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막 활약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 존경하던 한 교수님은 박지성의 예를 자주 들며 우리 학생들에게 멀티플레이어가 되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포워드부터 수비까지 오른쪽 왼쪽 가리지 않고 감독이 원하는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
엔지니어 세계에서도 그런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수 있고, 그런 엔지니어가 새로운 제품을 고민하고 기획하는 매니저들에게 중용될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그 교수님은 정말 멀티플레이어였다. 일단 전자공학을 전공한 기계공학과 교수님이셨고, 미국 큰 자동차회사 시니어 엔지니어 출신이셔서 현장 경험도 풍부하셨다. 나도 멀티플레이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가 조언을 청했다. “어떻게 하면 교수님처럼 멀티플레이 엔지니어가 될 수 있을까요?” 그 당시 교수님의 조언을 따라 전자공학 부전공을 신청하고 주요 과목들을 수강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기계 전자 컴퓨터 융합학문인 로봇공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로봇공학 연구실에는 그런 사람이 꼭 한 명씩 있다. 아니 꼭 있어야 한다. 로봇 하나를 혼자서 뚝딱 만들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 그런 학생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 연구실의 성장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그런 학생 중 하나였다. 대학생 때 조언해 주신 교수님 말씀처럼 멀티플레이어가 되니 여러 곳에 중용되었고,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실력이 쌓여가고, 내가 하는 일이 연구실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
그런데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누가 물어보면 다 할 수는 있는데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알 수가 없었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박지성이 팀에서 감독이 원하는 역할을 해내는 것처럼, 엔지니어는 누가 요청하는 것을 뚝딱뚝딱 잘 만들어 내는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위안하기도 했다. 내 머릿속에 엔지니어의 이미지는 처음부터 박지성이었으니까. 박지성이 화려한 개인기를 부리지는 않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위안으로 불만족을 덮기에는 한계에 다다를 즈음 독일로 나오게 되었다. 독일 연구실에서 나는 박지성이 될 수가 없었다. 언어가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 그렇질 않았다. 멀티플레이어는 따로 있었다. 과제만 담당하는 포닥이 있었고, 각종 로봇 개발을 위해 고용된 베테랑 테크니션이 있었고, 그들을 조율할 교수님이 있었다. 엔지니어링은 경기장에서 한 선수가 포지션을 넘나들며 경기할 수 있는 축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거기서 비로소 나는 진짜 내 포지션을 찾아야 했다. 나는 포워드인가? 풀백인가?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아니 골키퍼인가? 참 어려웠다. 뭐든지 시키는 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주특기를 고르려니 난감했다. 그래서 별수 있나,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또 한 5년 하다 보니 주특기가 생기긴 생긴 것 같다. 그리고 그 주특기를 가지고 회사에 왔다. 이제는 누가 물어봐도 포지션을 정확히 얘기할 수 있다. 뭉뚱그려서 로봇공학이 아니라 내가 가진 테크닉으로 말이다.
그런데 참 멀리도 돌아왔다. 나보다 10년 이상 더 빨리 주특기를 가진 젊은 친구들이 요즘 참 많다. 그들은 일찌감치 사회에 나가서 서로 다른 주특기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리고 서로 배워간다.
진짜 엔지니어링은 누가 요청하는 거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나 못 푸는 문제를 발견하고 함께 풀어내는 사람들이다. 리더쉽도 꼭 많이 알아야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리더가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는 아예 모르는 게 더 나을 때도 많다. 리더는 믿고 맡기고 격려하는데 주특기를 가지면 되지 않나.
‘멀티플레이어가 돼라.’ 15년 전 내가 대학생 때 그 이전 세대 어른들이 경험으로 해주신 조언이었다. 10년간 돌고 돌아 평범한 엔지니어가 된 이제 내가 후배들에게 해준다면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스페셜리스트가 먼저 되고 다른 스페셜리스트들과 함께 일하라.”
원문: 구성용의 페이스북