에 한해선 프로여야 한다. 헌법을 수호하고 이에 따라 입법 활동을 해야 할 사람들이 정작 헌법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기본으로 삼고 입법 활동을 행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의회를 움직일 권한을 갖고 지키고자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적어도 이들의 언행으로 보아,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헌법’이나 ‘민주주의’ 혹은 ‘시민의 권리’ 같은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해보인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원전 사태 해결에 아직까지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정부의 관료적 대응은 사태를 키웠고, 사실은 은폐되었다. 헌법에 기반한 민주주의의 진정한 복권이 없다면 이런 일이 다시 터지고,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야마모토 타로 의원은 그의 행동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으나, 헌법과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소홀히 하는 방식으로는, 국가와 국민에 진정한, 그리고 또한 장기적인 이익과 안전을 가져다주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통진당, 그리고 이른바 ‘종북좌빨세력’이 나라를 흔들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며 있는대로 난리를 치지만,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이 헌법과 법률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그들은 헌법에 규정된 사항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이들의 행위를, 그들이 말하는 통합진보당의 ‘내란음모’, ‘헌법 유린’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들이 지키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도대체 그들이 생각하는 ‘헌법’과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런 자들에게 권력을 위임해도 되는 것일까?
과연 이들에게,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